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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2009년 12월 31일부로 정든 직장이 일본으로 철수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국내기업에 다녀도 보았지만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의 차이에서
금방 녹아 들지못하고. 시간을 내어 인생의 여유를 한번 마음에 담아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인생의 삶에 있어 자신을 위해 가장 편안하게 활용할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만약 있다고 하여도 자신을 위해 가장 편안하게 사용할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장 편안하게
사용하였다라고 말할수있을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이 소설의 연속이다.
하지만 간혹 어떨때는 정말 실감나는 인생의 소설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때문이아닐까싶다.
24~5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이제부터라도 나를위한일을 한번 해 보자고 사직서를 던지고 두달여간의 여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한끝에, 지리산 둘레길완주를 생각하여 자료를 찾고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가족의 적극지원을 받으며 2011년 8월 8일 아침 베낭을 엘리베이트에 실었다.
출발 월요일아침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꾸려놓은 베낭과 세운계획을 위해 집을 나셨다. 그나마 시내버스를 탈때와 합성동 주차장 이동시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베낭의 무게는 16키로를 넘었다.
보통 지리산 둘레길 하면 1코스(주천-운봉) 2코스(운봉-인월) 3코스(인월-금계) 4코스(금계-동강) 5코스(동강-수철)로 해서 마무리를 하는데 내가 가는 이번 코스는 역으로 5코스 수철리부터 시작하여 1코스 주천까지 가서 다시 밤재를 거처 구례군에서 세운코스를 답습하는것으로 1차 계획을 세웠다.
제1일차
(5코스 : 수철 ~ 동강)
7시 15분 집을 나셨다. 비는 태풍의 영향으로 오락가락 시내버슬타고 합성동 주차장까지 갈때는 폭우에
가까운 비를 뿌렸다. 우산을 갖추지 않아 걱정했는데 시내버스에 내릴쯤 비가 딱 멈추어 주었다.
8시 37분 산청 함양을 거처 전주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진주 시외주차장을 거처가는데
진주에서 약30분가량 쉬었다간다고 다른버스에 기사님이 연결을 시켜주었다. 다음에 버스를 이용
할때는 차라리 진주까지 버스를 타고 다시 진주에서 산청이나 함양행버스로 갈아타는게 빠를것
같다.
이어 산청에 10시23분 수철리에 도착했는데 10시 20분 수철리행버스는 출발을 해버렸고 3분이
모자라 군내버스 타지못하고 하는수 없이 택시를 타고(7,000원) 수철리에 도착을 했다.
(수철리 마을회관)
제5코스 : 동강 - 수철 구간으로 나는 수철에서 동강으로 넘가간다.
본구간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동강에서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를 잇는 12Km의 지리산길이다.
구간은 산행하는 기분으로 걸어야한다. 거의 산으로 이어져 있으며, 4개의 마을을 지나기도 한다.
동강마을 - 점촌마을- 방곡마을-상사폭포-쌍재-고동재-수철마을
수철리에 도착하면 1박2일의 수근이 사진이 요란하다. 수철리 마을회관이 버스정류장이고
또한 5코스 도착지점이다. 나는 여기서 출발을 하여 동강으로 넘어가야 한다.
지리산 계곡이야 알아주는곳이지만 일요일 지나간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강가엔 물이 넘처흐르고
또한 태풍의 위력앞에 온동네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수수철리에서 구간별 안내지도를 한번 살펴보고 둘레길 출발준비를 했다. 내가 출발한날이 월요일이라
동네할머니분들만 그 주변을 지켰을뿐 둘레길을 걷는나그네는 보이질 않는다.
10시 55분 수철리를 출발하여 고동재를 향했다. 길바닥엔 태풍의 위력앞에 꺽긴 나무가지들이
간밤의 피해상황을 말해주었다. 흐린날씨에 햇볕이 한번 나왔다 들어가고 습기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있다. 땀이 배가죽을 타고 내려온다.
