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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은 겨울을 대신하는 단어다. 어린 시절 얼음은 우리들 놀이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은 신나는 장난감이며, 얼음 언 개울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얼음이 있는 곳엔 으레 기본 놀이기구가 있다. 바로 썰매다. 지금은 스키장에서 근사한 스키복에 고글이며 헤어벤드로 한껏 멋을 부리지만 그땐 미끄러지고 뒹구는 것만으로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특별한 기구도 필요 없었다. 몸을 싣고 미끄러지는 것은 곧 썰매며 스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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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철판썰매로 씽씽 얼음 지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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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강물이 제대로 얼기 전까지 기초를 다지는(?) 곳은 논이었다. 벼를 베어낸 논바닥에 겨울비가 고여 얇게 언 얼음은 코흘리개 꼬마들도 얼음 지치기를 할 수 있는 안전지대였다. 이를테면 초보자 코스라고나 할까. 벼 포기 사이사이로 빠져 다니며 얼음 지치기를 하는 것은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기도 했다. 앉은뱅이 썰매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잘못하여 썰매날이 벼 포기 위를 지나게 되면 걸려 넘어지곤 했다. 특히 썰매날이 철사로 된 것은 영락없이 걸려 양손에 쥔 송곳에 힘깨나 쏟아야 벗어났다.
이때 ‘철사썰매’를 비웃으며 씽씽 내달리는 신기종(?)이 있었으니. 바로 썰매날을 철판으로 세워 만든 ‘철판썰매’였다. 3~4cm 높이의 얇은 철판으로 양날을 세운 이놈은 벼 포기 위는 물론이고, 군데군데 드러난 맨 땅도 휙휙 타고 넘었다. 썰매는 모두 요즘 말로 직접 손으로 만든 ‘DIY 제품’이었다. 직접 톱질하고 못을 박아 만든 수제품이었다. 대부분 아버지며, 형들이 만들어줬지만 초등학교 4, 5학년 쯤이면 그런대로 자기가 탈 썰매는 만들 줄 알았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필요한 것은 날만들기였다. 철사의 한쪽 끝을 연탄불에 달궈 썰매의 앞쪽 끝에 박아 넣은 뒤 또 한쪽은 뒤쪽으로 구부려 움직이지 않게 못으로 고정시키는게 기본제작방법이다. 철사는 웬만큼 굵어도 다루기 쉬웠다. 그러나 좀 재주있는 형들은 탄탄하고 폼이 나는 창틀바닥의 레일을 떼어와 붙였다. 그러나 진짜 기술이 필요한 썰매는 철판날을 붙이는 거였다. 나무로 만든 썰매틀 양쪽 다리 중앙으로 길게 홈을 파놓은 뒤 얇고 긴 철판을 박아 넣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양쪽 날이 평행하도록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했다. 이때 쓰이는 철판은 함석으로 만든 ‘바케스’나 ‘다라이’의 아래를 빙둘러 감은 테두리가 제격이었다. 멀쩡한 바케스의 테두리를 빼내다 꾸중을 듣는 일도 있었다. 날을 박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고정된 날에 길을 들이는 단계가 남았다. 얼음과의 마찰력을 줄이기 위해 매끈하게 광을 내야 하는데 시멘트벽에다 대고 문지르면 반질반질하게 빛을 발했다. 얼음썰매는 유형에 따라서도 초보자와 고급자의 것으로 구분이 되었다. 초보자의 것이 앉은뱅이 썰매라면 형들은 외발 썰매를 탔다. 앉은뱅이 썰매는 날이 양쪽으로 두 개지만 외발썰매는 날이 중앙에 하나밖에 없다. 균형을 잘 잡지 못하면 넘어지기 쉬워 아무나 탈수 없는 만큼 잘 타는 형들은 얼음폭이 좁은 곳도 선 채로 씽씽 내달려 부러움을 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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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으로 목 축이고, 칼 싸움 하던 그 겨울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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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이런저런 썰매가 아니어도 좋았다. 