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국군의 날 행사 때 해병대와 특전사가 경기도 가납리전투비행장에서 한판붙었다 그 당시에 후배는 군기수로 참석했고 우리해병대는 2연대 해병들이였다 결과는 해병대의 완승으로 끝났다. 해병 한명이 손가락이 잘리고 7명이 다쳤다. 특전사는 25명이 우리한테 포로로 잡히고 많은 특전사들이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병기 25정을 버리고 도망갔다. 우리도 1개대대병력 특전사도 1개대대병력.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 병 이고 특전사는 대부분 깔구리출신이였다. 특전사 사령관이 우리2연대장이신 이덕길 대령한테 사과하고 병기25정을 돌려받았다 그때 해병대 최갑진장군은 이덕길 연대장을 몹시 나무랬다 이 연대장은 해병답게 옷을 벗는다며 옷을 벗으셨다. 그 분은 병에서 하사관 위관을 거치며 연대장까지 올라간 분 이라 확실히 달랐다. 그 때 그 싸움을 우리는 가납리 전투라 부른다....지금도... 가납리 전투는...87년 이전 선배님들은 낯설은 얘긴데...좀 더 상세히 알았으면 하는데..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후배님들의 글 기대합니다..
RE:선배님 저는 557기의장대출신으로 일병때국군의 날 행사로 경기도 가납리 전투 비행장에서 훈련을했습니다 비행장 활주로가 두개가있는데 왼쪽은 육군 여군 예비군 그리고 특전사 공수부대에서 훈련했고 오른쪽 활주로는 해병대 공군 그리고 해군 (유디티) 그렇게 훈련을 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훈련준비중인 해병대 대열로 특전사가진입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대대장이그냥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대열로 진입하자 560기후임이 대열사이로 통과하지말라고했고 특전사는 어디 깔구리한데 반말이고하며 시비가붙었습니다 560기 하는말 싸움하는데 계급이뭐가 필요하나고 하면서 식스틴으로 특전사얼굴을 공격하면서 싸움은 시작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해병대는 용감했습니다 내가 해병이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정말 용감했습니다 한30분을싸웠나 특전사애들이 도망가기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투석전이벌어지기시작했고 우리해병은 쓰러진 전우를 같이데려 오려고 달려갔고 특전사는 쓰러진 동료를 두고 도망갔습니다 그과정에 특전사는 우리 해병중사를 향해 대검을 휘둘렸고해병중사를 구하기위해 548기 선임이 그칼을 맨손으로 막다 손까락이 짤리고그특전사는 식스틴에맞아 쓰러지고 그과정에서 25명의 포로와 총기를 압수하였습니다 세상에 총을 버리고 도망가는 군대 저는 처음 봤습니다참 해병은 해병이였습니다 재병지휘관이 육군중장이였는데 아무리 하지말래도 싸움은 계속되었는데 이덕길 연대장님(그당시해병대 재병지휘관)께서 해병대뒤로물러나라는 말한마디에 사르르 해병대가 뒤로 물렀나습니다 참 글로 표현 하려니 상황 표현이 잘 안되는군요 한참뒤 특전단 재병지휘관이 사과하고 총을 되찾아같습니다 그때 이덕길 연대장님 말씀 특전사는 해병대와 견줄만한 부대인줄 알았는데 총을버리고 가는군요하며 해병대의 기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말씀을 하셨습니다 싸운건 잘못하였다 하지만 해병근성을 보여줘서 고맙다 하셨습니다 다음날 연대장님 께서는 사단으로 복귀하면서 해병답게 옷을벗는다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모두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합니다 선배님 저는 그때 제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때상처로 아직도 눈위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훈단에 해군기가 등장하는 지금의 해병대 실상을 보면 그때 그분이 생각납니다
또하나의 사건
73년 10월 1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건군25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해병대 사령부의 해
체를 목전에 두고 있던 해병대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착찹한 심정을 금치 못하게 한 행사
였다. 그 때 이미 약 400명의 전역 희망장교 중 약 300명은 9월 10일과 20일 두 차례
걸쳐 전역을 하고 그 나머지는 9월 30일과 10월 10일(이병문 사령관과 전속부관 각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