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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 1 근심하지 말라.
제 14 장 : 진리의 영
1. 길과 진리 ( 14: 1 – 6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신다(요 7: 34. 요 12: 8, 35. 요 13: 33), 죽으신다(요 12: 32-33)는 말씀과 제자 중 하나는 배반한다(요 13: 21), 그리고 '베드로는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 38)는 말씀을 듣고 극도로 불안하게 되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소망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한 말씀을 주셨다.
요 14: 1 근심하지 말라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가 떠나신다는 말씀 때문에(요 13: 36)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근심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의 별세에 대한 말씀(13: 33)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하였다.
* 요 13: 33, 36 –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그들더러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근심하다tarassevsqw(타라쎄스도)는 같은 용어가 나오는 요 11: 33. 요 13: 21. 요 14: 27에 예수님에 대해서는 "민망하여"로 번역되었다. 이 용어는 "마음이 요동치다"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의 이와 같은 권면은, 이 아래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진다.
2]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되고 또 예수님 자신을 그만큼 믿으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기고 믿으라는 뜻이다.
믿으라(pisteuvw. 피스튜오)는 "믿다, 위탁하다, 맡기다"로 원문상 명령문이나 평서문으로 번역해도 모두 문제가 없지만 말씀의 요지로 보아 서술적 선언이 아닌 명령으로 보는 것이 우리의 믿음에 더 낳으리라 본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보며 일체로 본다.
* 요 5: 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요 10: 30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요 14: 9 -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 12: 44 -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고 하심은, 그가 일찌기 그들에 주신 내세훈(來世訓)을 믿으라는 뜻이다.
* 요 12: 26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요 13: 36 -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다음 절 하반에, 일찍이 주셨던 그의 내세훈이 다시 관설 된다.
3] 근심하지 말라. (요 14: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어디론가 떠나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더욱이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말한 베드로에게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 어렴풋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주님이 가신다는 길을 자신들은 따라갈 수 없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차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마음으로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1) 사람 마음의 근심
사람이 마음으로 근심하는 일은 인생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 왜 근심이 생기는 것인가?
① 근심은 믿음이 없는 데서 온다.
주님의 제자들은 아직까지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그의 부활에 있어야 하며 주님께 대한 소망에 있어야 한다.
제자들은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하였으나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는 하나님이신 메시야가 왜 죽어야 하며 다시 살아나야 하는지 몰랐다.
② 근심은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없는 데서 나온다.
마음의 평안은 성령의 내주 하심으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평안을 창조한다.
우리의 마음에 이 같은 역사가 없을 때 근심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평안은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기 때문이다.
③ 근심은 장래에 대한 불안에서 온다.
불안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없을 때 생겨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는 말이다.
* 시 119: 42 -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견고히 잡아 그 말씀에 내 생애를 맡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의지이다.
④ 근심은 세상일에 대한 염려에서 찾아온다.
염려라는 말과 근심이란 말은 이웃사촌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서 이 염려를 물리쳐야 근심이 사라지게 된다.
인생의 염려는 내일 일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씀하고 있다.
⑤ 인간의 염려는 의식주 문제로 찾아온다.
* 마 6: 31-34 –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러므로 염려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께 맡기는 일이라고 말씀한다.
* 벧전 5: 7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2) 두 가지 근심
근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근심이고 다른 하나는 오는 세상에 대한 근심이다.
① 이 세상의 근심이란 현재의 일로 세상적인 근심을 말한다.
이 세상에 대한 근심은 우리에게 사망을 준다고 말한다.
* 고후 7: 10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②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근심이 있다.
* 고후 7: 11-12 –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은 육신이 연약하여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죄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일으킨다.
이 근심은 죄에 대한 통회와 자복으로 발전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게 함으로 사죄에 이르게 한다.
③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골육을 위한 것이 있다.
사도 바울은 골육의 친척을 위한 큰 근심이 있노라고 고백했다.
* 롬 9: 1-3 –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우리도 사도 바울의 이런 심정으로 내 골육의 형제의 구원을 위한 간절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④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교회를 위한 것도 있다.
사도 바울을 항상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근심을 품고 있었다.
* 고후 11: 27-29 –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근심과 염려의 짐을 함께 져야 한다.
⑤ 내세를 위한 근심
이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 가운데 구원의 확신을 불안해하는 자들이 갖게 되는 불안이다. 이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분명한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확고하게 신뢰하여야 한다. 이러한 불신은 사탄의 무리들이 하나라도 타락하게 만들려는 계책이므로 말씀과 기도로 물리쳐야 한다.
본문은 이러한 근심을 물리치고 확신하는 길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방비책이다.
(3) 나를 믿어라.
주님은 근심에 잠겨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셨다.
① 주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여기에 분명한 뜻이 있다.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도 여기에 있다.
* 시 37: 5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시 55: 22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잠 16: 3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 롬 12: 19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벧전 5: 7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② 주님은 그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그의 피로 세운 언약 안에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충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온갖 축복이 다 들어가 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근심 중에 나타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며 우리의 근심을 맡으시며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낙심하고 있을 때나 병중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을 때, 재앙으로, 실패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