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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6권
24.5. 사포연(詐怖緣)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일체의 법은 다 허망하고 거짓된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어서 친한 이와 소원한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성내어 꾸짖고 가해하면서 나아가 목숨까지 빼앗는 등, 이런 중한 죄를 짓기 때문에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이와 같다.
산 속에 어떤 사찰[佛圖]이 있고 그 가운데 따로 방 하나가 있으며, 그 방 안에는 귀신이 있는데, 그 귀신이 와서 자주 도인들을 괴롭혔다. 그러므로 모든 도인들이 다 방을 팽개치고 가버렸다.
그런데 어떤 한 객승(客僧)이 왔다.
유나(維那)는 그를 그곳 빈 방에 살게 하고는 그에게 말하였다.
‘이 방 안에는 귀신이 있어서 사람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계실 만하시면 머무십시오.’
객승은 스스로 지계(持戒)의 힘과 다문(多聞)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다.
‘보잘것없는 귀신 따위가 어찌하겠는가? 내가 꼭 항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그 방 안에 들어가 머물렀다. 해가 넘어가고 저물 무렵에
또 다른 한 스님이 와서 절에 묵어가겠다고 청하였다.
유나 스님은 또 이 방에 머물라 하고 그에게도 또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 사람도 역시 이렇게 말하였다.
‘보잘것없는 귀신이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내가 꼭 항복받으리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귀신을 기다렸다.
그런데 나중에 온 사람이 깜깜한 밤에 들어가려고 문을 두드렸으나 먼저 들어간 사람은 그를 귀신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뒤에 온 사람은 더욱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두드렸고 안에 있는 도인은 온 힘을 다하여 버텼다.
그러나 밖에 있던 사람이 이겨 문을 밀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은 밖에 있던 사람을 때렸고 밖에 있던 사람도 역시 그를 때렸다.
아침에 이르러 서로를 보게 되니 이들은 바로 옛날에 함께 공부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 각기 서로 부끄러워하면서 사과하고, 모든 사람들도 구름처럼 모여들어 웃으면서 괴이하게 여겼다.
중생들도 이와 같느니라.
오음(五陰)은 다 비어 있는 것으로서 나[我]라는 것도 없고 남이라는 것도 없는데, 부질없이 모습[相]에 집착하여 서로 싸우고 함부로 독해(毒害)를 입히지만 한 번 껍질을 헤치고 땅에 들어가면 다만 뼈와 살만 있을 뿐이요, 나라는 것도 없고 남이라는 것도 없다.
그런 까닭에 보살이 중생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본래 공한 그런 가운데에서 다투지 말라. 사람의 몸뚱이 받기조차 어려운데 하물며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겠느냐?’
24.6. 사축연(詐畜緣)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어떤 부인에게 금과 은이 풍부하게 있었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정을 통하고는 그 금과 은을 다 싸가지고 그 남자와 어디론가 달아났다.
물살이 거센 어느 물가에 이르러 남자가 말하였다.
‘당신은 재물을 챙겨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시오.
내가 먼저 저 강을 건너 가서 살펴보고 꼭 다시 와서 당신을 맞이하겠소.’
그러나 남자는 물을 건너가자마자 곧장 달아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은 혼자서 물 가에 머문 채로 근심하고 괴로워하였으나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때 어떤 들여우가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다가 다시 물고기를 보고는 기러기를 버리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고기는 이미 잡히지 않았고 또한 본래 잡았던 기러기마저 놓쳐버렸다.
이 부인은 여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찌 그리도 어리석으냐? 두 가지를 다 탐내어 잡으려고 하다가 하나마저 잃고 말았구나.’
여우가 말하였다.
‘내가 어리석은 것은 오히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미련함은 나보다 더 심하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 어느 때에 때 아닌 장마비가 이레 동안 그치지 않고 내려서 모든 방목(放牧)하는 사람들이 이레 동안 밖에 나가지를 못했다.
그 때 어떤 굶주린 이리가 있었는데 굶주림에 지친 걸음으로 먹이를 찾기 위해 일곱 마을과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찾아 보았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러자 곧 스스로 자책하며 말하였다.
〈내 팔자는 어쩌면 이리도 기박한가. 일곱 마을과 도시를 두루 돌아다녔건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다니. 차라리 산림(山林)으로 돌아가서 재계(齋戒)를 실천하느니만 못하구나.〉
그리고는 스스로 굴 속에 들어가서 주원(呪願)을 말하였다.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편안하게 하여지이다.〉
그리고는 몸을 단속하여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제석(帝釋)이 그 달 재일(齋日)이 되자 이라(伊羅)라는 흰 용을 타고 세간에서 누가 계를 지키고 누가 계를 깨뜨리는가 하고 관찰하다가 그 산 속에 있는 굴에 이르러 이리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쯧쯧, 이리라는 짐승은 참으로 기특하구나.
