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195문, 기도⑨. 24.3.3, 박홍섭 목사
제195문, 여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여섯 번째 간구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에서(마 6:13) 우리는,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공의로운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우리가 공격받고 넘어지고 유혹에 잠시 사로잡히도록(대하 32:31), 또한 사탄과 세상과 육신이 우리를 강력하게 곁길로 끌어내어서 덫에 걸리도록 그렇게 섭리하실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대상 21:1, 눅 21:34, 약 1:14). 그리고 우리가 죄를 용서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부패하고 연약하고 깨어 있지 않아 시험을 받으며(갈 5:17, 마 26:41), 우리 자신을 시험에 내어 줄 뿐만 아니라(잠 7:6-9), 우리 스스로 시험에 저항하거나 시험에서 빠져나와 회복하려 한다거나 시험을 자기반성과 성장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지도 않고(롬 7:23-24), 또 그럴 마음도 없어서 시험의 권세 아래 내버려 둠을 당함이 마땅하다는 것도 인정합니다(시 81:11-12).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요 17:15), 육신을 굴복시키며(시 5:10), 사탄을 제어하시고(욥 1:12, 2:6),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고전 10:12-13), 은혜의 방편들을 활용할 때 우리 안에 경각심을 일깨워주셔서 우리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죄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행 20:32, 마 26:41). 만약 우리가 시험을 받게 된다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붙들어주시고(엡 3:14-16), 시험의 때에도 든든히 서게 하시기를, 혹 넘어지더라도 거기서 다시 일어나 회복되게 하셔서(시 51:12), 그 유혹 받음이 오히려 우리로 거룩하게 되고 성장하는 데 사용되기를(벧전 5:8-10), 그래서 우리의 성화와 구원이 온전하게 되며(살전 3:13), 사탄이 우리의 발아래에 짓밟히게 되고(롬 16:20), 우리가 영원히 죄와 시험과 모든 악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살전 5:23).
해설
1. 시험과 악에서부터 보호하고 지켜달라는 이 기도는 우리가 늘 시험 앞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여기 시험이라는 단어는 훈련과 연단을 위해 허락되는 시련이라는 뜻도 있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유혹의 뜻도 있습니다. 시련과 유혹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시련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유익한 훈련이지만 유혹은 넘어지게 하고 망하게 하고 파멸시키는 무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 시련을 주시기는 하지만 유혹하지는 않습니다. 유혹은 마귀가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는 이 기도는 시련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의미입니까? 유혹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뜻입니까?
2.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 자체로 흑과 백을 나누듯이 어떤 것은 시련이고 어떤 것은 유혹이라고 구분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과 마귀가 주는 시험도 명백하게 구분하여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욥이 당한 시험은 하나님이 욥을 위해서 준 테스트입니까? 아니면 마귀가 욥을 망하게 하려고 준 유혹입니까? 둘 다입니다. 욥이 당한 일은 하나님이 허락한 시련인 동시에 마귀가 준 유혹이기도 합니다. 한 사건을 두고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연단하여 세우고자 하셨고, 사탄은 욥의 신앙을 파괴하려 했습니다. 신자의 삶에도 한 사건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상반된 두 의지가 함께 작동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꼭 집어 유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이중적 의미가 있는 시험(페이라스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건은 한편으론 거룩한 시련이 될 수 있고 또 한편으론 악한 유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보다 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갑니다. 이 사람에게 어려운 일은 거룩한 시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이 사람에게 어려움은 유혹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잘될 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일이 잘되는 바람에 교만해지고 믿음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이 기도는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일이 유혹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하고 나를 더 성숙하게 하는 기회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왜 매일 이 기도를 해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지켜주시지 않으면 언제든지 유혹에 빠져 넘어질 수도 있고 하나님이 주신 시련도 견디지 못하고 실패하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4. 왜 우리가 주기도문의 여섯째 간구를 매일 해야 합니까? 우리가 연약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유혹하여 시험하는 악한 사단의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존재와 활동이 실재하기에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는 자연스럽게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로 연결됩니다.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할 때 ‘악’이란 단어는 중성 명사도 되고 남성 명사도 되는데 중성 명사로 보면 ‘악한 행위’를 가리키고, 남성 명사로 보면 ‘악한 자’, 즉 ‘사탄’을 지칭합니다. 그러기에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를 ‘악한 행위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의미도 되고 동시에 ‘악한 자, 사탄에게서 구하옵소서’라는 의미도 됩니다.
