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남다른 클래스와 착각의 늪
전자타워 빌딩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40쯤으로 보이는 정장차림의
젊은 분이 깍듯이 인사를 하며 맞이했다.
“리틀 부 안녕하세요. 조금 늦으셨습니다.”
“예, 절친과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사무장님.”
세계는 ‘리틀 부’라는 호칭과 깍듯한 인사에 놀랐다.
‘리틀 부라니? 무슨 뜻일까? 아~그걸 거야.’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 많은 제품들 사이로 손 안내에 따라 가보니
냉장고, 세탁기, 휴대폰,티비, 에어컨, 카메라, 컴퓨터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열병식 퍼레이드처럼 도열한 제품들 위용에 놀라 눈으로만 살피며
사무장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은 귀빈 접대실 같았다.
둥근 원탁에 한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작은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살펴보세요.”
“아 예. 한 달 전에 설치한 제 것하고 같은 거죠?”
“네, 컴박 님께서 최고 사양을 탑재시켜 조립한 우리나라에
2대뿐인 제품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세계는 상상의 그림들이 마구 오갔다.
‘리틀 부는 작은 사장님이고, 나이도 어린데 사장 칭호를?
그래 맞아 요한이 아버지가 후계자를 만들려고 하니까 사무장도
그렇게 부르는 거겠지? 아하 그러니까 후계자 압박에 시달린 요한이가
답답함에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려고 나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그렇게 많은 말을 했구나.’
부흥전자 접대실은 그 압박을 학인하고 증명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정말 작은 사장님 포스가 다가왔다.
이제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요한이는 반장과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
5년 10년을 앞당겨 커버린 사회인으로 정말 작은 사장이었다.
천부적 재능 능력자가 대학과 사회의 현장에 있지 않고 어리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통과의례로 머물러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상상을 마치자 그때야 2대뿐이라는 컴퓨터에 눈이 갔다.
‘컴박이 누굴까? 두 대 뿐인 컴퓨터라고?’
“작은 사장님께서 이 제품은 써 보셨다시피 판매용으로 개발한
최강 연산 능력을 보유한 부흥전자 최고의 제품 ‘알라고’보다
당연히 성능이 뛰어나고 우리나라에 몇 대밖에 없는 슈퍼컴퓨터 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성능은 단연 최고로 저희 ‘컴박 엔지니어님’이
준비한 특별한 작품(?)입니다.”
사무장은 마치 브리핑이라도 하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설명을 하고
요한이에게 물었다.
“혹시 컴박 님의 해커 방지 보안 시스템 ‘철벽’은 살펴보셨나요?”
“아니요. 요즘 너무 바빠서.... 그럼 온 김에 직접 이 컴퓨터로 컴박님께 직접
설명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만날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사무장은 컴박을 호출했다. 세계는 요한이의 당당한 포스와 압도하는
어투에 오금이저려왔다.
“그런데 어머님은요?”
“네 리 사장님께서는 먼저 본사로 들어가셨습니다.”
‘리 사장님? 아하 요한이 어머니.’
세계는 요한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응, 여기 전자타워는 LA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어머님께서 사장으로
계시는 곳이야. 컴퓨터는 마음에 드니?”
세계는 큰소리를 내기도 두려워 목소리를 낮추어 놀람을
압축한 손쉬운 말로 표현했다.
“헐~”
“사무장님 그럼 인터넷 연결은 언제 할 수 있지요?”
“네, 집주소만 주시면 사흘 정도면 가능합니다.”
세계는 사무장님이 너무 깍듯해서 주소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 예, 관악구 봉천동 산 88번지 새로남 교회 뒤로 올라가면
산꼭대기입니다.”
“네, 산 88번지 잘 알겠습니다.”
세계는 주소를 불러 주면서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반장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살폈다.
엄청난 부의 축척에서 나오는 파워에 주눅이 들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아니 현기증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왜지? 속도 메스꺼운 것 같고? 아까 카페서 처음 먹은 음료수 때문일까?’
사무장은 세계를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얼굴이 창백한 것을 느껴
의자를 권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음료수라도....”
“아 예. 고맙습니다.”
하지만 반장은 아무런 낌새도 감지하지 못했다.
세계는 얼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주면 좋겠다.”
“그래.”
시계를 보던 요한이가 말했다.
“사무장님, 제가 너무 늦어서 컴박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하는데 설명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요
제 친구에게만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네 그렇게 하세요. 작은 사장님.”
“세계야 내일보자 오늘 고맙다 설명 듣고 가라 나는 약속이 있어서.
미안해.”
“응 고마워~”
바삐 나가는 요한이 등 뒤에 사무장이 말했다.
“작은 사장님, 차로 모셔다 드릴까요?”
“아니요 택시타도 돼요.”
세계는 친구니까 ‘고맙다.’ 라고 말 할 수도 있었지만 입속에서
‘고마워~’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백화점에 들어 올 때부터 지금까지
한없이 작아진 위축의 언어였다.
요한이가 간 뒤에도 사무장은 여전히 요한이와 동급대우를 하며 물었다.
“무슨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면 말해 보세요.”
“예? 그래요? 제가 컴퓨터 프로그레밍, 조립, 이런 것을 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싶었는데.”
“아, 그래요? 마침 잘됐네요. 한 달 전에 컴박 엔지니어님께서 사고로
손이 자유롭지 못해서 보조가 필요 하다고 했어요. 오시면
상의 해보기로 할까요?”
“예? 그래 주시면 저는 너무너무 감사하지요 사무장님.”
세계는 그 말을 해놓고 섬뜩 놀랐다.
자신을 요한이와 동급 대우를 해주니까 요한이가
하던 어투를 자신도 모르게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 내가 왜 이랬지? 내가 미쳤나? 아니면 바보든지....
