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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神父의 - 외줄위를 걷는 人生
42. 다시 예수원행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기하게도 군대서부터 생긴 발의 무좀이 어느새 깨끗이 사라지고 없다.
노가다 생활에 무좀균도 놀란 모양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십장인 명출이형이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다.
계속 예수쟁이로 살려면 더 정들기 전에 진즉 인연을 끊자고 최후통첩을 했던 형이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나와 병곤이를 다시 받아들였다.
참을 먹으며 형님이 전과 달리 서먹한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고는 구수한 목소리로 자기만 아는 조국통일 방안을 소개했다.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느그들은 놀랠 수밖에 없는 기라.
우리 집안에 촌수가 좀 멀기는 하지만 진짜 똑똑한 아재가 있었거든.
사상 때문에 감옥도 갔다 오고, 평소에 하는 일 없이 늘 집에서 책만 읽고 있는 기라 .
하루는 찾아 갔더니만 내한테만 가르쳐 준다면서 절대 남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서는 비밀을 얘기해주는 기라.
경찰이 알면 가만 안 놔둔다는 거지.
아재가 감옥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도통한 도인이 감방에 들어왔다 안 하나.
그래서 그 도인을 선생으로 모시고 도술도 배우고 둔갑술도 배우고 했는데, 그 도인에게 직접 들은 얘기라 카는 기라.
도인께서 고기가 하도 먹고 싶어 평소 감방에 드나드는 큰 쥐를 노리고 있었는데 저녁밥을 조금 남겨 방구석에 던져 놓았더니 큰 쥐가 냄새 맡고 몰래 들어온 기라.
그래서 얼른 잡아 패대기를 쳐서 죽여 버렸다 안하나.
적당한 요리방법을 찾을라꼬 죽은 쥐를 방안에 잠시 놔 뒀는데 밤중에 다른 쥐가 또 와서는 그 쥐 입에 무얼 집어넣으니 쥐가 바로 살아나더라는 기야.
하도 신기해서 밖에서 생쥐를 잡아 일부러 죽여 방안에 한번 놔 둬 보았더마는 또 그 쥐가 무얼 물고 와서 먹이는데 이번에도 또 살아나더라는 거야.
그래서 그 도인이 죽은 사람 살리는 방법을 연구해 비방을 알아냈는데 도인이 이 얘기를 교도소장에게 얘기했더니 죽도록 패기만 하고 믿지를 않더라는 거지.
그래서 도인이 아제에게 그 비방을 전수해주고는 사형 당해 죽었다는 거야.
아재는 이 방법으로 6.25 때 죽은 수 백 만 명의 군인들을 모두 살려 다시 중공군과 쏘련군을 상대로 전쟁을 해볼 계획이었는데 안 된 거지.
감옥에서 나와서 가르켜 준 비방대로 다시 해보니 생각처럼 안 되더라는 거야.
아재가 그 비방이 너무 아깝다고 한때는 그걸 성공시킨다고 집안 돈도 많이 썼다 카이.”
“비방이 뭔데예?”
“사람뼈로 뭐 어떻게 한다 카데.”
“그래예? 와 참 내 머리 아프네. 죽은 사람 뼈를 가지고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긴데.”
“안 믿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기라. 그때 그 도인 말 듣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었는 기라. 남북통일 벌써 됐고,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잘 살게 될 수 있었는 기라.”
“명출이형! 술이나 한잔 하입시다. 죽은 사람 기껏 살려가지고 사람 죽이는 전쟁은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명출이형! 그 말 진짜 믿소?”
“너그는 안 믿기나? 김군은?”
“믿고 싶습니다. 그런 아까운 도인을 죽였다는 게 가슴 아프네요.”
“나는 진짜 억울해서 땅을 친다니까. 좋은 기회 다 놓친 기라.”
“형도 참! 술맛 떨어지게. 딴 데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소. 사람 우습게 보요.”
“상관이 없다. 마. 니만 괜찮으면 된다. 김군! 우리 마누라가 자네 좀 보자더라. 저녁 같이 먹자던데. 시간 되나?”
“그러죠. 뭐.”
