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횟집’ / 70년 동안 생선회 뜬 이후석할머니의 건강한 삶
안경없이 신문을 읽고 안경없이 바늘 귀에 실을 꿴다는 만 91세의 이후석 할머니.
그는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자신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새댁의 나이”라며 환하게 웃으신다.
19세 꽃다운 나이에 통조림공장을 운영하던 부잣집 아들한테 시집와서 5남4녀의 자녀 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신 장한 어머니이시기도 하다.
시집 가던 날부터 부잣집 잔치를 찾아 온 손님들의 상차림을 해야 했던 운명(?)으로 생 선회를 뜨기 시작한 것이 뒷날 생계의 방편이 되었고 훗날 70년의 긴 세월 동안 회 뜨는 일을 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만하면 기네스북에도 오를 만한 대상이 아니겠느냐”며 여유 있는 웃음으로 농담도 하신다.
90 나이를 넘기시고야 며느리 김귀남씨에게 하던 일을 맡기시고 맑고 푸른 동해 바닷 가에서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할머니는 “오존이 많은 바닷가에서 생선회를 상식(常食)하는 것이 건강하게 장수를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비결이며 자신은 건강의 한 표본”이라는 지론이시다.
월포 바닷가 외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손님들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오시는 분들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할머니는 일년 중 설날과 추석, 두 차례 군복을 입은 청년들에게 음식값을 받지 않는 봉 사를 계속 하셨다고 한다.
두 명절날에는 주변의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는데,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의 병사 들은 외출해서 음식을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날 백번횟집을 찾아오는 군인들에게는 어머니처럼 떡국을 끓여 주고 송편을 차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제대를 하고 고향땅 전라도나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 살면서 아내와 애기들을 데 리고 할머니를 잊지 못해 찾아 올 때가 가장 행복했고 식당을 한 보람을 크게 느껴셨다고 하신다.
“이제 그만 하시던 일을 놓으시고 저희집에 오셔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시라”는 대기업 의 임원을 역임한 큰 아들의 간곡한 권유에도 “나는 바닷가에서 일하는 것 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고 하신다.
더 나아가 아들 내외에게 ‘너무 큰 아파트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여유 있는 부(富)를 어려 운 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는 방편을 찾아 보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권고까지 했다며 웃으 셨다.
경주를 찾아 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백번횟집을 많이 찾는다는데, 이들은 아버지의 추천으 로 이 집을 찾는다고 했다.
해방 전 일제 때 맺어졌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소중한 경우라고 하신다. 이들은 유창하게 일본말을 구사하는 할머니를 만나 놀란다며 횟값이 일본에 비해 너무 싸기 때문 에 “횟값은 공짜, 봉사료만 지불하는 것”이라며 즐거워 한다고도 했다.
백번횟집을 찾아 온 일본 손님 중에는 일본의 최고명문대학의 총장도 계셨고 그 외 여러 명의 저명인사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 가서는 꼭 “감사했다” 는 전화를 주고있다는데, 할머니는 이런 ‘예의’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이라고 강조하신다.
‘백번횟집’이라는 옥호는 수동식 전화를 사용하던 옛 시절, 이 집 전화번호가 ‘100번’이었 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식탁에 앉아 창밖을 내다 보면 월포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진다.
메뉴 잡어물회 1만2000 원. 모듬회 4~10만 원 전화 054-232-3600 찾아 가는 길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방어리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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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보 절 일고 갑니다.
할머니의 건강에 박수를 보냅니다. 계속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