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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행복의 간극 좁히기
김종수 시집
여는 글 … 김종수 / 4
사계의 변화에 따른 서정과 사유 … 강소이 / 7
제1부, 그대 봄꽃 피거든
기다리는 춘정 / 24
봄 마중 / 25
나는 그렇게 봄 / 26
꽃나팔 부는 봄바람 / 27
반가워요, 봄 / 28
조춘할인早春割引 / 29
목련木蓮 / 30
봄비 그리움 / 31
봄비는 내 첫사랑 / 32
꽃자리에 앉는 봄비 / 33
목련 세상 / 34
그대 봄꽃, 피거든 / 35
벗들의 늦봄, 노래 / 36
기다리는 사랑 / 37
어릴 적 어머니 날 / 38
찬란한 오월 / 39
배롱나무꽃 / 40
멀어져가는 봄 / 41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 42
제2부, 여름날 환희
꽃이 지던 날 / 44
여름날 환희 / 45
남원 바닷가 넋두리 / 46
소낙비 / 47
달맞이꽃 / 48
흔들리는 상사화 / 49
낙동 습지 아침 애상 / 50
우포늪 망중한 / 51
가을빛 겨울 속으로 / 52
전해오는 겨울 이야기 / 53
가을의 어미는 여름이다 / 54
너는 떠난 후 노을은 사위고 / 55
동짓달 새벽안개 / 56
잠시도 머물지 못하는 시절 인연 / 57
시월 초하룻날 서정 / 58
연민 / 59
미련 / 60
꽃무릇 연가 / 61
흔적 없는 미련만 저 강물에 / 62
제3부, 첫사랑 당신은 지금 어디에
첫사랑 당신은 지금 어디에 / 64
아, 사랑아 / 65
늦가을 상념 / 66
시월 초입初入 / 67
구절초 / 68
나 여기서 쉬어 가련다 / 69
2월 단상 / 70
겨울 인사 / 71
임 그리는 겨울날 / 72
무상한 겨울 태양 / 73
한 해를 보내며 / 74
연가戀歌 / 75
금호 낙동강 / 76
자유 / 77
정취암淨趣庵 가는 길 / 78
이별 정가情歌 / 80
제4부, 소주 뒷맛 철학
소주 뒷맛 철학 / 82
친구 / 83
부자 개념 정리 / 84
행복의 간극 좁히기 / 85
첫사랑 / 86
그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 87
그 길 다시 돌아가 꽃피우자 / 88
우정의 샘 / 89
그저 있는 그대로 / 90
십 년 후엔 우리가 / 91
화는 입에서 나와 / 92
세상사 바라는 게 있다면 / 93
회색 도시인 / 94
순수의 믿음 / 95
일곱의 숫자놀이 인생 / 96
생각의 기원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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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개>
프로필
김종수 시집
대구광역시 달서구 거주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출생
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중소기업은행 입행, 비산동지점장 퇴직
기업주치의 협력재단 2년 역임
(주)유지인트 상임감사 2년 역임
삼성생명보험(주)대구법인지점 GFC로 7년여 근무중
(사)문학그룹샘문 운영위원
(사)샘문그룹문인협회 운영위원
(사)샘문학(구.샘터문학) 운영위원
(사)한용운문학 편집위원
(주)한국문학 편집위원
(사)도서출판샘문(샘문시선) 회원
이정록문학관 회원
지율문학 회원
<수상>
샘문학 신인문학상 시 등단
샘문뉴스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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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드문드문 구매해서 읽던 시집들이 내 눈 밖을 벗어나 여기저기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여기며 어지간히 공부하면 시어는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20여 년 전부터 습작으로 일기장을 채워나갔습니다.
