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특강 1 강 아산 UBF 메시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19-6:34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실제 삶이 어떻게 사용되어지는지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며 사는지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활에 무엇이 채워지는지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에서 우리의 생활에 염려와 근심을 채우지 말고 믿음과 평안을 채우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역사에 우리 삶이 사용되도록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삶과 생활과 경험을 해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1.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19-24)
19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돈이 생기는 대로 바로바로 써버리지 왜 돈을 쌓아둡니까? 서민들은 돈이 생기면 꼭 필요한 것만 쓰고 열심히 저축합니다.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돈을 모은다’고 합니다. 모험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돈을 번다’고 합니다. 당시 은행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벌어들인 돈, 모은 돈을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자 하였습니다. 많이 행하였던 방법이 밤에 몰래 땅에 묻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은행에 돈을 예치합니다. 은행이자가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면 이자 더 주는 저축은행에 예치합니다. 주식에 투자하여 두기도하고, 해외 주식에도 투자합니다. 골드바를 사두기도 하며, 부동산에 투자하며, 얼마 전에는 코인투자가 젊은 사람들에게 열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입니다. 좀은 모직물에 알을 낳는 작은 곤충으로써 옷을 갉아 먹어 못쓰게 합니다. 동록은 금속을 부식시키거나 산화시킵니다. 밤에 은밀히 재물을 묻으러 갈 때, 조용히 뒤따라가서 묻는 것을 봐 두었다가, 남의 재물을 탈취해 가는 도적도 많았습니다.
이를 볼 때 결과적으로 사람이 자기가 벌어들인 돈, 모아놓은 돈을 자기가 다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벌어 쌓아놓고 모아서 쌓아두기 잘하지만, 그것을 자기를 위하여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혼자 살다가 돌아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유품 함부로 버리거나 태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들이 쓰던 베개속에 지폐가 수북하게 넣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장판 아래에 돈을 넣어두었습니다. 어떤 분은 벽지를 뜯어보았더니 거기에서 지폐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이런 쪽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이 1천억 부자가 놀러가지도 않고 가족들과 맛있는 것 먹지도 않고 모으기만 했다가 모든 가족들, 후손들과 함께 비행기사고로 죽은 일입니다.
사람은 쌓아두고 모아둔 재산을 자기가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거기는 좀과 동록이 행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최후의 좀과 동록, 가장 강한 도적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찾아와 내가 쌓아 둔 보물을 나에게서 잃어지게 만듭니다. 죽음은 땅에 쌓은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내게서 빼앗아 갑니다. 죽음은 내가 쌓아둔 것이 허망하게 다른 사람의 것이 되게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 그 보물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나의 복락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21-24절에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할 필요성을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보물을 땅에 쌓아둘 때, 분명한 현상이 있습니다. 분별력을 상실합니다. 보물을 쌓아 둘 때 평안하여야 하고 평안 속에서 분별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의 특징이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어두워지고 빛이 그 마음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재물은 강한 힘이 있어서 재물에게 마음을 두는 사람의 지혜가 사라지게 하고 분별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재물을 땅에 쌓아두려고 애쓰는 사람은 자아를 잃어버립니다. 땅의 보물에 마음을 뺏긴 사람은 영적 장님이 됩니다. 이 세상에 소중한 것이 돈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진정한 하나님의 복과 참 소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캄캄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진짜 불행이 닥쳐오는 것을 예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왜 고독하게 되었는지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땅에 보물을 쌓고자 하는 사람이 정말 명심해야 할 원칙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땅에 보물을 쌓을 때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심각한 상황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으며 살 때 하나님을 뒤로 미루게 되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나가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장이 하나이듯, 마음도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요, 행복의 길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모으고자 힘썼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려고 돈을 모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그러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노후를 대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일을 하며 마음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돈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입니다. 돈을 모으는 일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지 않고 돈 벌고 돈 모으는 일에 눈이 어두워졌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생활의 필요를 위하여 돈을 장만하려다가 오히려 돈에 마음이 빼앗기고 돈 모으는 일에 눈이 어두워져 자신과 하나님을 망각하기에 이르렀다면 이미 비극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을 피하고자 한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써야 할 때에 기꺼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2. 염려하지 말라 (25-34)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4절까지의 말씀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문제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25절부터의 말씀은 경제활동에 힘쓰지 못하고 예수님 따르는 일에 힘쓰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봅니다. 오늘날 벌어들이는 것이 있고 모아놓을 수 있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말씀이 24절 말씀이고 아직 장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쌓아두거나 모아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25절 부터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24절 말씀까지가 경제활동을 하는 졸업생들 학사회가 주로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라면 25절부터는 장래에 대하여 불안과 걱정이 많은 학생회에 주시는 말씀이 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오늘날 학생들이 직장에 들어갈까? 연봉은 얼마나 될까? 해고되지 않고 오래 근무할 수 있을까? 하는 이슈에 해당합니다. 고대사회에서나 현대사회에서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며 이런 것들이 없어서 생존이 어려워질 것을 염려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처음에는 생존에 대한 염려인데, 소유에 대한 염려로 확대됩니다. 그리하여 소유에 대한 염려를 생존에 관한 염려라며 정당화하고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굳어집니다. 가져야 하는 것은 점점 더 많아져서 염려의 내용과 염려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커집니다.