사람들도 오히려 이런 마음이 없는데 더구나 저 이리 같은 짐승이 이와 같이 하다나.〉
그리고는 곧 시험해서 그 행동이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알아보려고 제석은 곧 자신이 한 마리 양으로 변신하여 그 굴 앞에 머문 채 큰소리로 그 무리를 불렀다.
그러자 이리는 그 양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재계의 복이란 그 과보가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구나.
내가 일곱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었는데 지금 잠시 재계를 지켰다 해서 맛있는 먹이가 저절로 오다니, 공양거리가 이미 이르렀으니 우선 마땅히 먹고 나서 다시 재계를 지키리라.〉
그리고는 곧 굴 속에서 나와 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양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고 갑자기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리도 곧 양을 쫓아갔다.
양은 멈추지 않고 달아나다가 쫓아오는 거리가 이미 멀어지자 양은 개로 변신하여 곧 입을 벌리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도로 이리를 쫓으면서 다급한 소리로 짖어댔다.
이리는 개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개가 급하게 쫓아갔으나 힘이 모자라 이리는 화를 변할 수 있었다.
이리는 다시 굴 속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내가 잡아먹힐 뻔 하였구나.〉
그 때 제석이 곧 이라 앞에서 절름발이 양이 되어 울면서 멈추어 있었다.
그러자 이리가 또 생각하였다.
〈조금 전에 그 개는 내가 너무 배가 고프던 차에 눈이 아른거려 양으로 보인 것인가? 지금 보이는 저것은 진짜 양일까?〉
그러면서 다시 자세히 관찰하였다. 그러다가 귀와 뿔과 꼬리가 있는 것을 보고는
〈저것은 정말로 양이로구나〉 하면서 곧 뛰쳐나갔다.
양은 또 놀라 달아나가 시작했다.
이리가 뒤쫓아 가서 거의 잡으려 할 즈음 그 양은 다시 변신하여 개가 되어서 전처럼 도로 이리를 쫓아왔다.
이리는 또 생각했다.
〈내가 저를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내가 잡아먹힐 뻔 했구나.〉
그 때 천제석(天帝釋)이 곧 이리 앞에서 염소 새끼로 변신해서는 무리를 부르고 어미를 불러댔다.
이리가 곧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네가 살토막이 된다 해도 나는 오히려 나가지 않겠거늘 더구나 염소 새끼가 되어 나를 속이려고 하느냐?〉
그리고는 다시 재(齋)를 지켜 고요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그 때 천제석은 이리의 마음이 다시 재를 생각하는 줄 알면서도 오히려 염소 새끼는 그대로 이리 앞에 머물러 있었다.
이리가 곧 게송을 읊었다.
네가 진정 양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나가지 않으련다.
그런데 더구나 허망한 짓으로
전처럼 나를 두렵고 무섭게 하려 함이겠느냐?
내가 돌이켜 재(齋)를 지키는 것을 보고 나서
너는 다시 와서 시험해 보려고 하는구나.
설사 네가 살토막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오히려 믿을 수가 없거늘
더군다나 염소의 새끼로 변신하여
거짓으로 음매하고 울고 있구나.’
그 때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만약 어떤 출가(出家)한 사람이
계율 지키는 마음 경솔하게 흘려 버리면
그는 이양(利養)을 버리지 못함이
비유하변 마치 저 이리가 재(齋)를 지키는 것 같으리.”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아주 오랜 옛날에 어떤 마납(摩納)이 있었는데, 그는 산에 있는 굴 속 에서 찰리서(刹利書)를 독송하고 있었다.
여우 한 마리가 그의 곁에서 멈추어 있으면서 전념하여 책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 책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있으니, 모든 짐승의 왕이 될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일어나 돌아다니다가 바짝 마른 들여우를 만나 곧 그것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대답하였다.
〈나는 곧 짐승들의 왕이다. 그런데도 너는 나에게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이려는 것이다.〉
그 여우가 말하였다.
