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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변주와 전개, 서사성의 미적 변용
-김정화의 수필 ‘헛발질’을 중심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I.
서사는 인간의 사고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결정된다. 김정화의 수필 /헛발질/은 한마디로 플롯에 의해 조직되는 표면구조와 그 표면구조 아래 깔린 스토리에 의해 추상되는 심층구조가 유기적으로 구축한 미적 통일체라는 측면에서 질적으로 여타 작품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 수필의 남다른 특성은 일상의 담화가 축구시합이라는 사건으로, 즉 스토리가 플롯으로 재구성되는 미적 변용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작가는 삽입, 연결, 교체라는 서사 시컨스 조직법을 활용하여 그 사이사이에 문학성을 생성하고 증폭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전개와 적절한 변주를 삽입한다. 이렇게 이야기의 배열질서가 미적으로 변형되다 보니, 보다 쾌락성이 풍부한 재미있는 수필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수필은 소재로의 이야기를 적절한 변주로 배열하는 과정에서 서사적 의미와 가치가 극대화된 작품이라 하겠다. 좋은 작품은 구조적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김정화의 /헛발질/은 대우성과 서사성이라는 수필의 내적, 외적 구조성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반대의 이유가 없는 한 이 수필이 가지고 있는 성질은 문학성의 징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수필의 작품성은 글의 구조에 의해 현실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II.
1. 미적 취향의 관찰자와 낮설게 보기
김정화의 /헛발질/은 높은 핍진성의 밀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수필에는 김정화의 인생사에 대한 세련된 인식이 드러나 있다. 그녀가 화두로 삼고 있는 ‘인생사’의 이야기가 신뢰감과 설득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이 걸어온 삶을 압축하는 단축키로서 자신의 인생관이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녀의 세상보기는 축구경기장에서 양측 선수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레프리와 경기해설자의 눈에 포착된 풍경으로 드러난다. 그냥 풍경이 아니라 그것이 개성적인 심미안으로 파악되어 문학적 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장면으로, 인물로 재탄생된다는 데서 김정화 수필의 남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헛발질/은 한마디로 인생사에 대한 작가의 세련된 인식과 사유가 빚어낸 결정체다. 삶의 희노애락을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작품의 내포를 다졌다. 수필의 외연 확대를 가져오겠다는 야무진 작가적 의식이 투영되어 있어 독특한 인상을 준다. ‘정말이지 중매는 함부로 할 게 못되더군. 인생이란 승부가 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 오직 긴 하프타임만 있을 뿐’이라는 진술은 주제의식이 의미화된 부분이다. 그녀의 수필 쓰기는 흔히 일반수필이 취하고 있는 일인칭 작가 시점이 아니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창작과정이 ‘변형’과 ‘보수’라는 미적 작업을 관통하고 있다는 데서 남다르다. 문학적 형식이라는 구조와 관계 속에서 수필의 소재가 되는 중매담 등의 일상사는 특별한 관점으로 인식하지 않고, 생활인의 시각으로 보면, 어떤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 된다. 이 친숙한 일상에 문학성을 주기 위해서 작가는 작중 인물들을 축구 선수로, 술집 등의 장소를 운동장으로, 바라보고 있는 1인칭 자신을 게임을 지켜보는 주심 또는 상황에 따라 해설자로 변신시킴으로써 '낯설게 봐야 한다'라는 명제와 만난다. 이로써 간접화, 내면화, 완곡화라는 예술적 특성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건들이 실감 있게 제시되고, 이야기를 신뢰할 수 있게 진술하는 것은 작가의 의무인 동시에 능력이다. 김정화는 친숙한 일상을 문학적 해석이라는 여과 장치를 거쳐 짙은 농도를 가진 의미체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기법과 기교를 수필창작에 적용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훌륭한 서사작가라 하겠다. 발단부의, ‘맥주 빛 안 선장과 하얀 피아노 같은 하 여사’란 인물 묘사를 ‘환상의 커플’과 연결시킨다든지, 전개부의, ‘자존심만 누그러뜨리면’을 ‘코너킥 찬스’와 연결시키는 언술은 바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축하는 예술적 사유에의 천착이 그 농도를 짙게 하는 핵심요인이라 하겠다. 수필의 구성적 본질에 대한 서사적 접근과 수사적 기능의 확대는 실험수필에 대한 선구자적 이상을 담보하고 있다. 김정화의 수필가로서 능력은 행위 자체를 재현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행위들을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를 재생해내는 데 있다고 하겠다. 작가는 실험수필의 청탁에 맞춰 이 글의 배경이 되던 날의 축구경기를 생각했고, 아나운서의 중계방송처럼 맞선 자리의 남녀심리를 축구 용어로 풀어나갔다. 사용된 축구 용어만 해도 오십여 개나 된다. 그리고 글이 가라앉지 않도록 구어체를 사용하여 문장을 톡톡 차올린다. 우리 국어는 서술어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평자는 글을 읽는 동안 내내 호탕하게 웃을 수 있었다.
