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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내용을 조금더 되짚고 나서 오늘의 탈출기 12장의 내용으로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2,15-20 ㅡ 무교절, Mazzot(마쫕, מצות)
1장, 2장을 통해서 ㅡ 모세의 탄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가 있었고
그리고 나서 모세의 부르심에 관한 이야기를 ㅡ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파라오에게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를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재앙이 시작되는데 지금까지 저희가 읽은 재앙이 아직 열번째가 안 나왔습니다.
아홉째 재앙이었고 열번째는 인제 나오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전체적인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아! 하나의 이야기는 아니고 두개, 세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였나 보다 또 그안에서 어떤 약간은 좀 문학적인 불일치도 있나보다 하지만,
이야기에 흐름이었는데 그러면서 아홉개의 재앙을 나중에 보니까,
또 여러가지 다른 전승들이 그 안에 있는 것을 알아볼수는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세개, 세개, 세개씩으로 조금 묶인 그런 하나의 문학적 틀위에서 우리에게 전해졌나보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덜커덩 지난시간에 본것 처럼 지금까지의 이야기체와는 전혀 다른 문체가 등장합니다.
지난 시간에 본것이 파스카 축제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규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은, 읽으면서 재밌는 내용입니까? 아니면 조금 지루한 내용입니까? 물으시며 지루한 내용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제사상을 차릴때에는 뭐는 어디에 있어야 하고, 음식은 어떤 어떤게 있어야 하고, 방향은 어떻게 있어야 하고...숟가락은 어떻게 나야하고, 지방은 어떻게 써야하고 또 어떻게 하면서 제사를 지낸다..그런것들
아니면 미사경전에도 신자분들과 사제가 함께하는 미사 경본을 보면은 빨간글씨로, 루브리카로 불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에 사제는 팔을 어떻게 벌린다. 또 손을 모은다. 아니면 큰소리로 한다. 작은소리로 한다. 이때는 노래로 한다. 이런것들에 대한 경본에 보면은 그런 작은 것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규정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것들이 중요할까요?
그냥 맘대로 하면 되는데, 제사때나 장례때 보면 꼭 집안에 한동안 못뵜던 어른들이 나타나셔서 소리소리 지르십니다. 그런경우에 왜 그런것들이 중요할까요?
그런 규정이 중요한 이유?
ㅡ 제사를 지내는데 있어 규정들을 통하여 공동체의 정체성이 지켜지기 때문에
따라서 구약성경도 신약성경도 우리들은 신앙 생활하면 하느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일대일 관계를 생각하는데, 물로 그 차원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말씀해 주셨듯이 구약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이고
신약은 하느님과 교회(새 이스라엘)가 맺은 계약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일까요? 개인이 아닌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기위해 규정, 법규 그리고 율법들이 필요합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를 이렇게 읽어보면은 예수님이 와서 나중에 예루살렘에 와서 십자가상에서 못박히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그 장면외에 다른 모든 내용들을 보면은,
예수님이 하신 활동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냐면?
"제자(사람)들을 불러 모으시다" 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모으시다. 공동체를 만드시다. 라는 내용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리고 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루카 복음에 순서를 따라보자면, 교회의 전례력을 따라 생각해 보자면,
그 다음에 승천하시고 그리고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교회가 형성이 됩니다.
신학교과서적인 입장에서 본다면은 교회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사건부터 교회가 시작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전에 그와 같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위해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다..복음서를 보면 두 집단이 나옵니다. 유다교의 바리사이, 사두가이 외에도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복음사가들이 대개 제자들과 군중들인 둘로 구별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쫓아살려는 제자들과 예수님이 병도 고쳐주고 빵도 주고, 신기한 것도 보여주고 하니까 쫓아다니는 군중들...
나중에 그 군중들은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예수님을 변호하는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라고 외치는 광적인 군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입니다.
요즘도 가끔씩 신부님께 와서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는데
"신부님! 팬이에요." 라고 하시는
영어에 팬이라고 하는 말이 "fanatic" 의 약자입니다. 미쳤다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미치면 안된다고 하시며....
성서 백주간하는 첫번째의 목적이 광신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예수님에게도 구약의 하느님에게도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곳에 와서 신부님과 함께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공부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서 백주간 모임에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한다. 라는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그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와 함께 신앙을 나눌 작은 공동체를 발견하는 그 체험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것은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하는 거 보니까..자꾸 불편하고 그 다음에 보니까 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묵상 소리 들으려니까 그것도 별루고...나는 그냥 강의 듣고 혼자 공부하면서 하느님과 만나겠습니다."
