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고시라는 것에 뛰어든 지도 1년 8개월여가 되어간다. 처음엔 그저 멋도 모르게 뛰어든 것이 벌써 이런 세월이 지났을진대, 고시 장수생의 비애가 어떠한지를 조금은 알 만하다.
모두들 알다시피, 고시는 지난 1000년간의 과거의 뿌리를 잇고 있는 우리 사회 신분상승의 대표적인 통로이다. 난공불락의 신분간의 진입장벽을 너끈히 뛰어넘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장치인 것이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온갖 부조리의 부정부패, 편견 등으로 규정지워지고 갈려진 승자독식의 전형적인 20대 80의 사회인 한국사회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대학입시와 고시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빽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원칙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이 어두운 사회에 그래도 비교적 엄격한 공정성을 가지고 한국사회에 신분통로역할을 해온 대학입시와 고시가 없었다면 한국은 벌써 노동자들에 의한 혁명이 일어났을 거란 그 글을 읽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고시제도가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어야 할 만큼, 우리사회가 썩어있단 말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고시조차 그다지 바람직스런 것으로 보이지 않고, 점점 더 환멸을 느껴가는 것은 왜일까? 요새 학원을 다니면서 보는 우리나라 고시1번지 신림동의 모습을 보면, 더이상 고시가 우리사회를 유지시켜 줄 것 같지는 않다.
고시라는 건 요근래 찾아보기 힘든 몇 안되는 극단적 all-or-nothing게임의 하나다. 세상은 좀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여러 가치들이 공존하는 열린 사회로 향해가는데, 이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이 고시란 것이다. 나날이 다양화되어가는 요즘 세상에 단순히 이분화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 고시란 건 오로지 그 끝이 둘 뿐이다. 합격 아니면 불합격. 그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하였고, 어떤 식으로 준비했는지등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근소한 차이로 떨어져도, 불합격자중 1등이어도 그것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눈물겨운 노력을 했을지라도 95%이상은 반드시 그리고 오로지 '불합격'일 뿐이다. 합격과 불합격 두 가치 사이에 어떤 다른 가치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극단적인 결과지상주의의 최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이 고시란 것이다.
때문에 고시란 것은 진리탐구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도 멀다. 이 세상에서 고시공부만큼 비생산적인 것은 찾아보기가 드물 정도이다. 오로지 답안지상에 쓰여진 '결과'로만 평가받기 때문에, 그 공부의 목적이란 것이 진리탐구가 아닌, 어떻게 하면 정해진 지식을 답안지에 그럴 듯하게 나타나게 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시생들은 결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지 않는다. 아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이미 주어진 지식을 외워서, 어떻게 답안지에 마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양 써야할 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는 대학생들이 신림동이라는 특정공간에 단체합숙하며, '답안작성하기'를 몇 년이고 연습하는 나라는 내가 장담하건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를 가도 없을 것이다.
신림동이란 곳은 참으로 묘한 곳이다. 그 곳 학원들마다 현란한 현수막을 내걸며, 금방이라도 합격의 영광을 안겨서 우리 사회의 최종적 승리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문구를 쏟아내며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너무나 경쟁이 치열했던 것일까. 이제는 아예 대학입시학원처럼 '종합반'식 특별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고시생 '과외'라는 것까지 생겨났다.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국의 거대군수업체와 군부, 정치권의 카르텔을 지칭한 이 말은 이들이 배후에서 결탁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전 세계를 볼모로 삼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복합체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학원-출판사-서점-강사 복합체'가 미국의 군산복합체 못지않게 오랜 세월동안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들은 철저한 담합으로 하나의 거대한 카르텔을 구성하여, 95%이상이 결국은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음을 애써 숨기며, 달콤한 미사여구로 끊임없이 학생들을 고시의 길로 이끈다. 고시란 것에 몇 년째 매달리고 있는 장수생부터, 이제 막 대학에 갓 입학하여 고시합격의 영광을 꿈꾸는 어린 신입생들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들은 이른바 신림동 복합체에게 끊임없이 신규수요를 창출해주며, 그들의 강의를 듣고, 그들의 책을 사며 부를 헌납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구조속에서,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은 다시 한 번 그들이 지난 초중고 12년간 겪었던 것처럼 철저히 시험에 휘둘리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고 만다.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고민해야 할 젊은 인재들이 신림동 복합체가 마련해주는 틀 속에서 세월이 가도 절대 변하지 않는 '고시'라는 제로섬게임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기계부속품처럼 살아가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고시가 우리사회를 유지시키고 나름대로 발전시켰다면, 이제 그 역할을 사회 전체에 넘겨줄 때가 되었다. 고시가 사회를 구원하기엔 이미 우리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화되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하라라고 외쳤건만, 신림동엔 오로지 조국의 '암담한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욱더 참을 수 없는 건........내가 바로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2. '엄태호'님의 반론>
님의 글의 논의 포인트 자체는 이해가 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고시생들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문제, 또는 0.5점에 울고 웃어야 하는 비정한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또 맞습니다.
