◈ 단양군 지역 답사
단양 신라 적성비
◇ 단양 신라 적성비(赤城碑) :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국보 제198호)
- 신라 진홍왕이 단양 주민들을 신라의 백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만든 비석
1978년 초의 어느 날, 단양에서 학술조사를 벌이던 조사팀이 흙 묻은 신발을 털려고 돌부리를 찾다가 우연히 땅 속 깊숙이 묻힌 문화재 하나를 발견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이 끝나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비석 하나 -. 넓은 비면을 빼곡하게 채운 글자들에서 왠지 모를 비범함이 느껴지는 보물의 정체는 바로 단양 신라 적성비였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진흥왕 때인 550년경에 고구려를 공격해 이 곳을 차지한 뒤 현지 주민들을 신라의 백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비석에는 440자 정도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사부, 탐지, 비차부, 김무력 등 《삼국사기》에도 이름이 나오는 공신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들에게 교시를 내려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할 때 큰 도움이 됐다가 사망한 현지인 야이차(也爾次)와 그의 가족에게 상을 내리고, 다른 단양 현지 주민들도 야이차처럼 신라에 충성하면 상을 받을 것이라거나 하는 내용이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돌에 지나지 않아 그대로 묻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보배. 우리에게 역사의 단편을 전하기 위해 오랜 세월 땅속에서 잠들었다 깨어난 그 존재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단양 수양개 선사유뭉관
◇ 단양 수양개 선사유물관 : 단양군 적성면 수양개 유적로 390(애곡리)
1980년에 수양개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유물전시관
1980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일대의 충주댐 수몰지역 지표조사 도중에 중기 구석기시대, 후기구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취락유적이 발굴되었다.
이때 발견된 찍개, 사냥돌,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긁개, 밀개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이다.
오늘날의 기술문화를 탄생시킨 초석이자 근간이 되어준 유물들만 모여있는 곳이라 그런지 박물관 입구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금방이라도 포효하며, 너른 원시시대의 벌판을 달릴 것 같은 맘모스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관람에 들어가면 어느새 주위는 온통 원시시대의 세계로 탈바꿈 된다. *입장료 : 2,000원
◇ 도담삼봉 (島潭三峰) :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명승 제44호)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는 ‘단양8경’ 중의 하나
‘단양8경’ 중의 하나인 도담삼봉은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만수시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1984년에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1/3이 수몰되면서 세 봉우리가 물 속에 잠겨있다.
이 세 봉우리는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다. 고려말에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 오라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三峰)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淸遊)하였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의 장군봉은 ‘삼도정’이라고 불리는 육각정자가 세워져 있어서 더욱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삼도정은 영조 42년(1766) 가을 조정세 단양군수가 이곳에 능영정을 창건했었는데 폐허가 되었다. 그뒤 1807년에 김도성이 목조 사각정을 건립했다가 1972년 대홍수로 인하여 유실된 것을 1976년 10월에 철근콘크리트 육각정을 신축하고, 삼도정이라 명명하였다.
나룻배를 타고 이곳 삼도정에 올라 시 한 수를 읊으면 누구나 신선이 된 듯 감흥에 젖는다
일찍이 조선초에 퇴계 이황 선생은 삼도정 정자를 보고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는 주옥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도담삼봉 주변에는 1998년에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었다가 철거했고, 도담삼봉과 석문을 찾는 관광객이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야간에 분수대에서 춤을 추는 듯 한 물 줄기는 한층 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도담삼봉은 2008년 9월 9일에 국가 명승 제44호로 지정되었다
◇ 온달 동굴 : 단양군 영춘면 온달로23(하리 산62) (천연기념물 제261호)
- 약 4억 5천만년 전부터 생성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동굴
온달동굴은 주굴(主窟)과 지굴(支窟)의 길이가 800m, 면적은 34만 9485㎡인 석회암 천연동굴로서 그 존재는 조선 지리학책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영춘현 고적도에 기록되어 있다.
이 동굴은 1966년부터 학술조사가 시행되어 1975년에 잠시 공개하였으나 지리적 여건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 단양군에서 1993년에 한국동굴학회 조사단에 개발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한 후 온달동굴 개발사업을 착수하여 1997년 10월에 사업을 완료하고, 일반에 공개하였다.
이 동굴의 특징은 석회암층 담백색 종유석과 석순등이 잘 발달되어 내부 비경이 웅장하고 동굴의 진입로가 수평을 이루고 있다. 동굴은 주선과 지선을 이루고, 1, 2, 3층으로 구분되어 아기자기한 석순이 많다. 동굴 내부의 지하수량이 풍부하여 현재까지도 생성물이 자라고 있으며, 노래기, 지네, 곤충, 포유류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온달동굴이 위치한 온달관광지에는 온달과 평강을 주제로 한 테마공원과 잔디광장, 온달과 평강의 사랑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온달 전시관, 향토음식점, 토산품판매점 등 다양한 테마의 관광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온달관광지 내에 조성된 단양 오픈 세트장(드라마 촬영 세트장)은 태왕사신기와 연개소문 촬영지로 유명한 곳으로 세트장 내에는 태왕사신기와 연개소문에 사용되었던 소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모형으로 제작된 드라마 속 등장인물과의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 입장료 : 30명 이상 - 3,000원 (경로 1,000원)
◇ 구인사 (救仁寺) :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 (국보 1점, 보물 8점)
- 칡덩굴에서 시작한 웅장한 사찰,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는 구인사도 처음에는 작은 암자에서 시작되었다. 1945년에 연화봉 아래에 자리를 잡은 상월원각 스님은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 초암을 짓,고 그곳에서 정진 끝에 큰 깨달음을 얻어 지금의 구인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웅장한 기와행렬이 강한 첫인상을 남기는 구인사. 현재 경내에는 1만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5층짜리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 대법당 설법보전(說法寶殿)과 목조 대강당인 광명당(光明堂), 관음전 등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가득 채우고 있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특히, 천태종의 유명한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조사전(祖師殿)은 사찰 내에서도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조사전 뒤쪽 산에 있는 상월 대조사의 묘소는 ‘적멸궁’이라 칭하고 있으며, 사천왕문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기와 한 장, 창문살 하나에도 금빛으로 덧칠되어 있어 구인사의 위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물이다.
구인사는 승려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실천을 통해 자립적으로 사원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단일 사찰로는 국내 최대의 신도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관음도량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