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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편 향당(鄕黨)
① 공자가 향리에 계실 때는 공손하여 말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종묘나 조정에 계실 때는 말씀을 분명히 하셨으나 다만 신중하셨다.
孔子 於鄕黨(어향당)에 恂恂如也(순순여야)하여 似不能言者(사불능언자)시다 其在宗廟朝庭(기재종묘조정)에는 便便言(편편언)하시되 唯謹爾(유근이)시다.
② 마굿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가 퇴근해서 “사람이 다쳤느냐?”고 말하고, 말은 물어보지 않았다.
廐焚(구분)이어늘 子退朝曰(자퇴조왈) 傷人乎(상인호)아 하시고 不問馬(불문마)하시다.
廐焚이어늘 子退朝曰 傷人乎不아 하시고 問馬하시다.
(사람이 다쳤느냐, 안다쳤느냐 하고 먼저 묻고 나서 말을 물었다.)
제 11편 선진(先進)
③ 공자 말하기를, “안회는 나를 돕는 자가 아니다. 내 말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다.”
子曰 回也(회야)는 非助我者也(비조아자야)다 於吳言(어오언)에 無所不說(무소불열)이구나
*안회(顔回)는 많은 제자들 가운데 공자의 지기(知己)라고 해도 좋을 거의 유일한 제자다.
젊어서 죽었을 때 공자의 애통함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책들에서는 ‘원망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기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 면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공자가 그것을 경계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논어에 나오는 많은 문장들이 뒷받침한다.
<“그 양 끝을 두들겨 마침내 밝혀 보겠다.” 我叩其兩端而竭焉>
<“(자기와) 다른 생각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攻乎異端 斯害也已>
<“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어떤 단정도 없이, 오직 의를 좇을 뿐이다.”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이런 태도야 말로 실사구시의 바탕이다.
동류(同類)와 편을 먹는 것, 비판을 싫어하는 것, 무엇이 옳은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옳은지를 다투는 것 등이야말로 실사구시에서 멀어지고, 따라서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우리 정치 문화가 극복해야할 최대 과제다.
두 달 전 한겨레 칼럼에 ‘토론문화를 바꿔야 길이 보인다’라는 글을 게재했는데,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④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 말하기를, “사람을 섬길 줄 모르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다시 “감히 죽음에 대하여 묻습니다” 하니, “삶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季路(계로) 問事鬼神(문사귀신)한대 子曰 未能事人(미능사인)이면서 焉能事鬼(언능사귀)리오 敢問死(감문사)하나이다 曰 未知生(미지생)이면서 焉知死(언지사)리오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는 말씀과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하는 말씀은 공자의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면모를 잘 나타내는 구절이다.
삶과 죽음, 종교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과제를 안고 산다. 이 근원적 공포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 위해서 종교를 갖는다.
공자는 ‘잘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가장 잘 대처하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논하지 않고, 인간의 참된 삶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신의 세계나 내세(來世)를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죽음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공포라는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모든 성인들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 점에서 같다.
종교화하면서 그 진의가 왜곡되는 경우는 있다하더라도 그 진의는 살아서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한 사람의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라는 말씀이나 죽음이나 내세 등 형이상학적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독화살의 비유’로 우선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이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놔두고, 아는 것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⑤ 자공이 “사(師:자장)와 상(商:자하)은 누가 더 현명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 말하기를.“사는 지나치고, 상은 모자란다.” “그러면 사가 더 낫습니까?”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子貢(자공)이 問師與商也(문사여상야) 孰賢(숙현)이니이꼬 子曰(자왈) 師也(사야)는 過(과)하고 商也(상야)는 不及(불급)이니라 曰然則(왈연즉) 師(사) 愈與(유여)이까 子曰(자왈) 過猶不及(과유불급)이니라
⑥ 계씨는 주공보다 더 부자인데 염구는 계씨를 위하여 가혹한 세금을 거두어 그를 더욱 이익되게 해주었다. 공자 말하기를,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너희들은 북을 치며 그를 공격해도 좋다.”
