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체를 구성하는 분자와 원자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것들이 깨지거나 합쳐지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는데 이것을
이탈리아의 화학자 페르미가 발견하여 1938년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페르미는 이론만을 설계했지만 실제로 핵분열을
감지해낸건 기술덕후 국가 덕국 나치독일이었습니다.
-요 아저씨가 천재 화학자 페르미-
핵분열을 성공시킨것은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온 유럽계 물리학자들은 그 파장이 얼마나 심각
한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표라 할수 있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쓰게됩니다. '핵분열은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므로 그것을 응용하면 엄청난 폭탄을 만들수 있다. 나치독일이 만들기전에 미국이
먼저 만들었으면 좋겠다'란 내용의 편지를 보내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나치 독일이 그렇게
위험한 무기를 만들면 큰일 이었으니까요.
-세계정복을 꿈꾸는 자들에게 그런 무기를 쥐어줬다간???-
1939년 8월 2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를 얻어 극비리에 핵무기 개발을 실시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라 불리운
거대한 프로젝트를 말이죠. 책임자로는 유럽과학자들이 살짝 못 미더웠던지 미국 출신의 저명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임명되었습니다.
-잘나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진두지휘아래 수많은 유럽출신 과학자들이 나치독일보다 빠르게 원자폭탄을 만들어야한다는 사명감아래
전부 핵무기 개발에 매진합니다. 페르미와 아인슈타인도 그 많은 과학자들 중에 껴있었지요.
-두번째줄 왼쪽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 옆에 뭔가를 적는사람이 리처드 파인만, 앞줄 왼쪽서 세번째가 엔리코 페르미-
-아인슈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하지만 아직 1939년 당시에는 미국이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던 시절이었던지라 예산도 적었고, 정부의 관심도 '한번 만들어볼까?'
정도로 미약했지요. 하지만 1941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이야기가 180도 바뀌게 됩니다. 예산도 확늘어나고 맨해튼 프로젝트가 모든
연구개발 프로젝트중 제일 상위권에 놓이게 됩니다. 무려 20억달러라는 예산이 투입되고 13만명의 연구개발진이 투입되어 핵무기
개발에 매진됩니다. 수천명의 달하는 과학자들이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의 외진곳에 모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마침내
1942년 12월 2일 페르미가 이끌던 팀이 시카고대학의 연구실에서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성공한뒤에 본격적으로 원자폭탄제조에
나섭니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재료가 될 원소를 택하게되는데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 239가 선택되게됩니다. 둘다 막대한 전기
에너지를 요구하는 생산공정이었으므로 무려 34000명의 노동력이 동원되어 이 원소들을 만들어냅니다. 한편 이렇게 기술 개발과
이론 연구가 착착 진행되었지만 워낙 거대한 프로젝트였던지라 개발을 더뎌졌고, 아직 폭탄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1945년 5월
나치 독일은 항복하게됩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하지만 아직 태평양전선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지리한 소모전만 계속되자 미국도 부담을 느껴했습니다. 한편 맨해튼 프로젝트
에 모인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치독일이 개발하기전에 원자폭탄 개발을 하려했건만 나치독일
이 패망한 이상 이 원자폭탄이 과연 쓸모있는가하고 말이죠. 그중에 한 사람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스질라드가 총대를 메고
나섭니다.
-헝가리 태생 물리학자 레오 스질라드-
그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재임중에 사망하고 그의 후임자가 된 해리스 트루먼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 원자폭탄
을 만들어내더라도 일본에게 먼저 항복을 요구하고 일본이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만 이 원자폭탄을 사용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죠. 이에 다른 과학자 150명이 동참하여 서명을 적어 보냅니다.
-1945년 4월 12일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사망하자 그의 후계자가된 해리스 트루먼-
그리고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원자폭탄 제작에 성공한 많은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의 실제 실험이 시작됩니다. 과학자들이 'baby'
라 부르던 폭탄을 강철탑 위에 얹어놓고 다 대피한 뒤에 원자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무기를 손에 얻었습니다-
실험은 대성공이었고,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그 위력에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이 무기가 인류를 향해
사용되지 않아야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해리스 트루먼 대통령에게 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 일이 있은뒤 10일후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화민국의 지도자들은 독일 포츠담에서 회담을 가지고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내용의 포츠담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1억 옥쇄 이러면서 항복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10여일이 지난후 해리스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에게 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지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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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전후 핵무기의 무자비한 살상력에 오펜하이머도 반핵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니
이 말이 힌두교의 경전에 나온 말입니까..
번역마다 차이가 좀 있는듯,죽음대신 시간으로 번역한것도 있더군요.
묵살의 번역오류 크리..... 하긴 뭐 거부나 무시나 둘다 "나는 똥꾸멍에서 별 모양 똥이나올때까지 맞겠습니다."라는 선포니까요
...그래도 저 때 만들어진 핵무기는 마이너 중에 마이너긔....차르붐버를 생각해보면..ㄷㄷㄷ;;;
미국은 진정한 인류 최초의 원죄를 저질렀지요.
과학자들은 연구하고 성과가 하나하나 나올때마다 경악했을듯...
쩝, 원자폭탄의 수혜(물론 소련의 만주공격이 더 큰 요소였겠지만)로 독립을 이룬 우리나라 입장에선 원폭투하를 고소해할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만...오늘날 원폭가지고 피해자 드립치는 일본 극우들을 보면 참ㅡ,.ㅡ;;;
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