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 (신6:1~15)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가슴에 박히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더라도 가정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완전한 성공은 반드시 가정의 성공을 포함한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극히 공감했습니다. 요즈음 가정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매우 위태롭습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1위랍니다. 2001년 기준으로 하루 877쌍이 결혼을 하고 370쌍이 이혼을 한다고 하니 풍전등화(風前燈火)란 표현이 가히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이것은 가정의 기본이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초석이 흔들리고 무너지니 그 위에 무엇을 세울 수 있고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관계, 부부관계에 기본이 서 있지 않으니 자식이 부모를 때리고 내다버리는 사태가 나타나고, 부부사이가 철천지원수가 되어 법정에 서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왜 진작 그 기본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가르쳐줬다면 내 가정이 이런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하고 통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써 성경에 다 기록해놓으셨고, 주의 종을 통해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고 계십니다. 듣지 않기 때문에, 가르쳐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기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는 기본지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부모에 관한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그리고 한층 억양이 강조된 말씀은 신명기 27장 16절에 있습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십계명 중 하나님과의 종(縱)적인 언약 다음에 횡(橫)적인 언약, 곧 인간사이의 가장 첫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큰 언약이요, 행동강령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이 왜 당연시 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부모 학대와 방치가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네들은 큰 방 차지하고 부모는 골방에 넣습니다. 자기네들은 외식하고 여행하면서 부모더러는 집이나 지키라고 합니다. 자기 자식에게는 몇 백만 원짜리 과외도 아깝지 않으면서 늙은 부모에게 용돈 몇 푼을 이리 재고 저리 잽니다. 그러고 하나님께 복 달라 하니 하나님이 비웃을 수밖에요.
부모님이 우리를 어떻게 키웠습니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온갖 고생으로 우리를 이만큼 키워놓았는데, 마치 저 혼자 큰 것처럼 부모를 나 몰라라 한다면 어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실 수 있겠습니까? 또 그런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 어찌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 안다’는 말이 백 번 맞습니다. 저도 자식 낳아 기르다보니 제 부모님이 얼마나 저 때문에 가슴 아팠을지, 얼마나 속 태우셨을지 깨닫게 됩니다. 다 과거지사지만 제가 목사가 된 것 때문에 제가 어머니 속을 무척 썩였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했던 우리 어머니 쪽에서 보면 예수에게 미쳐서 있는 재산 다 팔아가며 세상 사업도 다 팽개치고 목사가 된 아들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참 많이 우셨습니다. 지금 여든을 넘기신 어머니를 뵈면 지나온 시절이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편 아직 어머니가 큰소리치시는 것을 보면 정정하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습니다. 더구나 이젠 교회에 잘 나오시니 결국은 제가 효도를 한 것이라 믿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합시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합시다. 돌아가시면 하고 싶어도 못하고, 뵙고 싶어도 못 뵙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이 장수와 축복을 주십니다.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이삭이 받은 축복과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순종한 룻의 축복이 바로 샘플이며, 죽기까지 순종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증표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또 다른 지침은 부부관계입니다. 부부는 무촌(無村)이라고 합니다. 왜 무촌이냐면 부부는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의미를 하나 더 추가 하자면 등 돌리면 남남이 되기 때문에도 무촌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엡5:22). 부부가 영원히 무촌으로 잘 살고 싶으면, 또 무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말씀이 먼저 부부관계에서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복종이냐?’ 할 지 몰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곧 기본이요, 초석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니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디 그렇습니까? 돈이나 많이 벌어다주는 남편은 대접을 받겠지만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은 집안에서 전혀 행세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실직하면 집을 두고도 노숙자로 사는 겁니다.
훌륭한 남자 뒤에는 현숙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안식처는 아내의 가슴이요, 가장 큰 원동력은 아내의 응원이기 때문입니다. 왕비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남편을 왕처럼 대접합시다. 남편인 아하수에로의 말을 무시한 와스디가 쫓겨난 것을 아십니까? 다윗을 경멸했던 미갈이 남편에게 버림받아 잉태치 못했던 것을 아십니까?
그럼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제가 16년 전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당황했던 일이 있습니다. 40여 년 동안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에 절어 살던 제 앞에 벌어진 광경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여자 먼저’(Lady first)인 것과 가사분담이 그것이었습니다. 여자가 차에서 내리면 문을 열어주고 손을 잡아 주며, 의자에 앉을 때는 의자를 빼주고, 또 부엌에 남편이 들어가 요리를 해오는 모습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하나님 말씀에 부합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우리 젊은 세대를 보면 정말 여자나 아내에 대한 배려가 많아진 것 같아 보기에 좋습니다.
아내는 연약한 자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 ‘북어와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두들겨 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천하에 못난 놈들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아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데 3일에 한번 패보십시오. 집안이 어찌 될 지… 아내를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십시오.
끝으로 자녀 양육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6,7). 즉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기교육이니 영어교육 등으로 학식은 쌓게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엉망입니다.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 키우라고 했는데, 뭐든 ‘오냐 오냐’해서 다들 안하무인입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하나님 말씀대로 양육해 보십시오. 그러면 네 자녀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으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물건이 집에 가득하며, 머리가 되고 남에게 꾸어주는 자가 될 것입니다.
뿌리가 튼튼하면 나무는 자라게 되어 있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뿌리가 말씀에 바로 서 있다면 그 가정은 웃음과 행복, 그리고 사랑의 열매가 가득 맺힐 것입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128:3). 할렐루야!
이 땅의 부귀와 장수를 원하면 부모 생전에 공경을 다하라
기본이 바로 선 가정이 되려면 매일 가정예배를 드려라
첫댓글 ! ! !좋은 말씀 새겨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