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77)
나무아미타불의 본 뜻
김삿갓은 천동마을에 찾아와서부터는 마음이 편하고 즐겁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매일 밤이면 친구들이 모두, 김삿갓이 거처하는 모임방으로 몰려와 기나긴 겨울밤을 이야기로 보내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모임방에서는 어슷비슷 둘러앉아 미투리를 삼거나 새끼를 꼬거나, 때로는 덕석이나 멍석 등을 짜면서 제각기 제멋대로 늘어놓는 음담패설을 들어보는 것은 다시없는 즐거움이었다.
밤에 모임방으로 모여드는 사람은 김삿갓의 옛날 친구만은 아니었다.
천동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감둔산 동쪽 골짜기에 반석암(盤石庵)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그 암자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일휴(一休) 스님도 밤이면 가끔 놀러오는 단골손님 중에 하나다.
일휴 스님은 나이가 70이 넘은 대머리 스님이었다.
그는 젊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깨우쳐 주기 위해 모임방에 자주 온다고 하였지만, 김삿갓은 일휴 스님이 모임방에서 강설(講說)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은 없었다.
그러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모임방에 온다는 것은 멀쩡한 거짓말이고, 어쩌면 마을사람들이 제멋대로 씨부려대는 음담패설을 들으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증거로, 마을 사람들이 음담패설을 떠들어댈 때면, 일휴 스님은 누구보다도 신바람 나게 박장대소를 하곤 하였다. 이럴 때는 스님으로서의 체면 같은 것에는 일절 개의치 않는 일휴 스님이었다.
언젠가 누가 일휴 스님에게
"스님은 돌중이지요?" 하고 농담을 걸은 일이 있었는데 일휴 스님은 농담을 건넨 사람을 나무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하하하. 내가 돌중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내 머리통을 보라구! 머리통이 돌덩이처럼 생겨먹은 것만 보아도 내가 돌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렇듯 젊은 사람들이 심한 농담을 걸어와도 결코 나무라는 일이 없는 일휴 스님이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은 70이 넘은 그를 친구처럼 대해 왔었고, 일휴 스님 자신도 노소동락(老少同樂)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공언해 왔었다.
김삿갓은 일휴 스님의 활달한 기품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한편은
"산속에 혼자 사시기가 적적하시죠?" 하고 물었더니, 일휴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혼자 살기가 심심하니까 이렇게 가끔 사바세계에 내려와 음담패설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누가 힐난하듯이 한마디 했다.
"스님이 염불은 안 외고 잡소리만 즐겨하시면 수도는 언제 하시오?"
"수도....? 마음을 구름 한 점 없이 한가롭게 가지면, 그게 바로 수도인걸!...
극락세계가 법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가?"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짓궂게도 이렇게 물어보았다.
"신도들 중에는 젊은 여자들도 많던데, 예쁜 여자가 눈앞에서 아양을 떨 때면 아무리 스님이라도 색정이 동하겠지요?"
그러자 일휴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중은 사람이 아닌가? 중도 속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죄다 가지고 있는걸!"
"스님! 그 물건이 예쁜 여신도를 보고 색정이 발동하게 되면 스님은 어떻게 하시오?"
"그런 경우라면 "나무아미타불"을 연실 되뇌우지."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符籍)조차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무식하기 짝이 없는 그 물건이 염불을 왼다고 곱게 말을 들어 줄까요?"
"그게 바로 속인들과 중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야. 불도(佛道)를 어느 정도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일시적으로 색정을 느꼈다가도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만 외면 대개는 흥분이 가라앉게 되는 법이야."
"도대체 스님들이 입버릇처럼 외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오?"
"자네는 정말로 무식하네 그려. 나무아미타불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단 말인가?"
"모르니까 물어보는 게 아니오?"
"자네들이 정말로 모른다니 설명을 해주지.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는 부처님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 계시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극락세계로 보내주는 부처님이시고, 나무(南無)라는 말은 극락세계에 가서 영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과 염원이 담긴 뜻이라네, 알겠나?"
일동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갸우뚱하였다.
"그러면 아침부터 밤중까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만 외면 누구든지 극락세계에 가서 영생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러자 일휴 스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염불을 왼다고 모두가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아니야.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도, 마음이 잿밥에 가있다면, 그런 돌중 놈이 어떻게 극락에 갈 수 있겠나!"
"스님은 조금 전에 자신을 돌중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소? 그렇다면 스님은 아무리 염불을 외어도 극락세계에는 못 가실게 아니오?"
"모르는 소리. 나는 머리통이 돌덩이같이 두루뭉술로 생겨 먹었기에 돌중이라고 말했을 뿐이지, 진짜 돌중은 아니야."
"그러면 여자가 옷을 벗고 덤벼들어도 스님은 제대로 접수하실 수도 없겠네요?"
누가 그렇게 놀려대자 방안에는 별안간 폭소가 터졌다. 일휴 스님도 같이 어울려 웃으면서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자네는 바라경이라는 경문을 꼭 들어봐야만 알겠는가?"
('바라경'....?)
김삿갓은 바라경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관음경(觀音經)과 반야경(般若經) 같은 경문이 있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지만, 바라경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 경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석에서 일휴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스님! 불교에는 바라경이라는 경문도 있습니까? 저는 처음 들어보는 경문인데, 그 경문의 내용은 어떤 것이옵니까?"
일휴 스님은 대답할 생각은 안하고 빙그레 웃기만 하다가
"반야경과 관음경은 부처님께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리를 설파하신 귀한 경문이지. 그러나 바라경이라는 것은 그런 신성한 경문은 아니야."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바라경이 신성한 경문이 아니라구요? 경문에도 신성, 비신성이 있습니까?"
"있지 있구말구! 바라경이라는 경문은 신성하지 못한 대표적 경문일세!"
"그렇다면 바라경은 누가 지어 낸 경문이기에, 신성치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김삿갓, 더구나 바라경이란 것이 자기가 모르는 불교의 경문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캐어 물었다."
그러자 일휴 스님이 대답하는데
"바라경이라는 것이 말이 경문이지, 실상인즉 어느 돌중 놈이 어떤 여자로부터 해괴망측한 질문을 받고, 즉흥적으로 꾸며낸 잡설에 불과한 것이야. 그 유래를 설명할 테니 들어보려나?"
그리고 일휴 스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어떤 절에 음흉하고도 익살스러운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 신도가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스님에게 이렇게 물어 본 일이 있었다.
"스님들은 여자와 한 이불 속에 누워있어도 관계를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질문을 받은 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중이로서니, 사지가 멀쩡한 사내로써 여자와 관계하는 방법을 모를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여인이 중을 유혹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중의 체면으로서는 그런 질문에 말로 상세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중은 마치 경문을 외우듯이 이렇게 염송(念誦)하였다.
"줘바라 줘바라 못 하나 줘바라 ... 줘바라 줘바라 정말 못 하나 어디 한번 줘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