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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2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황의찬 전도사)
『제사장 멜기세덱』
히7:11~28
< T.V 청취 소감 >
유선 방송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니까, 유재석이 사회를 보는데, 연예인 부부 대여섯 쌍이 출연하
여 부부간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노사연-이무송 부부, 개그맨 갈갈이 부부,
가수 조갑경 부부 등등이 나와서 배우자의 못 마땅한 점들을 이야기하도록 사회자가 유도했습니
다. 그러자 봇물 쏟아지듯이 상대의 단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거기서 들은 얘기인데, “방귀를 트고 지낸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말을 튼다는 것은 서로 말을 편하게, 반말로 하고 지내자는 뜻인데, 방귀를 트고 지내자~ 무슨 뜻
인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방귀를 참지 말고 거침없이 내지르자! 이것을 방귀를 트고
지낸다고 합디다. 여러분들은 결혼 후 얼마나 지난 다음에 방귀를 트게 되었습니까?
☻ 저희 부부는 저는 완전히 트고 지내는데, 아내는 반쯤 트고 지냅니다.
상대방이 방귀를 너무 심하게 뀐다는 불평에서부터, 신혼시절 부부싸움을 하고 아내가 집을 나
가겠다고 하면서 나간 후, 몇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동차에 들어가서 잠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결혼하지 얼마 되지 않는 개그맨 노홍철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
신혼부부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한 마디 했습니다.
“그렇게 싸우고 다투면서 왜 삽니까?” // “여러분은 왜 삽니까?”
그 질문에 저 스스로 답을 해 봤습니다.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여인이 그 여인이다.’
‘싸웠다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 찾아봐야 맹 그게 그거 아닌가? 그러니까 산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결론이 뭡니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다 바쳐서 수양을 한다고 해서 완전한 존재가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완전하기를 요구합니다.
더욱이 부부간에 그렇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완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 기
대치에 못 미치면 불평합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입니다.
자기는 그렇지 못하면서 상대에게 완전을 요구합니다.
언제까지 그럴까요? 죽을 때까지 그렇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이 그런 얘기입니다.
(11절)『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
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
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레위』누군지 기억하시지요?
야곱의 셋째 아들입니다. 레위가 어떤 인물이었지요?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을 축복할 때에 레위에 대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창49: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는 ‘아삼육이요, 그들 손에 칼이 쥐어지면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포악한 녀석들이다.’ 이제 기억나시지요? 바로 그 레위입니다.
나중에 이들 열 두 형제 중에서, 셋째 레위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직책이 제사장 직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의 후손들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대신 성전을 관리하는 직분을 맡습니다. 성전을
관리하면서 백성들이 가져오는 온갖 제물로 하나님 앞에 희생 제사를 지내고, 그 예물로 살아가
게 됩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목회자인 셈입니다.
이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뭐라고 했습니까? 제사장,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집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율법 시대에는 레위 족속이 아니면 아무도 제사를 집례 할 수 없었습니다. 레위 족속이 아
니면서 제사를 집례 했다가는 죽습니다.
그만큼 제사장이 하는 일은 대단히 거룩한 일입니다. 율법 시대에 레위 족속으로서 대 제사장이
아니면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는 일이 아무리 거룩해도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실수하고, 소리 내어
방귀도 빵빵 뀌어대는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11절)『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레위의 후손이 바로 모세와 아론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의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내용 중의 하나로서 “아론은 제사장이 되고, 대대로 아론의 후손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규
정을 했습니다.
그 내용을 성경은 『아론의 반차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따라해 봅시
다. 『아론의 반차』 아론의 계보, 아론의 서열이라는 뜻입니다.
11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11절)『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
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
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부족한 인간에게 제사장 직분을 율법으로써 허락하셨기 때문에 이 율법은 영원할 수
가 없다는 뜻입니다.
부족한 인간과 완전하며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를 하게 되는 역할이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이 하나님의 완전함과 거룩함에 근접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냄새나고 불완
전한 인간이라는 존재였다는 뜻입니다.
자 이러한 제도로 언제까지, 영원히 지속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 모세의 형님인 아론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는 시대는 대략 1천 년 동안 지속되었
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아론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는 사람들이 점점 타락합니다. 백성
들이 타락할 때, 제사장만이라도 중심을 잡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
떤 때는 백성들보다 제사장들이 더 타락한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었을 때, 자기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예물을 가지고 성전에 속죄 제사를 지내
러 옵니다. 예를 들어 이웃 간에 싸움을 해서 살인했다거나, 아니면 중상을 입혔을 때, 이들은 속
죄 제물을 마련하여 성전에 있는 제사장에게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사장이라는 직책이 조금은 애매합니다.
마치 장의사의 사업 번창을 바란다는 것이, 사람이 많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유사합니다.