이렇게 되어 염려가 견고하게 자리를 잡으면 여러 증상이 나타납니다. 표정이 어둡습니다. 소심해 집니다. 생각이 좁아집니다. 도전정신을 잃어버립니다. 나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급해 집니다. 째째해 집니다. 베푸는 것이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생략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 위하여 드리는 것들을 대폭 줄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 인생이 해야 할 일이라고 성경에 기록하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다. 염려가 손발을 묶어버렸습니다. 염려가 마음을 오그라지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상실되고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 없으며, 이웃을 위한 희생이나 양보가 없으며, 선하고 넉넉하였던 여유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것을 가장 아깝다 여기게 되며 이웃에게 인색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를 멈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대로 염려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염려를 멈추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늘 아버지(heavenly Father)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새들은 열심히 공중을 날며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먹이를 먹습니다. 자연세계의 새가 굶지 않고 생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먹이와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고 계속 제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8,29)" 들에 피는 백합화는 깨끗한 아름다움을 대표합니다. 깨끗하고 순결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 신비로운 빛깔을 띤 백합화는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입은 것입니까?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백합화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어떤 디자인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전성기였던 솔로몬시대의 영광도 초라하게 보일 뿐입니다. 보통의 백합과 달리 이스라엘 백합은 빨리 피고 빨리 시들어 버리는 품종이라 하루살이 백합이라고 합니다. 금방 피었다가 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시고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얼마나 더 정성으로 입혀주시겠습니까?
염려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의 실제 삶을 별개로 보는 문제, 하나님께서 나를 먹여주시고 입혀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의 근원은 실제적이고 정확하시며 섬세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염려는 유익이 없기 때문에 중단하라고 하십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아무리 염려해도 염려 때문에 좋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단 1초도 수명이 연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질병이 유발할 수 있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염려를 곁에 끼고 기발한 염려들을 만들어내 가면서 염려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30b)"라고 지적하십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염려를 마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31,3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방인이란 심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말하며 구원 얻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은 돈 벌고 먹고 마시고 입고 챙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많이 가졌어도 각박하고 옹색하게 살아갑니다. 그런 삶을 멈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헌신을 가장 중요하게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한다'는 말은 무엇을 찾는데 열중하며, 얻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하나님의 다스리는 나라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겨 예배드리는 것,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나의 시간과 젊음과 나의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리고 쓰는 삶은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모든 불신세상의 사람들이 더 가지고자 애쓰고 자기 것을 꾸리고자 집중하는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예수님께서 명하신 이웃 사랑 중심으로 사는 삶은 특별하며 우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실천하여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과 함께 약속도 주십니다.
33b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과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필요와 환경들이 ‘이 모든 것’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제자들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염려를 중단하고 힘껏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에 빠진 사람은 앞날의 염려, 먼 훗날의 염려까지 미리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의 염려를 앞당겨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대신 믿음을, 고민 대신 헌신을 바로 오늘 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1)보물을 땅에 쌓는 일을 하지 말라 하시고 2)염려 하지 말라고 하시고 3)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살아가는 목적과 목표로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1)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을 하고 2)믿는 일을 하고 3)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살아가는 목적으로 삼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할 위험과 손해를 말씀하셨습니다. 1)벌어놓고 저축한 것을 써보지 못할 것이며 2)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며 3)분별력을 잃어 어리석은 생활과 삶을 살 수 있으며 4)필요 없는 염려 속에서 괴로운 삶을 살 수 있으며 5)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체험하지 못할 위험을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1)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그 보물이 그의 든든하고 영원한 보장이 될 것이라고 하시고 2)마음의 눈이 밝아 분별력, 지혜가 있을 것이며, 3)염려에서 벗어난 평안을 누리고 4)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경험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향과 믿음과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믿음대로 먼저 하나님, 먼저 예수님의 말씀대로 헌신하고 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이웃들에게 유익을 주고 본인은 평안을 누리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장을 얻는 길을 갈 것인가?
모아 놓기만 하고 다 써보지도 못하며 염려하고 근심하느라 소심하고 두려워하면서 살고 분별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담과 짐이 되며, 장래에는 전혀 보장이 없는 삶을 살 것인가?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불확실성 많고 근심 많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한 방향이 되고 믿음의 근거가 되고 실천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 UBF
아산 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