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7월8일(금) 햄세달-> 골-> 오슬로( DFDS SEAWAYS ) ->코펜하겐
*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시청사, 칼 요한스 거리, 왕궁,
햄세달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맑고 기온은 10도로 쾌적하다. 오전 내내 버스를 달려 11시 50분 오슬로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오슬로 공대 로버트공학과 대학원생, 27세)가 우리를 기다렸다. 오슬로의 날씨는 우리가 묵었던 헴세달과는 기온차가 컸다. 섭씨23도, 약간 더운 날씨였지만 관광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강남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심사를 했다. 미역국 맛이 칼칼하고 시원하다. 흰 쌀밥에 제육볶음, 김치 등의 한식이 맛있었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비겔란 조각공원에 갔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조각 작품 200여 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20세기 초 비겔란이 일생동안 조각한 자신의 작품들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공원 조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슬로 시는 그에게 공원 설계와 작품을 의뢰했고, 비겔란은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는 공원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제자와 오슬로 시민들이 힘을 합쳐 오늘의 비겔란공원을 완성했다고 한다.
우리는 거대한 청동 대문을 통해 공원에 입장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조각품은 분수대로 가는 길목의 교량 위에 세워진 “소년상”이었다. 소년의 손을 만지면 무엇이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 소년상은 오슬로 시민들의 마스코트라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우리 일행들도 대부분 이 소년상의 손을 잡고 소원을 빌고 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이루도록 신통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이드는 대형 분수대 앞으로 우리를 안내하여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조각들에 관해 설명했다. 인간의 삶을 중심 테마로 하는 이 조각품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나무아래 매달려 있는 인간의 모습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유아기부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가지를 붙들고 있는 아이들( 아직 세상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을 표현), 사랑에 빠진 두 남녀, 변심한 여자와 애원하는 남자, 출산으로 인해 부모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 두 남녀 등 조각품들을 보면 우리 삶의 전 과정을 실제로 보는 것 같다.
중앙 분수대를 지나 공원의 가장 높은 지역 중앙에는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우뚝 솟아오른 조각이 서 있다.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모노리트(Monolith)” 조각상이다. 무게 260톤 높이 17.3m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서로 정상으로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부조되어 있는 탑이다. 인간의 본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모두 인체의 실제 크기로 조각하여 역동감이 넘쳐 보였다.
드넓은 녹지와 울창한 수목들, 맑은 호수 가에 한가롭게 떠 노는 오리 떼와 세계적인 조각가의 명작들이 어우러진 이 공원을 나는 잠시 왔다가 떠나지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싶다.
조각공원을 나와 우리는 시청사로 향했다. 시청사는 매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좌우 대창형인 이 붉은 벽돌 건물의 전면에는 오슬로를 상징하는 백조상이 있는 분수가 있다. 입구와 회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벽화로 장식된 큰 홀이 나온다. 이 큰 홀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며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 홀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연회장 정면 벽에는 노르웨이 역사를 단계별로 그린 거대한 벽화가 있고, 왼쪽 벽에는 불량배에 납치된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벽화가 있다. 연회장 왼편 벽화를 끼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황후나 귀부인들이 연회복을 입고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의 경사도를 설계했다고 한다.
2층에는 뭉크의 방이 있는데 이 방에는 뭉크의 유화 “Life" 가 걸려 있다. 오슬로 시민들이 이곳에서 결혼 서약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2층 복도의 벽에는 초대 국왕 부부와 현재 국왕부부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화에서 현재 왕비의 긴 치마에는 물을 쏫은 것 같은 얼룩이 있는데 이는 평민 출신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왕비는 평민 출신의 이혼녀로 현 국왕과 결혼 당시 귀족들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 부딛 쳤으나, 직접 방송 인터뷰에 나가 자신의 솔직한 면모와 향후 왕후로서의 포부를 용기 있게 밝혀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왕후가 된 이후에도 국민들과 동행하는 자세를 유지하여 현재까지 가장 인기 있고 사랑받는 국왕과 왕비가 되고 있으며, 국왕 또한 높은 지지를 누리고 있고 한다. 훌륭한 지도자와 이를 알아 볼 줄 아는 노르웨이 국민들인 것 같다.