2. 다양한 전개와 적절한 변주의 연쇄
하나 더 김정화 수필을 관통하면서 볼 수 있는 특성은 현장감, 암시, 긴장, 재치, 유머, 개방, 가정 등 다양한 전개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미‘를 주겠다는 의도가 수사적 시도와 결합되면서 지인의 이야기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를 해석하거나 변혁해왔다면 김정화는 이야기를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축구경기로 치환한다. 일상의 새로운 변용과 사건화를 통하여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주어진 세계에 인간이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데서 이 수필의 우수성이 빛난다고 하겠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로서 ’게임‘을 제시하며, 삶의 진리로서 ’헛발질‘에 담겨 있는 뜻을 독자로 하여금 찾도록 한다. 재미는 모든 이야기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며, 모든 이야기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구심력 역할을 한다. 경기를 지켜보는 관찰자 시점의 접근을 통해 발견한 인생사의 이치를 전개부에서 삽화로 연결시키고, 결말부에 가서 ‘하프타임’으로 진행되는 축구경기의 법칙을 인생사에 견주면, 이 수필을 더욱 맛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 선장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하 여사의 정면 태클’은 ‘헛발질’과 강한 친화성을 갖는다. 이런 공감과 울림은 삶의 원리를 인과성의 원리와 낯설게 보기 형식으로 풀어낸 까닭이다. 그녀의 이러한 시도와 실험은 수필의 외연 확대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작가는 ‘창조’와 ‘생성’ 모티프, ‘복선’과 ‘인과’ 장치를 통해 수필이라는 구조물을 재미있게 감상하도록 축조해내었다. 그녀의 작품이 새롭고 튼실한 구조를 가지는 것은 쾌락성을 구축하겠다는 작가의 견고한 의지 때문이라고 하겠다. 김정화의 /헛발질/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주의 연쇄는 형식미학을 극대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미스터 박, 안 선장 하 여사, 그리고 작가, 이렇게 네 사람의 담화가 전체의 유기적인 결합을 조응하는 데서 이 수필의 묘미가 빛난다. 한 마디로 수필의 구성은 체험적 소재의 재구성에 있다. 서사적 접근을 통해 문학적인 분위기를 잘 환기시켜낸 것도 매력적이다. 특히 안 선장과 하 여사, 두 사람의 대화 속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 각기 던지는 말에 담겨있는 견제의 긴장감 등 이런 특성이 건네주는 공감의 울림이 깊다. 서로 밀고 당기는 저항을 바탕으로 저항을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충실한 서사는 문학성을 견인하는 첩경이다. 결국, ‘재미성’, ‘놀라움’, ‘긴장성’이라는 삼각 촉수로 독자를 단숨에 그녀의 내면세계로 끌어들인 힘 뒤에는 김정화의 탁월한 서사행위가 또 다른 이 수필의 정체성으로 버티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헛발질만 할 뿐 상대방 골네트를 흔들지 못한다’, 즉 인생은 ‘승부 없는 게임’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축구시합에 잘 견주었다. 해설자적 탐색으로 메시지를 잘 풀어내고 있는 결론부의 의미화도 감동 창출의 일등 공신이다. 이 수필은 본격수필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을 서사성과 실험성에 기대어 잘 형상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수필의 주동 인물인 안 선장과 하 여사, 이 둘의 양자 관계를 평면적 관계보다 입체적 관계로 보는 것은 사태를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시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구조와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대단히 철학적인 시각이다. 자신과 운명지워진 것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인연을 중시하는 작가의 인간적 면모는 ‘지루한 연장전을 지켜보며 괴로워한 건 오히려 나였어.’라는 진술에 잘 녹아 있다. 이런 솔직하고 배려적인 자세와 삶의 원리를 풀어내는 탁월한 안목이 그녀의 수필을 감동적으로 읽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 수필에는 이러한 서사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한 삶의 유희적 성찰과 존재의 깊은 탐구가 행간에 깔려 있으며, 인생사에 대한 탁월한 고견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어 감동을 준다. 