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르멘을 보고 왔습니다. 좋아하는 오페라를 직접 보러가는 것은 처음이라 아직도 흥분되고 기분이 좋습니다. 게다가 S석이라니!! 게다가 공짜로 보다니!! 어떻게 이런 기회가 나한테 왔을까 싶습니다. 공짜티켓 당첨되어 날 데려간 엘리스양 고마워요!
카르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입니다. 은근슬쩍 카르멘을 동경하기도 했고요. 코..코스프레(?)까지도 해본 적이 있답니다. 주위 환경에 속박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제게 카르멘은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멋대로 사랑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그녀가 얼마나 좋던지요.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3층 두번 째 줄이었습니다. 자리가 엄청 좋더군요. 눈 앞을 가리는 것도 없었고요. 그런데 왜 3층이 S석일까 엘리스양과 함께 궁금해 했는데, 그 자리에서는 무대가 한 눈에 다 보이고 위쪽에 달린 자막도 무리없이 보이는데다, 음향도 조화롭게 들린다는걸 깨달았어요.
카르멘의 줄거리는 이미 여러번 본 적이 있었지만 자막과 함께 보는 건 처음이라, 세세한 대사도 자세히 알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그 결과 카르멘의 어장관리 능력이 엄청 쩔어주고 호세는 완전 찌질이라는걸 깨달았어요. 오, 카르멘 그녀는 지금 세상에 태어났으면 네이트톡에 올라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을겁니다. 마성의 여자인 것도 모자라 전형적인 고단수 어장관리녀에요. 특히 초반에 주니가 대장이랑 하사관 돈호세를 두고 주어를 이야기 하지 않고 노래하는 방법으로 돌팔매 한번으로 두마리 토끼를 낚더군요. 진정 혀를 내둘렀습니다. 초반에 같은 담배공장 여공끼리 머리채 잡고 싸우다 얼굴에 칼빵(?!)좀 내주고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씬이 나옵니다. 일단은 주어를 붙이지 않고 "난 어떤 이를 사랑하고 있어요~" 하면서 밑밥을 깔고 군인들을 좀 쳐다봐줍니다. 처음엔 좀 더 권력이 있는 주니가에게 들이대다가 이놈이 풀어줄 것 같지 않으니까 호세에게 눈길을 건넵니다. 그리고 주니가와 다른 군인들이 돌아가고 나서 둘만 남으니 홀랑 "내가 사랑하는 군인은 대장이 아니라 하사관이라능 ㅋ" 이러면서 호세를 낚습니다. 그러나 아까 주어를 붙이지 않고 노래를 부른 덕에 주니가도 이미 낚여있었죠. 완전 고단수입니다. 카르멘 진짜 한 성깔 합니다. 어떤 남자라도 맘에 안들면 막 발로 차고 밟음ㄷㄷㄷ 그리고 나서 한번 눈길 한번 주고 춤 한번 춰서 들이대주고... 마음을 줄 것 같으면서도 주지 않는 그녀는 남자들을 아슬아슬하게 애태웁니다. 마치 한마리의 암컷 짐승, 그것도 맹수 같은 야성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매우... 매우 아릅답습니다. 제가 남자라도 홀랑 넘어갔을거에요.
그에 비해 그녀와 대비가 되는 호세의 고향에 있는 약혼녀 미카엘라는 ...이 극에 나오는 미카엘라는 매우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성입니다. 고향에서 애인을 보러 먼길 마다 않고 찾아와 어머니의 키스를 전한다 빙자하며 귀엽게 키스하고 수줍게 웃는 미카엘라! 청순한 물빛 드레스에 비둘기 빛 망또에... 호소 넘치는 표현력에 아름다운 미성까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버리다니 호세는 진짜 벌 받을만 합니다. 미카엘라가 진짜 너무 매력있어서 나중에 무대 인사 때 사람들이 미카엘라!를 연호했었어요.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능 다 이해한다능. 응응.