우리는 어느새 십장을 명출이형으로 부르고 있었다. 형수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초등생인 사내아이 등에 종기 서너 개가 크게 불거져 있었다. 의사가 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척추 위라 겁이 난다는 것이다.
종기 위에 고약을 사다 크게 잘라 부치고 종합비타민을 먹이라고 권하였다.
사상공단 삼호화학에 당도하니, 아직 십장은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 처음 소개 받은 십장은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공장 보일러실 앞마당에 작은 엔진이 하나 놓여 있고 서너 명의 근로자가 둘러 앉아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밤을 샜는지 얼굴색이 까맣게 죽어서 서 있지도 못 하고 쭈그리고 앉아서 뭉그적거리는 게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반장이 우유 한 팩씩을 돌린다.
요즘 공장에 불이 날 정도로 기계를 돌려도 주문을 못 맞춘다고 했다.
경기가 너무 좋아도 근로자는 고달팠다. 조금 뒤 십장이 왔다. 내 나이 또래나 됐을까. 최씨라고 소개를 했다.
그날 일은 건물 외부에 노출된 크고 작은 파이프에 유리솜을 입히고 테이프로 감는 일이었다.
그는 모든 말에 육두문자를 조사처럼 썼다. 나는 하루 종일 그에게 욕을 뒤집어쓰며 일을 해야 했다.
그는 고무코팅이 된 장갑을 끼고 유리솜(석면)을 다루면서 나에게는 아무런 주의도 주지 않았다.
나는 마땅한 헌장갑을 찾다가 결국 공장 밖으로 사러나가겠다고 하니 시간이 없으니 그냥 작업하라고 했다. 맨손으로 석면을 만지다가 손이 따가워서 작업을 더 이상 못 하겠다고 일어서니, 파이프렌치를 땅바닥에 내동이치며 화를 내었다.
배에 아직 기름이 덜 빠져서 태도가 그렇다며, 학교에서 그것 밖에 못 배웠냐고 악을 썼다.
무안해서 웃으면 자기를 비웃는다고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다.
그는 내가 겁을 먹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점심도 먹기 전에 그는 이미 목이 완전히 잠겨버렸다.
그는 내가 일하는 걸 봐가면서 일당을 쳐 주겠다며 일주일이 지나도록 일만 시켰다.
일이 마무리 되자 그는 사정이 생겼다며 나를 먼저 집에 돌려보냈다.
욕만 배부르게 먹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기가 막혔지만 며칠 내로 준다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싸우기도 싫었고 다시 상대하기도 싫었다.
아내가 서울서 전화를 했다.
의논할 일이 있으니 상경하라고. 아기도 보고 싶고 해서 급히 기차를 탔다.
아기를 받아든 나에게 아내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예수원의 토레이신부님이 며칠 전 이 집을 방문해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여보! 신부님이 우리 가족에게 제안을 했어요. 예수원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당신 다시 돌아가고 싶소?”
“마음에 걸려요?”
“예수원에서 잘 사는 당신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억지로 데려가서는 고생만 잔뜩 시키고. 결국 아기만 하나 덜렁 만들어 놓고 살아갈 힘이 없으니까 도로 돌아왔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겠소?”
“당신 언제가 되었든 사제가 되려면 예수원생활을 통해 훈련을 더 받아야 되요. 토레이신부님 밑에서.”
“나는 아무래도 교회에서 다시 받아 줄 것 같지가 않소.”
“하느님이 잘 갈아진 칼을 쓰지 않을 리가 없어요. 그리고 종교인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공동체생활훈련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만 예수원으로 돌아갑시다. 자존심 내세울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이 출산한 지 두 달도 채 안 되었고, 아기도 너무 어리니 몇 달 더 있다 가면 안 되겠소?”
“겨울이 닥치기 전에 빨리 갔으면 해요. 당신도 몸이 여기저기 다쳐 성한 데가 없는데 더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그 생활 정리해요. 노가다도 하기 힘든 형편이잖아요.”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데 하도 면목이 없어서 하는 말이요. 토리신부님 뵙기도 부끄럽고.”
“형님! 저 부산을 떠야겠네요.”
“어디로 가는데?”
“예수원이라고. 강원도 태백에 있는 수도원공동체입니다.”
“거기는 뭐 해 묵고 사노?”