돈이 있어야 고시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우리는 학원에 많은 돈을 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고시제도가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어야 할 만큼, 우리사회가 썩어있단 말인가?>
예. 불행하지만, 아직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고시제도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제도는 될 수 있으며 대입제도와 고시제도가 이 사회를 그나마 유지시켜온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수많은 수험생들이 고시에 목을 맵니다.
그 자체가 암담합니까? 고시생들은 바보라서 아직도 고시를 과거제도의 연장선상으로 착각하며 젊음을 쏟아붓고 있는 겁니까?
절대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고시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이 사회의 다른 분야가 자기의 젊음을 쏟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청년들을 흡수하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할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고시제도의 개혁은 고시 제도 자체의 존폐가 아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현 사회의 유일한 수단인 시험의 존속을 전제로 한 사회 전체의 발전에 따라 점차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님은 신림동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암담한 미래를 보여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어떤 대안을 제시하시겠습니까?
정몽준씨가 말했던 것처럼 '0.5점 차이로 인생을 가르는 비정한' 고시 제도를 없애고 '사람'이 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시겠습니까?
사견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정몽준씨가 왜 고시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막말로 돈도, 빽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고시 하나 붙었다고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하는 꼴 보기 싫었던 것 아닙니까? 고시제도 없애보십시오. 공직은 돈 가지고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됩니다.
여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시에 많이 몰리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지방대생들이 왜 고시에 운명을 거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이 사회는 아직도 학벌과 성별에 따라 원서 종류 자체를 다르게 할 정도로 차별적이고 폐쇄된 사회이고, 따라서 고등학교때의 잠시 실수나 다른 사정으로 학벌이 딸리는 사람, 능력은 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사회에 질린 여성들이 유일하게 아무것도 안 따지고 시험만으로 사람 뽑는 고시에 몰리는 것입니다.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지는 것이 비정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또한 고시생으로써, 외교관이 되고 싶어 평생을 기도해오고 달려왔던 사람의 하나로써 작년에 이미 쓴 맛을 경험하고 올해에도 죽도록 공부했지만 애매한 점수를 받고 고민하고 있는 학생으로써 이 제도 정말 비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의 그 어느 분야가 비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고시생들이 들이는 노력, 고시생들이 겪는 좌절.. 사회의 다른 분야에는 없으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지금의 나의 고통스런 상황보다는 그 어느것도 낫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안이한 판단은 아닐까요?
극단적인 결과주의라.. 그럼 과정을 판단하시겠습니까? 모니터링 요원 세워서 누가누가 많은시간 공부하나 체크하게 할까요? 대안이 뭡니까? 결과를 가지고 하는 판단 자체가 과정이 없이는 결과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합리성을 갖는 전제를 두기 때문 아닙니까? 대안 없는 비판은 정치권, 언론권의 아니면 말고 식의 의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악습입니다.
사회라는게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한정된 자원을 커다란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든 배분을 해서 살아가는 시스템 전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얻고 누군가는 좌절하게 됩니다. 그 기준점은 어디에 세우시겠습니까?
고시는 그 기준으로 점수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그 어떤 주관적인 요인도(교수들의 채점이 주관적이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객관식 주관식 둘 다 보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개입하지 못하는 기준입니다. 그 자체가 최선입니다. 또 뭐 있습니까? 교수들만, 박사들만 고용할까요? 그들은 '진리의 탐구'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진리는 뭡니까? 진리의 탐구는 정해진 正道가 있답니까?
신림동의 학원을 군산복합체에 비유하셨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학원들이 불쌍한 고시생 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 같더군요.
