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범사에 감사하라(凡事感謝)
데살로니가전서 5:18
홍제원교회
夫感謝者受恩之表也. 不感謝則不能受恩. 年前某學生受人顧助, 而路逢顧助之人不感謝, 此人更不顧助, 故人當感謝于神可也. 然則神愈欲授之恩上加恩. 不然則心如枯井, 無可益人之恩矣. 苦也樂也皆合同益于我, 我知此理, 故感謝受之. 僉位不見農人之畵乎? 夫婦往田秋收而祈禱, 其中有個三美, 一愛也, 一勞動也, 一宗敎也. 其生活何等優美也? 故⇔感謝卽祈禱之意也, 而愈欲受恩之意也. 가인이不感謝故神怒之, 不感謝之地, 罪亦發生, 終倡無神論, 至有殺人之弊也. 然則永不與神交往, 而終至失人之性也. 故感謝者愈欲受恩之意也. ⇔謙遜而後有感謝, 不謙則我自足, 有何賴他也? 故不能發感謝. 如無香之花不能感人, 人見之亦不神奇, 有謙德則可以動人, 如花發香, 令人心醉, 謙德如海包容萬物也. 故益益加大, 謙而不怒則心安, 若驕傲易人, 人對我不善則心便發怒, 事過後心不安, 如手破琉璃而手傷償價矣. 若發怒則心復不安也. 故儲藏謙德, 存諸中發於外矣. 事成則感謝, 事敗則失望, 是非感德也. 成亦感謝, 敗亦感謝, 成有所敎訓, 敗亦有所敎訓矣. 故曰凡事感謝, 彼草不今戟而不知感謝, 惟人有靈故感謝矣. 古者有感謝者, 神造我爲人感謝, 造我體形皆便於用感謝, 尙洞有感謝夫人, 仁川亦有感謝夫人, 方氏夫人一日於運動場, 其女失程, 夫人曰感謝, 人問曰何故感謝? 答曰失則注意故感謝. ⇔知感謝而後有深信矣. 我有罪則死而主以血救之, 使至復生, 又脫罪成聖, 使至天國而永生, 是皆出於信矣. 但知而不信則感不生焉, 故感與信合德矣. 主以獨生子降爲人僕, 深體人間之苦痛, 撫我慰我, 常於洞房之中, 傳我施其靈, 訓我細服細過, 主隱聽而恒之敎之, 此時主之愛移我之時也. 心身恍然復生如披雲見天矣. 不覺手舞足蹈人反見怪而自喜, 故曰恒喜喜者感謝之發現也. 感而後喜信之示也. 生活苦因環境甚惡, 事業顚委, 有何可喜者乎? 於此受福不少故喜矣. 昔日盧傳道師出而傳道, 人大逼破其冠, 甚至毆打, 歸家而人慰之, 盧曰今日我受福, 有何可慰乎?
감사하다고 하는 것은 은혜를 받은 표시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연전에 어느 학생이 남의 도움을 받았는데 길에서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나서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 사람이 다시는 도와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준 은혜보다 더 많은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면 그 마음은 마치 마른 샘물과 같아서 남의 은혜를 더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모두 나에게 똑 같이 이익을 줍니다. 내가 그 이치를 알고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농부의 그림을 보지 않았습니까? 부부가 밭에 나가 추수하다가 기도하는 그림 말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이고, 하나는 노동이고, 하나는 종교입니다. 그 생활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는 곧 기도의 뜻이 되고 더욱 은혜를 받으려는 뜻도 됩니다.
가인은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하셨던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곳에서 죄도 발생하고 마침내는 무신론(無神論)을 부르짖고 살인을 행하는 폐단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고 끝내는 사람의 본성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한다는 것은 더욱 은혜를 받으려는 뜻입니다.
겸손한 뒤에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니 남에게 의지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마치 향기 없는 꽃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어서 사람들이 보아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겸손의 덕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마치 꽃이 향기를 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취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겸손의 덕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만물을 포용합니다. 그러므로 더욱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겸손하여 성내지 않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만일 교만으로써 남을 가볍게 여기어 남이 나를 대할 때 좋게 생각지 않는다면 곧 바로 화나게 합니다.
일을 저지른 뒤에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은 마치 손으로 유리를 깬 것 같아서 손도 상하고 유리 값도 물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만일 화를 내면 마음도 다시 불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겸손의 덕을 마음속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밖으로 내어보내야 합니다.
일이 성취되면 감사하고, 일이 실패로 끝나면 실망하는 것은 감사하는 미덕이 아닙니다. 성취해도 감사하고, 실패해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성취하여도 얻는 교훈이 있고, 실패해도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저 풀들은 지금 베어내지 않아도 감사할 줄 모르지만 오직 사람은 영혼이 있으므로 감사할 줄 압니다.
옛적에 감사할 줄 아는 자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을 감사하고, 나의 몸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 준데 대하여 감사하였습니다. 상동(尙洞)에도 감사한 부인이 있었고, 인천(仁川)에도 감사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방(方)씨 성을 가진 부인이 어느 날 운동장에 갔다가 그 딸이 길을 잃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감사하다고 하니 사람들이 감사하는 까닭을 물은즉 답하기를 ‘잃었기 때문에 앞으로 주의하게 될 것이니 감사하다’고 하였답니다. 이렇게 감사할 줄 알게 되면 그 뒤에는 깊은 신앙이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죽게 되지만 주님께서 피로 나를 구원하여 다시 살아나게 해 주시고, 또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어 천국에 이르러 영생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다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알면서도 믿지 않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신앙이 합쳐야 덕이 됩니다.
주께서 독생자로 강림하시어 사람의 종이 되시어 인간의 고통을 깊이 체험하고 우리를 위로하고 매만져 주었습니다. 항상 골방에서 우리에게 영을 베풀어 주시고, 작은 허물도 자세히 자복하는 것과 은밀히 들으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는 주의 사랑이 나에게 옮겨 오는 때이어서 마음과 몸이 황홀한 중에 부활하여 마치 구름을 걷고 하늘을 보는 것 같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손과 발이 저절로 춤을 추게 되니 사람들은 도리어 기이하게 여기나 나 스스로는 기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기뻐하는 것은 감사의 발현입니다.
감사한 뒤에 기쁜 것은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생활의 괴로움은 환경이 매우 나쁘고 사업이 위축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인데 무엇이 기쁨이 되겠습니까? 여기에도 복을 받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적에 노(盧) 전도사가 전도하러 나갔다가 사람들의 큰 핍박을 받아 그가 쓰고 다니던 모자가 찢어지고, 구타까지 당했습니다. 집에 돌아가자 사람들이 그를 위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노 전도사가 ‘오늘 나는 복을 받았는데 위로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