해가 바뀔 때쯤이면 한 번씩 펼쳐보지만 이게 시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자조 섞인 푸념만 더해갔습니다. 시창작 관련 서적, 글쓰기에 관한 책, 문학 작품들을 읽어도 시상을 얻고 제대로 글을 지어내는 솜씨가 늘어나지 않아 몇 번이고 그만두려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가에 있던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을 되풀이해서 정독하고 나니 조금은 눈이 떠지고 머리가 맑아져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관산추정’ 도입부의 수려한 묘사, 어휘 구사력은 말로 형언을 할 수 없을 정도라 맥이 풀리고 숨이 멎을 정도였습니다.
그날 이후 글쓰기에 대한 개념을 다시 익히며 습작을 열심히 해서 아주 조금씩 스스로 향상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 용기를 내서 주변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하고 객관적 상관물인 사물을 운송하여 형상화해보는 집중력을 높이고 있으며 관련 분야 도서의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던 중 마침 우연히 사단법인 문학그룹샘문 산하 계열사인 샘문뉴스 신춘문예와 샘문학에 샘문학상 신춘문예 공고를 접하게 되었고, 미흡한 작품을 응모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과 겸손이 앞섰지만, 용기를 내어 응모하였습니다, 샘문그룹 이사장이신 이정록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시고 또한 많은 지도편달을 해주셨습니다.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이근배 심사위원장님과 손해일, 김소엽 심사위원님들께서 제 시부문 응모작품을 선정하여 등단을 시켜주셔서 무한한 영광을 안았습니다. 또한 손해일 문학박사 시인님께서 과분한 심사평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으나 애숭이 걸음마 연습과 시창작에 충실 하라는 무언의 충고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벗, 지인들이 은퇴 후 시집을 발간하여 건네주면서 한두 마디 해준 격려가 뇌리에서 가시지 않아 시집 출간 관련한 내용들을 알아보면서 제가
활동하고 있는 샘문그룹 산하 샘문시선에서 다양한 출판으로 베스트셀러가 시인이나 작가가 탄생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시집 출간 과정과 절차를 샘문그룹 이사장 이정록 교수님과 출판부 담당 직원분에게 문의하여 상세하게 안내받고 <신춘문예 수상 기념시집> 출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날개가 제대로 펴지지도 않은 채 세상에 나가게 되는 많이 미흡한 작품들을 읽어 주시고 따가운 질책을 해주실 독자님들의 충고를 영광으로 감사하게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시집이 출간되기까지 처음부터 지도편달과 윤문, 감수해주신 샘문시선 이정록 교수님께 거듭 엎드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출판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거듭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끝으로 저를 늘 응원해주시는 문인 여러분, 친구 여러분, 지인 여러분들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해주시고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이 출간에 기쁨을 같이하며 고맙다는 말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2024. 02. 27.
봄의 초입 달구벌 서재에서
김 종 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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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사계의 변화에 따른 서정과 사유
- 강소이(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1. 머리말
김종수 시인의 시편에는 질서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네 계절이 바뀌는 순서에 따라 시집이 구성되어 있다. 각 계절의 정서와 사유를 읊고 사계 이후四季以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삶을 통찰하고 있다. 시 전편에 흐르는 정서와 이미지와 사유가 깊다. 각, 계절별 시들을 살펴보고 한편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김종수 시인의 「행복의 간극 좁히기」의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봄에 대한 서정과 사유
- 여름에 대한 서정과 사유
- 가을에 대한 서정과 사유
- 겨울에 대한 서정과 사유
- 사계이후四季以後에 대한 사유를 노래한 시편들. 이 시집의 전체적인 정서와 사유 철학이 녹아있는 부분이다.
1) 봄을 노래한 시 중에서
특히 <배롱나무꽃>, <꽃자리에 앉는 봄비>, <조춘할인 早春割引>, <반가워요, 봄>, <봄 마중>, <어릴 적 어머니 날>,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가 돋보인다. 겨울은 날씨가 춥다. 만물이 얼어붙어 있는 동결凍結과 동면冬眠의 계절이다. 겨울은 역경과 고난의 상징어로 흔히 비유된다. 그런 겨울을 이겨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온다. 김종수 시인이 봄을 소재로 쓴 20편의 시에서는 봄의 정서 - 소생과 반가움, 환희 그리고 어린 시절 봄날에 대한 추억이 들어있다.