그런데 호세 이놈이 얼마나 찌질한가 하면, 고향의 늙은 어머니를 버려두고 도시로 와서 군인이 되었는데, 저렇게 사랑스러운 미카엘라를 버리고 카르멘 뒤꽁무니를 ?다가 군에서도 ?겨나, 카르멘에게 집착하다 차여, 화려하고 당당한 에스카미오에게 열폭하다 못해 자기 옛 애인 탓을 하며 찔러버리고 질질짜는 진짜 한심한 남자더군요. 뭐 안됐긴 했지만, 자업자득인듯.
카르멘은 참 불쌍하고 위험한 여자입니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조심해! 말하고 다닙니다. 어쩌면 어떤 이를 사랑하든 끝은 불행하고 참혹한 결말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그 거침없음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인 동경이었습니다만, 지금 다시 보면 그녀 또한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와서... 지금은 그녀의 인간적인 면에 더 마음이 갑니다. 급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열정을 내뿜고, 그러나 6개월 이상은 가지 않는 그녀에겐 어떤 허무가 느껴집니다. 집시 특유의 부유한 듯한 느낌. 그녀가 진짜 사랑을 알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미카엘라가 좀 더 어른스럽다고 느껴집니다.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미카엘라가 미치도록 아깝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러나 카르멘은 원하는 것을 얻지 않으면 안되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자기 좋을대로 유혹하며, 상대를 망칠 정도로 이기적이고, 속박은 참을 수 없습니다. 미카엘라는 헌신적인 사랑을, 카르멘은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르멘이 정말 정말로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는 절대 비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거부하면서도 절대 그들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한번 사랑을 하면 몸을 던질듯이 열정을 불태우고 그 어떤 속박도 장애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귀환 나팔을 듣고 급하게 떠나려는 호세에게 화를 내며 조롱하는 이유도 그와 같이, 너와 내가 지금 사랑을 하는데, 나는 어떤 속박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너는 왜 그깟 사회적 역할에 매어있느냐. 이런 이유인 것 같아요. 이러한 여성이기 때문에 에스카미오의 투우경기가 있던 날, 그녀에게 호세가 나타났다는 경고도 무시한 채, 당당하게 그와 맞섭니다. 그가 해치려고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절대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일대 일로 마주섭니다.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에스카미오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당신을 구하고 나도 구원해달라" 칼을 들고 찌질하게 절규하는 호세에게 절대 목숨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나를 찌르거나 아니면 에스카미오에게 보내달라." 라고 말하는 그녀는 그 순간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사랑 방법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목숨을 건 도박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화사하게 핀 붉은 장미같은 그녀는 호세의 칼에 찔려 안타깝게 지고맙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순간 그녀의 강함에 감동받았습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은, 거의 늘 죽음을 맞습니다. 희생당하는 여주인공을 내세우는 이유는 오페라의 주요 수요층인 귀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이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은 죽음을 맞습니다만, 이 오페라가 특별한 이유는 남자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사랑하다가 버림받아 죽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랑하고 권력과 속박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카르멘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마치...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는 느낌입니다.
이 오페라 극초반에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음산하고 어두운 밤, 카르멘은 검은 두건을 쓴 어떤 이와 조우합니다.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기이한 장면에서 카르멘은 "하하하!" 웃고 조롱하며 사라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운명'. 죽음으로 치닫는 운명의 형상화일 것입니다. 카드로 미래를 점치는 장면에서도 그와 같은 운명이 드러납니다. 계속 죽음의 카드가 나오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녀가 치열한 전투같은 삶을 마감했을 때, 죽음은 검은 두건을 벗고 자유를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위로 나아갑니다. 마치 그녀가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듯이.
카르멘 : 최승현 돈호세: 프란체스코 페트로치 에스카밀로: 스바토플럭 셈 미카엘라: 김지현 주니가: 함석현 합창: 나라오페라합창단 어린이합창: 송파소년소녀합창단 오케스트라: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