季氏(계씨) 富於周公(부어주공)이어늘 而求也(이구야) 爲之聚斂而附益之(위지취렴이부익지)한대 子曰(자왈) 非吾徒也(비오도야)니 小子(소자)아 鳴鼓而攻之(명고이공지) 可也(가야)니라
*조선 5백 년의 역사를 회고해봅니다. 반계‧성호‧다산을 흔히 조선 후기 3대 실학자라 일컫는데 이들 실학의 정책에서 세제와 세정에 관한 논의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가난에 찌들고, 탐관오리들의 착취에 숨쉬기도 어렵던 일반 백성들을 위해 이들이 내놓은 세정의 본질은 ‘손상익하(損上益下:성호)’, ‘손부익빈(損富益貧:다산)’이라는 네 글자에 담겨 있습니다. 글자는 달라도 뜻은 다 같습니다. 상류층의 재산을 덜어다가 하층의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자는 뜻이어서 부유층의 재산을 덜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게 한다는 뜻과 내용은 같습니다.
소수의 부자나 대기업의 이익보다는 힘없고 약한 일반 서민들의 주름살이 펴지는 그런 세제로 ‘손부익빈’말고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라의 백년대계를 헤아리면서 만인이 납득할만한 세정, 그래서 위험수위에 오른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우친 갈등의 큰 요소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박석무)
⑦ 자장이 선인(善人)의 도를 물으니, 공자 말하기를, “발자취를 따라 밟지 않아도 착한 일은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실(室)에는 들지 못한다.”
子張(자장) 問善人之道(문선인지도)한대 子曰(자왈) 不踐迹(불천적)이나 亦不入於室(역불입어실)이니라
* 자로는 당(堂)에는 오를만하지만, 아직 실(室)에 들지는 못했느니라.
由也(유야)는 升堂矣(승당의)오 未入於室也(미입어실야)니라
제 12편 안연(顏淵)
⑧ 안연이 인을 물으니 공자 말하기를, “극기복례가 인릉 행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극기복례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이루는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 어찌 남으로부터 비롯될 것인가? 안연이 ”그 세목을 여쭈어봅니다“하니 공자 말하길,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안연이 말하길, “제가 비록 불민하오나 이 말씀을 실천해 보겠습니다.”
顏淵(안연)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克己復禮(극기복례) 爲仁(위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天下(천하) 歸仁焉(귀인언)하나니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顏淵(안연) 曰(왈) 請問其目(청문기목)하나이다.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하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顏淵(안연) 曰(왈) 回雖不敏(회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리이다.
*공자의 대표적 사상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아마 초등학생도 인(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인(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공자 스스로도 인(仁)을 정의하듯이 이야기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의 문답을 통해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제자 안회와의 문답이 논어 12편에 나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설명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여기서 공자는 ‘극기복례가 곧 인(克己復禮爲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은 많이 귀에 익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 참뜻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요즘 ‘극기훈련’을 많이들 한다고 하는데, 잘 참지 못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참는 훈련’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절대빈곤이나 독재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싫어도 참아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민주화가 진척되다 보니 높아진 자유도(自由度)에 반비례해서 참아내는 힘이 너무 없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자식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참아내라’는 충고를 많이 하시는데 젊은이들의 참는 힘이 적은 것도 있지만 그 분들의 관념 속에는 ‘참는다’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싫다고 생각하는 것도 ‘참고 이겨내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극기’(克己)를 그저 ‘참고 이겨내는 것’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극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극기는 절사(絶四)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의 네 가지 끊음을 통해 극기란 결국 ‘무아집’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참아야만 하는’ 부자유의 세계가 아니라 ‘참을 것이 없는’ 자유의 세계인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극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복례(復禮)도 극기와 따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복례를 ‘사람 사이에 지켜야할 바람직한 행위규범에 따라야 한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하고 싶지 않아도 참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행동거지를 예에 맞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부자유가 있을 수 있다. 즐겁지 않은 것이다.