<조춘할인 早春割引>에서는 “타악 타악”이라는 의성어, “사르르 사르르”의 의태어, “삐쭉이 삐쭉이”의 의태어를 통해 목련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와 라일락 향기를 표현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봄 아닌 게 없어라”라고 읊고 있다. 봄에 만물이 소생하여 꽃이 피는 모양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조망하고 있는 시다. 시인의 순수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시라고 하겠다.
<꽃 자리에 앉는 봄비>에서는 “욕정 많은 동백 지고/ 순결한 목련 속살 내밀어// 리라꽃 향기로 유혹하니//... 아무렴 온천지 봄 아닌 곳 어디론가”라고 하며 온천지에 봄이 온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봄 아닌 곳 어디인가”를 노래하며, “산꽃 들꽃 아무개 꽃도/ 피는 듯 지는 듯 윤이월 안고서/ 한 백일 춤추고 가면 좋으련만”이라고 했다. 꽃이 만개한 상태로 백일(3개월 넘게) 정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갈망이다. 그런데 봄비가 내려서 “지상에 화급한 성질 삭이려/ 천상의 진정제로 내리고 있구나”라고 했다. 화급히 내리는 봄비에 의해 꽃잎이 일제히 지는 광경을 보며 읊은 시로 보인다. “봄비”를 “천상의 진정제”로 보는 것이 이 시의 특이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온천지에 봄꽃이 만개하여 우주 전체가 꽃으로 달아오른 지구를 진정시키는 봄비.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꽃 자리에 앉는 봄비> 시와 짝이 되는 시를 한 편 더 보도록 하자.
오월이 가고 있다
웃음 향기에 취해 시간을 잊었다
가시에 걸려 멎어 있을 줄 알았건만
꽃이 피어날 땐 오히려 시간이 더디더니
짙은 향기 엹어지니 나비가 길을 잃었네
꽃이 진다고 향기 사라진다고
내 안에 새겨진 깊은 자국은
어찌 잊혀지랴만
지는 꽃은 지더라도 다시 돌아올 님을 위해
기약 없이 나는 기꺼이 기다리리라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전문
위의 시를 보면, 꽃이 피어나 짙은 향기가 엷어지니 나비가 길을 잃을 정도로 꽃 잔치가 한창이다. 그러나 만개했던 꽃이 진다고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화자話者 안에 새겨진 깊은 자국 – 님에 대한 사랑의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꽃이 지더라도 다시 돌아올 님을 위해 기약 없이 기꺼이 님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화자의 기다림의 의지를 굳건히 다지는 시라고 하겠다. 꽃이 지는 것은 꽃의 죽음 – 절망과 종결의 의미가 아니다. 꽃이 지더라도 꽃씨가 뿌려져 다음 봄에 다시 싹이 나고, 다시 꽃이 필 것을 기다리는 재생再生과 부활을 기대하는 희망의 시다. 이 시는 김종수 시인의 생멸관 生滅觀이 확연히 드러난 시라고 하겠다. 김종수 시인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뒤에 부활을 믿는 기독교 종교의 부활 신앙과도 연결된다. 다시 말해서 꽃이 짐, 향기가 사라짐은 소멸과 죽음의 부정적 이미지다. 그러나 거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돌아올 님을 기꺼이 기다리는 부활 신앙 – 재림 신앙, 재생과 부활을 기다리는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인 원형原型 - Archetype을 보인 훌륭한 시다.