5. 우리의 삶은 물질과 인간관계의 문제만 아니라 하늘의 세계와 영적인 존재인 천사와 악한 사탄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생각하는 만큼 낭만적이지 않고 선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의 죄 성과 더불어 그것을 부추기고 유혹하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 때문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보면 각 분야, 각 영역에 악이 도사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정치, 경제, 법조, 문화와 각 영역 사이의 악한 구조 고리들, 폭력과 왕따, 끝없는 지역이기주의, 공해 물질 배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동원하는 모든 불법과 불의와 거짓말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 단면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도 악이 있고,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학계와 종교계 속에도 사단이 조장하는 악은 교묘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6. 이처럼 사단은 단순히 우리 개인을 유혹하고 도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이 사회 전체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악한 목적을 진리와 정의라는 이념의 옷을 입혀서 그 사회나 집단 전체를 속일 수도 있습니다. 히틀러가 나치즘을 당시 독일국민들에게 선과 정의라고 세뇌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때 나치즘을 신봉하는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당시 독일의 복음주의 교회는 히틀러와 그 일당이 하는 죄악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찬동하며 기도하기까지 했습니다. 필립 얀시가 바하와 베토벤, 루터와 괴테 그리고 브람스를 배출한 나라가 어떻게 히틀러, 아이히만, 괴링과 같은 인간들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라고 탄식했을 정도로 사단은 한 국가와 그 국가에 속한 백성들의 양심을 속이고 교회의 신앙을 민족주의와 국가라는 이름으로 마비시켜서 악을 행하도록 역사하기도 했기에 우리는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7. 대요리문답 제195문은 죄와 악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발생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죄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죄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면 하나님은 죄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분이 되어 버립니다. 대요리문답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지극히 크신 지혜와 의로우심과 은혜로우심으로 거룩하고 공의로운 여러 목적을 위해 때로 악을 허용하시고 우리가 시험을 당하도록 섭리하신다고 가르쳐줍니다(대하 32:31, 대상 21:1, 눅 21:34, 약 1: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도 하지만, 그 시험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선하신 섭리임을 믿고 시험을 당하여 어려운 형편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8. 성도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부패한 본성과 죄와 악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갈 5:17, 롬 7:23-24). 그래서 시험을 받을 때 우리 스스로 이 시험에 저항하거나 시험에서 빠져나와 회복하려 하거나 시험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자기반성과 성장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는 시험의 권세 아래 내버려 둠을 당함이 마땅합니다(시 81:11-12).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요 17:15), 육신을 굴복시키며(시 5:10), 사탄을 제어하시고(욥 1:12, 2:6),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고전 10:12-13), 은혜의 방편들을 활용할 때 우리 안에 경각심을 일깨워주셔서 우리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섭리로 죄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행 20:32, 마 26:41).
9.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조금도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우리가 더 성장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고 든든히 서게 해 주옵소서(엡 3:14-15). 혹 시험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회복될 수 있게 해 주소서(시 51:12). 회복될 뿐 아니라 그 유혹받음이 오히려 우리를 더 거룩하게 만들어 우리의 성화와 구원이 온전하게 되게 해주소서(벧전 5:8-10, 살전 3:3). 하나님의 은혜로 사탄을 발아래에 짓밟는 승리를 맛보게 하시고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우리의 몸과 영혼이 온전히 보전되게 해 주소서(롬 16:20, 살전 5:23).” 이렇게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영적인 진보와 승리와 성숙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0.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는 우리를 시험과 악에서 지켜달라는 소극적인 의미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도가 시험과 악에서 보전되려면 이 세상에서 도피함으로가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있으면서 말씀의 진리로 거룩한 자가 되어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악에서 지켜달라’는 기도는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는 적극적인 기도로 우리를 이끕니다(요 17:15, 17). 성도는 악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외면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뛰어넘어 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거룩한 삶으로 악을 이기고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11. 신자의 삶은 불구대천의 원수인 사단의 공격이 늘 있고 사탄이 조장해놓은 세상의 가치관과 우리 안의 타락한 본성이 이끄는 유혹이 늘 있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시련을 받아낼 수 없고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절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구하게 되고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며,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고집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지체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시련을 견디지 못하며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사단이 주는 유혹에 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