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림은 그가 숫자 ‘666’을 거론하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나서, 현장에서 놈들이 이마에 새긴 숫자였다.
경수 때도 그랬다.
그래서 최림은 그에게 물었다.
“기억났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놈들이 아버지, 어머니 이마에 그 숫자를 남겼습니다.”
“그렇군.”
“조장님 말씀대로라면 어머니, 아버지 모두 놈들의 농간에 넘어가 지옥에 가야 정상이 아닙니까?”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네 어머니는 믿음이 굳건하여 화장할 때, 즉 불에 태워질 때 이미 숫자는 지워졌다. 아버지는 그러지 못하였지만.”
“숫자 ‘666’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은 짐승의 수인 동시에 좌천사 하갈리엘의 성수이다.
기독교에서 666은 신약성서의 마지막 부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시이며, 적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초기 그리스도 교도들은 그리스도교를 탄압한 로마 황제 네로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모든 박해자는 그 숫자와 연관되었다.
그 '짐승'은 한 개인이 아니라 악령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것이 적그리스도의 숫자라고 추측했다. 」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말을 아꼈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자. 아직 네가 천계의 비밀을 다 모르기 때문이다.”
‘천계의 비밀?’
그의 말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최림은 도무지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
“어쨌든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은 거야. 일단 내 말은 네 아버지를 천국으로 데려올 기회가 있다는 거야.”
“어떻게요?”
“천주교의 ‘연옥’이란 말을 들어보았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천국으로 갈 것인지, 지옥으로 갈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잖아요.”
“그것처럼 휴거 때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와서 심판할 때, 네 아버지를 재차 심판대에 세우게 할 거야. 배교 이전의 신앙심과 죄 없음을 증명한다면 천국행은 가능해.”
그제야 최림은 그의 계획이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이 ….”
“그렇지. 우리가 힘을 합쳐 휴거를 방해할 놈들을 모조리 잡아 족치는 거지. 특히 놈들의 괴수, 전두태를 포함해서 말이야.”
이 정도에서 그와의 대화를 끝냈다.
최림은 미오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이후, 최림은 미오를 몇 번 만났다.
그런데 금방 합류할 줄 알았던 그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입단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었다.
확실친 않지만, 아마 A조 요원들이 반대하는 모양이었다.
이유는 일개 교통순경에 무슨 능력이 있는가, 하는 자질 문제였다.
부국장, 마이클과 B조 조장인, 이요한이 최림은 ‘천계에서 예비된 자’라고 설명해도 A조에 아예 먹혀들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최림의 능력을 보고 입단 결정을 하겠다고 우겼다.
이리저리 시간이 흘렀다.
최림으로서도 입단을 서둘 처지가 못 되었다.
함께 교통단속을 나가던 선임이 갑작스럽게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평소 근무를 소홀히 하던 탓에 감찰반에 걸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최림은 홀로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최림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M 대학 사거리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교대 근무자가 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최림은 단속기를 둔 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가급적, 감찰반의 단속을 피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식당 어귀 골목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경찰차 두어 대가 정차해 있었고 안쪽에 경찰들이 보였다.
‘무슨 사고가 났나?’
최림은 그냥 지나치려다 호기심에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최림이 뒤쪽에 서 있는 주민에게 물었다.
주민은 경찰복을 입은 최림이 그렇게 묻자 시큰둥하게 말했다.
“경찰이면서 왜 물어요? 식당에 살인사건이 났잖소.”
‘뭐? 이런 대낮에?’
최림은 마음이 급하여 주민들을 헤집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식당 앞은 노란 줄이 처져 있었다.
식당 안은 같은 소속 형사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형사팀장이 최림을 발견했다.
“어이! 최 순경. 마침 잘 왔네. 어서 요 앞에 교통정리 좀 해줘.”
평소 안면 있던 형사팀장이었다.
“수고하십니다. 팀장님. 누가 죽었단 말입니까?”
“식당 여주인이야.”
“이렇게 사람이 많은 대낮에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도 점심 먹다, 신고받고 바로 왔어. 요새 살인사건은 시도 때도 없어. 제기랄!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알고 이리로 왔나?”
최림은 자신도 밥 먹으러 왔다고 할까, 하다 그건 아니다 싶었다.
“우리 관내잖아요. 아무리 교통순경이지만 저도 경찰입니다.”
