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시험의 그림자
1. D-Day의 아침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새벽 4시 58분.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가슴이 쿵쿵거렸다. 오늘은 첫 모의고사 날이었다. 시계를 보자마자 태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위 달력에는 '3월 모의고사 D-0'이라는 글자가 빨간색 형광펜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거울을 보니 눈 밑이 퀭했다. 머리도 감지 못한 채 교복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았다. 손끝이 떨려 펜을 잡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연습한 문제도, 오늘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1교시 국어부터 망하면 어떡하지?’
‘수학은 지난번보다 나아졌을까?’
‘영어 듣기 실수하면 끝인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보다, 오늘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2. 침묵의 교실
학교에 도착한 교실은 전투 전 대기실 같았다. 모두가 말없이 앉아 시험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친구는 마지막까지 참고서를 붙잡고 있었고, 어떤 친구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암송하고 있었다.
지원이도 도착했다. 얼굴이 창백했다.
"잠 못 잤지?" 태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너도?"
"응."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문 채, 시험지를 받아들 준비만 했다.
1교시 종이 울리기 직전, 담임 선생님의 말이 교실에 울렸다.
"이 결과가 전부는 아니에요. 하지만 방향을 잡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감이라는 무게만 덧씌운 말이었다.
3. 무너지는 마음
시험이 끝났을 때, 복도는 조용했다. 전쟁터를 방금 벗어난 군인들처럼, 친구들은 무기력하게 자리에 앉거나 복도에 주저앉았다.
"수학 진짜 헬이었지?" 누군가 말했다.
"나 진짜 다 틀린 것 같아."
"국어 화작, 17번 진짜 뭐야? 독서도 말도 안 돼."
태윤은 자신의 OMR을 다시 떠올렸다. 하나하나 답이 확신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러뜨릴 뻔했다.
"태윤아, 너 수학 어땠어?" 지원이가 물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느낌이 안 좋아."
"나도… 우리 진짜 어떡하지?"
태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이라는 벽에 부딪힌 감각. 모의고사라지만, '모의' 같지 않았다. 진짜 수능을 맛본 느낌이었다.
4. 다시 시작되는 압박
시험이 끝난 다음 날, 교실은 다시 예전처럼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 속엔 또 다른 압박이 흘러넘쳤다.
"이제 중간고사 D-30이다. 4월 26일이래."
"너 이번에 몇 등급 목표야?"
"내신은 절대 놓치면 안 돼. 특히 과탐."
모의고사로 정시 가능성을 가늠했다면, 이제부터는 수시를 위한 내신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5. 무너지는 루틴
태윤은 다시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하지만 이전보다 눈을 뜨기가 더 힘들었다. 모의고사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책상 앞에 앉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국어 문제를 펼쳤지만, 눈이 글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러다 중간고사도 망치면 어떡하지?'
'그럼 수시도 정시도 둘 다 끝인데?'
머릿속에 또 불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았다 떠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원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 오늘 공부 잘돼?"
"아니… 나 아직도 모의고사 여운에서 못 벗어났어. 근데 4월 중간고사 생각하니까 미치겠어."
"나도. 일단 오늘은 내신부터 정리해보자."
"그래… 우리 진짜 버텨야 해."
서로를 위로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은 위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의 싸움, 4월 말 중간고사 D-30의 그림자가 이미 그들 위로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