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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86)
2026.10.14
<한국 감리교의 분열>
-감리교회는 18세기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John Wesley)[6]가 이끈 복음주의적 성공회 쇄신 운동이었던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을 따르던 사람들이 성공회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진 개신교의 한 교단이다. 현재 전 세계에 교인 7,500만 명 이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장로회 다음으로 신도수가 많은 개신교 교파다.
-메소디즘은 당시 경직되었던 성공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영국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일으킨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신학적으로는 성공회 특유의 '중도의 길'(Via Media)을 이어받되, 칼뱅의 이중 예정론을 배격하고 선행 은총을 전제로 한 자유 의지와 만인 속죄론을 주장한다.
-칼뱅주의자들은 원죄를 물려받은 인간의 자유 의지가 완전히 타락해 버려서,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이 하나님을 믿게끔 하는 은총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특별히 택하신 사람들에게만 주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택하신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셨다고 본다.
-그러나 감리교회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물론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자유의지가 선을 극구 기피할 정도로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라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선과 사랑을 추구하는 본능이 깃들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셨다고 가르친다.
-이같은 교리상의 차이 때문에 극단적인 칼뱅주의자들은 "감리교회가 이단적인 교리를 가르친다"고 비난하고있다.
-교회 체제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감독제를 택한다. '감리교회'라는 낱말 자체가 '감독이 치리하는 교회'를 뜻한다. 사실 감리교회의 감독은 영어로 bishop이라고 하는데,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와 북유럽 루터교회의 주교도 영어로 bishop이라고 한다. 애당초 bishop은 감독자라는 뜻인 그리스어 episcopus에서 나온 것이므로 bishop을 감독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어원을 살린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장 칼뱅의 이중 예정론을 주된 교리로 내세우는 장로회와 달리, 감리교회는 '선행 은총(The Prevenient Grace)에 의한 선택권의 회복'을 강조한다.
-선행 은총을 전제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유명한 펠라기우스 논쟁에서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이야기했고, 루터교회나 장로교회도 모두 원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이야기한다. 즉 구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인간은 수동적인 존재인 노예 의지론을 내세운다. 이를 가지고 루터와 에라스무스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감리회도 당연히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지가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알 수도 없으며 알려고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알려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계시이며, 계시는 곧 말씀(logos)이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자 인간이 된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귀결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교회는 2천 년 동안 자유 의지에 의한 자발적 구원을 말하는 이들은 이단으로 정죄해 왔다. 만약 세간의 인식대로 감리교회가 은혜가 배제된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한 구원을 말한다면 감리교회는 이단이다.
-하지만 감리교회는 선행 은총을 전제로 한 원죄 이전의 선택권의 회복을 말한다. 선행 은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타락하여서 자유 의지로는 자범죄를 피할 능력이 없으나 죄의 폐해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양심과 죄를 피하기 간절히 원하는 사랑의 마음을 남기셨으니 이것이 선행 은총이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가죽옷을 지어 입힌 은총이며, 악인이라도 똑같이 해와 비를 주시는 은총이며,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통해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은총이다.
-비록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행적인 은총 안에 머물러 있으며, 전적 타락으로 인해 자범죄를 면할 능력은 없어도 선행 은총에 의해 양심에 찔리고 사랑에 어긋나는 자범죄로 인하여 스스로 고통받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말씀이 선포될 때 이미 선행 은총으로 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회개하고 죄의 고통에서 해방될 희망을 품을지 복음을 거부할지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택할 수 있다. 즉 선행 은총은 구원을 주는 은총이 아닌 구원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뿐이다.
