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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로: (10/28)서울교대역 1번-(전용버스)-경주 명성한식당-불국사-양남 주상절리-문무대왕릉(대왕암)-감은사지 삼층석탑-대본항 갈매기횟집-(10/29)갈매기횟집-보문관광단지 호반광장과 보문호-동궁과 월지-대릉원-별채반 교동쌈밥-(전용버스)-서울교대역
*아래 지도에서 지명 뒤에 붙은 번호는 탐방 순서.
산케들: 重山 부부, 百山 부부, 空華 부부, 淸泫 부부, 동우부부, 大仁 부부, 長山 부부, 慧雲 부부, 새샘 부부, 素山, 法泉, 東峯, 如山, 大谷, 元亨(24명)
협찬: 正允 50만 원, 素山 발렌타인 30년 산 1병과 오미자 샴페인 1병, 慧雲 청보화제과 쿠키 30팩, 重山 의성단감 1상자.
올해 만 나이로 칠십이 되는 산케들의 진짜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산케봉사부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1박 2일 일정의 부부 동반 경주 여행이었다.
이날 21명의 산케들은 교대역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도시이자 신라 천년(실제로는 서기전 57년 신라 건국부터 935년 신라 멸망 때까지 992년)의 고도인 경주로 향했고, 중산 부부와 동봉은 경주 불국사에서 만날 예정.
이번 경주 탐방은 두 번째로서, 16년 전인 2007년 4월 430차 산행 때 부부 동반 42명이 남산과 토함산을 등정한 바 있다.
이 글은 경주 여행 둘째 날 여행기!
대본항 갈매기횟집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산케들은 아침 일찍 깨어 얘기들을 나누다가 6시 44분 문득 창을 통해 바다 저멀리 수평선 위로 떠오른 붉디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우와!' 환성을 지른다.
아침을 먹기 전인 6시 55분 아침 산책을 나가 대본항의 방파제 끝 등대까지 걸어가 본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 앞에서 바라본 대본항의 아침 풍경
8시 어제 저녁 식사를 했던 대본항 갈매기횟집에서 깔끔한 맛의 전복죽과 시원한 미역국으로 아침 식사!
오늘 일정은 어제에 이어 경주 시내에 있는 관광지를 탐방하는 것.
8시 55분 대본항을 출발한 전용버스는 40분 뒤 첫 탐방지인 경주보문단지 주차장에 우릴 내려준다.
주차장에서 보문광장 가는 길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진노란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신라 수도 서라벌(현 경주)을 방어하는 명활성明活城 옛터에 농업용 저수지인 보문호普門湖(보문저수지)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조성된 관광단지다.
1971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79년 1단계 공사를 마치고 관광단지를 개장하였다.
현재 보문관광단지에 들어선 위락시설들은 놀이시설 경주월드어뮤즈먼트(옛 이름은 경주월드리조트), 민속촌 신라밀레니엄파크,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중도타워와 9층 목탑의 실루엣을 재현한 경주타워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그리고 블루원 워터파크 등이며, 상업문화시설로는 보문상가와 보문탑, 그리고 국제 규모의 호텔, 콘도, 연수원을 포함하는 숙박시설이 많다.
인터넷에서 찾은 보문관광단지 조감사진(사진 출처-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75a1d0af-cbe1-44fb-91df-42595f6ec45e)
보문호 주변의 호반광장으로 들어선다.
보문호 수면에 뜬 부표에 앉은 왜가리 1마리.
인공저수지인 보문호의 물은 동쪽에 있는 덕동호에서 연결된 수로를 따라 유입된다.
호반광장에서 호변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보문호 안에 설치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끝까지 들어가서 만든 보문호 인증샷!
전망대에서 바라본 보문호 풍광
보문호변을 가로지르는 다리 보문1교.
이 다리 아래로 흐르는 수로가 덕동호에서 유입되는 물이다.
보문1교 위에서 바라본 보문호.
보문호 구경은 이 정도로 여기서 끝내고 호반광장으로 되돌아가서 호반광장 전망대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호반광장에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황룡사 9층 목탑 모양의 건축물 중도타워가 보인다.
그 오른쪽 건물은 HICO 컨벤션센터.
10시 15분 보문관광단지를 출발하여 다음 탐방지인 사적 동궁과 월지 매표소에 10시 35분 도착.
동궁東宮은 통일신라시대 태자가 거처하는 별궁이며, 월지月池는 동궁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이다.