8월초의 여름은 가을의 열매에 못이겨 자꾸 가을에게 바톤을 넘길준비를 하고 있다.
제법 밤송이가 굷어지면서 가을을 재촉하는 느낌이 든다.
주변길은 거의 밭이고 농작물로 길 주변을 이루고 있다.
태풍으로 인하여 중간 주막들은 모두 피신하고없다. 고동재에 올라서니 오른쪽산길로 접어들어라고
허수는 왼팔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사진을 한장 남겨보기로 했다. 혼자다 보니 사진찍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나무가지위나 베낭위에 올려서 찍을수 밖에.....
겨우 고동재를 넘었는데 쌍재라는 조그만재를 하나 더 넘어야 하나보다.
쌍재를 가는중간 산불감시초소 12:40분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쌍재로 향한다.
쌍재는 그렇게 멀지는 않다 1시 8분에 쌍재에 도착하여 또 휴식을 취한다.
다시 가야할길 걷고 또 걷는다. 월요일이라 사람들은 보이질 않고 간혹 한두람이 지나갈뿐이다.
비가 많이 내려 계곡은 온통 물바다이다 넉넉한 계곡의 물은 냇가를 만들어 계곡아래도 폭폭소리를
내면서 내려간다. 어떤곳운 무서울정도의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기도 한다.
온 천지가 물의 나라에 온듯하다.
비가 얼마나 내렸으면 이정도일까 정말 무서울 정도이다.
(상사폭포)
상사폭포위을 돌아 내려오면 멀찌감에 상사폭포를 바라볼수 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어 땀은 벌써 아랫도리를 다적시고 오랫만에 큰 베낭을 메어서인지 힘이
많이 빠졌다.
하는수 없이 상사폭포 아래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맡겼다. 너무나 시원하다.
내가 한참 목욕을 하고 있는데 서울분 3분이 지나가신다, 알탕을 안하고 있어 다행이다.
나중에 다시 이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울에서 휴가차 부부와 처재 세사람이 왔다고...
그나마 땀을 씻어내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볍다.
다시 베낭을 짊어지고 휘파람을 불며 내려온다. 계속이어지는 계곡은 조금 미끄럽고 질퍽하기도 하다.
비가 계속내려서인지 습기는 금방 얼굴과 팔뚝에 이슬이 맺히고 숨소리도 가파진다.
오랫만에 베낭을 메어서인지 어깨도 아프고 힘도 제법 많이 든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면 멀리 거대한 시설을 만나게 된다. 저게 무엇인고 카메라에 담고 다가가면
추모기념관이다.
여기가 방곡마을이다. 방곡마을에 6.25 한국전쟁당시 함양,산청양민학살사건의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다.
잘 정돈된 추모고원은 개방되어 있고 사건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기념비에까지 갈수있다.
가서 묵념을 올리고 추모공원앞 쉼터에서 오늘은 여기서 쉬기로 했다.
시간은 오후 3시 50분 동강까지 가야하는데 방곡마을이 너무 평온하고 좋아보여 그냥 여기서 하루 누하기로
하고 텐트를 쳤다.
요즘 시골도 잘 정비되어있고 쉽터도 아주 좋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느티나무 아래에 거의다
만들어져 있는 쉽터에 그냥 텐트를 쳤다.
그리고 너무 이런시간이라 저녁을 해먹기에 그렇고 쇠주를 한병사서
없는 안주에 그냥 한잔 때린다. 맛있다. 누가 머라하게나 내가 한잔하겠다는데 ㅎㅎㅎㅎ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전에 밥을 해서 먹는다
옛날 고등하교때 자치하는던 생각이 난다 냄비에 밥해서 그대로 다 먹어치우는 그리고 반찬이라야
김치랑 오래먹을수 있는 멸치에 고추장 된장에 고추 ㅎㅎㅎ 이거면 진수성찬아닌가.