〈부디 바라노니 나를 죽이지 마시오. 내 마땅히 당신께 순종하겠소.〉
그리하여 이 두 가지 여우는 곧바로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어떤 여우 한 마리를 만났는데 또 그 여우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서로 묻고 대답한 것은 위와 같았고, 그 여우도 역시 순종하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점점 계속하여 모든 여우들을 다 항복받고 곧 많은 여우를 거느리고 모든 코끼리까지도 다 항복받았으며, 또 많은 코끼리까지 거느리고서 일체의 호랑이도 항복받고, 또 모든 호랑이까지 거느리고 일체의 사자들까지도 항복받아 마침내는 권모술수로 여우가 왕이 되었다.
이미 그렇게 왕이 된 뒤에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짐승의 왕이 되었으니 마땅히 짐승을 아내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는 흰 코끼리를 타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짐승떼를 거느리고 가서 가이성(迦헛城)을 수천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곧 사람을 보내 물었다.
〈너희 모든 짐승들이여,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짓을 하느냐?〉
여우가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짐승들의 왕이다. 마땅히 네 딸을 아내로 삼아야 하겠다. 네 딸을 내게 준다면 좋겠지만 만약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마땅히 너희 나라를 멸망시키겠다.〉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이와 같이 아뢰자 왕은 곧 모든 신하들을 모아 놓고 함께 의논하였다.
한 신하만 빼고 모두 다 말하였다.
〈주어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이 나라가 믿는 것은 오직 코끼리와 말뿐인데, 우리에게는 코끼리와 말은 있지만 저들에게는 사자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와 말은 사자 소리만 들어도 두려워서 땅에 엎드리니 싸워 보나마나 틀림없이 저 짐승들에게 전멸되고 말 것입니다. 어찌 딸 하나만을 아끼시어 한 나라를 잃으려고 하십니까?’
그 때 총명하고 슬기롭던 한 대신이 원대한 계략을 가지고 왕에게 아뢰었다.
〈신이 고금(古今)을 관찰해 보건대 일찍이 사람들의 왕으로서 자기 딸을 하천한 짐승에게 주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신이 비록 암둔하고 우매하오나 반드시 이 여우를 죽여서 모든 짐승들로 하여금 각각 흩어져 도망가게 하겠습니다.〉
왕은 곧 물었다.
〈장차 어떤 계책을 쓰려고 하느냐?〉
대신이 대답하였다.
〈대왕께서는 다만 싸울 날만을 결정하시고 먼저 마땅히 저쪽에 한 가지 조건을 찾아내도록 하십시오. 그 조건은 저 사자로 하여금 먼저 싸우고 나중에 울게 하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저들은 우리더러 겁을 낸다고 말하면서 틀림없이 사자들로 하여금 먼저 울게 하고 나중에 싸우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왕께서는 싸울 날에 이르러 꼭 명령을 내리시어 성 안의 사람들과 축생들에게 귀를 막게 하십시오.〉
왕은 그 말을 수용하여 사신을 보내 싸울 날을 결정하고 아울러 그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고는 싸울 날이 되자 사신을 보내 다시 한 번 확인한 뒤에 군대를 출동시켰다.
군대들의 칼날이 서로 부딪치게 되자 여우는 과연 사자를 시켜 먼저 울부짖게 했다.
여우는 그 소리를 듣고 심장이 일곱 갈래로 찢어져 코끼리 등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 때 모든 짐승들도 한꺼번에 흩어져 달아났다.’
부처님께서 이 일 때문에 게송을 설하셨다.
‘여우는 교만이 왕성하여
그 권속(眷屬 : 아내)을 구하기 위해
저 가이성에 이르러서는
바로 짐승의 왕이라고 자처하였다.
사람들의 교만도 이와 같아서
여러 무리들을 법으로 통솔하고는
마갈(摩竭)이란 나라에 있으면서
스스로 법주(法主)라고 말한다.
그 때 가이왕은 바로 나의 전신이었고 총명하고 슬기로웠던 대신은 바로 지금의 사리불(舍利弗)이며, 그 여우왕은 바로 지금의 조달(調達)이니라.’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조달은 지난 과거 세상에도 거짓말로 권속들을 얻었더니만 지금도 또한 이와 같이 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착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기는 쉬우나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과 모이기는 어렵다.
악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기 쉬우나
착한 사람과 함께 모이기는 어렵느니라.”
또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기억해 보니 옛날에 어떤 강이 있었는데, 그 강의 이름은 파리야다(波利耶多)라고 하였다.
[수(隋)나라로는 피절(彼節)이라는 뜻임.]
그 때 그 강 언덕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화만(華鬘)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그 사람에게는 그 강의 측면에 동산 하나가 있었다.