발단부 마지막에 놓인, ‘맥줏빛 안 선장과 하얀 피아노 같은 하 여사를 서로 맺어주면 환상의 커플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컨츠롤타워 구실을 한다. 어떤 이야기를 빌미로 다음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인과 관계적 전개기법과, 주제의식을 작품 속에 희미하게 깔아 놓은 간접화 방식의 차용이 적절했다. 결국 이 서두 인용문은 작품 속에서 서사를 지배하고, 이어서 '재미', ’놀라움', 그리고 ‘긴장’까지 견인한다. 이처럼 이 수필은 중매 이야기를 ‘헛발질’이라는 하나의 지배 구조로 긴밀히 통합하는 입체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3. 개성적 구성력과 서사성의 미적 변용
밀고 당기는 당사자간의 담화에 담긴 진실성을 파헤쳐나가면서, 작가는 형식적 요건에 더하여, 서사성, 대우성, 구조미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법에다 정합성의 장치까지 보태어 작품의 구조를 더욱 튼튼히 고정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학화 작업은 빈약했던 수필의 형식적인 정체성을 되찾아오는 작업임이 틀림없다. 현실이라는 덧에 걸려 사랑의 존재 조건에 걸친 이해관계망의 작용을 곱씹어보는 게 이 수필을 맛있게 읽는 독법이다. 이런 일상적 사건의 문학적 변용성은 이 수필의 일상적 사건을 미적으로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두 작중 인물은 이 작품에서 존재와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욕망의 가능태인 사랑에 대한 가치 부여를 통해 문학이나 인생 그 자체가 헛발질을 닮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기싸움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 즉 유한적 존재 인식과 인간적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축구경기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성찰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꾸게 만드는 것으로 기능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학적 장치이자 설정이다.
이 수필에서 발단-전개-결말로 이어지는 구도 속의 부분은 그 특수한 전체 속에 의존되어 존립한다. 두 인물이 현실과 이상, 욕망과 실존 속에서 갈등하는 사이, 우리는 이들의 체험에 완전히 몰입하여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이들이 현실논리에 기대어 제시하고 있는 인생해법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기도 한다. 내가 이 여사라면 어떤 해법을 내어 놓을까 고민하기도 해보고, 나를 선장의 입장에 놓아보게도 한다. 삶 속에 녹아있는 보편적 진리를 관찰과 통찰을 통해 해결해간다는 측면에서 이 수필이 주는 문학적 가치는 크다.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조화를 구축하고 있는 이 수필에는 서사성이 별처럼 반짝인다. 이 반짝거림이야 말로 수필을 읽는 재미를 확대하는 밑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III.
한 작가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수필에 있어서 쾌락성의 꽃인 서사성이란 재미를 견인하는 구성 요소다. 그 자신만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 남다른 생각, 남다른 사고, 남다른 세계관을 갖게 해주는 게 바로 구성 작업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문학의 성취도는 참신한 소재와 그에 대한 참신한 해석 그리고 그 해석한 내용을 어떻게 독창적으로 구조화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수필은 낮설게하기의 운용 능력이 참신하여 성공한 작품이다. 거기에 서사적 구조에 어울리는 대우성의 언술적 표현이 쾌락성을 겨냥함으로써 성공적 실험작이 되었다. 이렇게 김정화의 작품은 사건에 대한 개성적 구성력과 서사성의 확보를 통해 예술성을 획득한다. 수필의 예술성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도달 할 수 있는 목표다. 적절한 변주와 다양한 전개는 그 가운데 하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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