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매일묵상 | 20.11.3(화)
마태복음 8:16~17
“날이 저물었을 때에, 마을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을 많이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또 병자를 모두 고쳐 주셨다.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는 몸소 우리의 병약함을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16-17절)
‘타인을 향한 관심이 습관이 된 사람’, 지난주 <궁금한 이야기 Y> 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한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위급한 상황에 놓인 것을 보면 지체없이, 생각할 겨를 없이 뛰어가 어느새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는 그는 세종시의 203번 버스 운전기사, 아니 세종시의 ‘수퍼맨’ 김영우씨였습니다. 매일 수없이 반복되는 승하차 속에서 기계적이 될 만도 한 그 순간에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그는 자신의 직장을 ‘사람공부 하는 학교’라고 표현할만큼 사람과 생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25년 전 우연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위기로부터 구해준 일이 누군가를 구해낸 첫 경험이라는 그는 그 일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누군가를 구해내고 있는 수퍼맨 김영우씨,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을 때 그 자신이 구원받았던 것일까요?
본회퍼 목사는 <옥중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것은 오직 남을 위한 관심만을 가지고 있는 예수를 경험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남을 위한 예수의 관심이 곧 초월의 경험이다.” 즉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남을 위한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너무 쉽게 말로만 신앙을 논하려고 합니다. 정녕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말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삶을 사는 것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 교회는 예수님이 가신 길로 가고 있을까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나는 예수님이 가신 길로 가고 있을까요? 그 길을 가고 싶어할까요?
예수께서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병약한 사람들, 온갖 질병에 허덕이는 사람들,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침내 이른 곳은 십자가... 몸소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신 그 자리...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세종시 203번 버스 기사 김영우씨에게서 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에게서 나타났습니다. ‘타인을 향한 관심이 습관이 된 사람’, ‘오직 남을 위한 관심만으로 사신 예수님’, 그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자동적이고 습관적으로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관심, 그 때마다 눈을 들어 손을 뻗어 관심을 바꾸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