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17-18.
폭로, 미스코리아 진은 자살했다 2.
원고를 다 읽은 편집장은 급하게 읽은듯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스코리아 진이 애기 엄마였다니...... 거기다가 미스터리 같은 자살까지...... 정말 대단해. 퀸서울이 날개 돋히듯이 팔리겠어."
"이제 원고료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물론이지. 그런데 자네한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박만하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여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의 아이 말일세, 아들이라고 했던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박만하는 모른다고 차갑게 대답했다.
"헌데, 여기서 의문나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토를 달기 위해 참고적으로 알아두고 싶어서 그러는데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서 캠코더로 자기를 찍어달라고 해서 작동했다는 대목 말이야."
"그 대목이 어때서요?"
박만하가 따지듯이 물었다.
"자살을 암시했다는 뜻에서 쓰여졌겠지만 수준이 조금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럼 진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는 어떻게 된 거냐고 빗발치듯이 문의전화를 해올텐데."
그는 편집장의 속셈을 눈치채고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오늘 저녁 뉴스에 나올 겁니다."
"아니, 그럼 이 원고는 생명력을 잃은 게 아닌가."
편집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납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참 딱하십니다. 방송국에서 테이프를 내보내면 사람들은 궁금증만 더할 겁니다. 그런데 이틀 후에 해답 같은 이 내용이 퀸서울에 실려나가면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오히려 퀸서울에는 잘 된 일이지요."
"그, 그렇군. 그럼 방송국에서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거로군."
편집장은 금새 화색이 돈 얼굴로 더욱 흥분을 하고 있었다.
"자네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우리 손잡고 일해보지 않겠나? 같이 미스코리아 진의 사생아도 찾아보고, 옛날처럼 한번 힘껏 뛰어보자구."
"고료나 주십시오. 파면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그, 그러지......"
편집장은 무안해하며 수표가 든 하얀 봉투를 얼음장처럼 찬
그의 손에 주었다.
"다른 잡지사에 정보를 흘리지 말아야 하네."
"퀸서울이 나올 때까지 경찰한테도 입도 뻥긋 안 할테니까 염려 푹 놓으십시오."
"우리 술 한잔 할까?"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경찰에 가봐야 합니다."
"지금 경찰에 간다구?"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만하는 볼일 다 봤다는듯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그가 문을 세게 닫으며 나가자 편집장은 닫힌 문을 노려보면서 침 뱉듯이 한 마디 내뱉았다.
"사기꾼 새끼, 운도 좋지."
육감과 다수의 설전 1.
미스코리아 진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 서울시경 전체 회의실에는 특수수사 1과 과장과 2과 과장을비롯하여 경위급 7명의 형사와 오부장이 회의실 나무의자에 앉아 경찰국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찰국장이 금테안경을 쓴 검사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장과장은 제복을 입은 국장과 양복을 입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검사를 보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오늘의 호출은 수사회의가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두 사람의 굳은 표정에서 쉽게 감지할 수가 있었다.
"장과장."
태극기 아래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국장은 굵은 음성으로 장과장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박상현 검사님은 이번 미스코리아 진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결론 내리셨어. 또한 2과 과장과 2과 소속 형사들도 이의없이 자살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네. 오부장 또한 자살임이 명백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네. 그런데 유독 장과장만이 지금까지 독살이라고 변함이 없는데, 박만하의 진술을 듣고 나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회의실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중간에 앉아 있던 남형사와 윤형사도 자신의 호흡이 빨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미스코리아 진은 독살당했습니다."
장과장은 분명한 어조로 국장과 머리가 벗겨진 검사를 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가 태극기 밑에서 한 발 앞으로 걸어나오면서 이해할 수 있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카로운 눈매로 장과장을 보았다.
"에, 나도 처음엔 미스코리아 진이 독살당했다고 생각했었소.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영광의 길이 펼쳐져 있는 미스코리아 진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소. 그러나 이제 미스코리아 진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가, 그것도 엄청난 동기가 박만하씨로 하여금 밝혀지게 되었소. 어느 누구도 이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오."
검사는 더 이상의 반론을 원치 않는다는 눈빛으로 장과장을 보면서 그렇지 않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나 장과장은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검사는 지었던 미소를 거두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인정할 수 없다......, 좋소. 다수의 의견이 무기화되면 횡포밖에 안 되겠지. 끝까지 독살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물적 증거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데, 장과장은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증거를 우리 앞에 보여줄 수 있습니까?"
장과장은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물적 증거도 없다......"
검사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가는 다시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육감으로만 독살을 주장하는거요?"
장과장은 듣고만 있었다.
"아, 제철을 만난듯 난리법석을 떨었던 TV, 신문, 심지어 주간지들까지 미스코리아 진이 자살이라고 결론 내리고 더 이상의 기사 취급을 하지 않고 있소. 수사본부도 오늘부로 해체된 셈이오. 아, 오부장."
검산는 맨 앞줄 의자에 앉아 있는 오부장을 불러세웠다.
"미스코리아의 과거를 추적한 형사가 누구요?"
"1과 소속의 남동현 경윕니다."
"미스코리아가 출산할 때 입원한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갔었나?"
검사가 물었다.
"네."
"박만하씨의 진술과 상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나?"
"없었습니다. 진술은 사실이었습니다."
검사는 다시 장과장에게 독수리 같은 눈빛을 향했다.
"장과장, 내가 왜 장과장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볼려고
인내하는지 알고 있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소. 나는 장과장의 의견을 묵살할 수도 있소. 그러나 자살이 아니고 독살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는 그 신념에 찬 이유를 알아야만 하겠소. 솔직히 말하자면 청와대에서는 장과장의 보고서를 아직도 믿고 있소. 미스코리아 진이 미스가 아니었다고 밝혀진 지금은 자살쪽으로 기우셨지만 그래도 결론을 못내리고 있소. 장과장의 보고서를 다시 원하시고 있소. 오늘 밤까지 말이오."
장과장은 변함없는 눈빛으로 검사를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좀전에 비서실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의 일방적으로 하명을 받았기 때문에 보고체계를 갖춰서 부장님에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검사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저 역시 위계질서와 법규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항명도 아님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여기 계신 국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수사관들이 무의미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도 좋단 말이오?"
검사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말했다.
"좋소. 우리 까놓고 얘기합시다. 비록 대통령께서는, 장과장과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에, 비록 대통령께서는 임명된 장관이 살인범이라고 밝혀질 경우를 염려해서 결단을 못 내리시고 있지만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기 마련이오. 그러니 그것에 위안을 삼고 우리 미스코리아의 죽음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손뗍시다."
"죄송합니다. 사표를 제출하겠습니다."
장과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남형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만 미스코리아 진은 독살당한 게 확실합니다, 검사님. 미스코리아 진이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이긴 했지만 박만하의 퀸서울에 투고한 내용은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그는 사기꾼입니다."
"박만하씨가 사기꾼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는 주로 저명인사의 부인을 상대로 비밀을
파헤쳐 그것을 미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