“중보기도의 집이라고도 하는데 남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주로 하는 일입니다. 물론 노동도 하구요.”
“한 마디로 과부 따묵는 데 아이가? 예수 핑계 대고.”
“그런 데가 아니라니까요.”
“좋은 얘기는 누가 못 하노? 입보다 몸이 말을 안 들어 그렇지. 갔다가 언제 오노? 영영 거기 살끼가?”
“가 봐야 압니다. 사람 일을 알 수가 있습니까?”
“어디 가 있던지 사람이 성실해야 되는 기라. 남의 일이라도 열심히 내 몸 안 아끼고 해 주고. 사람 참 내 서운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정 붙을 만하니까 가 뿌리네. 병곤이는 데리고 가지 마라. 사람 없다. 건강 조심하고”
“그런데 최씨 밀린 일당 못 받은 거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그거 쉽지 않을 낀데. 원래 돈이 질긴 양반이라. 일 끝나고 그 자리서 돈 못 받으면 어려운 기라.”
“예! 알겠습니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 동안 입은 은혜 있지 않겠습니다.”
“나는 해 준 게 아무 것도 없으니 그런 말 하지 마라.”
“십장님! 밀린 돈 빨리 주시야겠네요. 며칠 내로 강원도로 이사 가야 되는데 이사비도 없고요.”
“그거는 자네 사정이고. 내 사정 좀 봐 주게.” “
급해서 그러는데 내일까지는 주시야겠는데요.”
“일도 못 하는 양반이 돈은 어지간히 챙기쌓네. 돈 받을라면 시간 좀 걸릴 끼야.”
“욕 하면서 일시키고 돈을 안 주시면 우짜란 말입니까? 돈 몇 푼 받을라꼬 그 심한 욕을 참았는데.”
“욕 먹게 안 했어?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당분간 돈 받기는 힘 들 끼야.”
“사정이 급하다니까요.”
“나는 모른다. 니 맘대로 해라.”
“그래요. 알겠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저보고 서운하다는 말 하지 마이소. 그 대신에 노가다하면서 노가다 우습게 보는 그 못 된 버릇은 내가 꼭 고쳐 줄 테니 그런 줄 아소.”
“우짤라고? 니가 그래 봤자지 별 수 있나?”
“별 방법이 있나요? 가까운 노가다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거죠. 병곤이가 돈 다 줄 때까지 매일 저녁마다 찾아갈 낍니다. 병곤이를 좋아하면 매일 만원씩만 주이소. 한꺼번에 돈 다 주면 재미없으니까.”
“니가 지금 협박하나?”
“밀린 돈 달라는데 협박은 무슨 협박입니까? 노가다 일당 받기 이렇게 힘들어서 우째 살겠소? 힘없다고 함부로 하는 기요?”
“무서봐서 못 살겠네. 알았다. 지금은 없고 통장계좌번호 불러라.”
아내가 아기를 업고 부산에 도착했다.
아기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교회청년들이 몰려와서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왔다.
아내는 하루 먼저 예수원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형제들이 모두 입장권을 사서 기차에 올랐다.
큰 여동생이 울음을 터트렸다.
“벌써 공기가 이렇게 찬 데 그 추운 강원도 골짜기까지 가서 갓 난 아기하고 어떻게 살겠노? 언니야 여기서 살면 안 되겠나? 언니 산후조리도 해야 되는데.”
86년 10월 24일. 나는 이삿짐을 싣고 예수원에 도착했다.
아기 때문에 도서관 옆방이자 예배실 윗방을 배정 받았다.
아내는 너무나 행복해 했다. 문 앞에는 누런 큰 개가 엎드려서 우리 집을 지켜주고 있었다.
우리 방으로 들어오는 보일러 선이 문 앞을 지나가고 있으니 개가 그 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몸도 녹이고 우리 방도 바깥바람에 식지 않게 막아주는 것이었다.
아내는 추위를 몹시 탔다. 매일 아침 조도(아침예배)에 참석하고 정오에는 사 오십 분 동안 중보기도시간을 가졌다.
세계평화를 위해, 특히 분쟁지역의 평화를 위해, 고통 받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한국 기독교를 위해, 종교인을 위해, 모든 예수원 가족과 방문객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중보기도는 예수원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다.