-선행 은총으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인식하고 복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칭해진다. 이것이 바로 칭의이며 여기서의 칭의는 루터, 칼뱅이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의롭다고 칭해진 인간은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중생이다.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 과정이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이며, 이것이 완성된 것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죄를 완전히 정복하고 죄의 유혹도 받지 않는 그런 초인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죄와 싸우려 하며 경건에 힘쓰는 모습이 바로 완전이 말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곧 선행 은총, 칭의, 중생, 성화, 완전 이 5단계를 '구원에 이르는 5가지 문'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며, 감리회 교리의 특징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신학적 배경에서 감리교회는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며, 신앙의 실천도 개인적인 영역만이 아닌 사회적인 영역까지도 확장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초창기부터 감리교회는 빈민 구제, 죄수 교화 활동 등을 활발히 하였고, 이를 더욱 강조하여 분리된 교파가 바로 구세군이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개혁 교회(장로회)에 비해 조직 신학 및 기독교 사상, 성경학 등에서 진보적인 입장도 곧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2018년 12월에 영국 성공회와 영국 감리교가 통합하기로 하고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가장 큰 이유는 영국 감리교회 신자 수가 많이 줄어서라고 한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감리교회는 위기에 처했지만 미 감리교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되레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실세였던 이기붕이 각각 감리교회 장로, 권사였던 점은 더더욱 감리교회 양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정권에 힘입어 광화문에 교단 본부 부지를 할당 받았고, 4.19 혁명 전까지 계속 정권의 비호를 받았다.
-1950년대에 감리교회는 다시 분열하였다. 이는 교회법을 어기고 감독 재선에 나선 류형기 목사 때문에 벌어졌다. 류형기 목사는 이미 감독을 역임하였고 1953년 임기 만료로 새로 감독을 선출해야 했다. 하지만 류형기 감독은 미 감리교회와 친분이 두터웠고 당시 상황은 미국의 지원이 있어야만 재기가 가능했다. 이를 두고 류형기 감독의 재선을 지지하는 성화파와 교회법대로 하자는 호헌파가 분열했다. 성화파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북에서 활동하다 월남한 이들 중심이었고, 호헌파는 충청도 인사들이 중심이었다. 호헌파는 1955년 독자 연회와 총회를 조직하고 신학교도 따로 세웠다. 두 파는 치열하게 갈등하다가 미국 감리교회와 한국 평신도들의 중재로 류형기 감독이 물러난 1958년부터 합동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1959년 정동제일교회에서 합동 연회가 개최됨으로써 분열을 미리 봉합되었으나 각 파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서클정치가 감리교회 안에 자리 잡았다. 두 파는 교단의 주요 직책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1966년에는 정동파가 새로 생기면서 삼파전이 되었고, 1966년 총회에서는 세 파에서 모두 자파 인사를 감독으로 선출하려다가 110번이나 과반 미달로 감독이 선출되지 못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결국 세 파는 합의하여 우선 호헌파 변홍규 목사를 감독으로, 정동파 이병설 목사는 총무국 총무로, 성화파 나사행 목사는 교육국 총무로 선임하면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한편, 1955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는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 안수가 이루어졌다. 외국인 여선교사들이 안수된 후 20년도 더 지난 후에 일이지만 한국 최초의 여성목사 안수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
-1960년대 교단 분열이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신학 연구가 활발히 일어났다. 유동식 교수와 윤성범 교수를 중심으로 토착화 신학이 감신대를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되었다. 유동식 교수는 풍류도와 신학의 대화를, 윤성범 교수는 유교와 신학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1970년대에 교단은 양적으로 급성장하는 동시에 또다시 분열 하였다. 총대 구성을 놓고 세 파의 다툼이 벌어지는 가운데 1970년 11월 총회에서 성화파에서 감독이 나오자 이에 불만을 품은 153개 교회가 따로 경기연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성화파나 호헌파도 아니었고 그간 교단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경기연회는 교단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이에 1975년에는 연합총회라는 독자 총회까지 열었다. 경기연회가 분립된 상태에서 1974년 기존 총회는 감독 자리를 놓고 호헌파와 성화파가 경쟁했다. 이 과정에서 성화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단 정화를 선언하고 갱신 총회를 열었다. 이로써 기존 총회와 연합총회, 갱신총회 세 개의 총회가 분열되었다.