그 때 그 강 안에는 거북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거북은 강물 속에서 나와 꽃동산에 이르러 먹이를 찾아다니느라 곳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 꽃을 모조리 밟아 못쓰게 만들었다.
그 때 그 동산 주인은 거북이 꽃을 짓밟아 놓은 것을 보고는 곧 거북을 붙잡아 상자 속에 넣어 장차 잡아 먹으려고 하였다.
그 거북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환란을 벗어날 수 있을까? 무슨 방편으로 이 동산 주인을 속일까?〉
그리고는 곧 동산 주인을 향해 게송을 설하였다.
나는 물에서 나와 내 몸에는 진흙이 많으나
너는 우선 꽃은 그대로 두고 내 몸부터 씻어라.
내 몸엔 이미 진흙이 묻어 아주 더럽기 때문에
너의 그 상자와 꽃을 더럽힐까 염려스럽다.
그 때 그 동산 주인은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착하기도 하다. 이 거북이여, 착한 말로 나를 가르쳤다.
이제 부득불 그 말을 따라 나는 그 거북의 몸부터 씻어야겠다. 그렇게 하여 내 꽃과 상자를 더럽히지 말아야겠다.〉
이와 같이 생각한 다음에 손으로 거북을 잡아 물로 가지고 가서 거북의 몸뚱이를 씻으려고 했다.
그 때 그 사람은 곧 거북을 꺼내 돌 위에 올려 놓고 물을 떠서 씻으려고 할 적에 그 거북 전신의 힘을 다해 갑자기 몸을 던져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때 화만을 만드는 기술자가 거북이 물 속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기특하구나, 이 거북이가 이와 같이 나를 속일 수가 있다니. 그러면 나도 지금 다시 너를 속여 물 속에서 나오게 하리라.〉
그 때 화만을 만드는 기술자는 저 거북을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현명한 거북아, 내 생각을 말할 터이니 잘 들어라.
너에게는 지금 새친구와 옛친구가 매우 많다고 하니
내가 좋은 화만(華鬘)을 만들어 네 목에 걸어줄테니
너는 집으로 돌아가 마음껏 즐기도록 하라.
그 때 저 거북은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이 화만을 만드는 기술자는 거짓말로 나를 속이고 있다.
저 사람의 어머니는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 있고 그 부인은 꽃을 꺾어다가 화만을 만들어서 겨우 그것을 팔아 살아가고 있다.
지금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정녕코 나를 속여 나를 잡아 먹기 위해서 물 밖으로 나오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그 때 저 거북이는 화만 만드는 기술자에게 게송을 읊어주었다.
너의 집에선 술을 만들어 놓고 친한 사람 모으려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두루 만들고 있구나.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라.
거북 고기를 삶으면 기름이 머리를 끈적거리게 한다고.’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알고 싶으냐? 그 때 물 속으로 들어간 거북이는 바로 지금의 나였고, 화만을 만들던 기술자는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었다.
그가 그 때 나를 속이고 유혹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지금도 또 나를 속이려고 하지만 어찌 그렇게 될 수가 있겠느냐?’
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옛날에 바다에 큰 규룡(虬龍)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규룡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녀가 임신하자 갑자기 원숭이의 심장이 먹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이런 인연 때문에 그 몸이 여위어 가면서 누렇게 되었고 완연하게 몸을 벌벌 떨면서 불안해 하였다.
그 때 저 수컷 규룡은 아내의 몸이 이와 같이 여위고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아내에게 물었다.
〈현명하고 착하고 어진이여, 당신은 어디가 아프며, 무슨 음식이 먹고 싶소?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한 번도 내게 음식을 청하는 일을 보지 못했소. 왜 그러시오?〉
그러나 그 암컷 규룡은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남편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나에게 아무 말이 없소?〉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내 마음으로 원하는 바를 해줄 수만 있다면 내가 마땅히 말하겠지만, 만약 그렇게 해 줄 수 없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쓸데없이 말하겠습니까?〉
남편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저 말만 하시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마땅히 무슨 방편을 써서라도 구해서 당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겠소.〉
아내가 그제서야 말하였다.
〈저는 지금 원숭이의 심장이 먹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구해올 수 있겠습니까?〉
남편 규룡이 대답하였다.
〈당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말로 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나는 큰 바다에 살고 있고 원숭이는 산의 숲 속에 살고 있으니,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말하였다.
〈구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요. 만약 이 물건을 구할 수 없다면 이 태아는 틀림없이 떨어질 것이고, 이 내 몸도 오래지 않아 죽게 될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그러자 그 남편이 다시 아내에게 말하였다.