오랫만에 내가해먹는 곱슬곱슬한 밥을 개눈감추듯 해 치웠다.
추모공원넘으로 노을이 붋게 물들며 넘어간다.
노을이 붉게 물들면 내일의 일기가 좋다고 했든가. 문득 이문세의 붉은노을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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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노을 바라보면
슬픈 그대 얼굴 생각이나
고개 숙이네
눈물 흘러 아무 말 할 수가 없지만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나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그 세월 속에 잊어야할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면 눈감아요
소리 없이 그 이름 불러요
아름다웠던 그대모습
다시 볼 수 없는 것 알아요
후회 없어 저 타는 노을 붉은 노을처럼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나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어데로 갔을까 사랑하던 슬픈
그대얼굴 보고싶어 깊은 사랑
후회 없어 저 타는 붉은 노을처럼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나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그 세월 속에 잊어야할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면 눈감아요
소리 없이 그 이름 불러요
아름다웠던 그대모습
다시 볼 수 없는 것 알아요
후회 없어 저 타는 노을 붉은 노을처럼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나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나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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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욕망이 저 노을처럼 붉게 타 오르는듯 하다. 이렇게 첫날의 휴식은 산청의 추모공원앞에서 어둠과 함께 뭍혀져 가고 있다.
2일차
아침은 여느때와 같은 시각에 찾아왔다. 어제저녁 노을은 내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간밤에 비가내렸다.
텐트가 비에 흠쁙젖었다. 다행이 아침밥 해먹어라고 비는그쳐주었다. 그래서 아침을 해먹고 그 그릇에 슝늉까지 해서 따뜻하게 잘 먹었다. 반찬은 어제저녁과 동일했다. 그래도 신선한공기를 마시며 먹는 아침은 꿀맛같았다.
오늘은 어제 많이 걷지 못했기에 2코스를 지나 3코스까지 가는게 목표였다. 아침을 일찍 해먹었기에
출발을 서둘렀다.
7시 21분 텐트를 챙기고 추모공원을 출발한다.
7시 40분 동강에 도착함.
추모공원에서 조금만걸어면 동강이 나온다. 추모공원을 출발할때부터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제오후 지나온 계곡은 비와함께 운무에 잠겨있다. 돌아보는 길은 멀고도 멀었지만
앞으로의 길이 더 멀기에 걸음을 재촉한다.
동강을 지나면 동강을 따라 계속 걸음을 걷게된다 아침의 신선함이 물씬풍겨오지만
내리는 비는 하염없다. 비가 많이 내려 동강은 물바다처럼변해 있다.
길 주변의 논은 비가 내려서인지 더 푸른빛을 발하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백일홍꽃이 아름답게 만발하여 걸음을 한번 멈추게한다.
이쪽저쪽 걷는 길마다 백일홍나무들이 즐비하다.
(제4코스:동강-금계 ): 동강마을-구시락재-운서마을-세동마을-모전마을(요유담)-국도-
의중마을-금계
동강을 출발하여 구시락재를 하나 넘는다 뒤에보이는 재가 구시락재이다.
구시락재는 낮으막한재라 쉬이 넘는다 그러면 운서마을 그리고 세동마을이 나온다.
운서마을은 마을이 거의 산으로 되어있어 산에의지하여 생활을 하는동네라고 한다.
계단식 논이 정겨움을 한층 더해준다.
물이 풍부하고 기온이서늘하여 아마 쌀도 맛있을거로 생각되어진다.
세종마을 어귀에 있는 누각이 옛풍을 자랑하며 멋들어지게 서있다.
태풍으로 인하여 동강은 물난리상태이고 주변 집들은 모두 피난을 간상태였다.
온동네가 폭우로 인해 패이고 덮혀져 도로는 토사로 넘처있었다.
동강의 물살은 거세게 흙물을 싣고 남강으로 흘러흘러가고있다.