-이에 충격받은 미 감리회는 분열을 수습하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며 압박해 왔고, 중립 교회들을 중심으로 교단 통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노력으로 1978년 교단 분열을 종용케 한 교단 체제를 개혁하고 통합 총회를 열어 분열이 일단락되었다. 이때부터 감독을 연회별 복수로 만들고, 감독의 파송권을 형식화하여 장로교회처럼 개교회가 목회자 선임권을 가지게 했다.
-1978년 체제는 2004년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옛 감독의 권한에 비견될 만한 전임 '감독회장' 제도가 신설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78년 체제 하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대표인 감독회장은 연회 감독 중 한 명이 맡아 왔으나 늘어나는 행정을 전담할 전임 감독회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것이 2004년 전임 감독회장 신설로 이어진 것이다.
-전임 감독회장은 막강한 권한이 있어서 경쟁을 촉발시켰다. 결국 2008년 신경하 감독회장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신임 감독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임마누엘교회의 김국도 목사의 사회법 위반 혐의를 들어 신경하 감독회장은 후보 자격을 뺏었지만, 김국도 파의 힘이 막강하여 이를 저지하려 했고, 결국 서로 고소하여 수년간 감독회장 자리를 놓고 표류했다.
-2010년에는 감독회장 자리가 공석이 되기도 했다. 감독회장 후보자들 간의 자격 요건 문제로 생긴 분쟁 때문이었다. 이것을 '감리교 사태'라고 한다. 결국 법원에서는 2010년 12월에 감독회장 대행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장로를 맡고 있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감리교회 내부의 대립이 극심하다 보니 법원에서 결국 공석이 된 감독회장을 감리교회 목사가 아닌 장로교회 장로로 선임하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
-2012년에 전임 감독회장이 임시 감독회장을 맡아 이 문제를 수습하고 2013년에 정식 감독회장이 선출이 돼서야 '감리교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하다.
-2012년 9월 25일 감리회 총회에서 목회세습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이미 목회세습 문제가 오래된 상황에서 감리교회에서 먼저 뒤늦게나마 목회세습을 막아보겠다고 나서 사회적으로도 크게 보도된 상황. 이런 상황에서 김홍도 목사는 "다 날 죽이려 든다!"라고 미국에서 외쳤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생긴 뒤에도 편법을 통해 목회세습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현재는 아들은 아버지가 담임했던 교회를 10년간 담임할 수 없도록 규정을 보완하였다. 직접적인 세습의 길은 거의 막힌 셈이다.
-2016년 1월 14일 제31차 감리회 임시총회에서는 한국 교단 중 처음으로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하였다. 물론 교회법개정위원회가 올린 개정안에 따라서 기존 이중 직업을 가진 교역자를 불성실한 교역자로 규정안 기존 법안을 재정자립이 어려운 미자립교회에서만 허용하였다. 이에 미자립교회 담임자가 이중직을 허락받으려면 , 해당연회 감독으로부터 근무지, 직종, 근무시간 등을 서면으로 신청하고 허락받아야 한다.
-그 전에도 예장통합에서 목회자 이중직을 막거나 정죄하면 안 된다고 보고서를 올렸으나 실제적으로 장정에 채택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최초로 이중직을 허용한 것은 그만큼 현실적으로 미자립 교회에 대한 지원이 전과 같지 않고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1960년대의 신학 흐름을 자유주의 신학으로 보고, 50년대의 지리멸렬했던 교단의 분열과 통합, 서클 정치를 보면서 환멸을 느낀 전 해병대 군종감 전덕성 목사가 1961년 교단을 탈퇴하였다. 전덕성 목사와 17인의 동지들을 중심으로 미국 자유감리교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 예수교자유 감리회"가 1962년 설립되었고 전덕성 목사는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에는 교단명을 "예수교 대한감리회"로 변경한 감리교회는 교리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순복음과 똑같거나 상당히 유사하다. 오순절교회 신학은 방언과 통성 기도를 매우 강조하며,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도 방언 기도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언급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오순절교회가 웨슬리의 감리교 신학에서 방언 기도를 더욱 강조하며 분리해 나왔다. 그래서 두 교파는 신학적 뿌리가 같다(혹은 오순절교회의 뿌리가 감리교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역시 이 부분을 매우 강조하여 주여 삼창 기도와 방언 기도를 두 교단에서 가장 뜨겁게 하는 이유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세계감리교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나온 적도 있었기에 순복음교회와 감리교는 한 가족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유관순 역시 감리교도였고 방언 기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경제 윤리에 대해서 타 교단에 비해 중도-진보적인 노선을 공식적으로, 명확하게 지향한다. 존 웨슬리는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동기뿐만 아니라 당면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가난의 문제에 대한 웨슬리의 접근 방법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 이웃 사랑이라는 종교적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가난의 원인에 대한 경제적 분석을 동반한 총체적인 것이었다.
