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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장
기억: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에돔, 모압, 암몬과 평화, 헤스본은 멸망
2020-4-3, 금
맥락과 의미
신명기는 가나안 땅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새롭게 하십니다. 신명기 5장에서 다시 십계명을 선포하며 하나님과 백성이 상호 헌신을 맹세할 것입니다.
1-4장은 언약관계에 대한 서론입니다.
1-3장은 과거의 불순종으로 인한 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음의 지명들은 33페이지의 지도를 참고하세요.
1장은 광야 생활 초기(시내산에서 장로를 임몀) 가데스 바네아에서 반란을 말했습니다.
2-3장은 광야생활 마지막 38-40년 경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을 회고합니다. 민수기 20-21잘에서 한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 줍니다.
2:1-9 에돔과 평화
2:9-18 모암과 평화
2:19-23 암몬과 평화
2:24-37 헤스본을 멸망
3:1-11 시혼을 멸망
3:12-20 요단 동쪽에 두 지파 반이 정착
3:21-22 여호수아를 격려
3:23-2 9 모세는 건너가지 못함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 동쪽 지역의 어떤 나라들에 대해 정복하지 않고 통과하게 하셨습니다(에돔, 모압, 암몬). 그러나 아모리 족속인 헤스본의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약탈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이방민족을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집행했습니다.
1. 에돔, 모압, 암몬을 평화적으로 통과, 구세대의 끝 (1-25절)
1) 에돔을 우회(1-8절) (민 20:14-29를 기억)
1-8절은 민수기 20:14-29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회고합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은 그냥 지나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5절) 그 민족에게는 물과 양식도 사 먹으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0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에돔 왕에게 이런 조건으로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에돔은 싸우러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에돔을 우회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는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냥 통과하였다고만 합니다(8절). 이스라엘이 에돔은 평화적 관계로 우회한 것과 헤스본과는 전쟁을 한 것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에돔에게 물과 음식을 사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복을 주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상기시킵니다(7절). 비록 아직 상주할 기업은 없지만 하나님의 지난 날의 보호를 감사하게 합니다.
2) 롯의 후손 모압과 갈등을 피하여 통과해 감 (9-12절)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과 암몬 땅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는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압 자손이 살고 있는 지역(아르)를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괴롭게 하여 갈등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9절).
10-12절: 신명기를 읽는 후세대의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주는 내용입니다. 모압과 에돔이 그 전에 살던 민족들을 정복하고 거주하게 된 역사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그 모든 일도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하신 일입니다.
3) 광야 1세대는 모두 죽음 (13-15절)
세렛 시내(세렛 강)을 건넜습니다. 이 강을 사이로 남쪽에는 에돔이 있고 북쪽에는 모압이 있습니다. 그 무렵 지난 약 38년 동안 광야 1세대를 하나님께서 멸망하게 하셨음을 강조합니다(14,15,16절).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나안 백성을 멸망시키는 것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불평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고, 자녀들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민 14:33). 맹세대로 이루셨습니다.
4) 롯의 후손 암몬의 땅도 우회 (16-23절)
하나님께서는 롯의 후손 암몬 자손의 땅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암몬 자손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전쟁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9절). 아모리 족속인 헤스본(왕은, 시혼)과 이제 처음으로 전쟁하여 정복하여 차지하라고 지시하실 것입니다(24절).
하나님께서는 에돔, 모압, 암몬의 땅은 그들에게 주셨음을 강조합니다(5,19,19).
20-23절: 역시 암몬 족속이 거주하는 땅에 대해 신명기를 잃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합니다. 암몬이 어떻게 그들이 거주하는 땅을 정복했는지 역사를 간단히 설명해 줍니다. 다시 한 번 에서 자손(에돔)이 자기들이 사는 땅을 전에 정복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더구나 갑돌(블레셋을 말함) 사람이 그들이 사는 지녁을 정복한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주권 가운데서 에돔, 모압, 암몬 등 나라들에게 원래 그 곳에 살던 민족을 정복하고 그 곳을 차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곳들을 이스라엘에게 주시지는 않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각 민족에게 그들이 거할 정복할 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땅만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직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것을 가지려 하면 탐욕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십니다.
또한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축복의 기간이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해 불순종한 자들에게 대한 심판의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있지만, 불순종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함을 기억합시다.
