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눈을 뜨게 해 준 뉴질랜드 1년, 카투사 생활 21개월 보고서
올해 첫 징병 검사가 1일부터 시작됐다. 징병 검사는 곧 입영과 연결된다.
어떤 등급을 받아 어느 분야에서 어떤 보직으로 군 생활을 하게 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청춘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재수, 삼수로 인생 역정에 성공한 사람들을 흔히 본다.
그러나 이 분야는 평생 딱 한 번의 기회만 있을 뿐이다.
그 이름은 카투사(KATUSA :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카투사는 주한 미8군에서
복무하는 한국 육군요원을 가리킨다. 원활한 한미 연합방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군과 미군을
연결해 주는 역할이다. 이는 양국군의 연합 전력을 한 차원 증강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10여년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홍석주 씨(25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그가 어떻게 영어를 정복하고 그 어렵다는 카투사에 입문했는지 비결을 알아봤다.
14일 서울 영등포구청 옆 한 카페에서 만났다. 비단 카투사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도전은 귀 기울일 만하다.

<카투사 시절 미군 두 명이 본토로 가기 며칠 전 석별을 아쉬워하며 찰칵. 가운데 홍석주 씨. 사진 홍석주 >
뉴질랜드행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자 아버지께서 갑자기 뉴질랜드에 가서 영어를 배우지 않겠느냐고 묻더군요.
전 장난인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내주시면 가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진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아버지 지인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그 분을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아버지께 당장 보내 달라고 졸랐습니다."
사업차 해외 출장이 잦았던 그의 어버지는 일찍이 영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바로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표와 어학원 수강료, 홈스테이 비용만 챙겨들고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 처치. 기내식을 건네며 승무원이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끄덕였다는 그의 영어 정복기가 궁금했다.

<뉴질랜드 포도농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당시 같은 숙소를 썼던 사람들과. 이 때 카투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진 홍석주>
"홈스테이를 하면서 어학원을 다닌 지 8주 정도 되니까 귀가 열려서 말이 한 단어씩 끊어져서 들리는
거예요. 몸집이 우람했던 주인집 아저씨가 '축하한다'며 저를 번쩍 들더군요.
오전에는 어학원 다니고 오후에는 일본, 타이완 등 외국 친구들과 놀거나 주인집에 5세,11세 어린
아이들과 조잘대며 놀았는데 놀면서 영어를 썼다는 것이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어설프게 영어를 하면 자신이 알던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차라리 백지상태로 가는데 더 낫다고 조언했다.3개월 어학원코스와 2개월간의 비즈니스 잉글리시 코스를
밟으니 어느 정도 자생력이 생겼다. 한국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거쳐 포도농장에서 일하던 중
생소했던 카투사에 눈을 떴다.

<뉴질랜드 포도농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로퍼를 들고 나무 가지를 정리하다 잠깐! 사진 홍석주 >
카투사에 눈 뜨다
"한국에서 온 예비역 형이 '너는 군에 가야 하니 카투사가 어때?
한국 가서 토익 보고 점수되면 지원해봐'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카투사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그냥
넘겼습니다. 고교 때 난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쳐 솔직히 현역이 안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징병검사에서 의외로 3급을 받아 군에 가야할 처지였습니다."
2008년 8월에 귀국해 학교생활을 하던 참이다. 2009년 4월, 그의 어머니는 토익을 보는 것을 권했다.
1년간의 뉴질랜드 생활을 마치고 그동안 한 번도 보지 않았던 토익을 5월에 보니 715점이 나왔다.
두 달 후 다시 봤더니 775점, L/C부분은 점수가 좋았지만, R/C부분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카투사 지원가능 커트라인 780점 고지에 다달아 재도전한 결과 2009년 8월 토익 성적이 820점이 나왔다.

