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고리오 성가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가 작곡한 것이 아니고, 전레의식과 음악을 통합하여 재 정비한 업적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약 천 년도 넘는 세월 동안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전례음악은 평성가(plainchant), 일명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였다. 중세 동안 교회의 음악인 동시에 대중의 음악이었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중세인들의 가장 위대한 문화적 성취물의 하나이자 그들의 종교적 신앙심의 기념탑이라 일컬어진다.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Gregorius the Great, 540경~604)와 연관된 전설에 기인하여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명칭이 붙었지만,사실상 그레고리오 성가는 한 시대나 어느 특정 지역의 산물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지역의 음악적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서서히 형성된 결정체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교황들은 지역에 따라 여러 갈래로 발달되었던 전례의식과 음악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특히 590년부터 604년까지 재위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가 이 작업에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 성가의 특징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성음악(monophony,그리스 어‘모노스’는 하나를 의미하며, ‘포노스’는 소리를 의미한다)으로,성직자나 또는 여러 가수들의 합창에 의해서 ‘제창(unison)’으로 불려진다. 현존하는 성가들은 네우마(neuma)라는 초기 기보체계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네우마 기보들은 음높이만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성가의 리듬적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서로 다른 이론들이 있다. 이처럼 그레고리오 성가는 선율을 받쳐주는 화성과 반주가 없고,규칙적인 강세가 없는 유동적인 리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귀에는 색다르게 들리며,자칫 공허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의 업적 그레고리우스1세는 서방교회의 4대 교부(敎父)중 한사람으로 590~604년에 교황으로 재임하면서, 4세기경부터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 서 만들어진 여러 지역의 전례를 재정비하고,이를 시행하기 위해 로마에 교황청의 전문 성가대이자 성가 가수를 양성하는 학교인 스콜라칸토룸(Schola cantorum)을 설립하였다. 또한, 성서의 구절과 시편에 어울리는 새로운 선율을 만들게 하고 그때까지 구전된 성가들을 모아 미사용 성가집 「안티포나리움(Antiphonarium)」을 편찬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이 밖에도 많은 저서들을 남겼고,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이런 이유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출처:서양음악사100장면(1) & 쾰른음대,‘클래식 음악에 관한101가지 질문_022’ 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