공자가 여러 곳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예를 즐긴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즐거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딱딱한 규범의 세계가 아니라 ‘아집’을 넘어설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사이좋음’인 것이다. 즉, 극기복례는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지향하는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아집을 넘어선다는 것은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 참는 것(忍)으로부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임(恕)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분노와 증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높아진 자유도에 비추어 볼 때 공자의 ‘극기복례’는 최고의 목표로 삼을만한 것이다.
일일극기복례(一日克己復禮) 천하귀인언(天下歸仁焉)이라는 말은 깊은 감동을 준다.
분노와 미움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한 마음으로(克己)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바로잡아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復禮). 하루라도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증오와 분노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천하가 인(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세상이 진보하는 길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혁명가인 것이다.
극기(克己) 즉 아집을 넘어서는 인격의 성숙과 복례(復禮) 즉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나인 것이다.
인(仁)은 자기로부터 말미암은 것(爲仁由己)이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인을 원하기만 하면 그 인이 이르러 온다(我欲仁 斯仁至矣)’라는 말과 통하는 것이다.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이다. 실제로 해보면 바로 증명되는 삶이다.
좌측 깜박이를 넣고 있는 차를 위해 잠시 차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그 근방에 인(仁)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따뜻한 말이나 행위 하나가 사회적 공기를 바꿔놓는 것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말고(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는 말도 잘못 읽으면 비례(非禮)에 대해서 오불관하는 식의 소극적 은둔적 사고방식으로 읽기 쉽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자기로부터 비례(非禮)를 범하지 않는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실천과제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나 부정을 시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먼저 자기로부터 ‘인’을 실현하여 천하의 ‘인’을 실현해가는 것이다. 자기변혁과 세계변혁이 하나로 되는 것이다.
외부 세계를 변화시키는 능력에 비해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테마로 되고 있는 지금, 진정으로 세상의 진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현대적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⑨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하기를,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를 충족하게 하여 백성에게 믿음을 얻어야 한다”
자공이 말하기를,“부득이하여 셋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공자, “군비를 버려야 한다”
자공, “또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둘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죽음은 있게 마련이거니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子貢(자공)이 問政(문정)한대 子曰(자왈) 足食(족식) 足兵(족병)이면 民(민)이 信之矣(신지의)니라. 子貢(자공)이 曰(왈) 必不得已而去(필부득이이거)이면 於斯三者(어사삼자)에 何先(하선)이리잇고. 曰(왈) 去兵(거병)이니라. 子貢(자공)이 曰(왈) 必不得已而去(필부득이이거)이면 於斯二者(어사이자)에 何先(하선)이리잇고. 曰(왈) 去食(거식)이니 自古皆有死(자고개유사)어니와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이니라.
* 정치에 대한 공자의 말씀은 현실을 모르는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더욱이 오늘과 같은 물질을 둘러 싼 경쟁과 대립이 치열하고, 국가 간의 군비 경쟁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 세상에서 공자의 말씀은 한가한 백일몽(白日夢)처럼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치의 요체를 이처럼 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면이 보인다.
첫번째는 ‘足食足兵이면 民이 信之矣니라’ 하는 말씀이다. 식(食)과 병(兵)은 신(信)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식량이 풍부하고(足食)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는 국방력(足兵)이 갖추어져야 백성들 사이에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경제와 안보가 튼튼해야 국민이 정부를 믿고 신뢰의 사회적 기풍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데 부득이 이 셋 중에서 버려야 한다면 어떤 순서로 버릴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兵․食․信의 순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점이 대단히 이상주의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물질과 군비가 발달한 오늘 날도 왜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이상사회는 요원하게 느껴지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요체는 공자의 이 버림의 순서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사회를 향해서 나가는데는 첫 번째와는 다른 순서인 것이다.