-존 웨슬리는 경제 윤리에 세 가지의 규칙을 정했다. 그 세 가지 규칙은 “가능한 많이 벌어라;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라; 가능한 한 많이 주라”이다. 웨슬리는 돈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실천할 것을 독려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규칙이 암시하듯이 웨슬리는 공산주의를 명확하게 부정하고 사유 재산에 긍정적이었다. 달리 말한다면 웨슬리는 정당한 이익 추구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규칙은 기독교인들이 불필요한 사치나 욕구를 위하여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지 말라는 도덕적 촉구였다.
-세 번째 규칙은 청지기적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필요한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나눔을 위한 재산'을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웨슬리의 일화들을 통해 감리교의 케인스학파, 뉴딜 정책적인 면들을 볼 수 있다.
<조용기 목사 1936 – 2021>
조용기는 1936년 2월 14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아버지 조두천과 어머니 김복선의 5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산공업고등학교 재학 중인 17세이던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다가 고향 울산에 내려가 휴양을 하며 부산으로 통원 치료를 받았다.1956년 서울로 올라와서 순복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 목사의 딸 김성혜와 1965년 3월 1일 결혼하였고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조용기 목사는 20세에 대조동 천막촌에서 최자실 전도사와 공동으로 목회를 시작하여, 교인 약 78만 명에 이르는, 세계 개신교 최대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당회장 목사로 목회했다. 일본어, 영어에 능숙하며, 해외에서의 오순절교회 선교활동을 통해 개신교 선교에 공헌했다. 2008년 5월, 당회장 목사로서의 임기를 마쳤고,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로서 활동하였다.
-조용기목사는 2021년 9월 14일, 1년여에 걸친 뇌출혈로 투병중 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1981년 1월 15일: 조용기 목사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주강사로 초청 -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40대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축하식에 초청된 조용기 목사가 출국, 19일에는 특별초대인사를 위한 만찬회에 참석하고 20일에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저녁 8시부터 세계에서 손꼽히는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모인 가운데서 말씀을 증거하고 21일 종교 지도자들만을 위하여 백악관에서 열린 특별모임에 참석했음.
-1984년 2월 10일: 조용기 목사 미국 C.G.I. 성회 -침례교파와 오순절파가 주축을 이룬 1만5천명의 성도와 교역자가 운집했고 하와이 마우이 섬 성회에서는 2천여 명이 모여 3백여 명의 결신자가 나왔고 치료의 기적을 체험하였다. 2월 5일의 순복음 하와이 교회의 교포를 위한 부흥회에는 4백여 명이 참석, 저녁시간 NBC 아레나에서는 7천여 명의 성도가 모인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병고침을 받고 결신함
-1984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 대회 마지막 날엔 한경직 목사와 빌리 그래함 목사가 설교를 맡아 60-70만의 성도들이 참석했고, 넷째날인 '민족통일과 평화의 밤'에는 조용기 목사가 주강사로 말씀을 증거했음.
-1988년 5월 21일:조용기 목사외 독일에서 유명한 목회자인 볼프파르트 마어기스 박사와 미국과 독일에서 교회성장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도날드 노스롭 박사가 특강을 인도했다.