〈현명하고 착하고 어진 사람이여, 당신은 우선 용서하고 참으시오.
내가 지금 그것을 구하러 가겠소. 만약 이 일이 성사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이요, 또 그것을 구해다가 당신에게 준다면 우리는 모두 경하하고 통쾌한 일이 될 것이오.〉
그 때 저 규룡은 곧 바다에서 나와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니, 그 나무의 이름은 우담발라(優曇鉢羅)였다.[수나라 말로는 수원(水願)이라는 뜻] 그 때 그 나무 위에 큰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가지 끝에서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있었다.
이 때 이 규룡은 마침 그 원숭이가 나무 위에 앉아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점점 나무 밑으로 다가가서 곧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였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말로 원숭이에게 안부를 물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바사사타(婆私師吒)여, 그 나무 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심히 고생스럽고 수고로운 일은 없으며 고뇌(苦惱)를 받는 일은 없습니까?
먹을 것을 구하면 쉽게 얻기나 하는지 피곤하지는 않는지요?〉
원숭이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인자(仁者)여, 나는 지금 크게 고뇌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규룡은 다시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곳에 있으면서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원숭이가 대답하였다.
〈나는 우담발라 나무 위에서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삽니다.〉
그 때 규룡이 다시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당신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 기쁨이 온몸에 가득 차서 스스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나는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하필 왜 여기에만 머물러 있습니까?
게다가 이 나무에는 열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어서 나무에서 내려와서 나를 따라가십시다. 내가 꼭 당신을 데리고 저 바다를 건네주겠습니다.
저쪽 언덕에는 유별나게 큰 숲이 있는데 갖가지 나무에 온갖 꽃과 열매들이 풍요(豐饒)롭게 많습니다.〉
원숭이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곳엘 갈 수 있겠습니까?
바닷물은 깊고 넓어 건너기 매우 어려운데 어떻게 감히 건너겠습니까?〉
그러자 규룡이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선을 등에 업고 저 언덕까지 건네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곧 나무에서 내려와 내 등에 타십시오.〉
그 때 원숭이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협소하고 하열한 데다가 어리석기까지 하여 마음 속에 기쁨이 생겼다. 그래서 곧 나무에서 내려와 규룡의 등에 업혀 규룡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 규룡은 내심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대단하고도 대단하구나. 내 소원이 이미 이루어졌구나.〉
그리고는 곧 그 원숭이를 데리고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려고 원숭이와 함께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원숭이가 규룡에게 물었다.
〈좋은 친구여, 무엇 때문에 갑자기 물 속으로 들어갑니까?〉
규룡이 곧 대답하였다.
〈내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그 아내가 꼭 네 심장을 먹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내가 너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 때 원숭이는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아아, 슬픈 일이로구나. 나는 지금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으니, 스스로 죽음[磨滅]을 취한 것이다.
무슨 방편을 써서라도 이 급박한 위기를 벗어나 몸과 목숨을 잃지 않아야겠다.〉
또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내가 이 규룡을 꼭 속여야 하겠다.〉
이와 같이 생각한 뒤에 규룡에게 말하였다.
〈어기신 분이시며 좋은 친구여, 내가 심장을 우담발라나무에 걸어둔 채 깜빡 잊고 그대로 따라왔습니다. 당신은 그 때 왜 진작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진작 그런 줄 알았더라면 그 때 가지고 따라왔을 터인데……. 좋은 친구여, 지금 되돌아 가도록 나를 놓아 주십시오. 내가 가서 심장을 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 때 그 규룡은 원숭이의 말을 듣고 난 뒤에 둘이서 함께 다시 바다에서 나왔다. 원숭이는 규룡이 물에서 나와 언덕에 오른 것을 보고 그 때 원숭이는 힘을 다해 떨쳐 일어나 재빨리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하여 규룡의 등을 박차고 뛰어 내려 저 우담발라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규룡은 나무 밑에서 한동안 머물며 기다리다가 원숭이가 우물쭈물 대면서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친밀하고 좋은 친구여, 그대는 속히 나무에서 내려오시오. 그대는 나를 따라서 함께 우리 집으로 갑시다.〉
원숭이는 잠자코 머문 채 나무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규룡은 원숭이가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게송을 읊었다.
좋은 친구 원숭이여, 이미 한 번 마음을 먹었으면
그 나무 위에서 속히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내가 꼭 당신을 저 건너 숲 속으로 데려다 주겠습니다.
저 곳에는 갖가지 과일이 넉넉하게 있답니다.