라는 것은 구약에 하느님,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도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루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는 그것을 아직 깊이 있게 느끼시지 못한것이라는 교정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함께 하신 분중에서 '나는 공동체와 함께 작은 공동체를 발견했고, 이렇게 공동체와 함께 하느님 말씀 읽으며 묵상하면서, 강의도 듣습니다.' 하시는 분은 손한번만 들어보십시오." 라고 하시며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나머지 분들 하느님 말씀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백주간 지도신부의 입장에서
"신부님, 저희가 이렇게 백주간 모임 쭈욱 했는데, 3년하고 나서 저희 계속해서 다시한번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서로 너무 좋아서 헤어지지 않기고 했어요." 라는 얘기를 들을 때 참 기쁘시다고....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라고 하면 무서우니까?
하늘 나라로 돌아갈 때까지....이 세상 여정을 하면서 나와 함께 걸을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탈출 12,15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 מצות)을먹어야 한다. 아예 첫날에 너희 집 안에서 누룩을 치워 버려라.
첫날부터 이렛날까지 누룩 든 빵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직역해 본다면...
12,15
왜냐하면 누룩 든 음식을 먹은 모든 이에 대해
그 개인은 이스라엘로부터 잘려 나갈 것이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따라서 파스카 축제는 니산달 14일 입니다. 14일 끝나지 않고 15일부터 일주일동안 늘어나 버립니다.
그러면서 조금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잘려 나갈 것이다"
파스카 축제와 연결된 무교절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 결론에 가서 얘기하겠습니다만, 파스카 축제는 양을 잡아서 함께 먹는 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파스카 축제는 유목민의 축제입니다.
반면에 빵을 빻아서 먹는데 이때 만큼은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라는 히브리 말로 마쫕이라고 부릅니다. 파스카 라는 축제와 마쫕 이라는 축제가 함께 있다...
그런데 이 누룩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 전통은 농경민의 축제입니다.
이집트 탈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농경 축제와 유목민 축제가 결합된 형태를 보고 있습니다.
두 축제가 연결되어 있다. 날짜로 보자면은 니산달=아빕달의 14일 (보름의 달이 되기전, 혹은 보름달이 뜨는) 14일 파스카, 15일 부터 일주일간은 마쫕
여기서 누룩없는 빵들이라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마쫕의 의미 라고 합니다.
히브리말로는 끝이 옽이라고 끝나면 여성형 복수입니다.
따라서 누룩 없는 빵들( 마쫕, Mazzot)이 나중에 축제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강화가 됩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라는 규정이 조금 더 강화됩니다.
"아예 첫날에(ביום הראשון)
너희 집 안에서 누룩(שאר)을
치워버려라(תשביתו)” 라는 말로 더 강화됩니다.
따라서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것은 누룩 있는 빵이 집에 있어도 좋다는 말입니까? 안된다는 겁니까?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예, 누룩을 집에서 치워 버려라.. 그리고 나서 요 말 안에서, 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신다고 하셨지만,
요 말안에는 "집에 있는 누룩을 다 없애 버리고, 그 다음에 마쫕이라는 축제를 일주일 하고 그리고 그때부터 새로운 누룩과 함께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새로운 누룩과 함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어야 한다. 는 의미로 헌 누룩들은 다 없애버려라.
그런 것들은 한 해가 지나면서 싹 치워버려라.. 마치 집 정리하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 이제 누룩 없는 빵의 축제를 일주일 동안 하고, 그 다음에 완전히 새로운...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그런 전통이 남아있습니까? 없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전통이 있습니다.
부활 성야가 되면 사제가 부활 성야 밤미사때, 깜깜한 가운데 맨 뒤에서 부활초를 들고 오면서 "그리스도 우리의 빛" 라고 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응답하는 것,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 우리의 빛 두번째 할 때, 복사들이 신자들에게 불을 나누어 주게 됩니다. 본래의 그 전통은 뭐냐하면,
어떤 마을에 성당이 하나있어요. 그럼 마을 사람들이 부활 성야의 밤 미사를 오기전에 집에 불씨들을 다 없애 버립니다. 그러면 성당에 와서 사제가 '그리스도 우리의 빛' 하면서 두번째의 빛을 나누어 주면 그것을 자기가 갖고 간 초에 옮깁니다.