-1991년 11월 1일:로마, 스위스 성회 -연인원 3천여 명이 참석한 로마 성회에서는 세미나, 전도집회, 기도집회 일정으로 진행되었는데, 조목사는 아침에 있는 교회성장에 관한 세미나 강연을 마치고 저녁에 있는 전도집회 및 신유기도 집회 인도했다. 6, 7일 스위스 성회에서는 스위스 7백 주년 기념 조목사 초청 대성회로써 스위스 거주 이태리인 및 이태리어 사용인 스위스인 4천여 명이 참석했다.
-1992년 6월 16일: 모스크바대성회 -16, 17일의 집회는 예정대로 크렘린 궁에서 열렸고 마지막날에는 크렘린 궁 앞 공원에서 노천예배로 드렸다. 성령을 사모해 왔던 성도들과 지하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대성회로 성령충만을 체험했다. 2천여 명이 결신했고 치유의 기도를 통해 1백여 명이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다고 간증하여 주최측을 놀라게 했다.
-1996년 2월 7일:조용기 목사 와 이사들은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앞 예루살렘 로즈파크까지 행진하는 평화대행진을 펼쳤다.
-1999년 1월 28일: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순복음 나성교회(LA) 미국교회에 성령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성회로 평가받았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 소속 교회. 1958년에 서울 은평구 대조동 공동묘지 근처에서 천막 교회로 시작했다. 순복음신학교 동기였던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가 합심하여 교회를 운영하였다.
-조용기 전도사가 주로 설교를 맡고 이외 일은 최자실 전도사가 맡았다. 1959년 천막 교회를 확장했다. 1961년 지금의 서대문구 충정로우체국 맞은편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1962년 순복음중앙부흥회관 건물을 준공하여 입당했다. 이름을 '순복음중앙교회'라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서대문교회 시대'라고 칭한다.
-교인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1968년 모래벌판이던 여의도에 새 예배당을 짓기로 하였다. 계획 당시 건물 이름은 '여의도 민족제단'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 시장과 만나 기존 교회 건물이 있던 서대문-마포 일대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여의도 개발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시로부터 부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김 시장은 당초에는 100,000평을 제시했으나, 조 목사는 30,000평, 다시 3,000평으로 겨우 깎아 구입하고 대금은 할부로 갚기로 한다. 평수를 깎은 것은 당시 교인이 1만 명을 바라보는 규모였으나 가난한 계층의 교인들이 많아 헌금으로 부지 비용, 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바로 뒤에 초원아파트를 건축한 후 이것을 분양하여 자금을 마련해 예배당 건축에 보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1971년에 초원아파트가 완공되었고 1973년 현재의 교회 건물을 완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배당에 바로 붙어 있는 초원아파트는 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건물을 확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교회의 핵심 주장이다.
삼중축복의 처음 이름은 '3박자 구원'이었다. 요한3서 1장 2절을 근거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축복, 범사가 잘되는 축복, 건강해지는 축복을 받는다는 교리이다.
조용기 목사는 처음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국을 이야기하며 전도했는데 삶에 지친 사람들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조용기 목사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도 병을 고치시고,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해준신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이야기하며 전도하자 가난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였다.
-사중복음은 성결교회에 있는 교리이다.(중생, 성결, 신유, 재림) 조용기 목사는 성결 대신 성령충만을 넣고, '축복'을 더해 오중복음 교리를 만들었다. 축복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물질적으로도 도와주신다는 의미이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신유 집회에서 일어났던 이적과 함께 지금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만든 핵심 교리이다.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교회 특유의 구원론을 한국식 '잘살아보세' 정신과 합쳐서 "예수 믿으면 복받고, 건강해진다!" 라는 삼박자 구원론을 내세웠다. 이는 기복 신앙이라는 오해를 사기 쉬운 부분인데 정확히는 '자식(성도)이 가난하고 병들고 힘들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하나님)가 어디있는가'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축복은 주님의 뜻에 따라 선교와 구제에 사용할 것을 강조하므로 단순한 물질만능주의적 신앙과는 다르다.
