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진리는 종교 내에 / 요한복음 15:4-7
예수님을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가르침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궁궐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궁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나서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진리를 알려면 종교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제가 기독교에 입문하기 전에는 모든 종교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교든 유교든 기독교든 다 같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중국은 유교의 나라여서 다른 종교가 들어와 전파하기 어려운 것을 보고, 유교의 관습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홍수전이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고 태평천국을 세워 스스로를 태평천자라 칭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 실패는 유교의 도덕관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인도에서도 실패했습니다. 이는 영국인들이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여 진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브라만교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은 공산주의에 정복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념이 중국인들의 수천 년된 유교적 관습을 극복해야 합니다. 유교가 해온 것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실패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 혼자의 힘으로 가나안 전체를 정복한 것은, 아브라함의 행적이 복되고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여호수아 시대에도 역사의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정복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40년 동안 기독교회 안에서 공부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배운 결과, 모든 철학과 종교, 그리고 학문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진리가 모든 종교와 철학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나 이념도 우리 기독교보다 더 높은 것을 보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예전에 최병헌 씨가 "내가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면 불교를 믿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저는 그 말에 반대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불교와 동일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을 봐도, 50년 전에 있었던 어떤 종교나 단체, 조직들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오직 기독교만이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강을 건너 북한산을 볼 때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같은 모습이지만, 서울 사람들의 생활은 예전 그대로인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진리는 직접 체험하고 실천해 볼수록 참된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올라가 보았고,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마음뿐만 아니라 새로운 복이 있습니다. 이생과 내세에 모두 새로운 복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에 새 잎이 나고, 새 꽃이 피며, 새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저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실지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