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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 같은 신앙인(1811.2017.7.30)
행 10:1-8
할렐루야! 인사-서로 신경을 살려서 영혼을 사랑하며 전도합시다.
사람이 머물고 간 곳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그 흔적은 수많은 기억들을 생산해 냅니다. 물론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이 좋지만, 좋지 않는 기억도 있습니다. 기왕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기억을 남겨야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를 기억하십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하시는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고넬료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물 중에 하나입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하나님으로부터 기억에 남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겸손한 자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구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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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면 아주 좋은 일일 것입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속에서 아니 나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속에서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특별한 행운입니다. 그런데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중에 두가지 일 것입니다. 나를 아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사람과 나를 아주 나쁘게 기억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끼리는 아주 은 관계로 기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특별히 하나님이 기억해주신 고넬료라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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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라는 곳은 욥바에서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총독인 가이사 아구스도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입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해 자신뿐 아니라 가정 나아가 주위 사람들을 구원시킨 내용을 갖고 이 시간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넬료는 어떤 사람인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이라 함은 약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장교를 말합니다. 그는 사회 신분적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팔레스타인에 대한 로마통치의 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로마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식민 통치 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을 경외한 자입니다. 그 뿐 아니라 늘 기도에 힘쓴 자였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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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넬료의 신앙은 가족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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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절‘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기도가 무엇입니까? 위기를 뚫고 나아가는 창문과 같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뚫고 나아갈 길은 열린 창문뿐입니다. 기도는 환난의 때, 기쁨으로 부를 수 있는 찬송과도 같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해결해 줍니다. 기도는 스위치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유익이 옵니다. 우리의 심령이 클클하고 냉랭할 때 찬송을 부르면 심령이 위로를 받고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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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는 언제 기도했습니까? 환난의 때만 기도한 것 아닙니다. 고통당할 때만 기도한 것 아닙니다. 본문에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항상 기도가 무엇입니까? 쉬지 않고 기도했다는 말이요, 기도를 호흡처럼 하고 기도를 양식 먹듯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어려울 때만 기도하지 말고 잘 될 때도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은 어려울 때에 철야하며 기도하다가 잘되어지면 교만해집니다. 교만 떨다가 몽땅 잃어버리고 맘니다. 우리 상주가족 여러분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무릎꿇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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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처럼 기도를 쉬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눅 18장의 한 과부처럼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목회자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기도가 앞장서야 합니다. 얼마만큼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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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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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를 통하여 은혜를 체험하고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얻고, 기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성도와 목회자의 관계도 그것이 능력되고 축복이 되려고 하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설교를 들어보세요. 맛이 다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기도시간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기도하다가 옥중에 갇힌 베드로가 철문을 뚫고 석방되었습니다. 기도는 모든 것이 없는데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창고입니다. 기도 있는 가정에는 마귀가 틈타지 못합니다. 기도 있는 가정에는 야곱이 받은 은총이 있고, 아브라함이 만난 여호와이레 하나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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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 가정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기도가 있었고, 자녀의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는 가정, 가정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가 있는 가정에 말씀이 있고, 찬송이 있고, 성령이 충만합니다. 때문에 복된 가정이 저절로 된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의 앞길을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됩시다. 공부못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도록 성적이 올라갑니다. 믿음을 갖고 기도하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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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아름답고 복된 일인데 고넬료는 온 집안 식구들과 더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것을 볼 때 그의 인격과 신앙이 얼마나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정의 가장의 신앙이 바르게 세워짐으로써 이처럼 온 가족이 함께 신앙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고넬료는 구제에도 열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항상 기도하는 경건한 삶의 습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으며 백부장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바쁜 중에도 시간을 정해놓고 개인 기도시간을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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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가정에서 예수 믿는 한 사람이 가족복음화를 이룰 수 있고 한 사람 고넬료 때문에 가정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편 고넬료 때문에 그 아내가 예수 믿고 현숙한 부인 됐습니다. 아버지 고넬료 때문에 아들 딸들이 예수 믿고 모범생들이 됐습니다. 가장인 고넬료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 등 온 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믿는 한 사람 때문에 가족 전체가 구원받았다면 오늘 우리들에게는 큰 희망이 있습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우리 일가친척이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넬료와 같이 보여주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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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으면서도 가정에서 식구들이 보는데서 교회 불평을 하고 목사욕을 하고 성도들을 흉본다면 그 가족은 구원받기가 힘든 가족입니다. 어찌되었든 가족들을 구원시키려고 한다면 내가 잘 믿어야 하고 내가 잘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내가 잘해야 가족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가족들은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고 살기를 축복합니다. 가족이 미우면 아직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미우면 들어오거나 나가자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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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우면 미운대로 신경써주고 살고, 사랑하면 사랑하는대로 신경좀 써주고 살기를 바랍니다. 옆사람과 인사---000 신경쓰며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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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한 사람이 이만큼 소중합니다. 이러한 축복이 교회를 섬기는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3절‘하루는 제구시쯤’이라 했습니다. 고넬료가 제 9시쯤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도’입니다. 할렐루야! 무엇을 하고 있었다고요. 기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가족구원을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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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습니까? 제9시 기도시간에 천사가 고넬료 가정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야 부르고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설교자 베드로를 청하라. 어쩌면 꼭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모릅니다. 만사에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부임할 때가 있고 퇴임할 때가 있습니다. 부족한 종에게도 때가 있는지라 여러분은 항상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고넬료가정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가정 같은 교회요, 교회 같은 가정이 고넬료 가정입니다. 본문에서 설교자를 찾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세가 어떠해야 할까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하려면 불가불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증거할 종을 모셔야 합니다. 