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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나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 사 53:1-6, 고전1:18-25 /성산교회
어떤 마을에 잘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벽에는 선명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 언제부터인가 건물 벽에 담쟁이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벽에 쓰인 글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쓰인 글 중에서“십자가에 못 박힌”이란 부분을 담쟁이 넝쿨이 가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말만 보였습니다. 얼마 후 담쟁이 넝쿨이 더 자라나서 이번에는“그리스도”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은 말은“우리는 믿는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끝내는 이 담쟁이 넝쿨이 벽을 모두 가려 원래 있던 글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으며, 무엇을 증거 하는 자들인가?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해방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예수님에게서 십자가를 빼고, 십자가에서 당한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에는 무엇이 남겠습니까? 아예 우리의 존재 가치마저도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주를 믿음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혹은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나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1)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랬습니다. 그리고 5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고난당하신 이유입니다. 병들 때 얼마나 아픕니까? 그러기에 우리의 그 아픔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말 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을 내리친 채찍은 가죽에 뾰쪽한 여러 구조물들을 붙여 한 번 치면 살을 파내는 고통스러운 채찍이라고 합니다. 견딜 수 없이 아픈 채찍입니다. 우리 아픈 질병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병들었을 때 얼마나 아픕니까? 병이 들면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픕니다. 그것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이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단이 얼마나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몸이 약할수록 더 기도하고 미래를 대비해서 건강할 때 많이 기도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 할 때 질병이나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될 때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입어 마음과 육체의 고통을 예수 앞에 다 내려놓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받고 나면 마음의 어떤 아픈 상처도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육체 역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어루만져 주시면 우리는 모든 사람과 똑 같은 육체지만 치료해 주시고 그 고통에서 평안하게 하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켜 주셔서 능히 이기게 합니다.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2)우리의 허물과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 찔리고 상하셨기 때문입니다. 5-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나 자기 허물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죄 있는 우리를 죄 없다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죄과도 담당해 주셨고, 죄 성도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은혜를 믿으면 양심의 자유를 얻고, 이 은혜를 받으면 새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으로 변화가 됩니다.
어떤 목사님의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있던 한 부인이, 목사님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있다고 대답하자, 그 부인은 "그렇다면 질문할 것이 있는데요. 자녀가 고통 가운데 빠져 있어도 구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야 물론 그런 아버지는 폭군이나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목사님 대답에 부인은 "목사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능을 가지시고 그 자녀들을 구원치 않고 지옥에 떨어뜨린다면 폭군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때 목사님은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인, 부인께서는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들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 있거나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위한 집을 따로 가지고 있고, 마귀는 그 자녀들의 집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거듭난 자들, 곧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변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자. 하나님은 선하셔서 벌을 내리실 분이 아니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어느 날엔가 냉혹한 현실을 깨달을 때가 올 것입니다.
3)우리를 대신해서 멸시를 받고, 버림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로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아 마땅하신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십자가에 달려 멸시와 수치와 조롱을 다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흉악한 살인강도를 대하듯, 강간범을 대하듯 주님을 욕하고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차갑고 따가운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당해 마땅한 멸시와 수치와 조롱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갈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에 우리가 복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저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맞을 매를 대신 다 맞아 주셨고, 우리가 망할 것 주님이 대신 다 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공로로 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복만 있기를 바랍니다.
2.주님의 십자가는 은혜와 축복을 주는 십자가입니다.
1)세상의 것들은 우리에게 참 된 복을 주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세상 부귀영화를 누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솔로몬이 처첩을 1천명이나 두면서 세상 영화를 다 누려보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허무감만 더해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라고 전2:1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다섯 번째 황제로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자기 영광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스승도 죽이고 어머니와 아내도 죽였습니다. 화려한 금관을 만들어 쓰고 상아로 궁전을 크게 지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3000명의 경호원이 그를 호위했습니다. 왕궁 안은 네로가 있는 곳까지 1마일이나 되는 길을 샤워기로 향수를 계속 뿌리게 했습니다. 그리로 걸어 들어오는 신하들이 몸에 향수가 밴 채로 네로에게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차지 않아서 나중에는 엄청난 크기의 황금 궁전을 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으로 최후를 마쳤습니다.
네로의 심령은 위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아래만, 땅에 있는 것들만 보았습니다. 위를 바라보며 여호와를 향해 문을 열지 아니하는 심령은 무엇으로도 만족이 없습니다. 골3:1-2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문을 닫아놓고 사치와 음란과 불의와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쪽으로만 문을 열어 놓고 살고 있습니까?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의 믿음의 눈을 십자가로 향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신령한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죄에서 해방되고, 죄책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과 사단의 위협과 죽음의 두려움이 십자가 그늘 아래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김인서(金麟瑞) 목사는 한국교회사에 독특한 자취를 남긴 인물로서 연세대학교는 매 년 김인서목사 기념 강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김목사는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에 일어난 삼일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 후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일이 발각이 되어 4년 간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깊은 신앙체험을 하게 됩니다. 체험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김인서 목사가 쓴 글입니다. "나는 예수교에 입교한지 십 년이 지나도록 내게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난생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자신을 애국 청년, 독립운동가, 의인열사로 자처하며 이미 옥중에 있는 죄수들이야말로 죄인들이라고 멸시하였다. 나는 옥중에 들어가 조용히 눈을 감고 정좌묵상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었다.