그리고 나서 미사가 끝나면은 ㅡ 그 불을 가지고 집에 와서 그 불로 화로에 새로운 불씨를 만듭니다. 그것을 가지고 일년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불로 우리가 한해를 살아간다.
그런데 요즘은 스위치만 올리면은 전등불이 올리니까, 요즘에 그런 전통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우리의 빛"하고 다 촛불에 옮겨 받고 나서 조금있다가 대영광송 시작하면 사회자가 "이제 촛불을 끄고 자리에 앉으십시오." ㅎㅎㅎ
사실은 그 불을 고대로 집에 가지고 돌아가셔서, 그 불을 일년동안 끄지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편리한 방식으로....
여기서도 그와 같은 규정을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없겠지만, 본래의 농경축제의 의미는 그것 였습니다. 일년 동안 사용했던 누룩을 다 없애 버리고, 한 주일동안은 누룩이 없는 빵을 먹고, 이제는 새로운 누룩과 함께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전통이 여기 안에 숨어있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이 구절을 이해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예 첫날에 너희 집안에서 누룩을 치워 버려라.
첫날 부터 이렛날 까지 누룩든 빵을 먹는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잘려 나간다, 히브리 말로 카랕(כרת)이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 교회 안에서 용어로 보자면은 이것은, '엑스 코무니 카시오(excommunicatio)’ 라는 라틴말로 "파문한다" 라는 뜻으로 공동체로부터 잘려 나갈것이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파문당한 경우가 있나요? 그 경우기 있습니다.
자동으로 파문되는 그런 경유가 예를 들어,
한 20, 30년 전에 그 르페브라는 주교님이 있으셨는데 교회법안에 주교님이 사제들을 서품하거나 혹은 다른 주교들을 서품할 때 교황님의 어떤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르페브라는 주교님이 조금은 보수적인 주교님이셨습니마. 예를 들어 전례가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전례는 잘못되었다.. 라는 모든 미사는 라틴말로 해야하고, 그렇게 전례를 해야지 그렇게 자꾸 야훼가 전례를 바꾸면, 교회가 세속화 된다....라는 보수적인 신학을 갖고 계셨는데
그런데 그와 같은 것들을 조금은 보편 교회,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는 공의회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 주교님한테 조금은 그런식으로 교회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라고 몇번 주의를 줬는데도 주교님이 계속 그와 같은 가르침을 전하면서 교황님의 동의 없이 보좌 주교를 임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행위 자체가 자동 파문의 경우입니다. 그래서 르페브 주교님이 자동으로 파문이 됐고 신부님이 정확한 정보가 기억이 안나시는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때 그 보수적인 교회들과 로마 교황청이 조금 화해에서 파문이 용서가 된 상황이 지금은 아닐까? 그렇게 기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정확한 정보는 아니시라고...)
아직까지도 현대 교회 안에서도 그런 자동 파문에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본당 신부한테 고백 성사 본다고 사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교구장님한테, 어떤 것은 로마의 교황청에 가서 사해질 수 있는 특별한 경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 종교 개혁을 시작했던 루터의 경우도 본래는 천주교 사제였습니다. 그러다가 파문이 되면서 종교 개혁까지 일어나게 되었는데,
참 교회의 역사로 보면은 굉장히 불행한 역사의 한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첫날에, 아예 치워버리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은 파문이 된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계속해서 사용될 용어이기 때문에 몇가지 용어를 소개하시고 파문에 관해 말씀하신다 하셨습니다.
º 마쫕(Mazzot) ㅡ 누룩 없는 빵들, 무교절, 누룩 없는 빵들을 먹는 축제의 마쫕입니다.
º 셔오르(שאר) ㅡ 히브리 말로 셔오르는 누룩
º 하메쯔(חמץ) ㅡ 누룩이 든 음식
º 마흐메쪁(מחמצת)ㅡ누룩으로 부풀린 음식
그런데 생각해 보시면 하메쯔에서 하를 빼면 "메쯔" 그쵸?
누룩이 든 음식은 하메쯔고 누룩이 안든 사람은 마짜, 그 복수는 마쫕이다..