그 때 원숭이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규룡은 참으로 지혜가 없구나.〉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었다.
규룡아, 너의 계교(計校)가 아무리 능숙하고 관대하다 해도
네 마음의 지혜와 생각은 너무도 협소하고 비열하구나.
너는 다만 자세히 살펴보고 스스로 헤아려 보아라.
일체 중생인들 어느 누가 생각이 없겠느냐?
저 숲 속에 아무리 나무 열매가 넉넉하고
또 암라(庵羅) 등 온갖 미묘한 과일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내 마음은 진실로 저곳에 있지 않나니
차라리 여기에서 우담바라 열매나 먹으면서 살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 큰 원숭이는 바로 지금의 나이고 저 규룡은 바로 지금의 마왕 파순이다.
파순은 그 때도 오히려 날 속이고 유혹하려 하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세간의 오욕(五欲)의 일을 가지고 와서 나를 유혹하고 있지만 어찌 나를 이 자리에서 움직이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까마귀와 올빼미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였다.
까마귀는 낮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빼미가 낮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올빼미 무리를 밟다 죽였으므로 그 살을 여러 올빼미들이 나누어 먹게 하였다.
올빼미는 밤을 엿보았다. 밤이 되면 까마귀의 눈이 어둡다는 것을 알고 다시 까마귀 무리들을 쪼아 그 배를 갈라서 역시 나누어 먹었다.
이렇게 낮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또 밤을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이 끝이 없었다.
그러다 어떤 지혜로운 까마귀 한 마리가 여러 까마귀들에게 말하였다.
‘이미 원수가 되어 미워하면서 서로 풀 수가 없다면 결국은 서로 죽이고 잡아 먹어 양쪽이 다 온전하지 못할 형편이니, 마땅히 방편을 써서 저 올빼미를 다 죽여 없애자.
그런 뒤에야 우리들이 편히 살 수 있을 것이요, 만약 그렇지 못하면 결국엔 우리가 다 패망할 것이다.’
여러 까마귀들이 말하였다.
‘마땅히 어떤 방편을 써야만 저 원수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까?’
지혜 있는 까마귀가 대답하였다.
‘너희들 모든 까마귀들은 나의 털을 다 뽑고 내 머리를 쪼아 깨지게 하라. 그렇게 하면 나는 마땅히 계책을 써서 반드시 저들을 전멸시키겠다.’
그들은 곧 그 까마귀의 말대로 하였다.
지혜로운 까마귀는 형용(形容)이 초췌한 모습으로 올빼미의 굴 밖에 가서 슬프게 울었다.
올빼미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나와 곧 말하였다.
‘지금 너는 무엇 때문에 부상을 당한 채 우리가 살고 있는 곳까지 왔느냐?
까마귀가 올빼미에게 말하였다.
‘모든 까마귀들은 다 나의 원수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원수들을 피해 이렇게 와서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 때 올빼미는 그를 가없고 불쌍하게 여겨 마침내 거둬들여 길러주고 늘 먹다 남은 고기를 주었다. 이 까마귀는 날이 갈수록 털이 다시 돋아나 옛날처럼 회복되었다.
까마귀는 세밀한 계획을 세워 마른 나무 가지와 풀을 물고 와서 올빼미 굴 속에 쌓아두면서 흡사 은혜를 갚으려는 것처럼 하였다.
올빼미가 까마귀에게 말하였다.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하느냐?’
까마귀가 대답하였다.
‘이 굴 속은 순전히 차디찬 돌뿐입니다. 그래서 이 마른 풀과 나무로써 바람과 추위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올빼미들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겨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에 까마귀는 곧 굴을 지키는 일을 자청하여 온갖 심부름을 다 하면서 길러 주고 보살펴준 은혜를 갚는 체 하였다.
어느 때에 폭설과 찬 바람이 몰아쳐 극성을 부리자 온갖 올빼미들이 경솔하게 굴 속으로 모여들었다.
까마귀는 방편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사람이 사용하는 불씨를 물고 와서 올빼미 굴을 다 태워버렸다. 그래서 모든 올빼미들은 한꺼번에 굴 속에서 다 타 죽었다.
그 때 모든 하늘들이 게송을 읊었다.
묵은 혐오가 있는 곳의 말이라면 모두 다
마땅히 애당초 믿음을 내지 말아라.