어떠한 자세를 하나님의 종을 모셔야 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가정이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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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넬료의 신앙은 경건한 믿음이 있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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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생활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뛰어 넘을 때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직장 일, 농장 일로 바빠서 예배에 못 나온다, 손님이 와서 빠져야 할 것 같다, 집안 잔치가 있어서 참석할 수 없다 등등. 주어진 생활 조건을 조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을 많이 봅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신앙을 외려 본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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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무엇입니까? 2절‘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경건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많이 구제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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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경건이란 ‘좋은 예배 자’라는 의미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가리켜 경건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경건생활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 경건은 무단한 자기와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장교였지만 경건을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세계를 제패하던 로마제국의 장교로서 그의 위풍과 당당함, 하늘을 찌르는 그의 권세는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고자 했습니다.자신만 하나님을 경외했던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신앙의 기본자세가 바로 정립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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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우리도 그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 말은 ‘이웃 앞에서 경건,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 자기 자신과의 경건’을 의미합니다. ‘경건한 사람’이란 확신에 가득 찬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생활이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경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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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복음화를 이룬 가장입니다. 가족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가족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 가운데 가장 귀한 은총은 가정이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가정과 가족이 다 같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단번에 온 가족이 예수를 믿는 경우는 드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를 믿어 그 가족들을 구원시키는 일이 허다합니다. 고넬료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고넬료가 되어야 합니다. ‘온 집안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온 집’이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말합니다. 자녀는 물론이고 그의 부하나 노예들까지 모두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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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경외’는 하나님 앞에서 나타내는 ‘두려움, 존경, 공경’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그의 독실한 신앙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혼자만 독실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다 독실한 가족입니다. 인간들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이지만 인간은 상대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자이지만 인간은 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 자이지만 인간은 무능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창조자이지만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십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한 사람입니다. 여기 구제는 ‘착한 행실’을 의미하는데 ‘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궁핍한 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왔다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귀족입니다. 지체 높은 권세자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나라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 유대나라, 피 식민지 백성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많이 구제했다는 것은 어떤 특정 개인을 구제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틴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생활을 합니다. 그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자존심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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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귀족성은 절대로 타협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고 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이것 먹고 힘내라는 차원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의 권세와 부를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적인 사역입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구제를 조금하고 자기 이름을 과시하기 위한 오늘의 현대인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구제(4,31절)였는데 그가 베푼 구제는 눈가림이나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구제를 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의 ‘신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생기는 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초월하는 힘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상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내 것을 나누게 됩니다. 누굴 위해서 희생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고넬료는 노예들까지 배려했습니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둔군 장교임에도 군림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까지 관심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고넬료는 유대인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에게까지 상달되고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사가 그 가정에 좋은 소식을 들고 방문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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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속담에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는데, 뱉은 말, 쏜 화살, 과거생활, 그리고 게을리 한 기회’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는 기다려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실천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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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도 ‘양수집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양손에 떡 하나씩을 쥐고 이 떡을 먹을까 저 떡을 먹을까하고 망설이다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또 ‘상하사불급(上下寺不及)’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랫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까? 윗 절에 가서 먹을 것을 달랠까? 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끼니때를 놓쳐서 못 얻어먹고 굶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자니 세상 것 놓치기가 아쉽고, 세상 것에 매이자니 하나님이 두렵고, 결국 세상일도 마음대로 못하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하게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는 다 지나가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주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주어진 생명과 환경 속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된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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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순종의 믿음’입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욥바에 있는 시몬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집으로 청하라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순종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입니까?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입니다. 반대로 고넬료는 군대의 고급 장성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사람인데 고넬료는 유대를 식민지로 통치하는 로마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부락무식한 천민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학문과 사회적 권세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천사의 말인지라 순종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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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하나님께 기억된 바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에녹, 노아, 요셉, 사르밧과부, 나아만 장군, 수넴여인 등등 모두가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순종하며 삽시다. 하나님께 기억된바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넬료도 기억된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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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두 번째는 겸허의 믿음입니다. 고넬료는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러니까 백 명을 거느린 군대 장교입니다. 