「행복의 간극 좁히기」는 자연물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할머니 이야기 보따리 타고 부끄럽게 새싹 돋아나
한 자락 볕이랑 바람 줄기 스쳐 가더니
생의 꿈 보따리 터져 피어나네
- 중략 -
매끈한 몸매와 가지, 희고 붉은 꽃송이처럼
조화롭게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 보라며
백일 동안 그렇게 웃어 주더니
내일은 할머니 이야기 보따리 찾으러 가자네
<배롱나무꽃> 일부
위에서 본 것처럼 그중에 <배롱나무꽃>은 배롱나무에서 꽃송이들이 피어났다가 꽃송이가 지는 과정을 할머니 이야기보따리 타고/ 할머니 이야기보따리 찾으러 감으로 비유하여 쓴 재미있는 시다. 화자의 할머니께서는 화자의 어릴 적에 이야기보따리를 푸짐하게 풀어놓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배롱나무에서 “새싹 돋아나/ 한 자락 볕이랑 바람 줄기 스쳐 가더니/ 생의 꿈 보따리 터져 피어나네”라고 했다. 배롱나무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생의 보따리가 터져 피어났다는 발상은 경이로운 표현이다. 배롱나무에서 핀 희고 붉은 꽃송이들은 백 일 동안 그렇게 웃어 주더니 “내일은 할머니 이야기보따리 찾으러 가자네”라고 했다. 백일여 일 동안 피어서 웃어 주던 꽃들이 져서, 내일은 할머니 이야기보따리를 찾으러 간다고 했다. 이 시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배롱나무꽃의 개화와 낙화에 클로즈업(close up)하여 표현한 시다.
2) 이 시집에서 여름을 소재로 한 시는 7편이다.
<소낙비>에서는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무미건조한 대지 위에/ 미련 없이 이별 노래로 퍼부어 댄다”라고 했다. 화자는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미련 없이 퍼부어 대는 이별 노래”라고 했다. <낙동 습지 아침 애상>에서는 낙동 습지에서 느낀 아침에 대한 애상을 노래했다. <남원 바닷가 넋두리>는 제주도 자귀섬을 여행하며 쓴 여행 시다. 칠십이 된 화자가 지난날 보다 남은 날을 귀하게 여겨 오늘을 값지게 써보겠다는 다짐이 들어있다. 화자는 시의 결미를 다음과 같이 맺는다.
저 바닷가에 부딪히는 파도는
우리의 희미한 약속처럼
나지막한 바위에 포말로 남아
내일의 꿈으로 손짓하네
<남원 바닷가 넋두리> 일부
“바닷가에 부딪히는 파도는 바위에 포말로 남아서 내일의 꿈으로 손짓”한다고 했다. 그것을 “희미한 약속처럼”이라고 했다. 칠십 나이가 된 화자는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포말을 보면서도 “내일의 꿈”으로 연결하고 있다. 노년의 시선으로도 내일의 꿈 –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은 갈망이 보인다.
<흔들리는 상사화>는 이미지가 풍부한 시다. 달빛, 육대주 여섯 갈래 꽃잎, 연분홍 화성, 여섯 가지 혀, 해그림자 드리운 솔바람 등이 그것이다.
연분홍 화성 속에 둘러싸여
날렵하고 달콤한 여섯 가지 혀로
그 누구를 유혹하려 하려는가
오직 한마음 꽃 피우기 위해 몸 바친
너의 모태 바탕 잎은 보지도 못하면서
고고하게 해그림자 드리운 솔바람 유혹
견디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그대 마음
<흔들리는 상사화> 일부
상사화는 꽃과 잎이 다른 시기에 피는 꽃이기에 만날 수 없는 연인에 빗대어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김종수 시인은 상사화의 꽃잎 6장을 연분홍 화성 속에 둘러싸였다고 했다. 여섯 가지 혀로 비유했다. 연분홍색 “여섯 가지 혀로 누구를 유혹하려 하는가?”라고 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또한 “고고하게 해그림자 드리운 솔바람 유혹/ 견디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그대 마음”이라는 표현을 보면, 상사화 꽃잎이 솔바람에 흔들리는 자연 현상을 시인의 감수성으로 그려낸 상상력의 증폭을 본다.
3) 가을을 소재로 한 시도 7편이다.
