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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9(주일) ◈ 눅 9: 51-62 굳게 결심하시고 십자가(승천)로 가시는 예수님과 철없는 제자들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9: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9: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9: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9: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주 해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하자, 예수님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배척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에 제 삼일에 살아나는 복음을 선포하신 후에 제자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제자도는 싫고 변화산과 같은 체험을 계속해서 원했다.
하나님은 변화산의 영광을 통하여 그의 말을 들으라(십자가와 부활, 제자도를 들으라)고 하셨으나 여전히 제자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알아 듣지도 못한다.
-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디아스트레포, 비뚤어진, 왜곡된) 세대”라며 책망하셨다. 제자들의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비뚤어지고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 제자드은 예수님의 표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자신들의 병자 고침으로 사람들이 칭찬하고 따라다니면서 도와 달라고 하자 마음이 높아져서 오만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1. 두 번이나 수난예고(9:22, 9:44)를 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1) 예수님은 수난 예고를 하시고 수난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2)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수난이 “승천(하늘에 올라가실 날)”을 위함이라고 말한다.
- 그렇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십자가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 십자가는 장사됨으로, 장사됨은 부활로, 부활은 승천을 향한다.
3) 원래 하늘에 속한 예수님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심은 땅에 속한 우리를 데리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기 위함이다.
-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실 날이 차가매,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2. 하지만 우리를 하늘로 이끌기 위해서는 “수난,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넘어 우리의 죄를 담당하사 죄가 되심으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해야 한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주님이 아버지로부터 버림 당함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주님은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2)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의 버림받음”이라는 수난을 통과하기 위해 아버지께 즐거이 복종하시는 주님도 “굳게 결심(마음을 확정)”해야 했다.
3. 예수님이 굳게 결심하시고 사마리아에 사람을 미리 보내어 숙소를 준비하게 하였으나 거절당한다.
1)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깊은 적개심 때문이지만, 사마리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서의 숙소를 거절하는 사마리아인들이다.
2) 야고보와 요한은 분하여서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3) 제자들은 “감히 어딜”이라는 마음이다.
-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는 제자들 자신을 거절한 것처럼 여겨져서 적개심을 드러낸다.
4)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함으로 기쁨이 충만할 때, 거절당하고 비난당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멸하고 싶은 적개심과 분노가 폭발한다.
4. 예수님은 거절한 자에 대하여 분노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다.
눅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1) 예수님은 “가장 참혹한 경멸과 수치와 거절”당하기를 “굳게 결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2) 그래서 이렇게 작은 거절에 적개심을 보이는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 제자들도 이보다 더한 거절과 경멸과 수치를 주님과 함께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3) 55절 난하주: “그리고 그는 너희는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한 자인지 알지 못하느냐?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4)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도 “누가 크냐”며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제자들은 십자가의 거절이 아니라 일반적인 거절에도 분개하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들이었다.
5.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가면서 사마리아도 구원하려고 하셨지만 거절당했다. 그래도 예수님은 거절감으로 분노하지 않고 다른 마을로 가신다.
1) 굳게 결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첫걸음부터 거절로 시작된다.
2) 그러나 거절과 경멸을 통과하여 승천하기로 굳게 결심한 주님은 계속 길을 가신다.
6. 십자가(승천)을 향해 “굳게 결심”하고 가는 여정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려면 동일하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굳게 결심”해야 함을 말씀해 주신다.
2)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은혜요, 은혜로 따르게 된다.
3) 그러나 우리 편에서는 “굳은 결심”으로 세상을 등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
7. 세 사람의 제자 지원자는 예수님의 탁월한 가르침과 능력 행함에 초점을 두고 따르기를 원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다.
1) 첫 번째 제자 지원자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2)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대답하신다.
- 예수님을 따르려면 머리 둘 곳 없이 부르심을 따라 나그네로 살아가야 한다.
3) 첫 번째 지원자는 예수님을 따라 다녀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에 보금자리도 없다는 말에 돌아간 듯 하다.
8. 두 번째 지원자에게는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라고 먼저 말씀하신다.
1) 예수님은 “죽은 자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2) 장례식을 치르는 일은 당연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부르심”이 더 중요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9. 세 번째 지원자는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예수를 따르겠다고 말한다.
1) 그러나 예수님은 이 당연한 요구 역시 거절하신다.
2)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10. 예수님은 제자들이 “머리 둘 곳이 없어야 한다”거나 “장례식과 가족과의 이별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1) 지금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를 가르치시고 있다.
2) 그리고 친히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고난받고 십자가에 죽기로 굳은 결심을 하셨다.
3)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르려면 제자들은 복음과 그 복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영광과 함께, 제자도가 있음을 알고 따라야 한다.
4) 때로는 머리 둘 곳 없이 다니며, 장례식과 가족과의 이별까지도 포기해야 한다.
11.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따라 승천하는 곳까지 따를 제자를 부르고 계시다.
1) 이미 부름 받은 12제자조차 이 길을 알지 못하며,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가 되었다.
2) 예수님을 새롭게 따르겠다는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고 자원한 것이 아니다. 지금 12제자들은 누가 크냐며 한껏 자만해져 있고, 헛된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 지금 제자를 자청하는 자들도 12제자의 뒤를 이어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헛된 희망이 가득하다.
3)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변화산의 영광이 있다.
- 그러나 이 영광은 십자가에 참여하는 자,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누리는 영광이다.
- 그러기에 먼저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가 요구된다.
12. 예수님은 3년이 넘도록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1) 예수님은 신자에게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제자도를 가르치지 아니하신다.