엇그제는 비가 얼마나 내렸으면 사진의 중앙부까지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저 정도면 내가 걷고 있는 도로까지 물이 차고 흘러내렸음을 증명하여 준다.
세동마을과 함께 뻗어있는 용유담계곡 : 지리산을 유람하던 선인들이 여흥을 즐겼다는곳으로 마적도사와 아홉용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조금 쉬면서 여유롭게 쉬었다 갈만한곳으로
아름다운곳이였다.
용유담을 뒷배경으로 하여 길손에게 한컷을 부탁하였다.
오랫만에 만나는 길손이다, 태풍과 비로 인하여 둘레길사람들이 별 없었다 뛰엄뛰엄 한두명의
탐방자를 만날수가 있었다. 간혹 만나면 반가울정도였다.
용유교 다리위에서 흘러가는 물결을 담아본다.
용유담을 지나 국도를 계속걷게된다. 지겨울정도로 국도를 따라 걷다보면 금계에 다다르게 된다.
눈에 자주익은 백무동 칠선계곡 그리고 한국의아름다운길 오도재. 반가움이 앞선다.
베낭은 비에젖어 무겁고 국도를 1시간가량 걸었으니 비와 땀이 범벅이되어 피곤을 몰고온다.
그래도 금계까지 빠른걸음으로 움직이다 보니
11시 07분 금계에 도착을 했다. 일주일전 여름휴가때 이길을 차를타고 뱀사골로 갔던 길이다.
그때는 승용차로 왔었는데 오늘은 땀과 비와함께 도보로 이길을 힘들여걸어서 도착을 했다.
위의 사진이 금계식육점이다.
벽송사와 서암정사는 다른코스가 있는데 세동마을에서 국도코스를 타는 바람에 들리지 못해아쉬웠다.
금계에 가면 지리산안내사무소가 있다. 안내사무소에 들려 금계~인월코스에 대한 대강의
안내를 받고 금계를 출발한다.
(제3코스 : 금계~인월) 금계마을-창원마을-등구재-상신암삼거리-장항교-징항마을-배너미재-
수성대-중군마을-인월면
2일차 어제 1일차 못걸은 거리를 좁힐려니 조금 많이 걷기로 하였다. 점심을 금계에서 먹기엔 너무 이르고
딱히 먹을만한장소도 없었다. 그래서 창원마을에가서 먹기로 하였다. 오늘 점심은 창원마을에가서 사먹기로
마음을먹었다.
금계를 출발하면 바로 오르막이 펼처진다. 오르막을 계속올라가면 펜션이즐비하다 요즘펜션들은 잘지어
아름답고 참 좋다. 오르막이다 보니 카메라낼 여유도 없다 한참을 땀뻘뻘흘리면서 올랐다.
오르다보니 어제첫날 추모공원에서 만난 3명의 서울분을 만나게 된다.
나는 추모공원에서 잤지만 그3먕은 동강을 지나 용유담이 있는 세동마을까지 가서 잤다고한다.
그런데 2일차 여기서 만나니 반가워 인사를 걷넸다.
금계에서 창원마을까지가는 고개도 예사고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고개를 넘고나니
이렇게 좋은 풍경이 펼처진다.
온통 산은 운무로 둘러쌓이고 그 운문은 산을넘고 훨훨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앞에 가을은 성큼 내게 다가와있다. 알토란같은 밤송이가 가을의 연서를 내게 전달해주고 있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산천이 비에젖고 운무에젖고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창원마을로가는 재에서 두명의 젊은청년을 만났다. 그들은 사진찍는것에 열중하면서
무심코걷고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셧터를 눌렀다.
배가 고파올쯤 창원마을에 접어든다 논이 나오는것 보니 마을인가 보다
태풍이 지나간자리지만 벼농사는 그렇게 피해없이 푸르름을 머금고 있다.
