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칼럼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승욱 작가인데요. 심리상담가이기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그러는 분입니다.
아무튼 이 분이 촌철살인인데다 생각치 못한 사람 심리 얘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이 칼럼을 공감하며 읽고 있는데요.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하려구요.
대충 요약해서 올리자면 이렇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삼분의 일은 한 팔을 깔고 엎드렸다. 삼분의 일 정도는 핸드폰을 또는 옆에 앉은 여자친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나마 강단 쪽을 바라보는 나머지 학생들도 강의에 크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름 강의 좀 한다고 자부했던 나는 무기력해진 채로 돌아왔다. 상처라면 상처였다.
다시 2년이 지나, 작년 또 한 번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내가 선택한 강의의 주제는 ‘무기력’이었다.
처음 강의에 왔던 200명 정도의 그 젊은이들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은 달리 의심할 것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무기력의 함성이었다. 이 똑똑한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를 당황스럽고 불안하게 했다.
이다지도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집단 행위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기력의 원인은 바로 ‘착취’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자본가의 착취는 물론, 국가, 제도, 심지어 관계, 가족까지, 착취는 곳곳에 만연하여 은밀하게 우리를 빨아먹고 있었다.부모는 자녀들을 착취한다. 아이들은 생명을 걸고 공부하지만 부모는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다. 더더더를 외치며 아이의 노력을 착취해서 자신의 행복을 채우려 한다. 기업은 실적과 성과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는데, 제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편 갈라 서로를 착취하게 하면서 또 싸우게 한다. 남녀는 외모와 능력의 유무로 서로를 착취하면서도 혐오한다. 국가는 이 모든 것을 방조, 조장하며 나아가 국민의 양심을, 정의를, 미래를, 심지어 생명까지 착취한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무기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본능의 발로라고, 그러니 당신들의 무기력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무기력이 깊을수록 착취의 역사도 길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무기력해지지 않을 때까지 무기력해도 된다.
무기력이라는 증상은 사실 당신이 살고 싶다는, 그것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착취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 보전 본능의 발로다. 학생들은 그 말을 듣고 서서히 일어났다. 오래 착취당하고도 무기력하지 않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다.
증상은 종종 정상의 반증이다.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학생들의 무기력을 알아봐주고 귀기울이고 연구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니. 착취당하고도 무기력하지 않은 자들이 비정상이라고 말해주다니. 인간을 이해하고 감싸안는다는 게 이런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무기력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첫댓글 무기력...에 대한 조금은 부정적이였던 생각을 달리하게 됩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감싸안든다는 것...뭉클합니다
무기력이 그 상황에서 일어나고 싶다는 본능의 발로라는 시선은...
어쩌면.. 그렇게라도 이해해야.. 그 시간들을 버틸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ㅜ
당사자도 상대방도 당장의 어찌할 수 없는....감정상태...사람들마다 무기력의 시간을 가질수는 있지만....그것이 결론의 시간으로 끝나지 않길....반등하는 결말이 되길...^^
무기력의 바닥 끝까지 가보는 경험도 해 보고
다시 부지런히 올라가서 반드시 생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