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교재 P191·14-16계율도 익히고 경론도 배웠다 /2018.10.30.화
14-16 계율도 익히고 경론도 배웠다
『노자·도덕경』에 云 “구층지대 기어누토(九層之臺起於累土)
9층의 높은 누각도, 한줌 흙을 쌓아 올리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모든 일은 작은 데에서 비롯하여 큰 데에 이른다는 말이다.
순자(荀子) 曰,“
적토성산 풍우흥언(積土成山 風雨興焉)
적수성연 교룡생언(積水成淵 蛟龍生焉)
적선성덕 이신명자득 성심비언(積善成德 而神明自得 聖心備焉)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善을 쌓고 덕을 이루면, 神明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우리가 학문을 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을 진실하고도 성실하게 해나가면 통찰력이나 성인 수준의 마음을 갖는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부채를 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낚싯대를 들고 물고기를 잡고, 책을 읽어서 성인이 된다. 그러나 손 놓고, 낚싯대 놓고, 책 놓는 순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텅빔”만 남게 된다.“착실한 보폭”이 결여된 경지란 항상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마치 “절도 있는 행동”과 “졸업”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배우지 않고
“혁명”을 꿈꾸는 것과 같다. 착실한 보폭만이 일관성과 지속성을 보장한다.
그 어떤 경지도 일관성과 지속성이 결여된 것은 운이 좋은 것에 불과하다.
어떤 개성도 “착실한 보폭”을 걸은 다음의 것이 아니면 허망하다.
허망하면 설득력이 없고 높은 차원에서 매력을 가질 수가 없다.
“착실한 보폭”이 없는 높은 경지란 없다. 道家哲學을 좀 아는 사람들은 “무위(無爲)”를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
으로 이해하고는 “착실한 보폭”을 하수의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장자』冒頭를 보면, 곤이(鯤鮞)라고 하는 조그만 물고기가 천지(天池)라고 하는 우주의 바다에서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크기로 자라나자. 어느 날 바다가 흔들리는 기운을 타고 하늘로 튀어 올라 붕(鵬)이 되었다.
『장자』에 나오는 대부분의 얘기는 다 이 대붕의 경지다. 그래서 도가 철학에 우호적인 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붕의 모습만 인정하고 따르려 한다.
그러나 반드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대붕은 조그맣던 곤이 엄청난 축적의 과정을 겪은 후, 몇 천리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커지고 나서 된 영물(靈物)이라는 것이다.
매우 두터운 축적의 과정이 영물을 만들었다. 두터운 축적의 공, 즉 적후지공(積厚之功)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붕의 “자유”나 “소요유(逍遙遊)”를 흉내 내는 것은, 다 방종에 가까울 뿐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착실한 보폭”이 중요하다. 행복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좋은 습관이나 근면성을 기르면 선물이나 행운처럼 행복은 찾아온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때 내면을 두텁게 준비하는 과정이 “적토성산”이다. 카리스마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자신이 이 지구라는 별에서 죽기 전에 하고 가야 하는 자신만이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면 탁월한 내면이 갖추어지고 자연스럽게 향기가 우러나오는데, 그것이 카리스마이다.
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소년이노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워라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쇼펜하우어 曰, “하루는 작은 일생이다.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나는 것이 탄생이요, 상쾌한 아침은 짧은 청년기를 맞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저녁, 잠자리에 누울 때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말한다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은 침묵케 한다”
“사람은 음식물로 체력을 발육케 하고, 독서로 정신력을 배양하게 한다.독서한 내용을 모두 잊지 않으려는 생각은 먹은 음식을 모두 체내에 간직하려는 것과 같다”
“책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시간 까지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만 책을 산 것만으로도 그 책의 내용까지 알게 된 것으로 착각한다”
노자 말한다.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곧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곧 삶의 길은 버리는 것이다. 군더더기를 깎고, 덜어내는 것이다.
14-17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자등명 법등명
‣자신을 믿은 순간부터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명확하게 된다.
Goethe (1749-1832, 독일의 작가 철학자, 과학자)
우리들은, 창조주로부터 五感이 아니라, 六感을 하사받고 있다.
第六感은 내면의 성스러운 spirit의 소리이고, 인간을 가일층의 가능성과
보다 풍부한 창조적표현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당신의 일부인 제육감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그만두자.
단지 깊은 곳에서 느끼고. 실제 진짜로 자신에게 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第六感을 믿고 있는가?” 가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있을까?”이다.
“네”라고 自信을 가지고 답할 수 있었을 때,
당신은 直感이 가져오는 모든 선물을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本能으로부터의 지령은 理性의 指令보다도 스무스하고 섬세하고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보다 정확하고 보다 현실에 즉하고 있다.
새로운 발견은 작은 일호흡에 있다.
마이켈·노백(1933~ 미국철학자, 저널리스트 소설가 외교관)
당신의 제육감은 항상 말로 말해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최고의 결과, 최선의 길로 단지 신체를 움직여주는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순수하게 따르자. 신체도 마음도 유연하게.
柔軟하게 있으면 당신에게 있어 최선의 길로 이끄는
spirit의 희미한 인도에도 유연하게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제육감을 믿고 있는가?” 라고 물음을 받으면
주저하는 일 없이 이렇게 대답하자.
“물론, 믿고 있다! 제육감은 영원히 감사의 마음을 바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재능이고 신에게 하사받은 선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말한 것을 믿자.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이니까.
‣듣는 귀가 있으면, 神은 우리들이 아는 말로 응답해준다. 그것이 어떤 말이라도.
마하트마 간디((1869-1948 인도정치가))
‣본능그대로 살아가는 것. 그 결과, 무엇이 일어나는가, 걱정 같은 것은 안 한다.
Barbra Streisand(1942~, 미국가수·영화배우·작곡가·영화감독『추억』등
내면에 있는 성스러운 spirit는, 당신을 지켜주지만, 결코 주제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경고해주지만, 인도해주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인내 강하게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만 신경을 쓰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성스러운 지혜에 이끌려져 있는 데에도,
왜 단순한 인간의 어드바이스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六感을 소중하게 해주십시오.
소중한 보석처럼. 언제나 마음을 열고 신뢰합시다.
결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영향에 의해 소중한 힘을 잃지 않도록.
당신이 진실을 알면 진실은 당신을 자유로이 할 것이다.
직감이라고 하는 것은 “내면의 교사” 라고 하는 의미다.
우리들의 내면의 교사 spirit는, 언제나 우리들을 위하여 작용하고
진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주는가 어떤가의 선택은 우리들 次第이다.
우리들 일인일인이 직감의 인도에 귀를 기울이고 인도된 채 두려워하는 일 없이
따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면에 있는 성스러운 spirit를 가장 신뢰하는 존재로서
따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지배, 두려움, 언제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강박관념에 맞서기 위한 용기 있는 아름다운 행위이다.
‣마음만이 바른 것을 통찰할 수가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트와누·드·산티그쥬배리(프랑스비행사, 작가 강연가)
‣내면의 가이드에 따르면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을 배웠다.
비록 내면의 가이드가 말하는 것이 참으로 이치가 맞지 않아도
놀라게 하는 것이라도.
제널드·쟝보르스키(미국정신의학자 작가 강연가)
‣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直感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다.
죠지·산타야나(1863-1952, 스페인태생의 미국철학자 시인)
‣뛰어난 착상과 직감을 믿자. 通常 뛰어난 착상과 직감은 의식의 바로 아래층에 있다. 사실의 누적에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죠이스·프라쟈즈 박사(미국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