95%의 학생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구요.. 그럼 학원에 가는 학생들은 학원이 제시하는 청사진을 다 곧이곧대로 믿고 간다는 전제가 깔리는 셈이군요. 영어학원에 가는 사람이 6개월 후 네이티브처럼 말할거라는 학원의 주장을 다 믿습니까? 비씨카드를 쓰면 부자가 된다는 광고를 다 믿으십니까? 에이스침대가 침대는 과학이라고 하면 침대는 가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겁니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하에 학원에서 얻을 것, 빼낼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수강해서 들으면 되고, 그 수강료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안 들으면 됩니다. 그게 왜 비판의 대상입니까? 그럼 학원은 "여러분중에 10분의 1도 합격 못한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수강하세요"라고 합니까?
우리 모두 고시를 준비하는 상황이 힘듭니다.
하지만 힘든 나머지 이 사회에 화살을 돌리며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 한 미래가 암담할 것이라는 생각, 나는 참 불행하다는 생각, 나는 제도에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 그런 것 하지 맙시다.
오히려 PSAT등의 제도가 생겨서 1차 붙고나서도 1년 허비하지 않게 하는 등 점점 제도가 개선되고 있는 것에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합시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시제도'의 문제점이지, 거기에 뛰어드는 '고시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님도 지적하셨다시피, 고시제도는 우리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지극히 비효율적인 인력충원방식입니다. '공정성'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수월성'의 측면에서 너무 취약해졌다는 얘깁니다.
고급관료같은 고급인력을 우리와 같은 폐쇄적인 제도로 뽑는 국가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해당부처가 재량으로 인턴쉽을 거쳐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습니다. 영국도 공무원임용시험이란 것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고시처럼 폐쇄적이진 않을 뿐더러, 반드시 2년간의 인턴쉽을 거쳐, 자격미달로 판명되었을 땐 탈락처리됩니다. 과정은 무시한 채, 단 한번의 시험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을 살펴보기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요? 정작 실무에는 쓸모없는 지식의 암기에만 지나치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재들이 사장되는 인력운용의 비효율성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폐쇄적인 임용시스템을 거쳐 들어간 관료들은 자연히 그 고시라는 '진입장벽'을 높게 쳐 폐쇄적인 관료문화를 재생산합니다. 민간부문채용제나 교수출신 장관들의 성과가 좋지 않은 주요한 이유가 바로 관료사회의 폐쇄성때문입니다. '난 힘들게 공부해, 고시붙고 들어왔는데, 넌 뭐냐?' 이런 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관료사회가 국제사회의 변동에 걸맞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고시는 없어져야 하는 제도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연장선상에서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사회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전근대적인 고급인력채용제도일 뿐입니다.
폐쇄적인 고시를 폐지하고 좀 더 개방적인 임용시스템을 도입해야, 공직의 철밥통 신화도 깨지고, 좀 더 많은 인재가 민간부문에 진출하여 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위의 글은 제가 고시를 준비하며 나름대로 느낀 문제점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다음, 쓴 글입니다. 단순히 기분 나쁘시다고 감정적인 글이라 단정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군요.
대안이 없는 비판이라 하셨지만, 대안이 없더라도 잘못된 것은 누군가 지적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안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고시를 대체할 만한 대안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경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대안'을 도입하는 상황이 두려울 뿐이시겠죠.
우선, 님의 글을 깊은 고민의 과정 없이 쓰여진 감정적인 글로
단정짓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 점에 사과를 드립니다. 삭제하였습니다.
