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안산을 다녀왔습니다.
전교조 서울지부 4·16 특위가 주관하는 ‘416 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 행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딴에는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휴일 아침의 9시, 경기도 안산 고잔역에서의 회동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20분 지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부에서 준비한 봉고차는 인내심 있게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10여 분을 달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단원구 고잔동의 상가 3층에 위치한 ‘기억저장소’입니다. ‘별’이 된 아이들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유가족이 마련한 공간입니다.
방에 들어서니 천장에 붙어있는 돌출형 등(燈)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끕니다. 304명을 기억하고자 304개의 등(燈)을 만들었다는 기억저장소 사무국장님의 설명입니다. 그 등 하나하나에는 학생들의 학생증과 필통, 인형 등이 들어 있습니다.
기억저장소의 4면 벽에는 주인 잃은 학생들의 방 모습들이 한 장 액자사진으로 걸려 있고 그 옆에는 학생들의 살가운 어리광이 두어 줄 활자로 함께 걸려 있습니다.
방 중앙에 있는 이불은 진도체육관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불 안에서 느꼈던 유가족들의 분노와 울분, 고통, 설움, 땀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기억저장소 다음의 행선지는 단원고입니다.
교문 앞에서는 경찰 2명이 찾아온 이유를 형식적으로 묻습니다. 학생들이 수업하는 평일에는 학교 방문이 안 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은 출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학교 측에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안내하는 사무국장님을 따라 2층에 올라가니 복도 양쪽으로는 그동안 다녀갔던 추모객들이 남긴 응원 글과 추모 글들이 즐비합니다.
교실 출입문에 걸려있는 학급 패찰의 ( ) 안에 갇힌 ‘명예’란 두 글자에서 더 이상 학생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실재 학생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교실에는 반듯하게 정렬된 책상마다에 꽃다발이 놓여 있어 교실 한 칸 한 칸이 마치 국립묘지 같습니다. 허니버터칩과 초코파이, 컵라면 등등 평소 학생들이 좋아했던 주전부리가 꽃다발과 함께 책상마다에 놓여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파란 공책은 추모객들이 학생들 각자에게 쓰는 추모공책입니다.
함께 간 25명의 전교조 선생님들도 그 공책에 애틋한 마음을 담습니다.
사무국장님은 들어가는 반마다 그 반에 얽힌 사연을 소개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당신은 영 불편하다고 하십니다. ‘앞장 서겠습니다’는 말이 좋다고 하십니다. 국민이 정의로울 때 국가가 부도덕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30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자를 잡는 주체는 온 국민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실종자 가족 앞에서 유가족이 죄인이 되고, 실종자 가족은 유가족이 되고 싶은, 지금의 현실을 개탄하십니다.
교실 하나 하나를 천천히 둘러보는 내내 마음도, 발걸음도 무겁습니다.
어떤 반은 성난 새 인형이 수호신으로 텅 빈 교실을 지키고 있고,
어떤 반은 유명을 달리 한 학생들의 개인 확대사진이 성탄트리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또 어떤 학생 책상 위에는 고인을 명예 학생으로 인정한다는 인증서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교실 뒤편의 개인사물함에는 노오란 종이학과 더불어 별이 된 아이들을 상징하는, 별 모양의 열쇠고리가 매달려 있고,
또 어떤 반은 노란 털실로 짠 방석과 등받이가 학생들 의자마다에 들씌워져 있어 보는 마음이 참 애틋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어느 반 교실 뒷문에 붙어 있던, 한 어머님이 쓴 듯한 편지글입니다. 아이 잃은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특히, ‘내일 네 교복을 빨아 널게 해다오. 그냥 돌아와만 다오!’ 하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무릎의 힘이 다 빠져나갑니다.
해서,
저도 ‘내 마음의 풍금’ 선율 한 가락을 포스트잇에 옮겨 빈 책상 위에 붙여놓았습니다.
생존학생 75명이 4개 반으로 나뉘어 공부하는 교실의 복도 앞에서 사무국장님은 단원고 순례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유가족들은 교실을 계속 보존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교훈으로 삼자고 하는데 반해, 재학생 부모와 학교 당국은 학생들 졸업과 동시에 교실을 없애겠다는 방침이어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십니다. 교실을 존치시키고 싶으면 700 명 재학생 부모의 동의를 얻어오라고 한다며 사무국장님은 분통을 터뜨리십니다.
단원고를 나온 일행은 유가족들이 있는 정부합동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교문을 나서면서 간식으로 준비한 에너지 바를 경찰에게 건네니 고맙게 받으며 ‘잘 가시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합니다.
그 인사를 들으며 세월호에 관한 한, 국민들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세월호의 슬픔 앞에서 한없이 숙연해지고 경건해짐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터입니다. 각자가 처한 입장은 별 문제가 안 될 터입니다.
화랑유원지를 가로 질러 20여 분을 걸으니 정부합동분향소가 보입니다.
TV 뉴스에서 익히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인데 추모객이 없는 휑뎅그레한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마냥 씁쓸하게 합니다.
분향소를 먼저 들렀어야 했음에도 유가족 어머님이 이끄는 대로 엉겁결에 들어간 곳이 ‘기억과 약속의 방’입니다.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이 방은 유가족 엄마, 아빠들이 손수 만들어서 더 의미가 깊다는, 셀프 자랑입니다.
마침 그날 오픈을 하여 우리가 첫 방문자라고 합니다.
둘러앉아 돌아가며 각자 오늘 순례의 소회와 다짐의 말을 한마디씩 한 다음 끝으로 유가족 두 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니 “가만 있으라”고 한 게 제일 미안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더디 가더라도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주는 게 중요함을 이제 깨달았다. 그게 교육인 것 같다‘는, 호성이 엄마의 회한입니다.
‘“엄마,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죽어서 아들에게 하고 싶어서 매일 매일 당당하게 살고자 한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구구절절 심금을 울립니다.
1시간이 훌쩍 넘는 간담회를 끝내고 분향소로 가서 드디어 분향을 합니다.
전면에 자리한 304개의 영정을 보니 새삼 억장이 무너집니다. 세월호가 얼마나 큰 국가재난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자리를 옮겨가며 조용히 사진을 찍는데 안내요원이 다가와 ‘촬영불가’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이미 공중파 TV에 다 찍힌 분향소 내부인데 이제 와서 안 될 게 뭐 있느냐‘고 따질까 하다가 이미 몇 장의 사진을 확보한 터라 그냥 참기로 합니다. 그들도 참 힘들게 일하고 있는 알바생들일 겝니다.
핸드폰을 얌전히 내려놓으면서 둘러보니 세월호를 떠받들어 건져 올리는 형상의, 커다란 손 모양의 조형물이 인상적입니다.
세월호와 함께 세월호의 진실도 저처럼 가뿐히 건져 올려 졌음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이 할 나름입니다.
첫댓글 큰 일 하셨습니다
미처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 이렇게나마 나눌 수 있게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상하게 쌤님 글은 늘 반갑네요. 팽목항에 다녀온뒤로는 도리어 더욱 느슨해있던터라.. 더 반갑네요.
정신 차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