요즘은 산부인과가 번창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날로 번창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축복할 때는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모두 당당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환자를 전문으로
하는 정형외과 병원장에게 “병원이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하면 뭔가 좀 찜찜합니다. 마
치 교통사고 많이 나서 환자 많기를 바란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사장들의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입니다.
호4:8『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호세아 선지자가 타락한 제사장들을 준엄하게 책망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백성들의 속죄 제물
로 배를 채우면서 마음을 백성들의 죄악에 두었다는 말입니다.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
도다 라는 말은 ‘저것들이 더 큰 죄를 저질러야 더 어마어마한 제물을 가지고 올 터인데’라는 뜻입
니다.
그러고 보니 제사장 직책이 보통 어려운 자리가 아닙니다. 온 백성이 깨끗하면 제사장이 굶어죽
을 수도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제사장.
그래서 하나님은 이 제사장들에게 대단한 권위를 부여합니다.
신17:12『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
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여기서 재판장은 요즘처럼 사법고시 패스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 역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들이 필요에 따라서 재판관이 됩니다.
이렇게 제사장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사장들이 백성들과 똑같이 타락합니다.
저나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까요? 어떻습니까?
야, 그때 내가 제사장이었으면 절대 그럴 일 없었을거야! 그런 사람 있습니까?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제사장이 흐지부지 되어버립니다. 흐지부지 되고 보니 이제는 레위 핏줄을 찾기도 힘들게 되었
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제사장을 세우고 싶어도, 레위의 후손, 아론의 후손을 찾아내기
도 힘들만큼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소나 개나 다 제사장이 됩니다.
그런 시절이 무려 400년이 지속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 400년을 그래서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혹은 중간기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런 암흑기를 깨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사장이 되셨다. 제사장 중에서도 대 제사장이
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뜻입니
다.
저나 여러분이 만약에 지금 태어나지 않고,
암흑기에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겠습니까? 꼼짝없이 지옥행입니다.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새로운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의 후손으로 오지 않으시고, 넷째 아들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넷째 아들 유다 기억하시지요?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레위 바로 밑의 동생입니다. 그 유다에게 아버지 야곱은 어떤 축복을
해 주었습니까?
창49:8~12 합독
아버지 야곱이 그렇게 축복을 퍼 부어 준 넷째 아들 유다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
고, 우리의 선지자가 되어 주시고, 또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되어주셨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시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레위의 후손이 아니라 유다의 직계
후손으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은 대제사장 직책을 어느 서열에서 비롯하느냐?
다름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셨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의 이러한 대제사장 되심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레위 지파에서 태어나셨다면 이들에게 핑계 거리가 안 되었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뜻이 계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면서 그 율법으로써 “제사장은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들이 세습하도록
한다.”고 하셨는데, 아론의 반차를 이어받은 제사장들은 백성들 못지않게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민하시지 않았겠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가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품으로 오기를 기다리
면서 여러 가지 방책을 내놓으십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 아론의 직계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장을 세워서 인간들이 죄를 지었을 때, 제사
장을 통해서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했는데, 그 제사장들 역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제사를 지낼 때는 먼저 자기 죄를 씻는 순서를 먼저 진행해야 합니다. 그런 연후
에 백성들의 죄를 씻는 제사를 지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기 죄를 씻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어떤 경우는 죄를 짓고 속죄하러 온 사람, 그러니까, 예배드리러 온 사람보다 목회자, 즉, 제사장
의 죄가 더 무겁고 중하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영구 항존 직으로 세워야 되겠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먼저 씻어내야 할 필요가 없는 죄가 없는 사람으로 세워야 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이라면 왜 레위의 후손 아론의 반차가 아
니냐고 이의 제기를 했을 법합니다. 그러자 히브리서 기자가 해명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실패로 판명이 난 아론의 반차에서 오시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에서 오신 분이
시다.
멜기세덱이 누구냐?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멜기세덱이 나오는 곳은 딱 세 군데입니다.
창세기 14장,
시편 110편,
그리고 히브리서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신비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레위 자손 아론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계
획에 의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오신 분이시다.
히브리서 기자의 설명입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 제사장에서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을까?
그 점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3~25절)『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 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거룩해야 할 제사장이 타락하고 또, 언젠가는 죽어야하는 똑같은 인간으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하게 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심으로 이제는 온전하게 우리를 구원하신다.
(26~27절)『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
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 보다 높이 되신 이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
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
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지금까지는 사안에 따라서 그때그때마다, 제사장들이 되풀이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는데, 이번
에는 예수님께서 단번에 하십니다.
(28절)『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
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오래 참으시면서 우리 인간에게 끊임없이 손짓을 하십니다.
왜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는 무엇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의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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