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과 『블라인드』시나리오 비교분석
영화영상학과 2007112938 허 윤
1. 분석의 성격
안상훈 감독의 연출작인 「아랑」과 「블라인드」를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비교하기 위해서 두 영화를 연달아 시청했다. 비교의 방향은 제작년도 순으로 「아랑」을 먼저 보고 다음으로 「블라인드」를 본 뒤, 전작과 비교해서 시나리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2. 「아랑」과 「블라인드」 시나리오 비교
「아랑」의 시나리오는 안상훈 감독과 신윤경이 만들었고, 이정섭과 정선주가 각색하였다(네이버 영화정보). 감독이 직접 만든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신인이긴 해도 감독의 성향이 짙게 나타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블라인드」의 시나리오는 최민석이 만들고 윤창업과 안상훈 감독이 각색하였다.
(1) 도입부
「아랑」의 첫 장면은 한 여고생이 귀신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나온 여학생은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이후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아서, 그녀가 누구인지, 왜 귀신이 그녀에게 나타났는지 등에 대해 마지막까지 궁금증이 해소되지 못했다. 첫 장면에서 이야기와 관계가 적은 인물을 등장시킨 점이 극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반면 「블라인드」에서는 첫 장면을 주인공의 시점샷으로 시작해서 영화의 특징이 되는 감각인 시각에 대한 분위기도 조성했을 뿐 아니라, 주인공 내면의 가장 큰 갈등을 만들게 된 사건을 도입부에서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도입부가 극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게 되었고, 관객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2) 주인공의 성격
「아랑」의 고참 형사 소영은 과거 성폭행을 당한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 형사가 되었지만, 소영은 복수심 보다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경찰서 구타 장면에서조차도 과격하고 거친 성격있는 베테랑 형사라기 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소영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복수심을 보여주고 성폭행범들에게 거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침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나약한 모습과 대비되어 입체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블라인드」의 수아는 소영과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여성이며, 경찰이거나 경찰이 되고 싶어 한다. 소영은 성범죄 피해자이고, 수아는 시각장애인으로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수아도 소영처럼 차분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둘 다 결말부분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목적을 이루게 된다. 두 인물의 차이점이라면, 소영은 복수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반면에 수아는 처음부터 경찰대학에 다시 입학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소영의 복수는 타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수아의 재입학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수동적인 인물에서 능동적인 인물로 발전했다고 평가된다.
(3) 이야기 구성
「아랑」의 이야기 전개는 차례차례 이어지는 연쇄살인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살인 과정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피해자의 컴퓨터로 메일이 오고, 홈페이지가 열리면서 귀신이 나타나며, 피해자는 질식사로 죽게 되는 방식이 반복된다. 때문에 관객들은 어떤 식으로 살인이 진행될지 예고를 통해 이미 알고 있으며, 극 내용을 통해 다음 피해자가 누가 될 것인지 까지도 미리 알게 된다. 일부러 이런 내용을 알려주는 것은 후반부의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지만, 초반에서 중반부까지 긴장감을 끌고 가는데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반면 「블라인드」에서는 「아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연쇄살인을 보여주는데, 여기서의 살인은 전혀 계획되어 있지 않고, 다음 피해자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르며,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관객들이 알고 있다. 「아랑」에 비해 「블라인드」가 훨씬 더 긴장감이 넘치는 이유는, 바로 이 임의성에 있다. 시도때도 없이, 뜬금없이 불쑥불쑥 주인공 앞에 나타나는 범인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아랑」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너무 방대한 이야기를 짤막한 대사와 회상을 통해 한꺼번에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너무 순식간에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려다 보니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내 경우에는 경찰서장이 왜 소녀를 죽였는지, 마지막 장면에 나온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경찰서장의 살해동기가 너무 간결하고 알아듣기 어려운 대사로 설명되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남자의 손목 흉터가 너무 작고 흐릿하게 보여서 소영을 성폭행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반면 「블라인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었다. 극 중 인물들의 동기가 단순했으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랑」은 머릿속으로 내용을 추리하는데 급급했다면, 「블라인드」는 인물의 상황을 쉽게 알아챘기 때문에 이성보다 감성을 통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등장인물을 보면 「아랑」은 두 주인공 이외에 비중 있는 인물이 없었던 반면, 「블라인드」는 조형사라는 감초역할을 첨가해 주인공의 밋밋한 성격을 극적이고 재미있게 보충해 주었다. 조형사 덕분에 인물들 간에 서로 밀고 당기는 갈등이 형성되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아랑」에서는 특별히 악당이라고 할 만한 악역이 없었는데 반해, 「블라인드」에서는 정말 강력한 악당이 너무나도 무서운 존재로 나타난다.