그래서 '하"가 있으면 누룩이 있는, 하가 없으면은 누룩이 안든 것이다. 이런식의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잘려 나가다
창세 17,4 :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지 않는 남자
그 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가야 한다
레위 7,20 : 그러나 주님에게 바친 친교 제물의
고기를 부정한 상태에서 먹는 자는
자기 백성에게 잘려 나가야 한다
민수9,13 그러나 정결한 사람이나 길을 나서지 않은 사람이
파스카 축제를 거르고 지내지 않으면,,
그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정한 상태에서 영성체를 하면 안됩니까? 안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기를 먹는 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가야 한다.. 모두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혹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또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로 부터 잘려 나간다..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대한민국 공동체안에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토론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역사입니다.
같은 뿌리 같은 대화의 수단, 따라서 대한민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국어와 한국사 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와 수학입니다. 이게 조금은 잘못된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공교육이라면은, 그 다음에 그 공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회적인 정체성,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 이것이 초등학생 무상교육의 중요함입니다. 그리고 교육은 국민의 의무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초등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왜 그렀습니까?
거기에서 언어와 역사라는 그것을 통해서 그 공동체의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ㅡ 그게 굉장히 중요한 교육 과정인데 우리는 이상하게 영어 수학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심지어 그런 정체성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부정한다면 , 그들은 잘려 나간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너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엄격함을 구약 성경 안에서 만나 볼 수 가 있습니다.
탈출 12,16
첫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이렛날에도 거룩한 모임을 열어라. 이 두 날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너희가 저마다 먹어야 할 것만은 준비해도 된다.
"이 두 날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면은 안식일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안식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거룩한 모임(미끄라 꼬데슈= מקרא קדש 거룩한 교회)이 등장합니다.
"미끄라 מקרא “라는 "모임'이라는 뜻이고
꼬데슈(קרש)는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개념으로 얘기한다면은 바로 "교회"입니다. 즉 거룩한 교회 입니다.
그들이 거룩한 모임을 통해서 만났다면 그들이 만나는 목적은 전례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그 마쫕(Mazzot)이라는 무교절을 시작하면서 거룩한 전례로 시작하고 무교절을 끝내면서도 거룩한 전례로 끝내라.
하루를 시작하면서 기도로 시작하고, 하루를 끝내면서 기도로 끝내라..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여러분들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기도하고 저녁때 잠들기 전에 꼭 기도하고 잡니다. 그런분 한번 손들어 보세요....내 요럴줄 알았어..ㅎㅎ 1/3밖에 안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안의 말씀 드린것 기억하십니까?
뭐...다 기억할 순 없겠죠? 저희 본당 어린이들과 이런것을 하는데 아이들은 의외로 오랫동안 기억을 합니다. '우리 아침기도ㅡ 저녁기도 길게 하는거 힘드니까 한마디씩만 하자. 아침에 일어날 때, '하느님 찬미합니다.' 그리고 저녁 때 자기전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데 몇초 밖에 안걸려요. 이것 만이라도 하자..
이것은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달에 다시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거룩한 모임으로 시작해서 거룩한 모임으로 끝난다...여기서 '미끄라' 라는 말에는 '부른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불려온 사람들의 모임'
'하느님으로부터 불린 받은 사람들의 만남'이 미끄라 꼬데쉬 입니다.
우리도 그냥 교회라 부르지 않고 거룩하다는 말을 붙여서 '성 교회'라고 합니다.ㅡ 하느님께서 성 교회를 사랑하셔서....
이미 히브리적인 전통에 거룩함이라는 것을 교회와 함께 붙이는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꼭 대규모에 종교 집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23,3절 같은 경우를 보면은 그냥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안식일 전례도 거룩한 모임(미끄라꼬데슈, מקרא קדש)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복음에서 보면 어떤 부분이 나옵니까?
꼭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라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참 이상합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 안하셨습니다. 둘이나 셋이 또는 둘 이상이 모여서 기도할 때 내가 함께 하겠다. 아까도 말씀해 주셨지만, 함께 기도하는 것...공동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계속해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레위 23,3 민수 28,18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나요? 우리는 안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일도 안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분들이 아! 주일은 거룩하게 있어야지..거룩하게 하느님께 봉헌하는 날이지.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지..물으셨습니다.