오중 복음
1.구원의 복음 (요3:16)
2.성령충만의 복음 (행1:8)
3.신유의 복음 (막16:17-18)
4.축복의 복음 (고후8:9, 갈3:13-14)
5.재림의 복음 (살전4:16, 계21:1, 22:5)
삼중 축복 (요삼1:2)
1.영혼이 잘되는 축복
2.범사에 잘되는 축복
3.강건해지는 축복
-조용기 목사 퇴임 직전에 등록 교인이 무려 83만여 명이었다. 여의도 교회 건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계속 지교회를 독립시키고 있다. 현재 등록 교인 48만 명, 출석 교인 14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교회를 독립시키지 않았다면 등록 교인이 100만 명을 넘었을 것이다. 교회 내부 좌석 수는 12,000석이다. 이는 어지간한 국내의 실내체육관보다 큰 좌석 규모이다. 그럼에도 좌석이 부족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은 매우 과밀하며, 특히 일요일 메인예배 시간에 가면 거의 자리를 못 잡을 정도로 신도들이 많다.
-500개 제자교회 개척 및 지역별 분리에 적극적인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2020년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순복음중앙교회가 여의도로 교회 건물을 이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서울특별시 행정부시장이었던 차일석 씨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침례 교회의 분열>
침례교회는 15세기 영국 비국교도운동에 기원을 두는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침례회세계연맹(Baptist World Alliance)은 2023년 기준 침례를 받은 성인 교인이 5100만 명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파이다.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과 깊은 관련이 있는 미국 남침례회 교단의 2023년 교인 수는 1,322만 명이다.
-기독교의 뿌리는 여섯 개이다. 구교는 가톨릭, 정교회이다. 개신교는 루터교회, 개혁교회, 성공회, 기타 교파이다.
-영국의 성공회 안에서 칼빈주의, 개혁교회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나왔는데 이들이 청교도이다. 청교도 중 국가와 교회의 일치(국가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공회 안에서 개혁주의를 고수한 반면, 국가 교회를 부정하고 자유 교회를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 교회에서 분리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들을 분리주의자라고 부른다. 신앙은 청교도와 같은데 성공회 내 개혁주의는 국가 교회를 추구했고, 분리주의자들은 국가 교회를 부인했다는 점만 다르다.
-분리주의자 중 믿는 자가 침례를 받아야지 유아 세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침례교회의 기원이다. 따라서 침례교회는 분리주의자의 후계자이다. 이것이 침례교회 기원의 통설이다.
-대부분 신학자는 침례교회의 기원을 영국 분리주의자 가운데 유아 세례를 부인한 사람들로 생각한다.
-침례교회는 영국에서 나왔는데 처음부터 두 줄기로 나왔다. 일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이다. 둘의 차이는 예수님께서 누구를 위해 죽으셨는가 하는 속죄 범위이다. 일반침례교회는 온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 특수침례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특별히 택한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믿는다. 일반침례교는 알미니우스 주의이고, 특수침례교는 칼빈 주의이다. 침례교회는 양립될 수 없는 두 줄기가 각각 별개로 시작되었다. 하나로 있다가 갈라진 것이 아니다.
-영국 일반침례교회는 알미니우스주의인데 시작은 존 스마이스(John Smyth), 토마스 헬위스(Thomas Helwys), 존 머튼(John Murton)이다. 존 스마이스는 1609년 네덜란드에서 믿는 자가 침례받는 것이지 유아가 받는 것은 아니라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이때는 몸이 물에 푹 잠기는 침수례가 아닌 그릇에 물을 담아 머리에 끼얹는 방식의 침례를 했다. 존 스마이스는 침례교회에 남지 않고 나중에 재세례파 공동체로 들어가 버렸다. 토마스 헬위스가 존 스마이스를 정죄하고 “우리는 재세례파가 아니다.”라고 확고히 하였다. 토마스 헬위스가 1611년 영국 스피탈필즈(Spitalfields)에 첫 침례교회를 세우고 1616년 순교하였다. 침례교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1611년 토마스 헬위스이다. 후에 존 머튼이 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영국 특수침례교회는 칼빈주의인데 시작은 헨리 제이콥(Henry Jacob), 존 래스롭(John Lathrop), 헨리 제시(Henry Jessey). 헨리 제이콥은 1616년 런던 근교 사우스워크 (Southwark)에 교회를 세웠는데 침례교회가 아니라 독립파 교회였다. 헨리 제이콥이 미국으로 이민 간 후 래스롭이 10년간 목회했다. 그 후 헨리 제시가 목회할 때 몇 사람이 침수례를 받고 침례회로 개종했다. 이 사람들이 존 스필즈버리(John Spilsbury)를 중심으로 1638년 런던에 첫 특수침례교회를 처음 세웠다. 따라서 특수침례교회의 시작은 1638년 존 스필즈버리이다.