2. 첫 번째 정복, 헤스본 땅 (24-37절) (민수기 21:21-30을 기억)
이스라엘은 헤스본을 정복한 이야기는 민수기 21:21-30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합니다. 지도 33페이지에 헤스본과 싸움 참조.
1) 헤스본 왕 시혼에게 길을 열어 주도록 제안(26-30절)
이스라엘은 처음에 헤스본 왕에게 그냥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물과 양식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절하고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왔습니다. 헤스본인들이 결정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그들의 성품을 완강하게,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셨습니다(30절). 하나님께서는 시혼의 마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강제로 일하신 것은 아닙니다. 헤스본인들은 자발적으로 완고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사람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하게 동시에 갑니다.
2) 헤스본 왕이 공격했으나 이스라엘이 그 나라를 정복(31-37절)
시혼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오히려 군대를 거느리고 싸우려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전 승리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이고, 그 재산은 이스라엘이 차지했습니다. 아무리 높은 성읍도 하나님이 주신 것은 함락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힘을 다해 싸워 그 땅을 얻었지만(34절)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로 주신 땅입니다.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31, 33절). 하나님의 백성은 은혜로 주신 것에 대해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여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이스라엘은 자발적으로 노력하여 얻어야 합니다. 헤스본은 암몬의 서쪽 지역과 북쪽에 있는 넓은 땅입니다. 하나님은 이 곳을 그분의 백성이 정복하여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37절: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곳을 공격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지 말라고 명령하신 나라와는 싸우지 않고 두었습니다(37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싸워야 할 곳을 지시해 주십니다. 또한 싸우는 것을 금지한 나라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도 다 지시했고 이스라엘은 순종했습니다.
아모리 족속인 헤스본을 다 진멸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잔인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잔인한 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가 너무 심했기에 정당하게 멸망시키신 것입니다(창 15:16).
3. 하나님의 백성의 전쟁과 평화, 그리스도와 신약교회
1) 하나님은 백성에게 평화를 유지할 나라와 전쟁할 나라를 지시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면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민족은 보존하시고 어떤 민족은 다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분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보존하라고 지시한 나라에 대해서는 그냥 우회했습니다. 전쟁하라고 지시한 아모리 족속 헤스본과는 싸웠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직접 싸워서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 모압, 암몬, 블레셋 족속 등에게 다른 나라의 땅을 정복하여 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의 주권자이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온 땅의 주님, 우리에게 기업을 주심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여 하나님의 아들 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할 것입니다(로마서 8:17). 천국을 은혜로 공짜로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만물을 충만케 하는 기관으로 세우셨습니다(에베소서 1:23). 교회가 세상을 충만케 하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고린도후서 10:13). 우리에게 주신 영역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게으르게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
우리에게도 개인이나, 가족, 교회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분을 힘껏 노력해서 차지합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 가족, 교회에 주신 것을 탐내서 차지하지 맙시다. 지금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는 불신자들에게도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직분의 영역에 집중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도 오직 우리에게 주신 영역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일합시다. 남의 영역을 탐내지 맙시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좀 더 정확히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심히 주의하여 배우고 묵상합시다. 광야 40년, 하나님은 축복하시며 불순종한 것에 대해서는 또 심판도 있었습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서 더 하나님께 순종함을 다짐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요단 동쪽에서 이스라엘에게 새 시대의 정복 전쟁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에게 주신 땅은 탐욕으로 정복하지 않고 통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악한 자를 벌하시는 그 일을 맡기실 때 더 겸손해집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방향을 돌리는 것(돌이켜), 두루 다님, 지남’의 차이
1,3절, 방향을 돌려, 돌이켜(파나): 가던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
1,3절 두루 다님(사바브): 주위를 도는 것, 혹은 우회하는 것
4절, 지남(아바르): 지역의 중간을 통과함
<참고> 에돔을 둘러 가는 지역(지도 참조)
1-3, 8절: 가데스 바네아에서 배반한 이후 이스라엘은 광야 길에서 헤맸습니다. 광야 동족으로는 에돔이 살던 세일 산이 있었습니다. 그 근처를 빙빙 돌면서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방향을 돌려서 북쪽으로 가라.”(1-3절) 그들은 곧 바로 북쪽으로 가나안으로 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동쪽으로 에돔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나라를 통과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에돔의 서쪽으로 해서 남쪽으로 내려가 엘랏에 까지 내려갔습니다. 다시 에돔의 동쪽 편을 지나서 빙 돌아 북쪽으로 갔습니다.