기적 같은 중보기도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어찌 보면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확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나밖에 더 있을까.
누굴 위해 기도하든 내가 기도하는 것이 변화를 위한 실천의 시작이고, 내가 변해야 세상이 미미하게나마 변하는 것일 텐데.
저녁이면 요일별로 매일 달라지는 예배가 흥미롭고 다양한 만남과 신앙체험을 안겨주었다.
며칠 뒤 예수원 가족전체회의에 참석하고 방에 들어오니 아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었다.
“당신 왜 그래? 회의하다 말고 갑자기 나가버리고.”
“나는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제일 무능력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오늘 사람들 앞에서 멀쩡하게 얘기를 잘 해 아주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기결혼 당한 줄 알고 있다가 약간 안심이 되어서?”
당시 예수원은 수도원공동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수도원체제를 유지하면서 생활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었다.
미혼 기혼의 남녀와 아이들, 계층과 신분을 막론하여 모든 사람들이 수도생활을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아침 조도시간에 나가보면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10년 정도 살다 결혼을 하기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남자가 그날 성경본문에 대한 의견을 굳이 영어로 길게 말하면 토레이 신부님이 서툰 한국어로 힘들게 통역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고.
기독교의 각 교파 신학생들이나 목사님들이 서로 다른 신학적 해석과 논리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흔히 벌어졌다.
감옥에서 십년을 살았다는 삼십 초반의 사내는 거두절미하고 주제와 상관없이 요한복음 1장을 자랑하듯 천연덕스럽게 큰 소리로 눈을 감고 낭독하듯 외우고 있어 놀라웠다.
그가 작업반장으로 참석하는 아침작업시간은 금방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항상 긴장이 있었다.
그는 작업지시도 싸움을 하듯 으르렁거리며 했다.
조만간 무슨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인상적인 또 한 사람은 칼 갈아 주는 일로 먹고사는 40대 중반의 떠돌이 사내였다.
그는 10일 간 손님으로 있어도 좋다는 예수원측의 허락을 받고는, 그길로 마음에 드는 자매의 방 창문 근처로 가서 줄기차게 가곡을 불러댔다.
그의 엄숙하고 진지한 창문 밑 공연 표정은 예수원 전체를 웃겼다.
또 홍형제로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
갈쿠리 같은 손과 움푹 파인 눈이 뱀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그는 무언가 다른 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내가 들어오기 전 큰 사고를 치고 마을로 쫓겨났다고 한다.
원래 예수원에서 기념품으로 파는 나무십자가를 제작하던 사람이었는데, 연장과 목공기계의 소유권 문제로 억지를 부리다가 양손에 도끼를 들고 예수원에 난입, 큰 소동을 부려 결국 하산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홍형제는 쫓겨났지만 개의치 않고 예배도 참석하며 예수원을 드나들었다.
그가 만든 나무십자가는 나름대로 생명의 고통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화목을 지게에 지고 지나가는 나를 붙들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었다.
그는 베트남전에 특수부대요원으로 참전해서 주로 요인암살작전에 투입됐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을 죽였고, 아직도 사람이 죽기 직전 발악을 하며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그 모습들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늘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안기부에서 호출하면 운동권학생들을 고문하는데 불려가는 고문전문가라고 했다.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눈치 챘는지 그는 살인방법과 고문기술을 구체적으로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귀여운 딸이 하나 있는데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내의 친정집에 맡겼다고 했다.
며칠 뒤 예수원 식구들이 급히 나를 찾았다. 홍형제가 나를 찾으니 마을로 가 보라는 것이다.
예수원 식구들은 그에게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그의 집을 찾았다.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거의 힘이 빠져버린 홍형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여니 소주병이 몇 병 바닥에 나딩굴고 있었다.
그는 불기라곤 없는 방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그는 침대를 가리고 있는 천을 들쳤다. 소주병들이 침대 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왜 그러시오.”
“살 수가 없소.”
“왜? 이유가 뭔데?”
“죽어가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뒤집어진 눈이 나를 노려보고, 고함을 지르고 달려들어 잠을 잘 수가 없소.”
“그래서 늘 술을 마시는구려.”