“시쓰기의 기법을 말하기”와 “이미지 보여주기”로 양분兩分한다면, 김종수 시인의 시는 대부분 “말하기 기법”으로 쓰여졌다. 그러나 직설적인 말하기의 표현보다는 비유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난해한 현대시의 조류에 섞이지 않은 담백한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다음 시는 이미지의 잔치를 보인다.
은빛 시린 가을볕에
홍시는 얇아지고
섬돌 위 갓 내려앉은 시월은
그림자도 아까워라
멍석에 널린 고추는
설익은 매운 내 피워보고
장독대 옆 석류는
익어가는 설움 못 견뎌 입술 터지는데
짝짓기 끝낸 실잠자리
얇아진 날개 휘휘 저어
별 내리기 전
홀로이 고향길 재촉하네
<시월 초하룻날 서정> 전문
은빛, 홍시, 섬돌 위, 멍석에 널린 고추, 장독대 옆 석류, 실잠자리, 얇아진 날개 등은 모두 시각적 이미지의 “이미지로 보여주기”다. 한 폭의 가을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시의 <시월 초하룻날 서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0월 1일 날의 정서를 이미지로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의 결미는 “별 내리기 전/ 홀로이 고향길 재촉하네”라고 되어 있다. 별 내리기 전이란 저녁이 되기 전에, 실잠자리가 홀로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고 했다. “고향”은 나고 자란 공간을 의미한다. 실잠자리의 고향이 어디일까? 10월 1일 날, “짝짓기를 끝낸 실잠자리가 고향길을 재촉한다”라는 표현으로 화자는 무엇을 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일까? “실잠자리가 고향길을 재촉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홍시, 시월, 고추, 석류를 등장시키고 있다. 어쩌면, 고향길을 재촉하는 실잠자리는 칠순이 넘은 화자를 비유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의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나아가, 인간의 원초적인 고향 – 본향本鄕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확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운율과 압축의 짧은 시 속에서 시어가 내포하고 있는 다의적多義的인 의미를 읽어내는 게 시 읽는 재미가 아닐까? 위의 시는 다음 시 <나 여기서 쉬어 가련다>와 결을 같이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쉬어 가련다
하늘 한 번 구름 한 번 쳐다보고
저기 저 꽃 이름 생각하며 바라보고
그때 그 친구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생각해보고
나는 여기서 쉬어 가련다
걸음마부터 시작해 지금의 오늘까지
지나온 어제를 잊고 내일의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돌아다보며
나는 여기서 쉬어 가련다
이 꽃 저 나무 바라보며
이루지 못한 내 어릴 적 꿈을 되새겨보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옅은 웃음 지으며
나는 여기서 쉬어가련다
- 후략 -
<나 여기서 쉬어 가련다> 일부
위의 시는 “나는 여기서 쉬어 가련다”라는 구절을 연마다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쉬어 가고 싶은 화자의 간절한 소망이 짙게 나타난 시라고 하겠다. 이 시는 “이미지로 보여주기”보다는 “말하기”의 기법으로 쓴 시라고 하겠다. 자연과 벗하며 지낸 어린 시절 & 이루지 못한 꿈과 “그때 그 친구”를 그리워하며 쉬어 가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말하고 있는 시다.
4) 겨울을 소재로 한 시에는
<2월 단상>, <겨울 인사>, <임 그리는 겨울날>, <무상한 겨울 태양>, <한 해를 보내며>가 있다. 겨울을 소재로 한 시, 다음에는 <사계 이후>의 시편들 13편을 더 넣어 시집을 구성하고 있다. 가을은 낙엽이 지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지는 낙엽을 보며 시인들은 슬픔과 절망을 보지 않는다. 겨울 지나 다시 봄에 새싹으로 돋아날 자연의 순환을 본다. 시인의 시선은 일반인의 시선과 다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위의 시에도 그런 감수성을 볼 수 있었다.