고시제도에 효율성이 부족하다는 말씀 백번 맞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미친듯이 공부해도 떨어지는 시험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궁극적으로 폐쇄되어야'만'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지만 다른 좋은 제도가 있으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최선이 아닌 단지 차선일 뿐인 제도라는 점에서 님의 말씀에 동의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고시제도는 절대 폐쇄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폐쇄적...진입장벽을 높였다는 말인데, 고시제도는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시작부터 진입을 막는 제도가 아닙니다. 단순히 '너무 많이'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폐쇄적인 제도라고 말씀하신다면 '폐쇄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잘못 규정되었다고 생각하구요, 오히려 누구든지 도전을 할 수 있기에 개방적인 제도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난 힘들게 해서 들어왔는데 넌 뭐냐?'라고 생각하는 것, 저는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 자존심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맡은 일을 담당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외부 인력들은, 좋은 성과를 보인 케이스도 당연히 있구요, 부진했던 사람이 있다면 공직문화의 폐쇄성 못지 않게 공직의 특수성에 대한 경험 부족이나 정치적 연줄로 인해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이기 때문이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둘째, 외국의 경우와 비교를 하셨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과정이 '공정'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선, 2년의 인턴쉽 후에 맞지 않는다고 자르는 제도는 고시제도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인턴쉽을 통한 능력의 평가는 결국 그 직속 상급자가 누구냐라는 가변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불안정한 평가이며, 2년 후 종국적으로 공직수행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이 과연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별다른 편견 없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의문이고 그 사람이 헛걸음한 2년은 1차 붙고 2차 떨어져서 낭비한 1년과 똑같은 성격의 아까운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 아까운 시간 없애려고 psat제도가 도입되는 것이구요)
또한 2년의 인턴쉽동안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게 된다면 물론, 일을 열심히 해보기도 하겠지만 다른 요소를 통해 '잘 보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해지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국의 특수성을 언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미국이나 영국에서 그런 제도의 도입 자체가 가능한 이유는, 공직이라는 직업 자체가 그 나라 엘리트들에게 별로 소망적이지 않은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요? 일반 사회의 불안정성과 격변성에 시달린 나머지 안정성을 찾아 헤매다 공직을 그 종착점으로 삼은 사람들이 수없이 몰리는 곳입니다.
한국은 또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합니다. 남자냐.. 출신 학교가 어디냐.. 아버지가 누구냐..
이러한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임용의 수월성보다는 공정성을 우선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정성의 추구는 집착이 아닙니다. 그 어떤 제도에서도 간과되거나 무시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임용의 수월성과 효율성 역시 중요한 가치입니다만,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후에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공부,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나누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하구요, 우리가 하는 공부중에 물론 너무 자잘한 것 까지 외워야 하는 짜증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공직자로서 갖춰야 하는 전문 지식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흠...
사담 하나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제 누나가 미국 콜럼비아대 로스쿨 마지막 3년째를 다니고 있습니다.
영어도 매우 잘하고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누나입니다.
근데 누나가 저한테 같이 공부하고 있는 외교통상부 사무관 학생들 두명 얘기를 해주더군요.
외시를 붙어서 국비로 유학을 온 여성분들 두분인데 누나가 그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합디다.. 외국 한번 안 나가봤다는 사람들이 어찌나 영어를 잘하는지 뉴스위크 수준의 영어가 술술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구 하더군요. 거기다가 다른 분야에 무지 해박하고, 자신감 넘치고, 열심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등등.. 칭찬을 아끼지 않더니 저더러 그 사람들처럼 뛰어난 사람이 붙는 시험이면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럽디다...
누나 얘기 듣고 이런 저런 생각 들더군요...
우리 사회가 '공정성'을 강박하지 않으면 안 될 특수한 사회임은 안타깝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제도를 바로 도입할 만한 사회적 기반이 갗추어져 있지 않다는 말 백번 동의합니다.
그리고, 분명 님 말씀대로 그 사회에선 공직이 우리사회만큼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회전체적 분위기가 아마 가장 큰 차이를 만들지 않나 싶네요....
오랜 기간의 중앙집권적 역사속에서 형성되어온 관존민비사상에 젖어온 우리사회에 영미권의 선진제도를 바로 도입하는데는 문제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공정성'에 집착하여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월성'을 희생하기엔 우리가 헤쳐나아가야 할 세상이 너무나 험난하기에 지속적으로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부터라도 그 준비를 해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관존민비'사상이 형성되어 온 시기만큼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공적영역은 축소되고 민간부문이 확대되는 사회가 좀 더 선진적인 사회이고, 그것이 역사의 발전방향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써, 민간부문의 활성화방안과 함께 공직임용시스템의 개선노력도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고시생으로서, 자신의 꿈을 향해 고시라는 험난한 길을 가는 고시생 여러분들의 그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한 분들은 역시 이 사회를 이끌어나가기에 충분한 인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다른 형태의 고급인력충원방식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또한 그것이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고, 그런 사회적 기반이 하루속히 갖추어지길 기대합니다.
님께서도, 노력하신 만큼 좋은 결과 있어, 국가를 위해 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랍니다. 행운을 빕니다.