2) 그러나 때가 되면, 표적을 나타내 보이시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며, 그들과 함께함으로 자신을 알게 하신 어떤 때가 되면 제자도를 통해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3) 지금의 가르침은 사도행전에서 활약하는 사도들로의 초대다.
4) 우리 모두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확실하나, 감히 “나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5) 초등학생이 수능을 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자기 때에 합당한 시험을 거치고, 자기 때에 맞는 부르심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지혜다.
13.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들”이 필요하다.
1)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기초를 놓을 사람들, 복음의 터를 놓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 사도들이 자기 부인 없이, 십자가를지지 않고 복음의 터를 놓는다면, 그 교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만다.
3) 예수님의 때가 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나 하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제자들을 부르시는 때다.
14.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신나게 전하는 시기로 기뻐할 때는 지나갔다.
1) 이제는 머리 둘 곳 없이 지내며,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십자가를 져도 하늘의 영광을 보며 주님을 따를 때가 된 것이다.
2) 이 고난의 길은, 진리로는 “승천하여 영광을 얻는 길”이다.
15. 주님도 “굳은 결심”으로 가야할 길이 있는데, 우리도 마땅히 “굳은 결심”으로 가야할 길이 있다.
1) 주님도 “굳은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가기 어려운 길이 있었다. “굳은 결심” 없다면 우리도 생명의 길, 승천하는 길을 갈 수는 없다.
2) 깨닫지 못하는 제자,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제자들일지라도 “굳은 결심”으로 주님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주님의 때에 그 은혜로 굳게 결심하고 주님을 따르게 된다.
3) 지금은 사마리아인의 거절에도 분개하는 제자들이지만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제자의 길을 끝까지 가게 된다.
◈ 나의 묵상
주님이 “굳게 결심”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예수님의 사랑, 복종, 하나됨, 영광이면 굳은 결심이 없어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승천하실 것 같다. 그러나 참사람으로 머리 둘 곳도 없이 지내시며 배척당하는 것, 무엇보다 겟세마네와 십자가는 예수님조차 “굳게 결심”하여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분은 연약한 인간, 나와 같이 모든 시험을 당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진 참사람이시다.
굳은 결심을 한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전에는 굳은 결심으로 주님을 따르고, 헌신하며, 영전 전쟁하기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이 되어지지 않았다. 머리 둘 곳 없는 곳을 피하게 되고, 험하고 고생하는 길을 피하게 된다. 굳은 결심으로 주님을 따르며 놀라운 경험은 했으나, 그 굳은 결심 때문에 제자들처럼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 누가 크냐를 논하는 자가 되었다. 그 굳은 결심이 나의 의가 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굳은 결심”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고 하신다. 나는 “굳은 결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고, 사마리아인에 분노하는 제자들과 같다. 나의 자존심이 중요하고, 나를 거절하는 자에게 분노한다. 십자가의 엄청난 거절과 경멸과 고난은 고사하고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 일에 분노하는 제자들과 같다.
성정이 나와 같은 제자들을 주님이 다 아시고 부르셨다. 그리고는 한 번도 그 부르심을 후회하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결국은 그 나약하고, 오만한 제자들을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심으로 부활에 이르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게 하셨다. 알아 듣지도 못하고, 듣기 싫어했던 그 길을 가게 하신다. 그 부르심과 그 은혜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그 은혜가 나를 일으키며 붙들어 인도하신다. 주님의 은혜는 찬양받기 합당하시다.
굳은 결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처럼 주님과 함께 간다. 주님께 책망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는다. 못 알아들어도 주님과 함께하는 이 여정이 좋다. 못 알아 듣는 주님과의 교제, 주님과 마음이 다른 주님과의 동행이 때론 마음 아프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랬다. 그래도 그들이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복이고 지혜인가? 나도 주님의 은혜로 그 날이 올 때까지 주님과 함께한다. 못 알아듣고, 때론 듣기가 싫고, 마음이 달라도 주님과 함께한다. 주님은 나를 배척하지 않고, 나와 함께 그 여정을 가 주신다.
주님이 배척하지도 않았는데, 나 스스로 주님을 떠나고자 하는 교만에 쉽게 빠진다. 주님보다 더 의로운 척, 더 양심있는 척 한다. 그런 나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함께 동행하여 주신다. 못 알아 들어도, 누가 크냐는 삐뚤어진 마음이 되어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착각해도 주님은 다 아시고도 함께하여 주신다. 역겨워서 함께할 수 없는 자를 사랑으로 함께하여 주신다. 나는 다만 그 은혜와 사랑을 아는 지각을 구한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한다.
◈ 묵상 기도
주님도 굳은 결심으로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삐뚤어진 저는 굳은 결심으로 십자가를 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사도로 세워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내 안에 있는 예수 생명, 그 겸손한 생명으로 주님의 결심을 품고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그 모든 수고를 행한 후에 주님이 하셨다며 경배하도록 저를 빚어 주십시오. 어린양 사막을 가오니 성령님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불안한 영혼이 주 품 안에 거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손 안에 거합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을 행하려 하지 않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손길에 맡깁니다. 저의 영혼의 여정도, 몸된 교회도, 복생캠프도, 주일예배도 맡깁니다. 그리고 오늘도 중환자실에 있는 장 집사님을 주님의 은혜의 손길에 맡깁니다. 이미 평안과 치유를 주신 주님, 기도하지 않는 자의 기도도 들으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의 단비로 장집사님에게 임하여 주십시오. 그 차가운 곳에서 따스한 주님의 품안과 평안과 기쁨을 맛보며, 주님의 사랑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여 주십시오. 인생의 여정이 벅찬 양들을 주님이 돌보아 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합니다. 주님은 전능자이시오 우리와 함께 부활하신 주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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