냉랭한 북서풍에 떨어지는 가을 한 잎
감추어진 내 가슴 한구석에 자리해
지난밤 뒤척이며 잠 못 이루게 하더니
안개 따라 오는 겨울 아침 소리
귀를 스쳐 깨운다
<겨울 인사> 일부
오늘도 골목 저 끝에 서서 기다린다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그 말을 가슴에 품고
- 중략 -
나는 이제껏 잃었던 웃음 되찾으며
묵혀두었던 믿음 꺼내어
기꺼이 널 반겨 안아 주리라
<순수의 믿음> 일부
<겨울 인사>의 “겨울 아침 소리/ 귀를 스쳐 깨운다”의 표현을 넘어서 <순수의 믿음>에서는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그 말을 가슴에 품고” “기꺼이 널 반겨 안아 주리라”라고 했다. 이 시에서 “돌아올 것”을 굳게 믿고 있는 순수한 믿음의 대상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다시 찾아올 봄일 수도 있고, 잠시 미뤄둔 꿈일 수도 있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서 말하는 님은 조국일 수도 있고, 절대자 부처님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다. 시에서 님은 중의적衆意的인 다의성多義性을 갖는다. 김종수 시인의 <순수의 믿음>에서도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자유>라는 시에서는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꼭 만나고 싶어
그대가 나를 외면할지라도
그대 안에 갇혀있는
자그마한 종이비행기 꺼내
그대와 함께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
<자유> 일부
“그대 안에 갇혀있는/ 자그마한 종이비행기 꺼내// 그대와 함께/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라는 표현을 보자.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유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화자 자신이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과 함께 “그대 안에 갇혀있는”이라고 했다. 자유가 화자를 외면할지라도 이제는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다음 시 <정취암 가는 길>은 김종수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가 돋보이는 시다.
세상으로 나오면서 오르기를 배우고
위로 오르기 위해
잠도 거르고
제때 먹지도 못하고
자존심도 버리고
오로지 올라가야 한다는
그것이 전부였던 젊은 시간들
약간의 조심을 기울여
넘어지지 않게 멀지 않은 내리막길 딛는다
더디 내려 걸으며 배우는 진정한 인생의 진실은
어깨 힘을 빼고 가슴에 담은 욕망 조각들을
내려놓야야 한다는 명제
내려가는 길이 그렇게 나를 인도한다
여태껏 깨닫지 못했던
내려놓음의 진정한 무한대 환희
내 가벼웠던 지난 시간들
반추하게 하는 정취암 가는 길
<정취암 가는 길> 일부
잠도 거르고, 제때 먹지도 못하고, 자존심 버리고 오로지 올라가려고만 했던 젊은 시간을 회억하며 정취암 가는 길에 내리막길을 걷는다. 올라가려고만 애썼던 시간과 대조되는 내려가는 길에서 화자는 “내려놓음의 무한대 환희”를 느낀다. 그것을 오히려 가벼웠던 시간이라고 반추한다. 젊은 시절에 성취만을 위해서 올라가려고 애썼던 고된 시간 & 내려놓음을 배우게 되는 내리막길 – 인생의 연륜과 원숙미元淑美를 느끼게 하는 시다.
3. 맺는말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시집의 구성은 질서가 있다. 사계절을 계절별로 구성을 엮었다. 그런데 계절과 상관없이 삶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그린 시들도 여러 편이다. 우리 인생은 탄생 – 성장 – 성취 – 원숙의 과정을 누구나 겪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에서 각, 계절마다 느끼는 정서를 시로 형상화 해낸 훌륭한 시집이다. 특히 <사계 이후>에서 다룬 시들은 삶에 대한 관조와 통찰과 내려놓음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필자도 좋은 시집에 대한 평설을 쓸 수 있어서 내내 기쁘고 행복한 마음입니다. 김종수 시인의 시집 출간을 감축드리며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시인이 되시기를 기원드리며, 문운이 창대하시기 바랍니다.
[감수 - 지율 이정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