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안관당(安官堂)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문학산(文鶴山)이 있다. 문학산은 고대 미추홀의 진산(鎭山)이었다. 해발 217m로 높지 않다. 산 정상 부근에는 백제시대에 쌓았다는 문학산성(文鶴山城)이 소재해 있다. 원래 문학산은 1965년부터 군부대가 주둔해 있었기에 일반인들이 오르지 못했다가 2015년 10월에 개방되었다. 현재는 문학산성 둘레로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문학산 정상 봉수대가 있던 자리 아래에 ‘안관당’이라 부르는 사당이 있었다. 안관당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인천도호부 도호부사 김민선(金敏善)[1542~1592]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었다. 김민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문학산성을 수리해 지키면서 왜적을 무찌르다 전사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르게 전해지는 설화가 있다.
안관할아버지를 비웃어 벌 받은 부인
옛날, 문학산 안관당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할아버지와 할머니 상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목상은 험상궂게 생기기는 했지만, 눈을 부라린 모습이 용맹하게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 목상을 보고는 “마치 불법을 지키는 금강역사와도 비슷하게 생겼네.”, “그래도 우리 마을 문학산을 지켜 주는 신령님이신데.”, “암, 우리 마을이 평안한 것은 다 저 두 분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이야.”라고 하였다. 문학산성 아랫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안관당에 모셔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목상을 각각 ‘안관할아버지’, ‘안관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안관할아버지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의지하였다. 매년 봄과 가을에 안관당에서 마을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과 풍농(豐農), 풍어(豐漁) 등을 기원하였다. 또한 개인적인 소원을 빌 때도 안관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빌기도 하였다. 특히 아기가 없는 사람들은 안관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백일 정성을 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현재 청학동에 사는 최씨 문중의 한 부인이 안관할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흉을 보았다. “흥, 이것이 다 뭐람? 이상하게 생긴 목조상을 갖다 놓고 이걸 산신이라고?”, “다 어리석은 미신이고 우상일 뿐이야.” 그리고는 사람들이 안관당에 와서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그리고 열 달이 지나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조금 모자랐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부정을 탄 거야!”, “안관할아버지를 비웃었으니 할아버지가 노하셔서 벌을 주셨는지도 모르지.”라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아이의 모습이 안관할아버지처럼 눈을 크게 부라리고, 마치 마을 주민들을 쥐어박을 듯 주먹질을 해대었다. 그리고는 “씨익, 씨익.”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이 아이를 보면 “어, 씨익 할 네 가는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씨익 할 네’는 ‘씨익’ 소리를 냈기 때문에 아이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안관할아버지를 욕했기 때문에 그러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김민선 부사와 문학산 산신의 영험함을 전하는 설화
한편, 김민선 부사가 전사하고 나서, 그의 혼령을 위로하는 사당이 없었는데 김민선 부사의 혼령이 가끔 나타나, 그의 혼령을 모시는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병자호란이 있을 때는 김부사가 목마를 타고 나타나 창과 칼로서 막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 사당이 보이는 곳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를 못했다고도 한다. 안관당은 원래 김민선 부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여기에 문학산 산신인 안관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연계되었다. 이 두 설화는 김민선 부사는 물론 안관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험함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