아닌 것 같습니다. 대부분 주일을 거룩히 지낸다는 것을 주일 미사참여 하는 거로 소급해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일 미사만 끝나면은 맘판이에요 ^^;;
내 맘대로 방탕하게 살아도 되는 거라고 , 어디 놀러가고 하는 날로 주일이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놀러가는 곳도 좋고 가족들과 함께 야외에 가는 것도, 취미 생활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주일은 거룩한 마음, 하느님을 나의 삶에 초대하는, 하느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날이라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떤일도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어떤일( : 어떤 세속적, 물질주의 적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봐주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저마다 먹어야 할 것만은 준비해도 좋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우리말 번역이 조금 의역을 하셔서 신부님이 번역하신다면,
그러나 너희가 모든 네페슈를 위해 먹어야 할 것만은 준비해도 된다.
16b
모든 네페슈(nefesh)를 위해
여기서 네페슈(nefesh, נפש)를 위해는, 모든 생명,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먹어야 할 것만은 준비해도 라는 뜻인데, 그 네페슈라는 말을 사람만 볼것이냐? 아니면 동물까지도 볼것이냐? 라는데 있어서 학자들의 의견이 조금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사람이 먹어야 할 식사 준비는 해도 좋다. 다른 것은 해서는 안 된다. 라고 규정이 되어있는데 그런데 사람이 먹어야 할 것도 있고, 소나 말도 먹이를 줘야 하는데 그것도 해도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 에 관해서 요 구절을 놓고 사람들의 의견에 차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여기서 적어도 오늘, 이 텍스트를 이해 하실때는
그러나 너희가 그저 살아있는 것들이 먹어야 할 것은 준비해도 좋다. 라는 뜻으로 동물을 위한 먹이를 준비하는 것도 포함시키는 것으로 보신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 네페슈라는 단어가 사실은 창세기에서 부터 등장합니다.
창세 2,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생명체(네페슈 נפש)가 되었다.라고 창세 2,7에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네페슈의 본래의 의미는 신체적으로 보면 목부분입니다. 또는 안쪽으로 기도,식도를 포함해서 아무튼 여기 일체를 말합니다. ㅡ 그리고 해부학적으로 숨,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말에 목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이 정확하게 어떤 어원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조금더 전문가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만, 목.숨. 이 바로 네페슈입니다.(숨을 쉰다.목 부분이다)
따라서 목숨을 갖고 있는 것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은 허용이 된다. 라는 겁니다.
탈출 12,17
지금까지의 규정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인 의미의 부여됩니다.
너희는 무교절 축제를 지켜야 한다. 바로 이날, 내가 너희 부대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너희느 이날을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지켜야 한다.
무교절 축제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히브리말로는 마쫕, 너희는 마쫕을 지켜야 한다.로
17절
그리고 너희들은 마쫕을 지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날의 뼈(?) 에
내가 너희들의 군대들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나오게 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이상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날의 뼈? 라는 표현은 창세 7장, 17장 등에도 나오는데,
히브리 말로는 이날의 뼈(?)(בעצם היום הזה)에 라고 그랬지만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바로 그날에 ,그러니까 그 전날부터 걸쳐있는 것들이 아니라 바로 그날에, 라는 표시일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 7,13과 17,26절에 나오는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딴 날이 아니라 바로 그날, 바로 그날에로 나옵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이날의 뼈(?)에 다음에 등장하는 표현이 조금은 생소합니다.
"내가 너희들의 군대들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나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서도 그러한 생소한 표현이 등장했었습니다.
탈출 6장, 7장, 12장등에 보면 군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나중에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이,
우리들이 탈출기를 읽고 나면 레위기, 민수기인데 ..
민수기는 백성들의 숫자를 세워서 민수기라 불렀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숫자는 왜 세웠을까요?
옛날 고대 세계에 예수님 시대에 보면은,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에 인구조사를 하게되면은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는 인구조사를 하는데 ..
고대 사회에서 인구 조사를 하는 목적은 세금과 군대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민수기에서도 각 지파마다 숫자를 세워서 군대를 조직합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몇명이죠? 60만입니다. 여기서 우리마음대로 군대 숫자를 막 늘리거나 할 수 없는 협약같은게 있나봅니다. 남자들이 많다고 해서 65만으로 뽑을 수가 없고 항상 일정하다고 합니다.
