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8일(화) 신부님을 포함에서 36명이 18일(화) 06시에 출발
1. 양주 순교성지
1) 양주 순교성지는 <치명일기>의 기록을 통해, 병인박해 때 5명이 순교한 치명지를 2004년 의정부교구 설립 후에 새롭게 찾아내서 성역화를 진행하고 있는 성지이다
2) 1866년 김윤호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중국에 가서 죽은 최 프란치스코의 아내), 박 서방(아들 박사행 부부는 홍주에서 순교), 1868년 홍성원 아우구스티노가 순교했다. 홍성원의 부친(홍몽노 베드로)은 포천 고악리 공소회장을 하다가 한양에서, 형 홍성국 요한은 경기도 광주에서, 동생 홍성선은 공주에서 치명했다.
3) 순교지 표지석이 있던 자리를 확인하고, 토지를 사서 2016년 5월 28일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주례로 성지 선포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역화를 시작했다.
4) 양주 순교성지 주변에는 양주 향교와 최근에 복원이 이루어진 양주 관아, 국가 무형문화재 제2호인 양주 별산대놀이 공연장이 있어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2. 의정부 주교좌성당
1) 2004년 의정부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로 지정된 성당이다. 신암리성당, 덕정리성당을 거쳐, 1945년에 이곳에 옮겨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의정부, 양주, 동두천 지역에 있는 모든 성당을 분가시킨 "어머니 성당"이라 할 수 있다.
2) 옛 성전 뒤쪽에 있는 새 성전은 2003년 8월에 완공되어 봉헌되었다.
3. 성 남종삼요한과 가족묘소
1) 1968년 성인의 손자 남상철이 가족 묘역으로 조성했다. 이곳에는 성인과 함께 순교했던 부친 남상교(아우구스티노)와 부인 이조이(필로메나)의 묘와, 경남 창녕으로 유배갔던 막내아들 남규희의 묘가 있지만, 전주 진영에서 순교한 장남 남명희의 묘는 없다.
2) 남종삼 성인은 '승지'라는 직책으로, 103위 성인 중에 가장 높은 벼슬에 올랐던 분이지마, 공직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자, 그의 부친처럼 관직을 버렸다.
3) 1863년 말경, 러시아가 수시로 우리나라를 침범하며 통상을 요구하자, 성인은 프랑스를 이용해서 러시아를 물리치자는 '이이제이방아책'을 건의했다. 그래서 대원군은 주교님과의 만남을 시도했지만 이뤄지지는 못했고,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 1866년 2월에 천주교를 탄압했다. 성인은 서소문 밖에서50세 나이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4) 성인의 시신은 박순집에 의해 왜고개에 매장되었다가, 1909년 유해가 발국되어 명동성당에 안치되었고, 시복을 계기로 1967년 10월 다시 절두산 순교성지 유해실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그때 성인의 유해 일부를 가족묘인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 모셔 안장했다. 2018년 9월에 성인의 새 묘비를 세우고 축복했다.
4. 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 묘
1) 황사영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으며, 16세의 어린 나이로 급제해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천주교 진리에 깊이 매료되어 입교했고, 그 후에 활짝 열려있던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고난과 박해가 기다리는 신앙의 길을 걷다가 1801년 순교했다.
2) 부인 정난주 마리아(정약현의 딸, 정약종과 정약용의 조카)는 제주 대정현에 관로로 유배갔고(제주 대정성지), 외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남겨져 선종했다.
3) 황사영이 신유박해 상황과 대비책을 적어 북경 주교에게 보내려고 준비했던 "황사영 백서"는 교회사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4) 황사영의 세례명은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와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알렉산델"로 알려졌지만, 교회사 학자들에 의해 "알렉시오" 임이 밝혀졌다. 황사영 묘은 180년간 못 찾다가 1980년 후손들과 학자들이 현재 묘를 발견해서 묘역이 조성되었다.
5. 마재 성가정 성지
1) 정약종 아오스딩 복자, 부인 유선임 체칠리아 성녀, 아들 정철상 가롤로 복자, 정하상 바오로 성인, 딸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가족을 기념해서 봉헌된 성지이다.
6. 양근성지
1) 이 성지는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이벽의 집에서 이벽과 권일신과 권철신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신앙생활을 했던 곳이다.
2) 여기서 충청도와 전라도에 신앙이 전해졌고, 가성직제도로 미사와 견진성사를 2년간 집전했기 때문에, 이곳을 "천주교회의 요람" 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