두 분이 글을 올리신 시점이 사실 제가 취임식 외빈영접 준비를 총괄하느라 거의 카페에 들어오지 못했던 시점이라 두 분의 글을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였기에 최근 다시 한번 읽어보니 참으로 논점이 뚜렸하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춘 상태에서 진행된 좋은 논쟁이라고 느꼈습니다.
두 분의 글은 외시공부에 관심이 있는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참고가 될 것으로 판단합니다.
자유인은 외시 공부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소위 '신림동 고시촌'을 가 본적이 없기에 고시촌의 '문제점'에 대하여서는 별도로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판단과 생각은 있습니다)
저는 '현행 고시제도'에 대한 개인의견을 한 토막 소개하려 합니다.
현재의 고등고시 제도는 '선발방식'이나 '시험양식'에 있어서 분명 문제점이 있다고 느끼며 또한 고시를 통과한 공무원들의 관료주의 등도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최근 행정고시 개혁론이 나오고 또한 인턴제도를 통하여 공무원의 50% 충원 아이디어도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자유인이 현행의 고등고시방식으로 외무고시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또한 외무 공무원으로서 십 수년간 근무하였던 경험에 입각하여 솔직한 의견을 피력하자면,
현행 고시제도가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 현재의 시험양식이 수험생들에게 암기식 공부방식을 강요한다고 비판하는데, 고등고시의 많은 과목을 짧은 기간안에 공부하면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우선 많은 지식을 머리에 기억하여 논술식 답안지에 옮겨놓으려면 분명 '암기식 공부가 필요합니다만, 저의 근무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암기식 공부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고시는 학자를 선발하는 것은 아니고 공무원으로서 직무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과목에 대한 학문적인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이해와 깊은 지식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과목 모두에 대하여 체계적인 이해와 깊은 지식을 갖추면서 고시공부를 하려면 아마도 약 10년은 공부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이 같은 암기식 공부에 의하여 외시를 합격하고 외교관이 된 이후 국제무대에서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비교하여 보니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이 주로 자신의 전공분야에서만 자신을 갖는 반면 우리나라의 외교관들은 국제법, 국제정치, 경제통상 등등 각 영역과 분야에 있어 전천후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숫적으로 훨씬 열세인 우리나라의 외교관들이 열악한 여건에서 그나마 이처럼 선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행 우리의 고시제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고시공부시절에 비록 '암기식'이지만 기본지식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믿습니다.
쉬운 예를 비유하자면,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에 구구단을 '암기'합니다.
학술적으로는 구구단의 원리를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철저히 이해할 수 있지만 당장 초등학교의 산수나 중고등학교의 수학을 풀어나가기 이해서는 '원리의 이해' 못지않게 구구단의 '암기'가 손 쉽게 이용되고 또한 원리를 이해하는데도 암기는 도움이 됩니다.
외시 각 과목에 대한 공부가 암기식이라고 비판하시는 분들은 이 점을 최소한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현행 고시의 점수제에 의한 선발이 아닌, 인턴쉽 제도에 의한 공무원 선발이 시행될 때의 문제점입니다.
어느 분은 19세기식의 과거제도라고 혹독한 비판을 하시는데 물론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안이 신통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느끼기에는, 만약 현행 고시제도를 대치하는 '인턴쉽'에 의하여 초급관리직 공무원들을 선발하게 된다면 이는 아마도 조만간에 21세기판 '음서'제도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저의 믿음은 변함이 없지만, 현행 사회의 행태로 볼 때 고위관직의 '세습'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도 ,외국의 외교관들이 보면, 거기서 거기인 도토리 키재기식의 국내 학교의 출신에 따른 '학벌' 서열매기기 현상이 엄존하고 또한 '학벌'에 의한 사회의 계층과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초급관리직 공무원 인턴쉽제도가 시행되면 우리 사회의 상층부는 '가문의 영향력'에 의하여 국가 행정부마저도 세습적으로 접수할 것 같다고 느낍니다.
가난하고 출신이 미천하지만 국가관이 투철하고 머리가 좋은 인재들이 그나마 사회의 기득권층에 제도적으로 진입하여 국가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현행 고시제도는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될 수 있다는 것이 자유인의 생각입니다.
** 이상의 자유인의 생각과 의견은 자유인의 경험에 입각하여 주장하는 것이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리하게 해석하기 마련이지만, 자유인은 설령 현행제도가 바뀌어 인턴쉽제도로 외교관을 선발하더라도 잃어버릴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