고추도 탐스럽게 자신의 자태를 숨김없이 세우고있다. 이번 태풍이 직접영향도 있었지만 여기 마을들이
계곡아래라 바람의 영향보다 폭우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
시간이 오래되어 배가 많이 고팠다. 그런데 막상 창원마을에 도착하니 밥먹을곳이 없어보였다.
동네는 한산했고 길을물을 사람들도 눈에띄지 않는다 민박집은 일반가정집을 민박으로 빌려주는 집과
그리고 하늘길쉼터민박이 있을뿐 밥을 사먹을곳이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늘길이 있는 야트막한 고개를 오르고
오르고 보면 나리꽃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비젖은 길옆에.....
그리고 비탈길을 두세발 걸어 내려오면 하늘길에서 사진을 찍어면 "하늘을 제일 가까이 만나는곳"이라고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사진을 부탁했는데 나그네가 사진을 잘못찍었다.
사람을 가운데두고 양쪽에 하늘이 나오게찍어야 하늘이 더욱 가깝게 보이는데 실패.
하늘길을 지나면 바로 창원마을에 도착한다.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는 창말(창고마을)과 옆동네 원정마을이 합처저서 창원마을이되어다고한다. 함양으로 가는 오도재의 길목마을로 닥종이가 유명하고 풍요로운 마을이다
1박2일에서 호동이와 은지원이 힘들게 걸어 도착한 창원마을 다랭이논으로 이름을 날렸던곳이다.
식당은 창원마을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12시 20분 창원마을 식당에 들려 정식 5,000원에 맥주한병 3,000원으로 허기진배를 가득 채워본다.
지리산 산골 음식이라 모든 찬들이 맛이 있다. 돼지고기뽁음보다 나물들이 더 맛있다.
여기서 서울에서온 3명 그리고 사진찍기에 열중이 2명의 친구들도 밥을 함께 먹었다.
걷다가 보니 무언의 유량친구가 되었다.
이제 등구재를 넘어 중군마을이나 인월까지 가야 하루밤을 묵울수 있으니 식당주인에게 대강의 길을
물어본다. 그 사람말로 등구재는 금방이면 올라간다고 했다. 그렇게 쉽게 말해주었기에
1시 20분 창원마을을 출발하여 등구재를 향해 걸었다. 내가 먼저 출발하고 젊은친구 2명도 따라 나셨다
보슬비가 슬슬내렸고 걷는동안 비는 내렸다 멈췄다를 여러 수십번 반복하고 있다.
등구재를 오르다보니 태풍으로인하여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있다 그리고 그 나무는 길을 덮어
보행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등구재는 창원마을 식당주인의 말처럼 금방오르는재가 아니었다, 아홉번의구비를 돌아야 된다고해서
등구재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면서 식당사장에게 욕은 몇번했을거다.
30분이면 올라선다더니 나참.
한참을 걸어 등구재를 뒤로하고 장항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위 사진 등구재황토방이 나온다.
내가 코스의 역으로 걷기때문에 1코스에서 보면 반대가 될것이다.
등구재 황토방에서 창원마을에서 만나 두친구가 막걸리를 한잔하고 있었다. 창원마을식당을 나올대
지름길을 택하여 나보다 앞서 온것이었다. 인사를 또 나누고 비가 많이 오니 쉬어가라고 했다.
그래도 일단 걷기로하고 난 바로 출발을 했다.
호동이와 은지원이 들렸던집이라고 사진이 붙어있다.
등구재를 넘어서면 이제 함양군을 지나 남원시로 접어들게 된다.
남원시의 첫동네 매동마을이다.
폭우가 쏟아지 둘레길은 질퍼질퍽하기도 하고
운무속에 뭍힌동네와.
더둑더 푸른빛을 띄는 논벼들이 마음을 더 푸르게 만들어준다.
이슬보다 더 강한 비를 머금고 있는 들판은 싱싱함이 뭍어있다.
계속 비는 내렸다. 말들도 비을 맡고 있다.