거기에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은 공익 군무, 이런 저런 봉사 활동 등을 하게 되고,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은 군대 복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군대를 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탈출기 6장, 7장,12장에서 등장하는 것은 나중에 민수기 1장부터 3장, 민수기의 이스라엘 전체 조직에 대한 준비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탈출 12,18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그달 스무하룻날 저녁까지, 너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이 앞부분과 말이 안맞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던 날짜는 첫째 달 15일입니다. 그런데 14일 저녁부터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14일 저녁은 파스카 축제로 양을 먹는 날입니다.
따라서 14일 저녁에 파스카 양과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되는 겁니다.
탈출 12,18절을 통해 14일 저녁에 파스카 축제와 마쫕 축제가 만납니다.
본래 우리가 이 18절이 없었다면 마쫕 축제는 언제부터 언제 입니까? 15일 부터 일주일간으로 이해할 텐데..여기에 하나를 끼워넣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스카 양을 먹을 때도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이상하게도 구약 성경이 내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4일 ? 15일
레위 23,6 : 이달 보름에는 주님의 무교절을 지내는데,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ㅡ 15일에는 무교절을 지내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생각합니다. 물론 히브리 사람들은 저녁부터 하루를 생각하기때문에 14일 저녁부터가 15일이다 . 라고 우리가 이해할 수 도 있습니다.
민수 28,17 : 그달 열닷샛날은 축제일이다.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ㅡ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15일에 일반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18절은 조금 다른 이해를 14일 저녁부터라고 명시하면서 파스카와 마쫕이 만나게 됩니다.
탈출 12,19
이레 동안 너희 집 안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룩 든 것을 먹는 자는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누구든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누룩 없는 빵만 먹는 것이 아니라, 아예 누룩을 다 치워 버려라. 라는 뜻입니다. 누룩 든 것을 먹는 자는
이방인(נר)인이든 본토인(אזרח)이든 누구든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어떻게 보면 15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15절에서는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누룩 든 음식이라는 뜻에 하메쯔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반면, 19절에서는 같은 의미로 마흐메쪁, 하지만 마흐메쪁은 누룩든 음식이 아니라 누룩으로 부풀린 음식입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 19절에서는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종으로 팔려왔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는 이방인 출신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이 마쫕 축제 동안에 누룩이 든 빵을 먹습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될까요? 할례를 받았더라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쫓겨나간다. 라는 이야기입니다.(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탈출 12,20
누룩 든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강조를 하는데,
여기서 너희가 사는 곳, 직역한다면,
ㅡ 너희들의 모든 정주처들에서(בכל מושבתיכם)
1)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얘기하고
2) 2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서 작은 공동체를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리아, 로마 등에서, 거기에서도 마쫕 축제 동안은 그곳은 외국이니까 누룩 든 빵을 먹어도 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너희의 정주처라면은, 이 경우를 우리가 잘 생각해보면 법적으로 이런 해석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여행중에 있다면은, 누군가가 어쩔수 없는 경우에 있다면은 그 경우에는 허용이 된다. 는 내용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순절때도 금육, 금식, 이런것을 합니다. 금식의 경우에는 여행중에 있는 사람은 자동으로 관면이 됩니다. 그리고 금육일 때는 나이 많으신 노인들이나 정말 어린 어린아이들은 금육, 금식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갓난아기가 있는데 오늘 재의 수요일이니까,오늘 하루 젖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안됩니다. 노인들이나 어린아이는 또는 환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금육의 경우에도, 이건 가르쳐 드리면 안돼는데...^^ 하시며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허용이 된다고 합니다. 누구랑 약속을 했는데 마침 금요일 저녁입니다. 그런데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날은 관면이 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관해서 고백 성사를 봐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분과 만났는데 "신부님 오늘 금요일이니까 우리 생선회 먹으로 갑시다."라는 것은 ...ㅠㅠ
금육의 정신은 절제하고 희생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절제하고 희생한 것을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눈다는 , 나눔의 의미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바리사이처럼 문자만 지키면, 고기만 안먹으면 딴거?? 먹어도 되는거 아니냐?? 그런식의 문자만 지키는 의미라면 그것은 신부님 생각에,
오늘날의 의미에서의 율법주의인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금육, 단식, 이와 같은 교회의 가르침에 그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나를 절제하고 희생하고 또 그런것들을 이웃과 나의 희생과 절제를 하느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눈다,,,라는 마음에 관해서....이야기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히브리어는 최승정신부님 탈출기I 에서 늘 참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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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