-침례교회가 여타 장로 감리교회와 구분되는 차이가 나타난 것은 교리가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17세기 미국의 로저 윌리엄스가 지금의 로드아일랜드 지방 프로비던스에서 공동체를 설립하고 신앙자유 특허를 영국왕으로부터 얻어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 침례회는 개인의 신앙적 의지와 신앙적 자유를 강조한다. 한국 침례회는 미국 남침례회 영향으로 보수적인 성경 해석을 중시하는 느낌이 강하다. 다만 미국 남침례회는 철학, 현대 과학, 가톨릭 등에 있어서는 의외로 개방적인 모습도 꽤 보여주고 있다. 한국 침례회유럽 국가의 침례회나 미국 북침례회(American Baptist Churches, 약칭 ABCUSA)는 대체로 진보적이어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우호적이다. 개인의 성경 해석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적이 될 수도, 진보적이 될 수도 있다. 꽤 개방적인 신학, 때에 따라서는 진보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침례회의 교회운영은 회중 정치이다. 감독을 두는 감리회, 주교를 두는 성공회처럼 중앙집권적 체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장로회처럼 개교회마다 장로 중심의 당회를 두고 교회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마다 교회 내의 운영을 위한 기구의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침례회는 민주주의적 체제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회의 현안에 대해 모든 침례교인을 대상으로한 회의를 열고, 거기에서 결정된 사안을 교회의 방침으로 한다. 침례회의 중앙 교단인 총회는 '지방회'에 간섭할 권한이 없으며, 심지어는 개교회에도 간섭할 권한이 없다.
-특수침례교회는유아세례를 부정하여 회중교회와 다른 길을 걸었다. 특수침례교회가 1689년 채택한 제2차런던신앙고백서는 장로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회중교회의 사보이선언과 함께 3대 청교도신앙고백서로 인정받는다. 미국 남침례교회의 주류이다.
-북침례교회에도 교회가 있다. 명성 높은 찰스 스펄전은 특수침례교회 목사였으며,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역시 특수침례교회 출신이다. 현재 영향력 있는 침례교 설교자인 존 파이퍼, 존 맥아더, 폴 워셔 와 같은 인물들 역시 특수침례교회의 전통을 따르고 있고 강한 개혁주의적 색채를 보인다.
침례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예배 중 사도신경 암송을 각 교회 자율로 맡긴다. 예를 들어 침례회 대형교회 중 연세중앙교회, 지구촌교회는 예배 중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고, 강남중앙침례교회는 사도신경을 외운다. 한국 침례교회 중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 곳이 훨씬 많다. 침례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중시하고, 꼭 지켜야 하는 '신조'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도신경에 관한 지구촌교회의 설명이다.
질문: 주일 예배시간에 지구촌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답변: 침례교회에서는 사도신경에 고백된 모든 고백의 내용에 대하여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동일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신경의 모든 신조적 고백이 이미 성경 안에 충분히 표기되었기에 "성경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충분하지 이 내용을 반드시 예배시간의 한 순서로 넣어 고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예배 순서는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배는 중요한 것이지만 예배 순서는 결코 이렇게 가져야 한다고 성경에 가르쳐진 일이 없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의 신조(Creed)인데 성경에 이미 존재하는 신조를 성경 밖으로 끄집어내어 신조화 하다 보면 어느 날 우리는 비성경적인 내용까지도 신조화할 가능성도 있다(이미 어떤 교단에서는 그런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고 보아 침례 교회는 철저하게 오직 한 책 - 성경 그 자체만을 더 소중히 여기자는 전통을 지켜왔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침례교인들은 "한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불려졌습니다.
