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장서각 사업'에 대하여
전순표(교산·난설헌선양회 이사, 전 동녘신문 발행인)
교산·난설헌선양회에서는 오랫동안 구상해 온 '호서장서각 사업'을 올 가을에 열리는 문화제 때에 그 시작을 알리려고 합니다.
아직 혼자의 힘으로 바로 서는 것조차도 힘들어 하는 교산·난설헌선양회라 독자적으로 사업을 세우고, 추진한다는 것은 지고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읍니다. 여기에는 강릉시의 의지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역할이 필요한 싯점입니다.
지난 해 9월, 강릉대 교수이며 교산·난설헌선양회 이사인 장정룡님은 강원일보에 "호서장서각과 책의 고장 강릉"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글을 쓰셨읍니다.
교산 허균 선생의 '호서장서각'에 뿌리를 둔 '호서장서각(湖墅藏書閣) 사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나아가 함께 고민하고 정리한 교산·난설헌선양회의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장정룡님의 글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곳에 옮겨 그 중요성과 타당성을 뒷받침하고자 합니다.
님은 먼저 강릉 부사를 지낸 정경세의 입을 빌어 “강릉은 선비가 많고 풍속의 아름다움이 강원도에서 으뜸이며, 본디 문헌의 고장이라 불러왔다(本府士子之盛 風俗之美 甲於一道 素稱文獻之邦)”고 강릉이 문향의 고장임을 밝히셨습니다. 이어 호서장서각에 대한 교산 허균의 장서각 글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내가 경포의 별장으로 나아가 누각 하나를 비우고서, 이 책들을 간직하였다. 고을의 선비들이 만약 빌려 읽고 싶으면 나아가 읽게 하고 마치면 도로 간직하게 하였다.… 나는 세상 여론에 거리낌을 입어 관운이 더욱 삭막해지니, 장차 인끈을 내던지고, 동쪽 고향으로 돌아가서 만 권 책 속의 좀벌레나 되어 남은 생애를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을 지니게 되어 늙은 나에게 즐길 만한 밑천이 되니 기뻐할 뿐이다. 여러 선비가 이 책들을 갑에 넣어 좀약을 치고 햇볕을 쬐어 잃어버리거나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운기를 보고 점치는 자가 반드시, `하슬라의 옛터에 무지갯빛이 일어 하늘에 빛나고 달을 찌르니, 틀림없이 기이한 책이 그 아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강릉 경포 호숫가 별당에 1만여 권의 책을 보관했던 '호서장서각(湖墅藏書閣)'이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생활 언어로 이해하자면 근대의 최초 사설 도서관이 있었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현재 강릉시에서는 이러한 뜻을 이어 받아 교산의 '호서장서각 사업'을 교산을 잉태한 곳으로 알려진 사천 애일당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운양초등학교 바로 옆에 '작은도서관 사업'에 실어 곁들여 추진하려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 교산의 '호서장서각 사업'은 장정룡님이 그의 글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강릉 초당에는 한옥과 송림이 어울린 교산·난설헌 생가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문인이자 사상가인 허균 그리고 한중일 최고 여류시인 허난설헌을 기리는 교산, 난설헌문화제가 선양회 주관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는 것을 들면서 현재, 두 분을 기리고 있는 초당 기념관 앞에는 한옥 두 채를 다시 수리하여 찻집과 북카페 등이 들어설 예정인데 바로 이곳에 "교산, 난설헌과 관련된 시설이 들어 선다면 생가와 기념관과 더불어 유서 깊은 명소로서 역사적이 뿌리를 탄탄히 하는 것은 물론 크게 그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교산 허균이 자랑했던 '호서장서각'을 바로 이곳에 두어 `책의 고장'에 걸맞도록 하면 참으로 좋겠다는 것을 밝히고 있읍니다. 나아가 님은 "북카페라는 이름보다 `호서장서각'이라고 붙이면 책을 소중히 여기고 글 읽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 강릉의 문향 전통이 저절로 되살아날 것이고, 또한 그 흔한 찻집이 아니라 난설헌의 더욱 맑고 깊은 시문학의 세계에 빠져드는 `난향익청(蘭香益淸)'이라고 제호를 정한다면 우리는 난설헌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이라며 참으로 소중한 의견을 내어 놓으셨읍니다.
이제, 이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 따라 편리성, 효율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점에서 운양초등학교 옆에 '호서장서각 사업'을 추진하려는 강릉시의 의지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이 '호서장서각 사업'은 말 그대로 "호숫가에 있었던 별당이 바로 사설 도서관"인 점을 감안한다면 사천 운양초등학교 보다는 호숫가 옆이 적당하며 나아가 역사적인 뿌리를 감안하더라도 교산·난설헌 생가터가 안성맞춤이라고 여겨집니다. 다행히도 지금, 생가터 옆에 한옥 두채를 수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장정룡 교수의 말씀에 따라 이곳을 '호서장서각 사업'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받아 드려질 것입니다.
따라서 운양초등학교 옆에는 본래의 뜻대로 '작은 도서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듯 하며 '교산 허균의 호서장서각' 사업은 경포 호숫가인 초당 교산·난설헌 생가터에 두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여겨 집니다.
지금까지 강릉시는 초당 솔숲의 교산·난설헌 생가터를 매입했하였고, 매년 교산·난설헌문화제를 주최하여 두 분을 기리는 일을 해 오고 있으며 기념관을 비롯하여 오문장 시비와 난설헌 동상을 세우는 등 꾸준하게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읍니다. 이러한 강릉시의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을 넘어 교산·난설헌선양회의 입장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호서장서각 사업' 또한 역사적으로 참으로 중요한 사업인 만큼 강릉시의 열정이 깊이 녹아들어 먼 미래에도 뜨거운 박수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