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과 불자 등의 권속에 의지하여 능히 심(心)·의(意)·의식(意識)의 자기 마음의 자체경 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니라.
依善知識佛子眷屬하여 而能得見心意意識 自心自體境界故니라. [入楞伽經 ; 大正藏 16 p. 523중]
'심의 의식(意識)의 자체경계'는 자기 마음의 진여본성으로 심의식의 피상적인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의 지도에 의지하여 불성, 진여 본성을 깨치면 심의식의 근본 자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환상같이 공허한 육신이 곧 법신이며, 번뇌에 덮인 심의식의 본성이 바로 진여자성이라는 말을 자연히 알게 됩니다.
비유하면 바닷물이 움직이면 여러 가지 물결이 일어나듯 아뢰야식도 그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여러 식을 생하니 심·의·의식의 여러 가지 모습 때문에 설하느니라.
譬如海水動하면 種種波浪轉하듯 梨耶識亦爾하여 種種諸識生하니 心意及意識을 爲諸相故說하니라. [入楞伽經 ; 大正藏 16 p. 523 중]
아뢰야식은 바닷물과 같고 기타의 여러 식은 바닷물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물결과 같이 아뢰야식의 바다 위에서 7식, 6식의 모든 식이 그로부터 생하므로 심·의·식을 여러 가지 모습에 따라서 설한다는 것입니다.
심(心)은 교묘한 기술자와 같고 의(意)는 교활한 자와 같으며 의식(意識)과 전5식은 헛되고 망령되어 경계를 취하느니라.
心如巧伎兒하고 意如狡猾者하며 意識及五識은 虛妄取境界하니라.
[入楞伽經 ; 大正藏 16 p. 557상]
이것은 심의식의 작용[行相]에 대하여 말한 것으로, 그 중에서 교묘한 기술자와 같다는 것에는 악의가 별로 없으나 교활한 사람과 같다는 것에는 무지와 번뇌에 가득 찬 악의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의식 중에서 아뢰야는 그 행상이 미세하고 제7식은 아상(我相)이 깊다는 것을 비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의식과 전5식은 허망하게 모든 경계를 취해서 망령되어 분별만 하여, 그 행상이 거칠게 겉으로 드러난 상태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