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약속한 바 있어 또 베틀산을 올랐다.
지난 번에 좌베틀에서 동화사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길이 너무 힘들어 거꾸로 가보기로 했다.
기관지염이 심하다는 결과가 먼저나와서 집에서 쉬는 것 보다 좋은 공기 마시며 운동하는게 훨씬 낫다고 서둘렀다.
가파른 길을 먼저 오르고 내려오는 길이 완만하니 훨씬 편했다.
두시간 조금 못되게 걸었다.
지난 번 산행 때 아카시아 꽃잎으로 화차를 만든다고 까치발을 하고 벌과 싸움하면서 꽃잎을 땄는데....
지천으로 널린 이름 모를 야생화 꽃향기 속에 아카시아꽃 향기 아직 남아있는 듯한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카시아꽃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긴 한숨 땅위로 쏱아내려는데 길위에 물기없이 천지가득 누웠는게 아카시아 꽃이 아닌가!
지나가는 봄바람에 꽃비로 흩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벚꽃하고는 달르게 송이송이 고운자태 그대로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내가 그대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도록 누워있었단 말인가?
꿀이 담겨있는 주머니가 무거워서 였는지, 주인을 떠나기가 아쉬워서 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사뿐히 즈려밟아 결국은 주인의 거름이 되고자 하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향기며, 추억이며 나눔까지 주었는데 오늘 또 폭신폭신하니 등산화 가득 꽃향기를 새겨간다.
베틀산을 처음 오를 때는 길을 잘못들어 힘들기도 했고 멀리서 보이는 모습과 가까이에서 보는 모습이 달라 보이던 이 골짜기가 내가 보고 왔던 골짜기인지 확인이 어려웠는데 두 번째 다르고 세번 째 다르고 네번 째가 다르다.
언덕마다 피는 꽃이 다른 것도 보이고 박혀있는 둥근 돌 하나로 과거 억만년 전에 물 속의 땅이 융기 되었음도 보였다.
높지도 않은 산이 골이 얼마나 많은지 또 산오름의 형상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물속에서 퇴적된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땀흘리며 오른 산의 골짝 바람은 세상놀음에 더러워진 퀘퀘한 냄새나는 내몸과 생각들을 말끔히 씻어줄만큼 상쾌했다.
이 번 산행길에는 몇가지의 꽃을 보고 갈지 흥분된 마음으로 헤어보았다.
꽃도 꽃이지만 무성해진 잎만으로도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물푸레 나무며, 오리나무, 굴참나무, 물가에만 있는 잎넓은 물버드나무, 오동나무가 이젠 소나무보다 더 예쁘게 보인다.
벌써 두 번이나 카메라를 잊고 오는 바람에 꽃이며, 잎의 모양을 그리고 향기를 몇 번이고 보아 두었다. 다음 번 산을 오를 땐 자귀나무에 분홍꽃을 피울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아카시아꽃을 밟으며 생각에 젖어본다.
베틀산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글을 적어본다.
물푸레나무며, 버드나무
첫댓글 두 분께서 함께 베틀산에 푹 빠졌으니, 두 공주님이 질투하겠습니다. 남편께서 이 글을 읽으시면, 박선생님과 똑같은 감동이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글보다는 행(체험)한 것이 더 진한 감동이 될터이니까요. 다시금 좋은 산행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