이곳은 나라의 경사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무왕 때인 674년에 지은 동궁의 궁궐 건물로는 바닷가의 전각이란 뜻을 가진 임해전臨海殿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월지는 동해 바다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궁과 월지는 한때 안압지雁鴨池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1980년 연못에서 '月池'와 '東宮' 명문이 새겨진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어 신라시대에는 '동궁' '월지'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부르던 안압지란 이름은 폐허가 되어 갈대가 무성한 이 연못에 기러기(안雁)와 오리(압鴨)들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붙었다.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유명한 것은 1975년 연못 바닥에 엎어진 채 모습을 드러난 통일신라시대에 건조된 나무배로서 당시에는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선박이었다.
이와 더불어 신라시대에 만든 14면체 나무 주사위 주령구酒令具도 나왔는데, 14개의 면마다 재미있는 술 마시는 다양한 벌칙들이 새겨져 있다(한 예는 '술잔을 비우고 크게 웃기'를 뜻하는 '음진대소飮盡大㗛').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영상관에서 안내 동영상부터 감상.
정문을 들어서서 바라본 동궁과 월지 전경.
맨 앞에 보이는 건물 오른쪽에 낮은 울타리가 쳐진 곳이 월지다.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과나무.
월지 주위를 빙 돌면서 찍은 연못 풍광들.
빨간 색동옷을 연상케 하는 작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참빗살나무는 참빗의 빗살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궁과 월지에서도 인증샷은 빠질 수 없다!
동궁과 월지를 빠져나가면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
11시 20분에 동궁과 월지에서 출발하여 25분 뒤인 11시 45분 대릉원 정문에 도착.
사적 대릉원大陵園은 신라시대의 왕, 왕비, 귀족 등 무덤 50기가 모여 있는 평지에 자리잡은 고분군이다.
대릉원은 경주노동리고분군, 경주노서리고분군,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황오리고분군, 경주인왕리고분군등 5개의 고분군이 통합된 것이다.
대릉원을 대표하는 고분은 뭐니뭐니해도 천마총이며, 이밖에도 미추왕릉과 황남대총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린다.
대릉원 정문을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는 대릉원 안내도
대릉원의 대표 고분 천마총은 맨 안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정문에서부터 이어지는 솔숲길을 따라 계속 안으로 들어간다.
대릉원의 큰 감나무에는 가을을 알리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천마총 옆에 있는 황남대총은 신라 고분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고분 이름 자체가 황남동 최대의 고분이란 뜻이다.
남북으로 두 개의 무덤이 서로 맞붙어 쌍무덤으로서 남자가 묻힌 남분南墳을 먼저 만든 다음 여자가 묻힌 북분北墳을 잇대어 만든 것.
학계에서는 신라 17대 내물 마립간, 18대 실성 마립간, 19대 눌지 마립간 중 한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드디어 대릉원 가장 안쪽에 위치한 천마총天馬塚 도착.
천마총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으로서, 무덤에서 1973년 국보 천마도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고분 이름이다.
천마도는 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 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 기구인 말다래(장니障泥)에 그려진 그림.
이밖에도 천마총에서는금관과 금보 등 1만 점이 넘는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부장품들을 통해 당시 신라왕과 왕족들이 죽으면 사체에 금관을 씌우고 금제품들을 부착한 채 여러 껴묻거리(부장품)들과 같이 거대한 돌무지 덧널무덤에 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대릉원에서 천마총만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다.
천마총 안에 들어서면 고분 안으로 연결되는 복도 양쪽 벽에 출토된 금관 등 금제 부장품들의 복제품이 붙어 있다.
천마총 안에 만든 돌무지 덧널무덤 모형.
나무 덧널 안에는 금관 등 부장품 복제품들이 들어 있다.
천마총 안에 전시된 발굴된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 복제품과 복원한 말다래.
천마는 신라왕의 권위를 영혼을 실어나르는 하늘을 나는 말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천마총에서는 위의 말다래 천마도 외에도 대나무살로 엮어 바탕판을 만들고 앞면에 마직을 댄 뒤 천마마문 등의 무늬를 넣은 금동판 10개를 조합해 만든 죽제 금동천마문 말다래도 출토되었다.
이 출토품을 복원해서 만든 복제품.
천마총 안에 전시된 발굴 유물 복제품들.
말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던 금제 말갖춤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착용했던 금관을 비롯한 금제 복제품들
섬세한 장식이 달린 금으로 만든 새 날개 모양의 관 장식품인 금관조익형관식金製鳥翼形冠飾 복제품
오키나와산 야광조개 껍질로 만든 국자인 야광조개국자
천마총 구경을 끝내고 나와 대릉원을 빠져나갈 때는 들어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따라간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사이에 있는 연못을 지나 황남대총 뒤쪽으로 난 길이다.
