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생각÷
핏짜…있어 보이니?
‘미국이 동시·병행적 이행을 얘기하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의 ‘엔드스테이트’(최종상태)를 먼저 밝히라는 것이다.’
한 신문 대담 기사에 나온, 어느 교수의 말이다. 물론 ‘(최종상태)’라는 설명은 신문사에서 달았을 터. 아래는 어느 쇼핑몰 업체의 광고 문구다.
‘매 시즌 가장 에센셜한 스타일과 아이템을 선보이는 셀렙샵 에디션의 2018 Winter 홀리데이 컬렉션.’
지나친 외래어·외국어 사용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갈수록 정도가 더해지는 건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하다. 어떻게 해야 이런 흐름을 멈출 수 있을까. 외래어 표기에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아래 신문 제목들을 보자.
<토핑? 소스? 진짜 ‘핏짜’는 반죽이 99%>
<인도 대표음식 커리, “정말 손으로 먹나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잘 정착된 ‘피자, 카레’ 대신 굳이 ‘핏짜, 커리’라고 쓰는 저런 문제 말이다. ‘현지’에 가니 저렇게 쓰더라면서 당당하게 ‘핏짜, 커리’로 쓰는 사람도 늘어만 간다. 하지만 저렇게 주장하는 건, “그래, 나 외국어와 외래어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외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말이고, 외래어는 우리말에 편입된 외국말이라는 걸 모르면, 엉터리인 줄도 모르고 저렇게 용감한 주장을 하게 마련인 것. 다시 말하지만, 외래어는 우리말이다. 우리말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쓰자’고 약속한 말. 그러니 원칙적으로, 현지에서 어떻게 쓰는지는 별로 상관없다. 예를 들어 흔히 ‘링겔, 링게르’로 부르는 ‘Ringer’도 ‘현지’에서는 [링어]에 가깝게 발음하지만, 우리는 ‘링거’로 쓰자고 약속했고 그렇게들 쓴다.
게다가 그 ‘현지’라는 것도 딱 집어 이야기할 게 못 된다. 영어 표기를 영국에 맞출 것인가, 미국에 맞출 것인가. 또, 미국이라면 그 넓은 땅덩어리 중 어디에 맞출 것인가. 그러니 굳이 ‘와이셔츠’를 ‘화이트 셔츠’, ‘핸드폰’을 ‘셀룰러폰, 셀폰, 모바일폰’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몇몇 신문도 문제가 많다.
<tvN 다시보기 전면 유료화… “더 좋은 콘텐트 위한 것”>
어느 신문 제목인데, 여기 나온 ‘콘텐트’는 ‘콘텐츠’라야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다. 또 다른 신문 제목 <‘제2의 수퍼 땅콩’ 이다연, 5타차 따라잡아 역전승>에 쓰인 ‘수퍼’도 ‘슈퍼’라야 한다. 사실, 이 두 신문은 외래어 표기법을 대놓고 무시한다. ‘슈퍼볼(Super Bowl)’을 각각 ‘수퍼볼/슈퍼보울’로 쓰고 있는 판이니 뭐…. 다시 얘기하지만, 외래어는 우리끼리 약속한 ‘우리’말이다. 그러니 외국어와 착각하지 말 것.
이진원 교열부장 jinwoni@busan.com
※출처: 부산일보 오피니언 [바른말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