<사업차 해외출장이 잦았던 아버지가 심어준 영어의 중요성. 정보를 알고 있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카투사지원에
힘을 얻었다. 부대에 면회온 어머니와 숙소에서. 사진 홍석주>
카투사 지원은 매년 9월에 있고, 그 당시 유효한 어학 성적이 있어야 한다.
그의 어머니 임정연(53) 씨는 매월 카투사 경쟁률을 확인, 6월이 가장 낮다는 정보를 알고 6월에 지원할
것을 권했다. 지원하고, 카투사 합격통지가 나오기 한 달 전이었다.
'내가 무슨 카투사가 되겠어? 안 되면 되도록 빨리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현역 자원입대를 신청하고,
그나마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느 날, 영장이 나왔고, 영장을 취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투사
합격통보 뿐이었다.
"사실 저는 빨리 군대 가고 싶었어요. 친구들은 군에 다 가고, 예비역도 있는데 저는 미필이었으니까요.
카투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갑자기 군대를 가버린다면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영장에 명시된 군 입대 날짜를 3일 앞둔 어느 날, 카투사 합격통보를
받았지요. 2009년 11월 육군에 지원해 그해 12월 입영날짜가 나와 있는 상황에서 한 모험이었지요."
군사외교관 카투사를 말하다
2010년 6월 논산훈련소에서 일반 병들과 함께 5주간의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의정부에 있는 Camp Jackson의 카투사 교육대(KTA)에서 3주간 훈련을 거쳐 평택에 있는
camp humphreys의 557헌병중대에서 근무헌병으로 복무했다.
그의 직무는 범죄와 사고예방을 위한 부대 주변 순찰이었다. 부대 주변에서 미군과 한국인의 마찰이
생기면 해결하는 역할도 했다. 외국생활 경험이 미군을 이해하고, 영어를 말하는데 거부감이 없도록
도움이 되었다.

<병장 시절 훈련 중 험비라는 미군 차량 안에서. 이 차는 헤드셋과 방탄헬멧 착용이 필수. 사진 홍석주>
"서울대 출신에다 토익이 900점대인 후임이 있었는데, 말하기가 저보다 잘 안 돼서 힘들어 했어요.
저는 그 후임보다 토익점수도 대학교도 좋지 않지요. 그러나 제가 카투사 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1년이나마 외국 생활을 해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차이를 좁히는 계기도 되었고요.
카투사는 워낙 적은 인원을 뽑습니다. 입대하고 KTA에서 교관님들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는 대한민국
1% 라고 하셨죠.
일정 영어 성적을 갖추면 추첨을 통해 공개선발을 하기에 탈락했다고 낙심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만점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 떨어질 수도 있고, 커트라인에 있는 사람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카투사와 비슷한 한국군 어학 병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카투사에 떨어진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또, 카투사에 붙었다고 해서 자신이 너무 편할 것이라는 생각만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찌되었건 군 복무이고, 군사외교관으로서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하는 이유 때문이에요."

<전역을 앞두고 소대원들과. 대원들은 군사외교관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각오로 임했단다.. 사진 홍석주>
뉴질랜드에서 영어공부를 했다면 카투사에서는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고,
다양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인 친구들을 사귄 것도 큰 재산이다.
외국인에 거부감이 없어지고 안목이 넓어졌다는 점도 카투사가 준 선물이다.
뉴질랜드와 카투사 생활을 통해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시험을 위한 문제풀이에 너무 치중한다는 것을
느꼈다. 뉴질랜드에서 외국인 친구 또는 홈스테이 아이들과 놀았던 경험, 군 복무를 하면서 미군들과
생활이 영어를 체득하는 길이었음을 밝혔다.
대입을 앞두고 난 교통사고로 4개월 간 병원신세를 졌다. 당시는 눈앞이 캄캄했다.
의사도 현역 입대를 장담 못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의연하게 대처한 결과 인생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았다. 카투사 복무 21개월을 마치고 작년 3월 전역한 그의 또 다른 도전은 세계를 향해 사업을 펼치는
일이다.
<취재: 청춘예찬 최정애 어머니 기자>

첫댓글
멋져부러유우웅. 





이야아앙. 

대한의 아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