그러한 지 여러 달 만에 내 양심에 '너도 죄인이다.' 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나도 모르게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옥중의 죄수들은 세상 재판장에게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죄인이라는 심판을 받았으니 나는 다른 죄수들보다 더 큰 죄인인 것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매일 매일 감옥의 고통보다는 마음의 고통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홀연히 '십자가를 바라보라' 는 영적인 음성을 듣고 앞에 나타난 불꽃같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사함 받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때부터 예수는 내 예수, 십자가는 내 십자가, 성경은 내 성경, 천당은 내 천당이라는 것이 의심 없이 믿어졌다. 예수의 사랑에 삼키어진 나는 이 감옥에서 사는 날까지 십자가의 구원을 증거 하기로 결심하고 몸 바쳐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처럼 신앙 체험의 한 가운데 반드시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3)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표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성도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 위해 생명 주신 주님을 우리도 생명 받쳐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다시 고기 잡으러 옛 생활로 돌아 간 베드로에게 이 모든 것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십자가상에서 원수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서로 용서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자처럼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죄의 은혜를 주님으로부터 받아 영원한 심판과 멸망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사랑과 은혜를 받고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주님 앞에 머리를 들고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항상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는 우리의 남은 삶이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의 십자가는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1)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본문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했습니다. 여기서 도는 "호 로고스"로 십자가의 말씀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관한 말씀,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게 되는 진리 즉 복음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능력입니다. '뒤나미스'입니다. 즉 다이나마이트입니다. 폭발력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사랑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용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납니다. 율법의 포로에서 참 자유 함을 누립니다. 양심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보았을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처럼 십자가을 바라볼 때 상한 심령이 고침을 받고 쓰러지는 심령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씻어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악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곳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도가 있는 곳에는 절망이 소망으로 변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어떠한 죄악도 용서받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살인강도도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받게 됩니다.
2)십자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에게는 옛 사람이 죽게 됩니다. 거듭난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하철을 잘못타서 정 반대 방향으로 가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구파발 방향으로 가려고 3호선을 갈아 탈 때 내 느낌은 오른쪽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표지판은 왼쪽으로 가라고 표시한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따라가야 합니까? 느낌을 쫓아가야 하는가, 표지판을 쫓아가야 하는가? 당연히 내 느낌보다 표지판을 따라가야 합니다. 내 느낌을 따라가면 내가 원하는 방향의 반대로 가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을 살며 변하는 우리의 느낌에 우리는 얼마나 의존하는지 모릅니다. 느낌보다 중요한 것은 계기판이고 표지판입니다. 느낌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진리입니다. 변하는 느낌에 우리의 인생이 기초를 세우면, 우리는 계속 흔들리며 추락하는 삶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하는 우리의 느낌보다 변하지 않는 진리, 성경에 우리 인생의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 자신을 부서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잘못된 것이 많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너무 교만하고,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입니다. 이 모습 이대로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서지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자기의 옛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느낌이나 생각이나 세상 풍조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새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3)십자가는 사명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했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들은 마땅히 힘써야 할 일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모든 시련을 이길 힘을 주기도 하고, 복음을 위해 살도록 능력을 줍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가 있습니다. 1996년의 권위 있는 음악지 [클래식 CD]는 독자와 음반 소비자 조사를 통해 호세 카레라스를 클래식 음악계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했습니다. 레코딩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천만장이 넘는 클래식 음반은 단 두장이었답니다. <1990년 로마 월드컵 3테너 콘서트>, 그리고 <1994년 LA 월드컵 3테너 콘서트>, 카레라스가 바로 그 두 장의 주인공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라고 칭송을 받는 그가 그의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이 41세로 백혈병으로 쓰려졌습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나이, 이 세상을 하직하기에는 억울한 나이였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 열정을 다하여 연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사전 연락도 없이 다가온 것은 죽음의 선고였습니다. 호세 카레라스는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복음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붙잡았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골수 이식 수술과 힘든 화학치료를 받았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찬송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신을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의 공연 수익금을 모두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두나미스, 다이나마이트입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것이고 이 복음이 증거 될 때 사람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나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고, *우리의 허물과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 찔리고 상하셨으며, *우리를 대신해서 멸시를 받고, 버림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은혜와 축복을 주는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우리에게 참 된 복을 주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신령한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명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십자가의 증인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3. 3. 24.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