대릉원 발굴 과정에서 나온 돌인 석조유물을 모아 놓은 곳
대릉원의 이 소나무는 몸통 줄기가 중간에서 둘로 갈라진 다음 다시 붙음으로써 한 그루의 나무에서 생겨난 연리지!
대릉원의 유일한 대나무숲은 부근에 13대 미추왕릉이 있음을 말해준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나무 관련 미추왕릉 전설은 다음과 같다.
신라 14대 왕 유례 이사금 때인 297년 이서고국伊西古國이 당시 신라 수도였던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이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竹長陵 또는 죽현릉竹現陵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릉원 정문 가까이에 있는 미추왕릉 옆을 지난다.
주위에 담장을 두른 미추왕릉 출입문.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이었던 미추 이사금味鄒泥師今(재위 262~284)은 여러 차례 백제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하는 등 민생에 관심이 많은 왕이었다.
미추왕릉 앞에는 제단이 있고, 그 오른쪽에 '신라 미추왕릉 新羅 味鄒王陵'이라 새긴 비석이 서 있다.
대릉원 정문 쪽 미추왕릉 주변 솔숲
12시 54분 대릉원을 나와 첨성대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라고 새긴 큰 화강암 표석이 서 있고 그 뒤로 또 다른 대릉원 고분군이 보인다.
첨성대 가는 길
첨성대 입구
국보 첨성대瞻星臺는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27단의 부채꼴 모양 돌로 쌓은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는 우물 정井자 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9m다.
옛 기록에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되어 있어,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을 것이다.
천문학은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을 뿐아니라 국가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에 따른 정치와도 관련되어 있다.
첨성대는 2016년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2017년 5.4의 포항 지진 등 두 차례의 강진을 거뜬하게 견뎌낸 내진 설계된 고대 구조물로서 높이 평가받는다.
대릉원 일대에 차가 엄청 막혀 첨성대에서 걸어서 예약된 점심 식당인 별채반 교동쌈밥에 1시 20분 도착.
걸어가는 도중 원형 대장은 이번 경주 여행은 첨성대 탐방을 마지막으로 하고 점심을 먹은 뒤 바로 상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모두들 OK.
예약이 되어 있음에도 빈 자리가 하나도 없어 밖에서 10분 이상 기다린 끝에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이 있는 지역도 대릉원 일대로서 길 건너편에 고분들이 보인다.
1시 30분 경주에서 산케들의 마지막 건배!
경주에서 2시 15분에 출발한 전용버스는 예상보다 빠른 6시 30분 교대역에 도착.
여태까지의 산케 지방 일정 가운데 교대역에 이렇게 빨리 도착한 적은 없었다.
교대역 이남장에서 설렁탕을 안주로 약주 한잔을 마시면서 기나긴 1박 2일 진짜 칠순 여행을 엄청 즐겁게 마무리!!!
2023. 11. 3 새샘
첫댓글 괴테 이탈리아 여행기보다 더 나은
여행기이네. 이렇게 훌륭한 글을 적으면
미참여자가 늘어날 수 있다.
미완성 후기에도 댓글을..
고맙소 대경!
'유'모 교수가 썼던
문화유산 답사기보다 훨씬 현장감이 느껴지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또 뵙겠습니다
다음번엔 진하게 같이 하길 기대합니다 중산.
90년대 초반 보문호수 바로 옆에 현대경주관광호텔
신축현장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했다. 휴일에 자주 찾은 데가 불국사,석굴암,감포였던 것 같다. 동궁과 월지,대릉원,천마총 등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군을 이끌고 긴 행사를 무난히 끝내준 집행부에 감사드리며, 정성드려 좋은 기록 남겨준 새샘께도 찬사를 보낸다.
20년전, 26산악모임에 출근부를 만들었지요.
밴드가 없었을때 카페는 유일한 나의 온라인 산케들과의 만남터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몸도 지치고 휴대폰 밴드도 생기고 코로나에, 그 사이 친구들 하나둘 떠나고...
그래서 무엇보다 26등산객들의 한결같음을 부러워하면서 출근부 대신에 산행기 구경을 즐기지요. *^^*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여행은 사진을 남기는데
산케는 후기를 남깁니다.
26산케의 城主, 새샘의 수고를 존경합니다.
중요한 산행기마다 촌철살인 덕담과 추억살리기 멘트를 해 주는 하원규 친구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서울산케 1000회 산행때 르네상스 호텔에 숙박도 제공해 주고 아침도 사 주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