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늘날을 관통하는 주요한 두 개의 유행병, 에볼라와 에이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담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발간되는 시점은 유행지역인 중동에서 유입된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발병으로 한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이다. 이 사건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글로벌해진 세상이 유행병과 새로이 등장한 질병들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2008년 12월 31일 내가 유엔에이즈계획UNAIDS를 떠나는 시점에서 끝을 맺는다. 이후 에볼라는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고, 나도 많은 말을 보탰다. 홍콩의 유력 일간지는 나를 ‘에볼라의 아버지’로 부르기도 했다! 에볼라는 서아프리카 지역에 예상치 못한 인도적 위기사태를 초래했고, 특히 기니와 시에라리온의 상황이 심각했다. 이 책에서 내 마지막 소원 중 하나는 내가 모든 일을 시작했던 콩고의 얌부쿠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2014년 2월, 65세 생일을 기념하여 마침내 소원을 이루었다. 그곳에 머물며 1976년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놀라운 사건들이 머릿속을 다시 한 번 스쳐 지나갔다. 다시는 에볼라와 관련된 일을 하리라고는, 더군다나 에볼라가 세 국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유행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2015년 중반까지 27,000명 이상이 감염되고 1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976년부터 2015년 이전까지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 전체보다 높은 수치였다. 1976년 첫 유행이 발견된 이래로 25번의 에볼라 유행은 아주 한정된 지역과 시간에서만 발생했다. 그리고 최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번의 유행 양상은 사뭇 달랐다. 바이러스가 극단적으로 변이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건의료 체계의 맥락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 세 국가 모두 에볼라를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한동안 산발적인 소규모 유행이 계속될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유행을 완전히 멈추기 위해서는 백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비극은 감염성 질환의 유행이 계속해서 전 세계를 위협하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플루엔자나 HIV 감염처럼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역시 동물에서 유래했으며, 다른 인수공통감염병이 앞으로도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다. 유행병이 일어나면 지역사회에 심각한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의 유행을 촉발할 수도 있다. 미국과 스페인에 전파된 에볼라도 그렇고, 한국의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렇다. 해외에서 유입된 치명적인 질병의 이차감염 사례들은 환자 치료, 후송 절차, 임상적, 혹은 보건 측면의 통제에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포를 일으키고 보건의료체계를 혼란시킨다. 따라서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유행과 맞서 싸우는 것은 유행 지역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측면뿐 아니라 ‘세계적인 공공의 선’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서아프리카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이익이 되는 일이다. 다른 여러 감염성 질환 역시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사태는 의료진을 파견한 한국을 포함한 국제적 연대와 지원을 이끌어 냈다. 이런 국제적 지원은 유행을 통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의 사태는 유행을 촉발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한데 모였을 때 어떤 일이 나타나는지도 보여준다. 일종의 ‘퍼펙트 스톰’을 만들어 내며 바이러스의 유행을 촉진하는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사태의 경우 이 폭풍은 수십 년간의 잔혹한 내전과 부패한 독재정부로 인한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 작동하지 않는 보건의료체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민 일인당 의료진 숫자, 질병의 원인에 대한 전통적 믿음, 국내외 단계에서의 늑장 대응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는 효율적이며 평등하게 작동하는 보건의료체계가 유행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주었다. (중략)
최근의 에이즈 대응책들이 의학의 교만으로 기록될 것인지,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의 위대한 승리로 남을 것인지는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양쪽 모두일 것 같다. 하지만 수학적 모델에서 이야기 하듯,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HIV 유행을 끝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듯, 치료 접근성은 높이는 것을 최우선 전략을 삼더라도 보다 복합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의료 전략 뿐 아니라 자아도취나 줄어가는 예산은 에이즈 대응의 주요한 적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과 리더십, 사회의 결집, 그리고 기술적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