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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실비아의집 원문보기 글쓴이: 民草
이완장군 묘(경기도 기념물 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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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생가를 돌아 나오니 이완장군 묘의 표지판이 있어서 가 보았습니다. 묘역에서 한참 떨어진 길 옆에 신도비가 서 있으며, 묘역을 보고 나오는 길에 신도비를 둘러 보았습니다. |
▲ 이완장군 신도비 |
▲ 묘역(전방 산속) 입구의 주차장 |
▲ 묘역 입구의 묘비없는 묘 |
이완장군 묘역을 찾는 사람을 위해서인지 도로 옆에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위 가운데 사진의 전방에 보이는 산 속에 묘역이 있습니다. 앞에는 논이 가로 막고 있으나 논 가운데로 논길이 있습니다. 논둑길을 통해서 산으로 접어들어 좌측으로 올라가면 처음에 묘비 없는 묘를 만납니다. 아마도 장군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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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장군 묘역 전경 | ▲ 이완장군 묘소 |
묘비 없는 묘에서 조금 들어가서 우측으로 꺽어지면 좌우로 울창한 나무로 둘러 쌓인 이완 장군의 묘역이 보입니다. 묘역 입구는 길고 넓으며, 잔디로 덮혀 있습니다. 묘역에는 곡담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그리고 우측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돌이 있는데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봉분 우측에는 신도비에 버금가는 묘비가 있는데, 정면으로 세워져 있지 않고 측면으로 세워져 있더군요. 묘역 좌우로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서 있습니다. 청운당은 묘역에 오자마자 봉분 앞에 가서 예부터 하더군요. 저는 당시, 예를 드릴 줄 몰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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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 장군의 묘소 봉분 앞 | ▲ 이완 장군께 예를 드리는 청운당 모습 |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죽헌(梅竹軒) 이완(李浣 1602∼1674) 장군의 묘소이다. 인조 2년 (1624) 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평안도 병마절도사·함경도 병마절도사·경기도 수군절도사 등의 자리를 역임하였다.
1649년 효종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 정책을 계획할 때 어영대장, 훈련대장으로 발탁되었고 이어 훈련대장과 병조판서의 임무를 맡았다. 당시 제주도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을 시켜 신무기를 만들게 하였으며, 성곽의 개조와
신축 등을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승하하자 북벌 계획이 중지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종 때에는 수어사로 임명되었고,
포도대장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
이완장군 묘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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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여주군 여주읍 상거리 산19-1
빨간 압정이 있는 곳 쯤에 이완 장군의 묘역이 있습니다. 상거리로 접근하시기 바라며, 표지판이 여러 곳에 있어서 찾기는 어렵지 않앗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