물질적 조건(食과 兵)보다 정신적 조건(信)이 더 결정적인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상주의적 생각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성숙과 결합되지 않을 때는 그 물질적 풍요는 오히려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등은 상호불신의 사회풍조를 만연시켜 ‘위험한 사회’로 되기 쉽고, 투자나 소비가 위축되어 결과적으로 물질적 풍요 자체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대의 국방력은 그 나라의 경제와 과학기술수준에 크게 달려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만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궁극적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이 ‘왜 싸워야 하는지’를 얼마나 공감하고 자각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때 자기 나라를 싸워서 지키려는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 나라가 지켜내려는 가치에 대한 공통의 신뢰인 것이다.
이러한 신(信)이 없다면 아무리 방대한 병력과 첨단의 무기가 있다 할지라도 그 나라를 지켜낼 수 없는 것이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은 이런 점에서 읽혀진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 신(信)이 인류보편의 가치 위에 세워져야한다는 자각이 점점 더 세계인류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점점 더 민주주의와 인권은 신(信)의 바탕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⑩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으니 공자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하는 것입니다.”
경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씀이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다하여도 내 어찌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齊景公(제경공)이 問政於孔子문정어공자)한대 孔子(공자) 對曰(대왈)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이니이다. 公(공) 曰(왈) 善哉(선재)라 信如君不君(신여군불군)하며 臣不臣(신불신)하며 父不父(부불부)하며 子不子(자부자)면 雖有粟(수유속)이나 吾得而食諸(오득이식저)아.
*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께서 ‘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집단 안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그 지위에 대해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 행동을 사회학에서는 역할행동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삼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생각한다면 나는 아버지. 남편, 아들이라는 지위를 갖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역할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때 역할 행동이 좋으면 칭송을 받지만 나쁘면 비난을 받는 것이다.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매개가 되는 이 지위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선천적으로 부여되는 귀속지위와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후천적으로 선택하는 성취지위가 있다.
물론 이것도 고정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귀속지위이던 것이 지금은 성취지위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지위는 국적 선택의 자유가 커지면서 점점 더 성취지위 다시 말하면 후천적으로 선택 가능한 지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입양(入養)이 많아지고, 이혼 등이 많아지면 가족 안에서조차 성취지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이다.
역할 행동이 좋다는 것은 흔히 하는 말로 ‘~~답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가운데는 이 ‘~~다워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 때로는 그것을 깨트리는 것이 칭송되기 까지 한다.
그렇게 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지위에 대해서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사회제도나 문화나 민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 제도하에서 기대되는 여성의 역할은 당연히 현대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것이다.
절대군주제 하에서 군주와 신하의 역할은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의 인습이나 관행과 결합되어 있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이 선(善)으로 되는 경우도 있고, 그것을 깨트리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다움’이라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여성다움에 대해 말한다면 과거의 ‘여성다움’에 붙어 있던 비정상적인 것들이 부정되고 깨트려지고 있는 것은 ‘여성다움’을 없애 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왜곡에서 벗어나 ‘진정한 여성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떤 면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나는 것은 이 과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자의 이 말씀을 봉건제도를 옹호하는 수구반동의 이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단면적인 것이다.
오히려 동서고금을 통해 보편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주의 현대 사회에서 ‘대통령다움’ '공무원다움‘ ’아버지다움‘ ’아들다움‘은 무엇일까?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정상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 절실하게 물어지는 것이다.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역할을 수행함에 의해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인간존재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역할 행동들이 잘 조화되는 것이야말로 그 사회의 성숙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되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이것을 정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이 아들다워야 한다는 것을 정치라고 말씀하신 것이야말로 정치의 근본이랄까 정치의 목표랄까 하는 것을 명쾌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자에게 있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나 그 조화는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결국은 ‘아버지가 아버지답게’ ‘ 아들이 아들답게‘ 사는 사회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이고, 정치란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술(예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