저 멀리 등구재를 뒤로 하고 매동마을도 뒤에 남겨두고
장항마을에 접어들었다.
서울3명 나그네는 매동마을에서 1박을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장항교밑 강물은 금방 퍼부은 폭우에 흙탕물로 변했다.
장항마을을 뒤로하고 배넘이재를 향하는길목에 장항당산이 버티고있다.
[노루목 당산 소나무] 보호수로서 4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관리주체는 함양군 산내면장이란다 ㅎㅎㅎ
( 배너미재정상 )
장항마을을 돌아돌아 우측으로 둘레길을 벋어나면 배너미재로 향한다
길가엔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나무들이 길을 점령하여 통행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베낭이 크다보니 나무가지에 걸려 낮은포복을 몇번이나 해야 지나올수가 있었다.
배넘이재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거의 대부분 서울사람들이 많았고 지방사람들은 광주등등
소수 인원이었다. 그리고 5코스에서 1코스로 향하는사람의 거의 없고 1코스에서 5코스
방향의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날 역방향인사람은 나와 사진찍기 2명 서울3명뿐이였다.
배넘이재 접어들면서 서울나그네가 지금가면 수성대계곡을 지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기들이 건너올대 물이 무릎까지 찼는데 지금 비가 더 내리면 건너지 못할거란 말을 전해주었다.
걱정이 되었다.
이왕 장항마을을 뒤로 했고 시간도 여기서 멈추기에 제법 많이 남은 시간이라 가기로 했다.
쉬지않고 걸었다. 비는 가면 갈수록 점점 세차게 내렸다. 내가 수성대 계곡을 얼마남겨두지
않을쯤은 폭우에 가깝게 내렸다. 마음은 조급했고 쉴수는 없었다.
멀리서 말무리들이 비호처럼 달리는 소리가 우르르 났다
겁이 왈칵 났다. 무슨소리인가. 수성대였다.
물이 제법 불어있고 허리까지는 아닌것 같았다.
나는 계곡의 위쪽으로 조금올라가 폭이 제일 넓은장소를 선택해 바로 건넜다.
쉴틈이 없었다. 워낙 많은 폭우가 내렸기에 1초의 지체를 두지않고 계곡을 건너는데 성공을 했다.
가슴이 많이 떨렸다. 이런계곡을 건다다 죽는구나. 바로 그기가 수성대였다.
(거창수성대는 아님) 수성대: 식수로 이용이 가능하고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물이 불어 건너기 어려움.
수성대를 지나 2~3분 걷어나오면 임도길의 시멘트길이 나오고 그기에 나그네쉼터가 나온다.
비가 많이 내리다보니 할머니가 주막을 접고있었다.
할머니 장사마치세요? 아이고 이제 비가내려서 수성대를 못건너, 그러니 올 사람도 없고 문닫아야지.
할머니 막거리 한사발만주세요 아이고 그기 건너다 죽다 살았는데 막걸리나 한사발합시다.
할머니의 막걸리 한사발을 단숨에 들이키고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동이가 그기 수성대계곡옆 포장마차에서 라면 6개를 먹었다나. 배도크지 우리집에 와서는
라면먹고나서 배가불러 차한잔 마시고 갔어 ㅎㅎㅎ 섭섭함의 말이였는지,
하연간 내 뒤로 보이는 프랭카드에도 강호동이 쉬어간 두번째 쉼터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호동이랑 은지원의 사진이 주막마다 거의 다붙어있다
중군마을에서 텐트를 칠려고 했었는데 워낙 내린 폭우로 텐트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주막
할머님이 추천해준 민박집에서 어제밤 젖은 텐트랑 베낭 그리고 옷가지 양말 모두
민박집 방바닥에 놓고 선풍기로 말렸다.
저녁은 민박주인집에서 5,000원의 밥을 맛나게 먹었다. 그날 그 민박집에서 나혼자 덩그러니 티비보면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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