시청사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오슬로의 가장 번화가인 칼 요한스 거리를 관광했다. 시청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 한참을 가면 왼편으로 왕궁이 멀리 보이고 오른편으로 그랜드호텔이 보인다. 그랜드 호텔과 왕궁을 연결하는 도로가 칼 요한스 거리다. 왕궁 앞의 거리에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있고, 그랜드 호텔로 가는 거리에는 상점과 레스토랑이 많이 있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이 도로에는 분수대, 숲과 나무들이 많아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그랜드 호텔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투숙하는 호텔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랜드 호텔 앞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왕궁까지 걸었다. 수많은 노르웨이 인들이 이 거리에 나와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오슬로 일정을 모두 마치고 DFDS 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탑승절차는 간편했다. 우리가 받은 캐빈은 바다가 보이지 않은 작은 방이었다. 방을 배정받고 가방을 옮긴 다음에도 저녁 식사시간까지 약 2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이 시간에 면세점을 둘러봤다. 중국과 한국의 관광객들이 면세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판도라” 팔찌를 파는 곳에서는 여자들이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을 기다려 팔찌를 샀다. 링에 끼우는 구슬의 수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고 하며, 3개의 구슬을 끼운 팔찌의 가격이 40만 원 대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래도 한국보다는 훨씬 싸다며 혼자서 2-3 개씩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들만을 보면 우리나라가 극심한 불경기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7시가 넘어 문을 연 크루즈 내 식당의 메뉴는 푸짐하고 맛있었다. 나는 다시 내일의 강행군을 위해 충분히 먹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맘껏 먹었다. 포도주 두 잔을 마시고 캐빈으로 돌아와 좁은 2층 침대에 누웠다.
이제 노르웨이를 떠난다. 7월 5일부터 8일까지 4일 동안, 전체 여행일정의 40%를 노르웨이에서 보냈다. 그만큼 비중이 큰 여행지가 노르웨이였다. 이 기간 중 주로 관광명소로 알려진 몇 곳만을 둘러보았기 때문에 노르웨이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끌었던 점은 노르웨이가 세계최고수준의 복지제도를 갖춘 나라, 남녀평등이 법으로 철저히 보장된 나라, 입양이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 나라라는 점이다.
노르웨이는 전 국민 무료교육, 의료혜택, 실업수당, 노후연금 등 완벽한 사회보장 제도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우울증이 유급 휴가 사유가 되며, 사후에는 10년간 정부가 묘지관리비까지 지원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슬로건이 실천되는 나라라고 한다. 호텔 같은 감옥, 휴양지와 같은 감옥까지 운영하여 재범죄율을 현저히 낮춘 국가라고 한다. 한마디로 전면 복지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면복지와 선별복지의 문제는 최근 수년간 주요 정치적 쟁점이 되어왔다. 문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재정의 문제다. 노르웨이는 이 재정 문제를 높은 세금으로 해결한다. 노르웨이의 세금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갑근세 평균 36%, 부가세 25% 등) 그러나 노르웨이 국민들은 높은 세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정부는 세금의 투명한 운용을 통하여 납세자에게 복지혜택을 돌려주고, 납세자는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또한 튼튼한 경제도 필수적이다. 1975년 북해유전의 개발로 원유(세계3대 수출국, 세계8대 보유국)와 천연가스(세계 8대 보유국)생산이 노르웨이 경제의 활력소가 되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2015년 기준 노르웨이의 1인당 국민소득은 84,749달러(세계 2위)를 기록하였다.
노르웨이는 남녀평등의 보장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매우 활발하다고 한다. 2003년 이후 공기업, 상장기업의 임원직의 40%, 정부 각료의 50%를 여성들에게 할당한다고 하며, 2015년부터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하게 1년간의 군복무가 의무화 되었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이웃 스웨덴, 덴마크와 더불어 입양에 관대한 나라다. 특히 입양아는 친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상속권도 가진다. 노르웨이인들은 입양이 자신들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만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1956년 이후 현재까지 약 6,000명의 우리나라 입양아를 받아들였다.
노르웨이 국토는 한반도의 1.5배나 되지만, 대부분이 해발 1000-2000m의 고원지대와 불모의 툰드라 지형, 수많은 계곡과 피오르드, 호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경지는 국토의 3%에 불과하며, 천연자원도 빈약하고, 기후마저 냉혹한 편이다. 이 같은 자연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인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옛 바이킹의 기질을 이어받은 끈질긴 인내심과 모험심으로 오늘날의 선진국 노르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회보장제도가 국민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남녀평등의 보장이 70%를 넘는 이혼율로 이어지는 등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첨부 동영상 : 신들의 정원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