게다가 통치권을 가진 로마의 관리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베드로를 만났을 적에 어찌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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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0:25-26절‘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상사가 하사에게 절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인이 종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비록 신분이 식민지 백성이지만 고넬료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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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에게 베드로를 하나님의 종으로 존대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이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이 말씀을 믿고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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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넬료의 신앙은 말씀대로 움직이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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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고넬료가 천사의 내방을 받았으니 보통사건이 아닙니다. 사람이란 누구라도 처음 당하는 일은 다 두렵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넬료가 천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고넬료야’ 부르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당장 정신을 가다듬고 ‘주여! 무슨 일이나이까’라고 응답을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씀이든지 하시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순종의 대답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자꾸만 달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위한 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제와 봉사와 헌신이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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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천사를 통하여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상달했다’는 것은 ‘하나님 보좌에 올라갔다’는 의미요‘기억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기도뿐입니까? 그의 구제도 상달이 되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인간은 수지맞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억되고, 봉사가, 구제가, 헌신이 기억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6절‘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천사는 고넬료에게 사람을 욥바로 보내 피장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종 베드로에게 가르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건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바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본문 5-6절을 보면 고넬료의 환상의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입니다. 시간적으로 지금 ‘즉시’하라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지금 즉시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베드로도 주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자 즉시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청해 와야 할 사람의 이름은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이 흔하였기 때문에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고넬료는 생전에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장소까지 명시되었습니다. 욥바에 있는 피장 시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 집은 해변에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욥바는 9:43절에서 나오는 사건과 연결이 됩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곳에서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다비다도 신앙이 좋은 여 제자였습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심히 많이 한’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자 많은 과부들이 울면서 그를 살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룻다에 있었고 기별이 와서 욥바에 내려가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43절을 보면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날 머물게 된 것은 고넬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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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자는 계속해서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피장 시몬의 집은 해변가에 있다고 했습니다. 피장은 가죽 세공업자입니다. 당시 가죽업 종사자는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직업이므로 마을에서 떨어져 살았습니다. 또한 피혁 가공 작업상 물이 필요한 것이었고, 어떤 학자들은 무역을 위해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 집에 영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임시로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고 있다고 함으로 급히 사람을 보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청하는 방법도 고넬료가 직접 가지말고 사람을 대신 보내라고 합니다. 너무 생생하고 구체적인 지시였습니다. 고넬료는 이 기막힌 환상과 그 지시에 얼마나 속으로 감탄했겠습니까? 참으로 세밀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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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천사가 떠나자 고넬료는 즉시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의 순종은 대단히 신속했습니다.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요사이 말로 하면 비서직인데 고넬료가 신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 종졸가운데 한 사람을 보냈는데 그는 군인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고넬료 자신만 경건한 것이 아니고 가족 뿐 만 아니라 자기 가정에 있는 주인까지 종졸까지 다 경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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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고넬료는 저들에게 자기가 보고들은 환상의 진상을 다 말하고 그 심부름하는 자들에게 목적의식을 확인 시켜 주었습니다. 사실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그 당시 배경으로는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베드로는 식민지 나라의 갈릴리 바다의 어부인데 반해 고넬료는 로마의 엘리트 군인의 신분입니다. 당시 로마의 정규사관 학교를 나온 백부장 정도 되면 공중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신속히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경건의 신앙훈련을 쌓았던 덕입니다.
고넬료는 믿음의 종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 종들을 신뢰했습니다. 이는 고넬료가 그 하인들을 신앙의 방법으로 교육하고 다스렸다는 증거입니다. 종들은 주인 고넬료와 같은 마음이 되어 곧 바로 욥바로 갔습니다. 그 먼 길을 왜 보내었습니까?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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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초청한 이유는 33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여기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고넬료는 베드로를 초청하고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24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했습니다.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고넬료는 주의 종을 하나님의 종으로, 그의 입으로 나오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경건’입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이 겸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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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러분에게 좋은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하여 말씀이 살아서 역사 하도록 기도하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고 설교를 들으시면 아주 은혜로운 말씀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쳤어’ 그렇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고넬료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고 고넬료와 같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이 있는 교회, 말씀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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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함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에 어떤 말씀을 전했습니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입을 열어 축복의 말씀을 하늘에서 내리는 소낙비처럼 내렸습니다.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구원을 주시는 예수입니다. 38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어 보내심을 받은 자다, 38절 예수님은 눌린 자에게 자유와 병든 자에게 고침이 되신다, 39절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40절 예수님은 우리의 의롭다 함을 위하여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39절 우리 모두는 이러한 예수님을 위한 증인이로다. 베드로는 다른 말씀을 전하지 아니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예수만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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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함을 받고 왔던 베드로를 만났을 때에 고넬료의 자세를 또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천사처럼 베드로를 대했습니다. 꾸벅 절을 했습니다. 고넬료는 백부장이고 고넬료는 권세가 있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랬을 때에 베드로의 말이 무엇입니까? 나도 사람이다. 주의 종도 사람입니다.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 같은 사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고넬료와 같은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종은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협력자가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기도가 응답받고 어떻게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까? 아론 있었기 때문이요, 훌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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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들이 본문에 나타난 ‘고넬료 처럼’ 목회자를 생각하고, 삭개오 처럼 뽕나무 위에서 내려와서 진정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을 삼기는 것처럼, 모세를 도운 아론처럼, 훌처럼 겸허해서 주의 종을 잘 섬기는 동역자가 되어질 때에 온 교회는 만세반석위에 서게 될 것이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로 믿어 마지않습니다. 가정 같은 교회입니다. 교회 같은 가정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온 성도들에게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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