머리가 아파 잠시 착각의 늪에 빠졌나? 아이구야~’
”우리 컴박 엔지니어님은 컴퓨터에 대한건 모르는게 없을 정도라
컴퓨터 박사 컴박 이라고 불러요.”
“아, 그래서 컴박이었네요~”
이번에는 또 사무장의 말소리가 브리핑으로 들렸다.
‘아,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정말 돌았나?’
“참고로 작은 사장님과 절친 이신 것 같아 말씀 드리는데
컴박은 전직 해커였는데 혹시 모르세요?
“예? 저도 인터넷 검색정보를 무척 좋아해서 많이 보는데
컴박은 처음 듣는 말 같은데요?”
“아~ 3년 전에 컴박이 어느 중소기업회사 정보를 빼 내서
중국에 팔려다가 붙잡힌 사건이 인터넷 ‘오 마이 갓’ 신문에 났거든요?
그걸 리 사장님께서 아시고 회사와 컴박을 직접 만나 들어 봤더니
회사는 전망이 있었지만 제정 기반이 취약해서 도산 위기에 빠졌을 때라
사장이 화가 나서 고발을 한 사건 인데 모르세요?”
세계는 갑자기 궁금해서 반색을 하며 물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아하~ 컴박이 그때는 아이디를 ‘게헨나 라이언’으로 사용해서
모르셨나 보네요.”
“예? 게헨나 라이언요? 그 사람은 저도 잘 알죠~”“어떻게요?”
세계는 게헨나 라이언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o o 대학 컴퓨터학과 재학 중 해커 동아리 활동 군 입대,
제대 후에 돈이 없어 복학을 못하자 공사장 막노동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돈이 모이자 오락실 개업, 본격 해커로 전향해서 오랫동안 여러 사건
사고를 치다가 덜미를 잡히고, 어느 여사장님이 그 중소기업은 합병해서
사장님을 부흥 엔지니어링 사장님으로 앉히고, 그 조건으로 해커는
고소를 취하해서 특채로 채용했다고 알고 있는데 바로 여기였네요?”
“와우~ 하시는 말씀이 꼭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런가요?”
“예, 그때 리 여사장님께서 회장님께 추천하고 발탁해서 특별대우로 이곳에서
컴퓨터수리 부터 전문 상담, 게임 개발, 보안 시스템 연구 등등을 하며
연구실처럼 쓰고 계시는데 개과천선한다는 뜻으로 2년 동안 자숙 기간을 넘기면
본사 연구실에 특채로 채용하겠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게 안 될 것 같아 요즘 들어 더 우울해 하고 계시는데
이렇게 다양한 정보를 가진 작은 사장님 친구를 만나면
‘게헨나 라이언’도 무척, 아니죠 컴박님도 무척 기뻐하실 것 같아요.”
“예? 그보다 제가 그 유명 셀럽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제가 더 기뻐요 사무장님.”
세계는 자꾸만 사무장의 길어지는 말을 들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꿈인지 상상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요한이가 되어
요한이처럼 말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때사무장 핸드폰이 진동음을 냈다.
“여보세요? 아~ 그래요....그럼 다음에 날짜를 잡아보겠습니다.
그런데요 말씀하신 보조를 구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예,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사무장이 말했다.
“컴박님께서 급한 일이 생겨서 오시지 못하고 작은 사장님 친구 분은
내일 오후에 만나고 싶다는데 시간 되세요?”
“예. 그럼요,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오후에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세계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고 요한이에서 분리된 모습으로
꾸벅꾸벅 고맙다는인사를 했다. 그리고 깍듯한 배웅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버스를 타고 20분, 또 걸어서 새로남 교회 앞에 도착했다.
교회 마당에 펼쳐진 현수막이 보였다.
정도진 목사님과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사모님의 가족사진과
‘정도진 목사님 회갑 기념....’ 글자가 들어왔다.
다사다난 했던 하루 일과가 신이 나서 룰루랄라 집에 오니
아버지께서 툇마루에 앉아 검정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무슨 특별한 것을 주어 오셨나?’
부자는 몇 달 만에 만난 상봉처럼 서로 상봉 가를 마주 불렀다.
“아버지~ 아들~”
“늦었다. 어딜 다녀오는 거냐? 아니 근데 왜 입술이 터졌네? 싸웠어?”
“아니요~그냥...식사 안 하셨죠? 저 기다리느라고? 식사하고
예기 해 드릴게요. 근데 그 봉지는 뭐에요?”
“응, 정 도진 목사님께서 이걸 고쳐달라고 가져오셨던데?”
“아예~ 아까 사찰 집사님을 만났는데 목사님께서 가져 오셨네요,
목사님께서 아빠 전도하시려고 가져오신 모양이네요 하하하하....”
“아하~ 제가 밤에 고쳐 볼게 고치면 아버지가 목사님께 가져다주세요.
회갑 기념으로.”
“회갑기념?”
“오다가 보니까 목사님 회갑기념 이라는 현수막이 보이던데요?”
“뭐야 너도 날 전도 하려고 가라는 거야?”
“넹~하하하....”
“그건 그렇고 오늘저녁은 우리 아드님이 입술 때문에 밥을 제대로
씹으실지 모르겠네요?”
아버지는 농담으로 존댓말을 했지만 세계는 아버지의 말이
백화점 젊은 사무장의 존댓말로 들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일어난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해 드렸다.
첫댓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새로남교회 정도진 목사님은 고향에서 목회를 하는
초등학교 동창생의 이름을 가운데만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동창생이 목회를 한다니 아주 기뻐서 이름을 차용했습니다.
새로남 교회가 부흥 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