“한번 그것들이 달려들기 시작하면 밥을 먹을 수가 없고, 이렇게 물 한 바가지를 안주 삼아 소주만 마십니다.”
“다른 방법은 없소.”
“제 정신으로는 살 수가 없으니 어떡합니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을 겁니다. 죽는 게 사는 길입니다.”
“울지 말고 살 길을 찾아봅시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겠소.”
“딸이 있지 않소.”
“딸도 나를 무서워하고. 살아 있어 봤자 사실 그 아이 인생에 방해만 될 뿐이요.”
“날 찾은 이유는 뭐요?”
“제 유언을 들어 달라고요.”
“그런 거라면 나는 안 듣고 가겠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 유언을 왜 듣고 앉았소?”
“나는 언제 죽을지 몰라요.”
“밥만 먹으면 되겠구만. 예수원에 좋아하는 자매가 있소?” “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
정말 죽게 되면 연락 주쇼. 아니면 유서를 미리 써 놓든가. 아직은 괜찮으니까.”
며칠 뒤 그는 동네사람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서 다시 살아났다.
그는 늘 이렇게 산다고 했다.
예수원에서 주로 내가 맡은 일은 지게에 연탄을 져 나르는 일이었다.
연탄창고의 연탄을 각방에 스무 장 정도씩 배분해 놓아, 한 밤중에 눈을 맞으며 연탄을 가지러 골짜기를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 방안은 항상 연탄으로 인해 시커먼 검댕이가 묻을 수밖에 없고 나는 늘 아내에게서 연탄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타박을 들어야했다.
예수원이 들어앉은 골짜기는 경사가 심한 악산이었고, 집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폭설이 오면 거동이 힘들었다.
10월 30일이 아내의 생일이라 우리 가족은 예수원의 축하상을 저녁식사시간에 따로 받았다.
나는 아내에게 생일축하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공개식사기도를 통해 전했다.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의 표정이 무겁고 심각했다.
“여보! 나 같은 문제아에게 시집와서 고생이 많지? 생일 축하하오. 윤경이를 낳아줘서 고맙고.”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형제 중에 가장 착하고 가장 예쁜 딸을 나에게 주신 하느님과 장인 장모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무슨 말이죠?”
“사실이잖아. 당신 아니야?”
“조금 전에 부모님께 전화로 그 말씀을 드렸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노발대발 하시던 데요?”
“왜 그러시지? 이해가 안 되네.”
“당신이 전화해서 해명해요. 나는 말 못 해요.” “
알았어.”
“장모님! 윤희가 뭐라고 하던데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아닌가요?”
“윤경이 아빠가 기도하면서 공개적으로 제일 예쁘니 착하니 하면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면서?”
“제 말이 틀렸나요?”
“아니 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요? 윤희 마음 아프게.”
“아니 제 눈에는 그 집에서 제일 예쁘고 착하게 보이는 데요.”
“농담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람 기분 나쁘게 하지 마요. 놀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 참 답답하네요. 그러면 제가 그 집에서 제일 못 생기고 성질 못 된 따님을 얻은 겁니까?”
“아니 왜 사람을 비교를 해요? 그게 좋은 마음으로 한 얘기냐구?”
“저는 늘 그렇게 얘기해 왔는데요. 오늘만 그런 게 아니고. 농담한 게 아니에요.”
“자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다른 형제들은 뭐가 돼요?”
“아 참 답답하네! 다른 형제들이 내 아내보다 왜 못 한지를 설명하기도 곤란하고. 그냥 나 같은 놈 데리고 살아줘서 고맙다고요.”
“여보세요. 형수 맞죠? 김군인데요. 명출이형 잘 계십니까? 얼마 전에 노가다 할 사람이 없다고 저보고 올 수 없냐고 전화 왔던 데요.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일이 많이 몰리는가 보네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까? 우리 남편 죽은 거. 병곤이가 연락 안 했던가요?”
“네? 죽다뇨?”
“갑자기 뇌종양이 급성으로 와서 마 죽어삐릿다 아이요.”
“이유가 뭐랍니까?”
“모르지요. 뭐. 우리가 어찌 아요?”
“형님이 참 참아도 너무 참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