“하하. 좋아. 조금 있으면 기자들도 몰려올 테니, 자네가 좀 정리 좀 해줘.”
“그러죠.”
최림은 배가 몹시 고팠지만, 형사팀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도와주기로 했다.
과연 방송사와 신문사 차량이 몰려들고 있었다.
최림은 골목 입구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사건은 오늘 새벽이나 아침에 일어난 모양이었다.
단골손님이 점심을 먹으려 식당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생각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 여주인은 주방 앞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삐리릭!’
웅성웅성.
최림은 불어난 차량 때문에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H 신문사 차량! 왼쪽으로 차를 좀 빼주세요.”
그때 최림 앞으로 수상쩍은 중년의 남자가 사건 현장으로 가고 있었다.
‘앗! 저놈은?’
무심코 지나갔지만, 최림은 그를 눈여겨보았다.
아니, 그의 뒤에 있는 놈을 지켜보았다.
그놈은 다름 아닌, 그때 식당에서 미오에게 당한 악령이었다.
전두태의 부하이기도 한 놈이었다.
놈도 최림을 알고 있었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곧 불꽃이 튀었다.
찌리리리릭 ~.
다다닥.
최림이 놈을 향해 뛰어가자, 놈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휘리릭 ~.
그런데 그 자리에 놈 대신에 어떤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최림은 그를 유심히 보았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 반드시 찾아온다.’
경찰학교에서 배운 기본이었다.
중년 남자의 눈은 심하게 흔들렸고 그의 몸에선 피 냄새가 가득했다.
‘이자가 범인이다.’
확신한 최림은 얼른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재빨리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엎드려!”
중년 남자는 최림의 압박에 거칠게 반항했다.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폭행한다!”
그러자 주민들이 최림과 중년 남자 주위를 에워쌌다.
“교통순경이 왜 그래?”
“놓고 좋은 말로 하지. 민중의 지팡이가 그래도 되남?”
소란이 일자, 형사팀장이 나섰다.
“최 순경. 무슨 일이야? 왜 사람을 겁박하고 그래?”
이에 최림이 소리쳤다.
“이자가 범인입니다.”
“뭐?”
“틀림없습니다.”
최림의 단정에 주민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김 씨가 평소에 얼마나 얌전하고 착한 사람인데.”
“그래, 그럴 리 없어. 경찰이 사람을 잘 못 본 거야.”
형사팀장은 당황한 듯 최림 가까이 왔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무슨 근거로?”
최림은 그의 뒤에 악령이 있었고, 그의 몸에서 피 냄새가 난다고 말할 순 없었다.
보나 마나 그런 말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최림은 중년 남자의 얼굴에 긁힌 자국을 발견했다.
“여기! 이 상처를 보십시오. 분명히 식당 여주인이 손톱으로 긁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형사팀장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중년 남자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건 면도하다가 다쳤어. 정말이오.”
“아닙니다. 이건 명백한 고인의 사망흔입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죽어가면서도 가해자가 누군지 밝히려 한 손톱자국입니다. 뭣하면 DNA 감식을 해보십시오.”
최림의 말에 중년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이! 김 경장. 사망한 여주인의 손톱에서 뭐가 나왔나?”
언제 왔는지 현장검증을 마친 과학수사대 요원이 형사팀장 옆에 서 있었다.
“네.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부조직이 대거 나왔습니다.”
그의 말에 형사팀장은 단호히 말했다.
“연행해!”
그로부터 일주일 후, DNA 감식 결과 중년 남자가 범인으로 확정되었다.
홀아비였던 그는 평소 과부이던 여주인을 짝사랑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시당하자, 사건 당일 새벽에 식당 안방에 침입했다.
반항하던 여주인을 칼로 난자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자백과 더불어 증거품인 칼도 순순히 내어놓았다.
설마설마하던 형사팀장은 최림을 눈여겨보았다.
형사팀장은 서장에게 최림의 활약상을 보고했다.
동시에 그는 최림을 형사팀으로 끌어당겼다.
경찰 입문 몇 달 사이에 최림은 마침내 형사팀으로 발령받았다.
최림이 형사팀으로 일하게 되자, 반긴 쪽은 악령퇴치반이었다.
반대하던 A조는 더는 이의가 없었다.
“축하해.”
영원한 꼬마 아가씨 미오의 축하 인사였다.
“고마워요.”
최림은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