까마귀가 거짓으로 착함을 가탁하여
저 올빼미의 몸을 태워 죽인 것과 같다.”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보살은 공작(孔雀)의 왕이 되어 오백 아내를 데리고 살다가 그 옛 배필을 다 버리고 다시 청작(靑雀)을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
그 청작은 오직 감로(甘露)와 달콤한 과실만을 먹었으므로 공작은 아내를 위해 날마다 그것을 구하러 다녔다.
그 때 국왕의 부인에겐 질병이 있었는데 꿈 속에서 공작을 보고서 말하였다.
‘저 공작의 고기라면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난 뒤에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사냥꾼들을 시켜 속히 그 새를 잡아오라고 했다.
부인이 말하였다.
‘누구든지 그 새를 잡아오는 이가 있으면 그에게 내 막내딸을 주고 또 상금으로 금 천 근을 하사하겠다.’
그 나라의 모든 사냥꾼들은 사방으로 공작을 찾아 다니다가 공작왕이 청작 한 마리를 따라다니며 항상 먹이가 있는 곳에 있는 것을 보고 곧 밀초(蜜麨)를 여러 곳의 나무마다 발라두었다.
공작은 곧 그것을 가져다가 그 아내에게 먹이곤 했다.
사냥꾼은 밀초를 자신의 몸에 바르고 걸터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공작이 밀초를 가지러 오면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그것을 잡게 하였다.
그러자 공작이 말하였다.
‘당신이 그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틀림없이 이익을 바라서일 것이니, 내가 당신에게 금산(金山)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 금산은 보물이 무진장 있을 것이니 당신은 내 목숨을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냥꾼이 또 말하였다.
‘대왕은 나에게 금 천 근에다 막내딸까지 아내로 주겠다고 했다. 어떻게 네 말을 믿겠는가?
기필코 널 잡아 대왕에게 바칠 것이다.’
공작이 말하였다.
‘대왕의 인자하심은 온 천하를 두루 적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부디 미미한 말이지만 받아들이시어 물이나 조금 얻어 먹게 해 주시오.
그러면 제가 자주(慈呪)로써 약을 만들어 대왕님 부인의 병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효력이 없으면 그 때 죄를 받아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그의 말을 따랐다. 부인은 그 약을 먹고 모든 병이 다 낳아 화색(華色)이 돌았고 궁 안의 사람들 모두가 다 그러했다.
온 나라 백성들은 왕이 큰 자비로 공작의 목숨을 살려준 데 대하여 모두 찬탄하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 백성들도 수명(壽命)이 늘어나게 되었다.
공작이 말하였다.
‘바라건대 저 큰 호수에 몸을 던지게 해주십시오. 그 물에다 주술을 부리면 천하의 백성들의 숱한 질병이 다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제 말의 의심이 가거든 몽둥이로 제 발을 때리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허락하겠다,
공작은 자신이 한 말처럼 하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시고 모두 힘을 얻어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눈먼 봉사는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벙어리는 말을 하게 되었고 앉은뱅이는 일어설 수 있게 되는 등 모든 병이 다 그렇게 나았다.
부인의 질병도 다 나았고 온 나라 백성들도 모두 병이 없어지자, 모두 공작을 해칠 마음이 없게 되었다.
공작은 마음 속으로 이것을 다 알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에게 살려 주신 은혜를 입었고 저도 온 나라 백생들의 목숨을 건져주어 그 은혜에 보답하였으니 그 과보가 다 끝났습니다. 바라건대 이만 물러날까 하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라.’
공작은 곧 날아서 나무에 올라가 거듭 말하였다.
‘천하에는 세 가지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무엇을 세 가지 어리석음이라고 말하는가?’
공작이 대답하였다.
‘첫째는 제가 어리석은 것이요, 둘째는 사냥꾼이 어리석은 것이며, 셋째는 대왕의 어리석은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바라노니 그것을 풀이해 다오.’
공작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중계(重戒)에 여색(女色)을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을 태우 고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다 여색을 탐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백 명의 아내에게 공양을 받다가 그들을 버리고서 다시 청작을 탐하여 음식을 구해다가 그에게 공급하느라고 종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문에 속임의 그물에 걸려 하마터면 몸과 목숨이 거의 죽을 뻔했으니, 이것이 저의 어리석음입니다.
다음으로 사냥꾼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지성스럽게 말했는데도 그는 온 산이 다 금덩어리인 것을 버리고 한없는 보배를 버리면서까지 부인의 삿되고 거짓됨을 믿고 막내딸을 아내로 맞을 것을 바랐으니,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어리석음을 보면 모두가 이런 유(類)입니다.