<참고> 13절, ‘일어나 통과하라’, 24절, ‘일어나 진행하라’
두 말은 정확히 같은 말입니다(쿰, 아바르). 그러나 번역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통과하라=진행하라는, 한 나라 안을 지나서 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정은 돌아서 가는 것이고, 통과하는 것은 그 나라 안을 지나서 가는 것입니다.
<참고> 이스라엘 백성이 만난 족속의 역사를 인도하심: 기존 나라들을 정복
모압 족속-엠 사람을 정복 (10,11절)
에돔 족속-호리 사람을 정복 (12,22절)
암몬 족속-르바임을 정복 (20,21절)
갑돌 사람-요단강 동쪽 가사 지역의 아위 사람을 정복 (23절)
<참고> 싸우기 시작함(할랄) 강조
처음으로 전쟁을 시작한다는 말이 4 번 나옵니다.
24절,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더불어 싸우기 ‘시작하라’
25절,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 하며 두려워 하게 하리니’: 내가 너를 무서워 하며 두려워 하게 만들기를 ‘시작하리니’
31절, ‘비로소 시혼과 그 땅을 네게 붙이리니’: 내가 주기 ‘시작하리라’
31절, ‘너는 이제 그 땅을 얻어서 기업을 삼으라’: 너는 그 땅을 얻어서 기업을 삼기 ‘시작하라’
시혼과 그 나라의 왕 옥과 싸우라고 지시하시는 말의 처음과 끝에 ‘시작하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제 가나안 지역 정복의 위대한 일이 시작됨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정복전쟁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참고> 붙인다(24, 31절)=준다
그냥 ‘준다’는 뜻입니다.
<참고> 영역 주권: 단체, 각영역에 주신 주권,
감염방지 위한 정부의 권고에 대한 교회의 순종의 의무, 예배의 자유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 작은 부분까지 그 분의 소유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다스림을 여러 국가와 기관, 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케냐 등은 각각의 나라에 주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각 회사도 회사의 권한의 영역이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도, 국가, 기업, 학교, 가정, 교회 등의 기관은 각각의 영역에서 주권이 있습니다. 화란의 목사요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영역 주권”이라고 했습니다.
국가는 가정과 교회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국가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교회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를 지시하면 영역 주권을 침입합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방지를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를 하지 말도록 권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국가는 국민보건을 책임지는 사명을 하나님께 부여 받았습니다. 가정, 기업, 그리고 교회에서 일어나는 “국민보건”에 관한 것은 국가가 간여할 권한이 있습니다. 또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보건상의 이유로 교회의 모임을 금지할 권한”이 국가에 있습니다. 다만, 보건상의 이유로 할 때 정부와 서울 시는 “00명 이상이 00 시간 이상 모이는 모든 집회를 하지 말 것”을 “권유” 나아가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만 지적해서 말하는 것”은 1) 공평성의 원리에 어긋합니다. 2) 더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감염방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이외의 단체(대형 상점, 식당) 등에서 감염이 일어나도록 방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교회의 모임을 하지 않아야 할 정도로 감염이 심각한 단계라면 모든 모임에 대해 심각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교회는 정부와 서울시의 권유에 “순종”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로마서 13:1)라고 명령하신 성령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정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국가의 건강을 지키게 하신 그 영역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부와 서울시가 공평성이나 지혜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때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입장을 표시해야 합니다. 고압적으로 성명서를 내는 것은 교회라는 기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국가나 사회가 성도를 죽이고 모이는 것을 방해할 때도 주님께서는 교회에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도로전서 4:12,13).
교회와 성도는 이 땅의 고난과 부당함에 대해 참으며 “그리스도의 피에 그 옷을 적시며”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한 시민으로서 성도는 자유롭게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정부에 대해 강한 항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단체로서는 정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존중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에 동사무소 직원 두 명이 방문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동사무소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알고 지내던 공무원이었습니다. “목사님, 미리 전화하지 못하고 와서 죄송합니다.” 미안해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교회에서는 최소 인원만 모인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습니다. “교인들의 건강을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일에도 가족과 쉬지 못하고 일하게 해서 죄송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는 동 사무소에 오렌지와 스낵을 배달시켜드렸습니다. 역시 동장님에게 전화하여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교회까지 방문해 준 공무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