-한국 침례회는 미국 침례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미국에서는 침례회가 개신교 교단 중 가장 거대하다.[16] 대표적인 교단은 흔히 '바이블 벨트'로 불리는 남부 보수 공화당 지지 기반 지역의 교회들이 중심이 된 남침례회총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이며, 한국의 침례회 중 기침 계열 교회들은 미국의 남침례회와 가깝다. 이 외에는 남침례회총회와 노예 문제로 분열한 미국침례회총회(American Baptist Convention),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기존 침례회 교단을 탈퇴하고 창설한 진보전국침례교총회(Progressive National Baptist Convention),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미국 침례회(ABCUSA) 등이 있다.
-현재 미국의 침례회 목회자 중 유명한 목사는 온건 진보적인 신학과 진취적인 사회개혁 정신으로 미국교회를 이끈 마틴 루터 킹 목사, 순회전도집회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적이 이끄는 삶>을 저술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대표 기도를 한 릭 워렌,조용기 목사를 비판하여 국내에 더욱 유명해진 존 파이퍼, 급진적인 회심을 강조하는 폴 워셔, 칼뱅주의 강해설교가로 유명한 존 맥아더 목사 등이 있다.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1889년 맬컴 펜윅이 설립한 원산 소재 동아기독교회를 계승한 교단. 해방 이후 미국 남침례회와 자매관계를 맺고 있다. 1968년 남침례회 제휴파와 구 동아기독교파의 합동 이래 침례신학대학교가 소재한 대전과 그 주변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발전하였고 신학교들을 통폐합하면서 사실상 교권을 잡아 왔기에 대한민국 개신교계에서 대전과 기침 교단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만연할 정도로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 남동부 지역에서 특히 교세가 큰 편이며,서울, 광주·전남 및 강원도, 제주도 지역은 교세가 약한 편이다. 침례회의 특성인 개교회주의와 자율성, 민주주의의 원칙과 개인 의지에 의한 신앙고백, 유아세례 부정을 충실히 지키는 반면 예배전례는 거의 지키지 않는 교단으로, 목사는 예배시 예복(가운)을 대부분 입지 않으며 침례조를 제외하면 강단에 성찬대나 십자가, 기타 장식이 없이 매우 간결하고 예배 형식도 매우 자유롭다.
-교단 차원에서는 정교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남침례회의 영향을 받은 교단 특성상 신앙은 물론 정치 성향도 특히 보수적이어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과 함께 대한민국 기독교 우파의 주축을 이루는 교단 중 하나이다. 다른 교단들이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열린예배, 신사도운동, 극단적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교단 내 다수의 교회들이 관대하거나 적극 수용하는 편이며, 가톨릭이나 WCC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김장환 목사나 이동원 목사처럼 가톨릭에 호의적인 대형교회 목사들도 있다.
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남침례회의 영향을 받은 교단 특성상 신앙은 물론 정치 성향도 특히 보수적이어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과 함께 대한민국 기독교 우파의 주축을 이루는 교단 중 하나이다. 다른 교단들이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열린예배, 신사도운동, 극단적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교단 내 다수의 교회들이 관대하거나 적극 수용하는 편이며, 가톨릭이나 WCC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김장환 목사나 이동원 목사처럼 가톨릭에 호의적인 대형교회 목사들도 있다.
- 한국기독교침례회(한침): 2017년 12월 설립되었다. 이단인 기독교베뢰아연합에서 김기동 목사의 퇴출을 주장하던 반대파 목회자들이 정통 침례회 신학으로 복귀를 선언하며 결성했다. 처음에는 '한국침례교회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이후 '한국기독교침례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북침례회의 후신인 미국 침례회와 선교 협약을 맺고 교류하고 있으며, 침례회세계연맹과도 교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내 대표 침례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와는 교류가 없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외 13개 지방회가 소속되어 있고, 318개 교회가 가입되어 있다. 2023년 8월에는 한기총에 가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