부처님의 참되고 성실한 계율을 손상하고 귀신과 도깨비가 속이는 것을 믿으며, 술을 즐기고 음란하고 혼란스러우면 혹은 파문(破門)의 화를 받기도 하고 혹은 죽어서 태산(太山)지옥에 들어가 무수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다시 사람이 되기를 생각하지만 비유하면 마치 날개 없는 새가 날아서 하늘 높이 오르려고 하는 것과 같나니,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음란한 부인의 요망스런 유혹은 저 이매(魑魅)와 비유되어 나라를 망치고 몸을 위태롭게 하는 이유가 아닌 것이 없건만 그래도 어리석은 사내들은 그것을 숭상하니 만 마디 말에 하나도 진실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냥꾼은 그 말을 믿었으니, 이것이 사냥꾼의 어리석음입니다.
대왕님께서는 천의(天醫)를 얻어 온 나라의 질병을 다 없애고 모든 독을 다 소멸시켜 안색이 꽃과 같아졌으므로 어른이나 아이들이 다 기뻐하고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제서야 저를 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대왕의 어리석음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공작왕은 그 뒤로 팔방(八方)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곧 신기한 약으로써 자비한 마음을 가지고 보시하여 중생들의 병을 고쳐주었느니라.
그 때의 공작왕은 바로 내 몸이고, 국왕은 바로 지금의 사리불(舍利弗)이며, 사냥꾼은 바로 조달(調達)이요, 부인은 바로 조달의 아내이니라.
보살은 자비와 지혜도무극(智慧度無極 : 智慧波羅蜜)으로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하느니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 어느 때에 연화지(蓮花池)가 있었는데, 그 연못에는 많은 물새 들이 살고 있었다. 그 때 어떤 황새가 못 속에서 느릿느릿 걸으며 한 쪽 다리를 들고 있었다.
여러 새들이 다 말하였다.
〈이 새는 잘 걸어서 위의(威儀)가 있고 평온하고 질서가 있어서 물의 성질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 때 흰 거위가 있다가 게송을 읊었다.
다리를 들고 천천히 걸으며
그 울음 소리 지극히 부드러워서
세상을 다 속이지만
아무도 아첨하고 속이는 것을 알지 못한다.
황새가 말하였다.
〈너는 왜 이런 말을 했느냐? 이리 와서 우리 함께 친한 친구가 되자꾸나.〉
흰 거위가 대답하였다.
〈나는 너의 아첨과 간사함을 잘 알고 있으니, 끝내 너와는 친한 친구가 되지 않겠다.〉
그 때 거위왕은 곧 지금의 내 몸이요, 그 때 황새는 바로 지금의 제바달다(提婆達多)이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에 설산(雪山) 곁에 산 닭왕이 있었다. 그는 많은 닭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닭들이 모두 그를 따라 다녔다. 그 닭은 벼슬이 매우 빨갛고 몸뚱이는 매우 희었다.
그가 여러 닭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성읍(城邑)이나 마을[聚落]을 멀리 떠나도록 하여 사람들에게 잡아먹히지 말라. 우리들에게는 많은 적이 있어 미워하고 있으니, 부디 스스로 삼가하여 그 몸을 보호해야 한다.〉
그 때 어느 마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저기에 닭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 그곳으로 가서 나무 밑에서 천천히 거닐면서 눈을 아래로 깔고 닭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될 터이니, 당신은 내 남편이 되어 주십시오. 당신의 몸은 참으로 단정하여 사랑스럽습니다. 머리 위의 벼슬은 새빨갛고 몸뚱이는 모두 새하얗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받들고 섬기면서 편안하고 쾌락(快樂)하게 지냅시다.〉
닭이 곧 게송을 읊었다.
눈이 노란 고양이야,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미물이
일이 닥치면 해칠 마음으로 잡아먹으려고 하는구나.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아내를 얻어가지고
수명을 보전하고 편안하게 살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 때 그 닭의 왕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옛날의 고양이는 바로 지금의 제바달다이다.
그는 옛날에도 나를 유혹하고 속이려고 하더니 오늘날에도 또 나를 유혹하고 속여서 내 제자들을 흩어지게 하려고 하는구나.”
게송을 읊는다.
간사한 정(情)으로 어리석게 속여
남으로 하여금 믿고 의심하지 않게 한다.
거짓말로 의지하고 붙으려는 것처럼 하고
거짓으로 서로 의지하여 살자고 하네.
겉으로는 친한 척하나 속으로는 손해를 끼치려 하고
밤낮으로 침략하고 달라지나니
오랫동안 그와 함께 살아보아야
비로소 점점 쇠퇴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