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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말 씀 전도서 10장 12-20절
제 목 지혜자 이신 그리스도[2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요한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시지만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신 겸손한 분입니다.
오직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육신의 사랑을 보여주며 대속의 역사를 감당하셨을 뿐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일러 준 곳에 가서 제단을 쌓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게 하고는 모리아땅으로 갔습니다.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고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급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네가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숫양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 사건을 본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겠지만 그 마음을 이기고 모리아산까지 간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분명 갈등은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만 받으셨을 뿐 이삭의 생명을 대신할 숫양 즉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삭의 죽음까지도 대신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만 성도들의 믿음뿐이며,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독생자를 먼저 선물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력이나 정성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지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매자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만 지혜자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우매자는 진리를 거짓복음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지혜자가 영혼구원을 위해 일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많은 수가 모여 악한 일을 꾸미지만 자신들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늘 곤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 위해서 우매자는 많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자를 죽일 수 있을까 논의하며 실행했지만 결국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아무리 방해해도 영원하신 지혜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 오셨고, 복음을 전파했으며 스스로 십자가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셨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우매자들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불리하게만 보였던 영적 전쟁은 예수님의 승리로 끝난 것입니다.
사탄은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죽음이 바로 예수님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사탄과 세상은 보이는 것만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도리어 성도의 인생을 방해하는 자의 열심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거센 바람이 배가 빨리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악한 자의 계략이 성도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전할 때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구차하게 많은 말이나 변명하려고 노력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리는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자신의 생각을 넣어 세상의 방법으로 세우려는 것은 우매자입니다.
16절에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리신 분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입니다.
그런데 교회나 혹은 성도들의 마음에 주님을 어린 왕으로 만들어 놓고는 자기 마음대로 그리스도께 명령하거나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 신하로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불신앙이며 불순종이기에 하나님께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처럼 부자는 날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롭게 즐기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옷이며 고운 베옷은 회개를 뜻합니다.
부자는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왕인 것처럼 호화롭게 살면서 이웃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척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고운 베옷을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의 호화로운 삶과 그 집 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나사로를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부자가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우매자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세상에서는 내 돈, 내 힘, 내 자존심, 내 능력으로 하나님과 상관없이 왕처럼 자색 옷을 입고 살다가, 교회만 오면 갑자기 거룩한 성도로 바뀌어 회개하는 척, 헌신하는 척 고운 베옷을 입는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철저한 인간의 의로 자색 옷을 입고도 칭찬과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성도들이 인간의 의를 입기 시작하면 교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왕처럼 살다가 사후에 지옥에 떨어졌을 때 아브라함에게 물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다시 살려 보내서, 예수님을 모르는 자신의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않도록 전도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게 되었는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지옥에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전형적인 우매자입니다.
우매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만 생각합니다.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처음부터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지혜자처럼 생각하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판단하고 행하면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매자는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보이는 현실을 위해서 수고만 하기 때문에 결국 그가 받는 것은 책망과 심판입니다.
18절에 이런 우매자는 게을러서 서까래가 내려앉고, 집이 새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서까래가 내려앉고 사탄이 쏟아 붓는 폭우에 잠겨도 썩어가는 세상 집에 재물을 더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재물을 채워도 집이 무너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욕심을 부리기 전에 우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세상에서 받은 축복을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둥을 세운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단단한 서까래를 설치했기에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거나 집이 새지 않습니다.
언제 태풍이 올지, 언제 사탄이 폭우를 쏟아 부을지 모르기 때문에 늘 믿음으로 준비하며, 자신을 살펴야만 온전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서까래가 모두 내려앉고 비가 새는데도 무신경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죄로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과도 같습니다.
곧 무너진다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듣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17절에 왕은 귀족의 아들이요 대신들이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예수그리스도를 존귀한 왕으로 모시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단비를 먹기 때문에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의 왕이 되어 주신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먼지보다 못한 죄인들을 기억하시고 이 땅에 찾아오신 그 자체가 놀라운 축복이고 놀라운 구원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지는 못해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혜자이며 그들이 주님께서 준비하신 처소에 들어갈 자인 것입니다.
지혜를 가진 성도는 악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충만한 은혜를 쏟지 않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 찬양을 통해 노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심령은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축복된 심령입니다.
19-20절은 좀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웃음을 위하여 떡이 만들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정말로 기뻐하고 웃을 수 있는 잔치는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떡과 보혈인 포도주를 마시므로 새 생명을 얻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성도들이 누리는 최고의 잔치는 구원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잔치와는 다른 즐거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거듭난 성도들의 영적인 축복은 새 생명을 받고 부활한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범사에 응용된다는 말은 돈은 모든 것에 대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돈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문제이든 돈이 없이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구원을 전해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답이 돈이라면, 성도의 답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영적인 문제와 육적인 문제의 답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정답을 알지 못하고 문제를 만나면 인간의 생각과 방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좌로나 우로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고,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왕 되신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자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영적인 부자가 된 성도를 저주하는 자들은 스스로 심판의 길로 들어선 우매 자와 같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욕하고 저주하고 조롱하는 것이 정말로 힘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재물과 권력이 광대하신 하나님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고 있는 성도들을 하찮게 여김으로 마음껏 저주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세상이 끝난 후에 사후세계를 만나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저주한 만큼, 그리고 거짓말을 한 만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 하나님을 버리고 지금 자신이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껏 열심히 예수를 믿었지만 그가 나에게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는 자들은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으로 부자가 된 성도들을 저주하는 죄를 범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초라해 보여도, 세상을 대항할 힘이 없어 보여도, 성령 충만한 성도들을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대속을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와 같은 악인들은 대제사장과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면서도 이 상황을 예수님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만장군을 찾아간 게하시는 몰래 금품을 받고도 그것을 엘리사가 절대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악한 행동이나 거짓말이 절대로 들키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을 철저하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저주와 거짓말을 새가 전하고, 날짐승이 전파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지혜를 버렸을 때 그 누구도 자기가 행한 악을 다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어둔 밤에 행한 악을 대낮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셨고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의 죄상을 낱낱이 드러내신 하나님의 진노를 알기에 솔로몬은 두려움을 가지고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본 솔로몬은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람을 속일 수 없으므로 절대로 죄 된 마음을 품지 말고, 믿음의 사람을 대적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 자녀가 나를 속일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 누군가 나를 해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인생 중에 고난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는 성령께서 철저하게 보호하시므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을 당했을 때, 조용히 무릎 꿇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지혜입니다.
불평 불만을 갖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인도하실 것인지, 어떤 역사로 이 골짜기에서 건져주실 것인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법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올바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이 맞느냐고 대적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결국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우매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 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영 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의 왕은 구원을 이루신 위대한 왕이므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혜가 많은 영혼을 구원할 것입니다.
진리의 답을 앞에 놓고도 다른 답을 찾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는 지혜자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6,18/조춘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