대나무를 반으로 잘라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비닐로 된 시멘트포 위에 양반다리로 앉고 한쪽에서 끌어주는 것은 궁색한 모양새와 달리 호사스런 얼음 지치기였다. 얼음 지치기는 정말 한참 타다보면 지레 지치고 만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엉덩방아를 찧다보면 온 몸이 굳어온다. 이때면 논두렁에 불을 놓아 몸을 녹여야 한다. 논두렁 잡풀이 다타버린 뒤라면 깡통에 나무토막을 넣고 불을 붙였다. 자연난로 연료로는 옹이가 있는 나무토막이 제격이었다. 찧고 까불다 불가에 빙 둘러서 발을 내밀면 알록달록 찢어지고 꿔맨 각양각색의 양말이 서로를 웃겼다. 젖은 양말을 빨리 말리려는 욕심에 너무 가까이 가다 나이론 양말이 그냥 오그라들고 눌러 붙는 일도 흔했다. 몸이 녹을 때 쯤이면 고드름으로 목을 축였다. 누군가가 따온 고드름을 오도독오도독 씹으면서 잠시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는 것은 얼음 지치기의 보너스였다. 고드름은 굴둑이 있는 부엌이나 방앗간 같은 곳에 가면 큰 것을 구할 수 있었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주로 바위 아래에 달린 투명한 것들이었다. 콧물이 코 끝에서 그냥 얼어붙을 만큼 바람이 차가워지면 강물도 함께 얼어갔다. 이때 쯤이면 눈바닥에서 닦은 솜씨를 강 위에서 한껏 뽐낼 수 있었다. 쌩 내달릴 때마다 바람이 귀바퀴를 따갑게 때리고 지나가도 그건 오히려 쾌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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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깨나 있는 형들 따라 타던 얼음배의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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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배의 백미는 깨진 얼음덩이 위를 썰매를 타고 건너다니는 거였다. 쩌저적하고 금이 막 가기 시작할 무렵 썰매를 타고 이쪽 얼음에서 저쪽 얼음으로 건너가는 것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짜릿짜릿했다. 이때 쯤이면 얼음은 어린이들만의 전용물이 아닌 어른들의 놀이터로 변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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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곳으로 한번 슬쩍 밀면 썰매는 물결 위의 낙엽처럼 부드럽게 나아갔다.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세 번씩 송곳질을 한 뒤 누가 멀리까지 나가나 내기를 할 때면 조금이라도 멀리 가기 위해 몸짓을 앞뒤로 내저었다. 팔 힘 못지 않게 썰매날이 승패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강물을 가로질러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숨구멍’이라는 것이 있어 잘못 지나가다간 빠질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강의 중앙으로 가는 일은 드물었다. ‘얼음배’라는 것이 있다. 매년 겨울을 맞지만 이 ‘얼음배’를 구경하는 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얼음이 약간씩 녹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동네에서 배짱깨나 있는 청년들이 강으로 모였다. 큰 장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두세 명이 선발되어 얼음 한 가운데 구멍을 뚫었다. 나머지는 옆에서 장대로 툭툭 치며 얼음을 깨뜨렸다.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선발된 청년들은 큰 조각에 올라탔다. 그리고 긴 장대를 구멍에 넣은 채 바닥을 밀면서 떠가는 거였다. 큰 얼음덩이에 탄 형들은 의기양양하게 깨진 얼음 사이를 저어갔다. 얼음배의 백미는 깨진 얼음덩이 위를 썰매를 타고 건너다니는 거였다. 쩌저적하고 금이 막 가기 시작할 무렵 썰매를 타고 이쪽 얼음에서 저쪽 얼음으로 건너가는 것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짜릿짜릿했다. 이때 쯤이면 얼음은 어린이들만의 전용물이 아닌 어른들의 놀이터로 변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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