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백전불퇴(知彼知己百戰不殆)의 첫 번째 요소는 상대의 의중을 재빨리 간파하는 것이다.
눈치, 느낌, 짐작, 추정 등등 다양한 수단이 사용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다.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외국어를 못하면 통역을 사용하고, 아는 게 없으면 아는 사람의 머리를 빌리는 수단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선을 능가할 수 없는 차선책에 불과하다.
국가 간의 외교는, 말을 주고받으며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쟁이라는 점에서 상인들의 흥정과 다를 게 없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를 할 줄 아는 것과 그렇지 못 한 것의 차이는 엄청 크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잘 하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20대 때 미국으로 건너가 반세기를 영어만 사용하며 살았으니 한국어를 잊어먹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아직 근대적 국가 경영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갑자기 독립한 대한민국은 모든 게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상대한 이승만 박사의 완벽한 영어가 현실적으로 엄청난 힘이 되었을 것은,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던, 하지 않든 간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룰에 따라 공식 석상에서는 영어 대신 한국어를 사용하고, 통역관이 영어로 통역했을 것이다. 당시 통역관이 누군지 몰라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눌한 이승만의 한국어를, 어눌한 통역관의 영어로 통역해야 하는 극도의 비효율적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승만 이후 13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배출되었다. 이 가운데 이승만을 능가하는 영어 가능자는 없었고, 소통이 가능한 대통령은 윤보선, 최규하, 이명박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윤보선은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최규하는 외교관, 이명박은 비즈니스맨으로 영어가 가능해야만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군 출신으로 미군과의 관계를 감안했을 때 최소한 '맹탕'은 아니었을 것. 박근혜와 윤석열은 회화가 자유스러웠던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의회에서 당당하게 영어로 연설을 한 것으로 보아 기초가 튼튼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머지 4명 가운데 3인은 한마디의 영어 회화도 불가능했던 것 같다. 이 가운데 예외적으로 DJ는 "영어 불모 시대"에 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필요성을 절감해 초인적인 노력으로 영어를 극복했던 것 같다. 비록 호남 억양을 완벽하게 떨쳐내진 못했지만 용감하게 해외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연설도 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승만 시대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천양지차다.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에서 이탈리아나 캐나다를 대신해 G7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시기에 이승만에 버금가는 영어 능통자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옥의 티(?) 극과 극은 상통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