「아랑」의 결말은 인상적이었다. 범행을 저지른 행위자가 귀신이었다는 또 다른 반전도 재밌었지만 극중에서 거의 잊혔던 소영의 복수가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면서 마지막까지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반전은 예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많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블라인드」의 결말은 기분 좋은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이 살아남을 거라는 걸 예상하면서도 범인이 너무 강력해서 마지막까지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든 불편함을 결말이 깔끔하게 해소시켜 주었다. 두 시나리오 모두 긍정적인 닫힌 결말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취향에 부합했다고 본다.
(4) 독창성
「아랑」은 기존에 있던 공포영화의 요소를 한데 모아놓은 추리소설을 읽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기존의 공포영화와 구별되는 독창성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반면 「블라인드」는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을 200% 활용하여, 동일 장르의 다른 영화와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고 「블라인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요소들을 첨가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첫째, 안내견를 이용해서 코믹한 요소와 동정심을 유발했다.
시각장애인들의 곁에서 항상 그들을 도와주는 안내견을 통한 코믹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동물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블라인드」에 나오는 슬기도 똑똑하고 귀여운 연기를 보여주어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 때문에 슬기가 잔인하게 난도질당할 때의 비극적인 정서가 극대화 되었다.
② 범인이 바로 앞에 있어도 모르는 섬뜩함을 연출
수아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범인이 바로 앞에 나타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했다. 앞서 말했듯이 범인은 수아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고 관객들은 범인을 보지만 수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③ 시각장애인의 심리를 시각화해서 보여준 독창적 스타일
「블라인드」에서 가장 「블라인드」적인 스타일을 보여준 것이 바로 시각장애인이 지각하는 세상을 시각화해서 보여준 장면이다. 관객들은 수아가 소리를 통해 감지하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녀가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는지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④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과 부족한 장애인 복지 문제를 보여줌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지원 신호등은 오히려 수아의 목숨을 위협한다. 수아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그 때문에 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만약 뺑소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수아가 희생양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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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두 작품에서 보여준 감독의 스타일을 요약하자면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드라마 요소를 부각
시키는 특징을 보여준다. 「아랑」은 기존의 공포영화들과 달리 공포에만 치중하지 않고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슬픈 드라마를 잘 살려냈다. 「블라인드」 또한 연쇄살인범에게 쫓기는 긴장감과 함께 장애인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감춰진 슬픔을 드라마로 잘 엮어냈다. 두 영화는 주인공의 유사함 이외에 영화가 가진 사회비판의 관점에서도 공통점을 보인다. 공권력이 부패와 무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점이다. 「아랑」에서는 부패한 경찰이 은폐한 살인사건에 대한 복수를 현기 혼자 하게 된다. 「블라인드」에서는 경찰이 잡지 못하는 연쇄살인범을 경찰대학 출신 시각장애인과 청소년이 물리친다. 전체적으로 「아랑」의 시나리오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블라인드」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있었다. 안상훈 감독의 차기작이 그의 스타일을 또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 참고 문헌
• 네이버 영화정보, 「아랑」, http://movie.naver.com/movie/bi/mi/detail.nhn?code=45664
• 네이버 영화정보, 「블라인드」, http://movie.naver.com/movie/bi/mi/detail.nhn?code=
79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